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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5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 설교
제목 : 우리 안에 말씀이 풍성히 살아 있도다!
본문 : 골로새서 3장 1~17절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영어 ‘Christian’을 우리말로 바꾼 것입니다. 그리고 영어 ‘Christian'은 라틴어인 'Christianus'에서 온 말입니다. 이 모든 단어의 뜻은 하나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제자’ 또는 구별된 ‘성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더 깊은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가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요한복음 1장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그 말씀이 하나님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에게서 사람의 빛인 생명을 얻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결정적으로 바로 그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선포합니다.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요한복음 1장 14절, 새번역>
말씀이 육신이 되신 이 사건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너무도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들려오던 하나님의 음성이, 온 땅에 선포되던 하나님의 말씀이, 더 이상 ‘소리’나 ‘느낌’이 아닌 실제로 볼 수 있는 ‘육신’이 되신 존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이 땅에 직접 실현시키시러 오신 존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포하신 구원이라는 ‘말씀’을 직접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해 친히 십자가를 지시는 ‘육체’가 되어 오신 것입니다. 그 육체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완전한 ‘구원’의 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말씀이 삶이 되신 존재를 따르고자 결심한 존재들입니다. 그 결심은 바로 ‘나 역시 말씀이 삶이 되도록 하겠다!’ 라는 결심인 것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존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 땅에 실현시키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이 땅에 하나님의 말씀을 육신으로 보여주는 존재들이라고 결론적으로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아주 쉽게 한 줄로 요약하면 ‘말씀을 살아내는 자’가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라는 그리스도인을 통해 ‘말씀’이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 ‘예수님’이 드러나야 하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런데 그 방법은 오직 하나, ‘말씀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말씀은 결코 귀로 듣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간직하는 것도 아닙니다. 말씀은 우리를 통해 살아서 역동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야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어서, 어떤 양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밝혀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 새번역>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말씀을 살아낼 때 그 ‘말씀’이 일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아마 이미 수도 없이 경험하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한 것, 그것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많은 기적들이 일어났는지, 그 간증을 하실 수 있는 분들이 너무도 많으실 것입니다. 왜 그런 기적이 일어났다고 간증할 수 있는 분들이 많을까요? 그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저와 여러분, 우리라는 육신 속에 풍성히 살아 있으면 있을수록, 풍부한 생명력으로 활동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말씀은 더 많고 넓고 깊은 영역으로 퍼져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영향력’입니다. 왜 그리스도인이 시대마다 영향력이 있는 인물로 뽑힐까요? 우리가 잘나고 대단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한 가지, ‘하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이 땅에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부모로서 가장 행복할 때는 자녀들이 부모의 뜻을 이해하고 그 뜻에 따르며 살아가 줄 때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부모가 한 말이 그냥 땅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 자녀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자녀가 그 말대로 살아가고자 노력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뻐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말이 아이들의 삶이 되었을 때, 비로소 부모와 자녀 사이에 좋은 다리 하나가 놓인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녀의 말도 부모에게 자리 잡아 또 하나의 다리를 만들고, 그렇게 부모와 자녀가 서로의 말을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듣고 서로 살아내 주기 시작한다면 그 가정은 정말 외딴섬들이 아닌 건강하고 튼튼한 하나의 가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우리의 말은 모두 하나님께 삶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귀를 기울이시고, 오늘도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말을 ‘삶’으로 보여 드릴 때가 온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이제 이 일, ‘말씀을 삶이 되게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먼저 말씀을 보는 것입니다. 모르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알아야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요예배 때도 그렇고, 성경 공부를 할 때도 그렇고 늘 가장 먼저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배우면 이제 살기 시작하셔야 합니다.’, ‘모를 때는 괜찮지만 아시게 되면 꼭 행하셔야 합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아는 만큼, 배운 만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더 깊이 배우고, 알아갈수록, 깨달을수록, 더 깊고 성숙한 삶을 사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하나를 배우더라도 그 말씀과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통해 내가 드러나고, 나를 통하여 그 말씀이 드러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2023년 저희 교회의 표어는 ‘예배 안에 하나 되어’입니다. 1월에는 하나님과 하나 되는 방법, 2월에는 우리 동역자들이 하나가 되는 방법, 그리고 이번 3월에는 말씀과 하나가 되는 방법에 대해서 하나님께 배우고자 합니다. 그런데 3월 한 달 4번의 배움 이전에 이렇게 선포하면서 시작하고 싶습니다. 이미 여러분들은 ‘말씀과 하나가 된 존재’입니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물론 이 말을 듣자마자 부끄럽고 민망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사실이 아니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분명히 말씀 드리지만 사실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인이고 이미 말씀과 하나가 된 존재입니다.
