지난 9월 중순 경 충북 단양에 살고 있는 로사의 오라버니가 고맙게도 시골
에서 쓰던 가마솥 하나를 구해서 보내왔다. 전통 가마솥이라 모양도 좋고 쇠
도 두꺼워서 특히 뚜껑과 부딪히는 쇳소리가 듣기에 아주 좋았으나 직경이
50 센티로 그리 작은 편은 아니나 그래도 조금만 더 컸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 아쉬움을 그대로 두고 볼 우리 로사가 아닌지라 그보다 조금 큰 가마솥을
알아보기 시작하였으나 가마솥 취급하는 업체의 물건은 새 물건인데다가
옛날 가마솥과는 달리 두께도 얇아졌고 따라서 무게도 가벼울 뿐만 아니라
요즘은 이러한 가마솥마저 저 중국에서 수입해 오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소리를 듣고 기가 막혔었다. 그렇다고 어찌할까 하고 망설이고만 있을 우리
로사가 절대 아닌지라 즉시 행동 개시… 단양을 넘어서 안동, 영주 등의 시골
장을 누비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직경 60 센티 짜리 가마솥을 영주 장날에
가서 구하는데 성공하였다.
가마솥 직경으로는 별로 감이 오지 않을지 모르겠는데 직경 50 센티이면
대체로 40~50 리터 정도의 용량이고 60센티이면 약 70 리터 정도가 된다.
두개의 가마솥을 갖다 나란히 놓고 보니 마음은 뿌듯한데, 이제부터 이놈들
을 걸어야 하는 난제에 부딪히고 말았다. 가마솥을 구해 온 것은 우리 로사의
공이지만 이제부터 이것을 설치하는 것은 내 몫인지라 어떻게 하여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마솥을 걸 위치는 어디로 하고 가마솥을 거는 방식은
하나씩 따로 따로 할 것인지, 아니면 시골집 부뚜막 모양으로 함께 걸 것인지
굴뚝은 어떻게 하고 어떤 재료를 쓸 것인지, 등등.
이제부터 가마솥, 부뚜막, 아궁이 등등 설치에 관련된 자료 수집차 네이버,
구글 등을 수차례 뒤져보았으나 그 원리나 방식 등에 관한 만족할 만한 자료는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마침 요즘 집 주위의 공터에서 주택 건축을
하고 있기 때문에 현장 책임자들에게 의견을 구하고 주변의 나잇 살깨나 든
영감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하여 나름대로 우리가 어렸을 때 보아 왔던 시골
집 부뚜막을 연상하면서, 두 개의 가마솥을 나란히 걸고 부뚜막을 만들고 두
가마솥에서 나오는 연기가 한 군데로 모이는 위치에 굴뚝을 만드는 것으로
하고 부뚜막 뒤로 물을 퍼서 버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 물이 호스를
통하여 아랫 마당의 수채로 갈 수 있게 한다는 구상 등등…
이렇게 해서 설계한 설계도가 보시는 바와 같은데 가마솥을 설치할 면적이 이게
또한 작지 않은 면적을 차지하고 그러다 보니 바닥 다지는 일이 대공사가 되고
말았다. 그냥 흙 바닥에 가마솥을 걸고 부뚜막을 설치하면 한 겨울이 지나기도
전에 찌그러지고 붕괴되는 현상이 오기 때문에 튼튼한 바닥이 먼저 조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대체로 집을 지을 때 기초공사로 적어도 두 자 즉 60센티 이상을
파야한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으며 바닥이 수평이 되게 작업하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실제로 필요한 면적이 가로 2 미터, 세로 1.6 미터 정도인데 이것을 약 30센티
정도 파내고 그 안에 20센티 정도는 이삼십 센티 정도되는 큰 돌부터 자갈까지
잡석들을 구하여 채우고 그 위에 철근을 구하여 이리저리 깔아놓은 다음
시멘트를 부어 전체를 다지는 것으로 결정하고 작업에 들어 갔다.
