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내서 꼭 한번 가려고 벼르다가 이번주에 드디어 조문하기로 결정
대전에서 밤8시넘어서 국화를 사러갔다.
보통 이시간에 꽃사기 힘든데 마침 퇴근했던 사장님이 물건 가지러 다시 들으는 바람에 운좋게 한송이 사서 곧바로 안산으로..
11시까지라고 생각해서 속도를 내었는데 20분전에 도착(이곳은 24시간 운영)
뜸한 분위기지만 분위기만은 엄숙..
방명록 작성하고 향도 피우고 준비해간 국화꽃을 두손모아 받치며 머리숙여 기도했다.
그런데 분향소에는 국화꽃이 준비되어있었다.
나만 멀리 대전에서 늦게 국화를 사서 그것도 포장까지 해서..(약간 오버한 셈^^)
왼쪽에는 일반인, 오른쪽은 단원고 사람들
왼쪽부터 일일이 영정사진과 이름을 눈으로 확인하는데 TV화면에서 볼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아이들의 영정사진을 하나씩 보면 그들이 다시 살아돌아와서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
못다핀 꽃한송이처럼 맑디 맑은 학생들의 얼굴을 보면 왜 이 아이들이 여기있는지 의아스러워진다.
수많은 영정사진들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사진이 있었다.
단원고 여학생의 사진인데 유일하게 웃는 모습이었다.
보통 사진속의 인물이 미소를 띄고 있으면 나도 흐뭇해진다.
하지만 처참하게 죽어간 여학생의 맑은 사진속 미소를 보니까 땅이 꺼질만큼 슬퍼졌다.
슬프게 울어야할 사람이 기쁘게 웃고 있다니...
세상에서 이렇게 슬픈 미소는 처음이다.
야구를 좋아했던 아들을 위해서 야구공위에 써놓은 사연이 제일 가슴에 와 닿았다.
"아들아 16년 5개월 너무 짧지만 아들 덕분에 참 많이 행복했다. 고마워 미안하고 사랑해"
4명당 1명꼴로 교우, 성도라는 표시를 해놓은 크리스찬이었다.
신을 믿는 그들은 왜 억울하게 죽어갔을까?
믿는 사람들은 당연히 신의 자식들인데 사고로부터 보살핌을 받아야하는 것 아닐까?
다음 생에 더 멋지게 태어날것으로 예비했다든가, 미래의 더 큰 불행을 미리 막으셨다든가,,
이런 구질구질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왜려 이 사고를 통해서 신께서 전하는 메세지가 무엇일까?
복지부동하고 무책임한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무너진 조직사회에 대해 경종을 울려주기위해서..
이렇게 놔두면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닥쳐오지 않을까?
이럴때는 분노가 필요하다.
단순히 화를 내는 것이 아닌 불의에 분노하는 의로운 분노말이다.
왜 아이들이 죽어갔을까?
과연 선장과 선원들이 죽인것일까?
화재가 나면 소방관들이 불속으로 뛰어드는 것은 상식인데 수재가 났는데 해경은 물속으로 뛰어들지 않았고 결국 죽여버렸다.
과연 해경만의 문제일까?
해경을 관할하는 윗선의 책임도 막중하지 않을까?
국가수반의 잘못된 메세지가 이런 문제를 야기했다고 할 수 있다.
실제 내용보다는 항상 의복과 격식에 치중하면서 밑의 공무원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낸
청와대에 있는 윗대가리는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그런 신호를 받은 공무원들이 실질에 치중할리가 없다.
아부하고 격식과 모양만 버지르하게 할뿐이다.
그러니 이런 나라꼴이 된 것이다.
조문하는것에 대해서 호불호가 있겠지만 저는 꼭 가보시라고 권해드립니다.
내 자식들 아니니까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 더 큰 사건, 사고에서 대해서 경각심을 갖기위해서라도..
나이 어린 영혼들과 일일이 눈을 마주쳐보면 올바른 삶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겁니다.
죽었지만 살아있는 사람이 있고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사람이 있다.
나는 과연 어느쪽인지 또한 어디에 속해야하는지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조문객맡는 분들뿐만 아니라 주위에서 커피나 식사등을 담당하시는분들도 전부다 자원봉사자들입니다.
밤11시가 다 되었는데도 졸리는 표정 전혀 없이 정중하게 조문객들 맞이하는 모습이 진심이 느껴질만큼 감동이었습니다.
혹시 너무 슬프고 화가 나서 감정조절이 되지 않는다면 맹자의 애이불상(哀而不傷)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슬프지만 몸을 상하지 않아야한다는...
그것이야말로 미래의 재난을 올곧게 준비해서 어른들의 잘못으로 죽어간 불쌍한 어린 영혼들을 위한 최소한의 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