그래서 3월 4번의 시간동안에는 말씀과 하나 된 우리가 어떻게 말씀을 실천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할 것입니다. 뒤집어 생각해 본다면 실천해야 하는 말씀들을 살아내면서 내가 그리스도인이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발견하시는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방법에 대해서 배우기 위해 골로새서 3장 1~17절을 4주 동안 4번의 주제로 나누어 깊숙이 들여다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주제가 되고, 중심이 되는 구절은 바로 16절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살아 있게 하십시오. <골로새서 3장 16절A, 새번역>
그렇다면 말씀과 하나가 되어 살되 어떻게 하면 말씀이 우리 가운데 풍성히 살아 있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오늘은 2가지를 먼저 배워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심을 받았으면,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여러분은 땅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지 말고, 위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십시오. <골로새서 3장 1~2절, 새번역>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위’라는 공간에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가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라는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추구한다는 말 그 자체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뜻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계속 따르며 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마태복음 6장 33절A, 새번역>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뜻은 무엇입니까? 아주 쉽습니다. ‘말씀’입니다. 말씀을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법칙, 세상의 방법, 세상의 지시가 아닌 ‘말씀’을 구하는 것이 바로 위의 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하늘보다 낮은 땅에 살기에 ‘땅에 있는 낮은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을 살지만 하늘 소망으로 살며 ‘하늘에 있는 귀한 것’을 구하는 삶입니다.
땅의 것은 이 땅에서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고 잘 입으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위의 것은 ‘더불어 함께’이기에 나 혼자를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땅의 것은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을 당연한 감정 표출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위의 것은 ‘모든 이들과 더불어 평화’를 이야기 합니다.
땅의 것은 돈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위의 것은 ‘사랑’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고 말합니다.
땅의 것은 한 번 뿐인 인생 ‘즐기라’고 말하지만, 위의 것은 한 번 뿐인 인생 ‘의미 있게’ 보내라고 이야기합니다.
땅의 것이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지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인간의 죄성을 파고드는 사탄의 유혹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자신에게 절하기만 하면 세상 모든 것을 다 주겠노라 약속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유혹이 얼마나 빠져나오기가 어려운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했다고 하면서도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존재들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면 땅의 것을 추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땅의 것을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우리의 고개는 땅을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땅의 것을 추구하는 시선은 타인이 아닌 나를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도무지 하늘을 올려다 볼 시간이 없고, 주위를 돌아 볼 시간조차 아깝게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위의 것, ‘하늘’을 추구하기에 고개가 하늘을 향하고 있습니다. 위의 것을 추구하는 시선은 언제나 나 이외에 타인을 향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이 신경 쓰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돕게 됩니다. 함께 살아가게 됩니다. 그게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성육신하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은 곧 말씀, 말씀은 곧 사랑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사랑, 그 놀라운 관심’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랑은 이 사실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 새번역>
잊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은 ‘위의 것’을 추구하는 존재들입니다. ‘말씀’을 추구하는 존재들입니다. 말씀이라는 위의 것을 추구함으로 삶의 가치를 바꾸어 가는 존재들입니다. ‘사랑’이라는 위의 것 중 최고의 가치로 이 땅을 아름답게 변화시킬 존재가 그리스도인입니다. 가정에서부터, 일터에서부터,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삶의 순간순간마다 ‘위의 것’을 추구할 때, 말씀을 추구할 때, 사랑을 추구할 때, 우리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될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둘째,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골로새서 3장 9절A, 새번역>
우리가 말씀과 하나 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유혹과 공격이 바로 ‘거짓말’입니다. 거짓말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가 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거짓말로 우리 인간들에게 ‘죄’가 시작되었음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창세기 3장 4~5절, 새번역>
여자는 뱀의 거짓말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 뱀의 거짓말은 거짓말처럼 아담과 하와에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에게서 끝날 것만 같았던 거짓말은 그 끈질긴 생명력으로 ‘가인’에게 이어졌고, 아브라함에게도, 다윗에게도, 베드로에게도, 어느새 우리 모든 삶에 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거짓말을 경계해야 할 가장 큰 이유입니다. 거짓말이 만들어 내는 것은 오로지 거짓말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계속 퍼져 나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022년 9월에 방영된 YTN 사이언스 투데이란 방송에서 명지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이자 상담심리학자인 임지숙씨와의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인터뷰에서 아주 놀랍고 무서운 이야기를 하나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바로 미국 Southern California 대학의 심리학자인 Jerry Jellison 교수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인간은 아주 사소하고 의례적인 말까지 포함하면 하루 평균 200회, 즉 8분에 1번씩 거짓말을 한다고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그 정도는 아니지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 연구진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부분 하루 2번 정도 거짓말을 한다는 결과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매일 인간은 거짓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짓말은 하면 할수록 는다.’는 말도 연구 결과 사실이라고 합니다. 거짓말이 어느 순간 인간의 삶에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는 것입니다.