먼저 약 6 센티 각목으로 사방 테두리를 만들고 수평을 맞추어 그 각목 위까지
시멘트를 채우는 것으로 하고 작업을 시작, 아니 노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하루
이틀에 끝낼 일 같으면 인부를 고용하면 되겠지만 무슨 정해진 틀이 있는 작업도
아니고 본인이 의도하는 대로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 나이에 직접하기로 작정
하였던 것이다. 평생 흙을 만져 본 일도 없고 무슨 노동에 익숙한 터도 아닌지라,
작정하기로는 세월아 내월아 하면서 노동을 운동으로 바꾸는 모양새로 일하기로
마음 먹었지만 어디 그대로 되었겠나요?
여기에 소요된 자재만 해도 잡석이 작업수레로 여섯 수레, 40 킬로짜리 시멘트
몰탈이 12 포대, 50 센티 철근이 20 개, 파낸 흙이 5 수레 정도가 된다. 대략 9월
23일부터 10월 3일까지 사이에 약 7일간 작업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파낸 흙은
반 정도는 수레에 실어 다른 곳에 갖다 버려야 하고 잡석은 수레를 끌고 다니면서
여기 저기서 주워와야 하는 작업이니 한 번 상상해 보시라. 또 몰탈 시멘트는 한
포대가 40 킬로그람이나 나가는데 이놈을 들고서 5 미터, 10 미터 나르는 것은
정말로 힘든 노동이어서 진짜 죽을 맛이었다. 그나마 세상이 좋아져서 시멘트
몰탈이라는 것이 있어서 미리 시멘트와 모래를 섞어놓은 것을 사다가 물만 부으면
되니, 예전처럼 시멘트 따로, 모래 따로 사다가 비율을 맞추어서 물에 개는
번거러움은 피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렇게 해서 만든 바닥에 이제는 솥을 걸어야 하는데, 먼저 솥을 걸 자리를 만들어
놓고 그 다음에 부뚜막을 만들고 굴뚝을 연결하는 순서로 작업을 하기로 하였다.
우선 설계도대로 바닥에다 솥이 걸리는 위치와 아궁이, 연기가 나가는 위치, 연기가
가는 통로, 굴뚝의 위치, 부뚜막 경계 등을 실제 크기로 매직 잉크로 그려놓고 또
작업준비를 위하여 솥의 직경과 같은 50 센티와 60 센티 크기의 원반을 만들었다.
여기에 필요한 자재는 적벽돌 약 400 장과 잡석 2~3 수레 그리고 시멘트 몰탈 8
포대. 마침 집 지은 공사 현장에 적벽돌이 남아 있었는데 현장소장이 친절하게도
가져다 쓰라고… 400장이면 적어도 30만원은 될텐데 말이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을까.
먼저 그려진 대로 벽돌을 반 토막씩 내어서 원형으로 가마솥 거는 틀을 6 단으로
쌓았다. 앞의 아궁이 부분은 4단까지는 비워놓고, 뒤쪽 연기 빠지는 곳은 5 단까지
비워놓고 쌓은 다음, 그위는 앵글을 짤라서 받침목으로 버틴 다음 2단 또는 1단을
다시 벽돌로 쌓아서 6 단은 전체가 가마솥이 걸리게끔 둥글게 원형이 되게 만들
었다. 이 과정에서 가마솥 싸이즈 원반을 끼워서 둘레가 꼭 끼도록 하면서 작업을
하니 제대로 되는 것 같았다. 아, 참 벽돌을 쌓을 때는 벽돌의 이음새가 1단과 2단이
서로 꼭 맞아서는 안되고 서로 지그재그가 되어야 나중에 갈라지지 않는다는 것도
이번에 배웠다.
가마솥 걸이가 완성된 다음에는 연기 통로와 굴뚝의 위치 작업이 계속되었다.
통로는 그려진 대로 따라서 이번에는 6단으로 쌓았다. 왜냐하면 연기는 위로
빠지기 때문에 연기통로를 가급적 높여야 하기 때문이었고 가마솥의 걸림 위치가
6단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그 높이로 연기가 통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6단 위로 통로를 메꾸다 보니 메꾸는 부분은 7단이 되어 부뚜막보다 1단이
더 높아지게 되었다. 그리고 양 솥의 연기 통로가 만나는 곳에서 약간 지난 다음
(벽돌 한 장 정도) 바로 굴뚝으로 연결되게끔 굴뚝 위치를 잡고 여기까지는 7단으로
굴뚝 안이 약 20 센티 정사각형이 되도록 만들었다. 원래 시골에서 부엌의 아궁이와
방구들 사이에는 대략 2 자 정도까지 높이에 차이를 두어야 연기가 잘 빠져나간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나도 연기 통로 시작부터 굴뚝 밑바닥까지를 약 15 센티 정도로
높여 놓았다.
그 다음은 부뚜막이다. 그려진 선대로 부뚜막의 외곽과 부뚜막 앞 면을 벽돌로
6단 높이로 둘러 쌓아놓고 그 안의 빈 공간을 보강할 곳은 벽돌로 다시 쌓고
그렇지 않은 곳은 잡석으로 메꾸면서 전체가 6단 높이로 부뚜막이 되도록
하였다. 여기까지 작업하는데 10월 5일부터 11일까지 사이에 약 4일이 소요
되었다.
이 때까지는 그냥 가마솥 거는 부뚜막 하나 만든다는 생각만 있었지 그 과정을
나중에 글로 써 놓을까 하는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때 그때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 놓지 못했다. 이제 생각하면 참으로 아쉬운 생각이 든다. 특히
처음에 솥 거는 틀이 완성되었을 때 이것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아쉬운 점이다. 그 틀이 얼마나 멋이 있었던지…
다시, 굴뚝을 올리는데 하루가 걸렸다. 굴뚝은 7단 위로부터 안 쪽의 한 변이
15 센티가 되는 정사각형이 되도록 작업하였다. 여기까지 만들어진 모양이
아래 그림이다.
이제는 부뚜막을 일차 미장하고 바닥과 물 버리는 곳과 호스를 연결시키는
일이다. 더하여 바닥 주변을 정리하는 일도 남았다. 이것이 또 하루 일이었고
아마 10월 15일쯤 된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나서 다시 솥을 얹어 보았는데
신통하게도 딱 맞아 떨어졌다. 천만다행이다. 틈이 벌어지고 수평이 너무 안
맞았으면 어쩔 뻔 했을까?
이제는 솥을 걸어야지. 2~3일 전에 인터넷으로 주문한 황토 몰탈과 황토색
스프레이가 도착하였다. 가마솥 거는 틀의 전체 수평은 신통하게도 전체가
1~2도 정도 차이 밖에는 나지 않았다. 먼저 부뚜막을 황토 몰탈로 약 0.5
센티 정도 두께로 다시 미장하면서 그 위에다 솥을 걸고 고정시켰다.
그러면서 혹시 틈이 나는 곳이 있을까 세심히 보면서 솥이 부뚜막에 빈틈
없이 앉혀지도록 덧칠을 한 후 부뚜막 전체를 그 높이로 황토 미장을 하였다.
참, 그전에 아궁이 바닥도 황토로 약 0.5 센티 두께로 다시 입혔고 안 벽도
마찬가지로 황토몰탈로 빈 구멍이 없도록 전체를 다시 싸 발랐다.
그 다음에는 부뚜막 바깥 벽을 돌아가면서 황토몰탈로 덧입히고 굴뚝도 구석
구석까지 마찬가지로 황토몰탈로 덧입혔다. 마지막으로 바닥과 그 가장자리
까지 모두 황토몰탈로 미장을 하여 전체가 황토색으로 어디에서도 시멘트
냄새가 나지 않게 만들었다. 이것이 또 10월 19, 20일 이틀 간의 작업이
되었다.