병원에 가면 주사가 하나도 안 아플 거라고 이야기 합니다. 아닙니다. 많이 아픕니다.
배달이 오지 않아 전화하면 늘 지금 막 출발했다고 이야기 합니다. 아닙니다. 아직도 만들고 있습니다.
다이어트를 시작했다고 이야기 합니다. 아닙니다. 다이어트는 언제나 내일부터입니다.
부모님들은 늘 바쁘면 안 와도 되고 신경 쓰지 말라고 하십니다. 아닙니다. 그런 말을 하셨다면 더더욱 꼭 가야 합니다.
언제 밥 한 번 먹자는 그저 인사일 뿐입니다. 괜히 언제 보냐고 이야기하시면 난감합니다.
저 역시 하얀 선의의 거짓말이든, 눈에 보이는 빨간 거짓말이든 이 ‘거짓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목사이기에 완전히 거짓말을 버렸다고 말씀드리는 것 자체가 사실은 거짓말입니다. 사실 ‘하얀 거짓말’이라며 좋은 의도로 거짓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사실대로 말하면 상처 받을 것 같아서 거짓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과 거짓말을 한 입에서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자꾸만 ‘양치기 소년’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말씀과 하나 되어 있으면서 거짓말과도 하나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말씀이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까지 엄히 경고하셨던 것이라 생각됩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악한데, 어떻게 선한 것을 말할 수 있겠느냐? 마음에 가득 찬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마태복음 12장 34절, 새번역>
결국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은 이런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지만, 행동으로는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증하고 완고한 자들이어서, 전혀 선한 일을 하지 못합니다. <디도서 1장 16절, 새번역>
그리스도인 여러분! 분명하게 결심해야 할 일은 거짓말을 줄여가야 하고, 우리의 입에서 사라지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를 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할 수 있는 대로 정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거짓말이란 말부터 ‘정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결국 말씀과 하나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정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정직이야말로 말과 행동이 하나 된 사람의 공통적인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하나 된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정직의 아이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보다 정직해야 한다는 말을 더 깊이 묵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정직이야말로 말씀과 하나가 되어 살 수 있는 좋은 밭이 되어 줄 것입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정직하고 선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굳게 지켜서 좋은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 <누가복음 8장 15절, 쉬운성경>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동역자 여러분!(아! 절대 이 말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냥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진심입니다. 진심으로 동역자들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합니다) 거짓말을 버려야 할 때가 왔습니다. 어쩔 수 없어서 동행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과감히 버리고 헤어져야 할 시간입니다. 유용하게 사용하셨다면 더더욱 빨리 버리셔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부터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을 버리고, 정직하게 설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아십니다. 그리고 거짓으로 포장된 우리 중심보다는 상처 입고, 깨지고, 다치고, 음란하고, 지저분하고, 복잡한 우리 중심 그대로를 정직히 고백하며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는 중심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시절 거짓말 때문에 안타까운 사건의 주인공이 되어 버린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에게 했던 베드로의 말이 우리 모두에게 좋은 힌트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였다. "아나니아는 들으시오.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사탄에게 홀려서, 그대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의 얼마를 몰래 떼어놓았소? 그 땅은 팔리기 전에도 그대의 것이 아니었소? 또 팔린 뒤에도 그대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소? 그런데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할 마음을 먹었소? 그대는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인 것이오." <사도행전 5장 3~4절, 새번역>
말씀과 하나가 된 그리스도인 여러분! 그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뜨뜻미지근한 것이 아니라 풍성히 살아 있을 수 있는 2가지 방법을 오늘 먼저 배워 보았습니다.
위의 것을 추구함으로 말씀이 풍성히 살아 있기를 소망합니다.
거짓말을 버림으로 말씀이 풍성히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새롭게 시작되는 한 주간 위의 것을 추구함으로, 거짓말을 버림으로 ‘우리 안에 말씀이 풍성히 살아 있도다!’ 고백하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결단 찬양 - 말씀 하시면(주님 말씀하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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