이제 주위를 깨끗이 정리하고, 가마솥을 덮을 다라이를 사다가 황토스프레이로
색갈을 입히고 아궁이 막기를 만들어 완성된 부뚜막이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가마솥은 사용하기 전에 길을 들여야 하는데 이 작업이 또 만만하지가 않다.
그 동안 여러 차례 들기름을 바르고 문지르기를 하였지만 아직도 여러 번 더
길을 들여야 한다. 우선 일차로 가마솥 부뚜막 테스트를 겸하여 길들이기를
하였다. 연기가 새는 곳은 없는지, 불은 잘 들이고 연기는 잘 나가는지를
겸하여 나무를 태워 시험하였다. 시험 결과는 퍼펙트 합격!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더하여 솥 안에는 솔잎 가지를 가득 넣고 물을 부어 끓여서 솔잎
향이 가마솥에 배이도록 펄펄 끓여 보았다. 아마도 틈틈이 이 과정을 두세번은
더 거쳐야 할 듯… 이래야 가마솥의 쇠 냄새가 제거되고 대신 솔잎 향의 은은한
냄새가 난대나.
가마솥의 연료는 두가지를 쓰기로 하였다. 하나는 주위에 흔한 나무를 주워서
때는 것. 그렇다고 아무 나무나 쓰는 것이 아니라 참나무 아니면 소나무만
주워서 땔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참나무 장작 한 차 실어다 놓던지.
다른 하나는 가스 버너로 LPG 가스와 연결시켜 쓰는 것. 이것은 이미 준비
완료.
사실 가마솥을 걸어서 무얼 얼마나 쓸 것인가? 더구나 밥을 해도 한 번에
20~30인분이 더 넘게 되는 큰 가마솥을 말이지. 혹시 두고 두고 먹을 진국
곰국을 끓이거나 토종 닭을 구해서 한 번에 대여섯 마리씩 삼계탕을 해
먹거나 아니면 멍멍이나 한 반 마리 푸욱…?
그런데 지난 한 달간 이 짓을 하고나니, 나름대로 보람도 있는 것 같고
재미 있게 소일을 한 것도 같고 또 어떻게 내가 이런 것을 해 놓을 수
있었는지 놀라기도 하고, 참으로 헷갈리는 게 한둘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이 나이에 무언가를 할 수 있고 또 해냈다는 것이 참으로
신통하기 짝이 없다. 물론 하라고 했으면 기를 쓰고 안 했을 것이고
돈 줄 테니 하라고 했으면 더더욱 어림도 없었을 일을 말이다.
어쩌면 이 기간이 나로서는 금년 중 가장 재미 있고 복된 나날이었을 것이다.
일하는 순간 순간이 참으로 재미 있었고 즐거웠고 또 잠자리에 들어서도
다음 날 일하고 싶은 의욕으로 가득 찼었으니까.
이런 일이 아니더라도 여러분도 한 번 주위에서 터무니 없는 일을 하나
찾아서 나처럼 시도해 보기 바란다. 해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갑자기
젊어지는 느낌이 들 것이다.
자, 어쨌든 만들어 놓은 것. 그냥 보기만 하고 썩히면 아니 만듬만
못할것이다. 이제부터 쓰일 방법을 연구해야지… 사실은 간단한데
말이지. 어디서 좋은 재료 구해지면 미리 날 잡아서 여러 좋은 친구들
모셔다 한 자리 같이 하고 또 누구든지 요즘 유행하는 웰빙 음식 만들고
싶으면 그냥 재료 싸들고 오면 되는 것이지 뭐. 물론 자릿세는 받아야
겠지만 말이지..
어쨋거나 말은 이렇게 해도 그 동안 밤마다 허리 주므느라 애쓴
우리 로사가 더 없이 고마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