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여류소설가 겐지이야기의 무라사키 시키부
세계 최초의 여류 시인은 BC 7세기 그리스 서정시인 사포 라고 하니 시(詩)는 오래전 부터 쓰여졌는데
우리나라는 처용가등 향가(鄕歌) 는 1075년 균여전에 11수와 1281년 삼국유사에 14수등 25수가
전하며...... 일본은 759년에 편찬된 "만요슈" 에 노래가 4,516수 가 실려 있으며, 797년에 편찬된
속일본기에도 수백수의 노래가 실렸는데... 누카다 오키미 額田王(액전왕)는 빼어난 시인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세계 최초의 소설가는 시인들 보다는 좀 늦은 1010년경에 일본 문학사상 최고의 찬사를
받고있는 장편 소설 겐지이야기 源氏物語(겐지모노가타리, 원씨물어)를 쓴 "무라사키
시키부" 라고 하는데 그녀는 소설에서 헤이안 시대의 궁정 문화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은 794년에 나라에서 도읍이 헤이안경(교토)으로 옮겨진 100년 후인 894년 에 중국
당나라에서 안록산의 난과 한반도에서 후삼국 시절 혼란이 지속되자 문물의 수입
창구로 수십차례 대륙에 파견해 왔던 견당사를 폐지하고 국내로 눈을 돌려 국풍
이 일어나니....... 그중에 겐지 모노가타리 源氏物語(원씨물어) 같은 소설 이 출현합니다.
11세기초 무라사키 시키부 紫式部 에 의해 성립한 세계 최고(最古)의 근대 소설로
당대의 이상적 남성상인 히카루겐지(光源氏)의 출생과 시련, 그리고 영화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담고 있으니 중국으로 치면 홍루몽(紅樓夢) 에 비길만 합니다.
무라사키 시키부는 하급 관료인 아버지 후지와라노 타메토키의 딸로......
역사상 가장 오래된 소설 중 하나인 『원씨물어(源氏物語)』의
저자 인데 어머니는 하급 관료인 후지와라노 타메노부의 딸이라고 합니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지방관이었던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이동하며 생활했는데, 학자
이기도 한 아버지에게 한학 을 배웠으며... 생몰연도가 명확하지는 않으나 대체로
970년에서 973년 사이에 태어나 1014년에서 1025년 사이에 사망 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집안이 대 귀족 후지와라 가문 이고 아버지가 관직을 역임한 것으로
보아, 당시에는 토우노 시키부(藤式部) 라고 불렸을 것으로 보이며
‘무라사키 시키부’ 라는 이름은 그녀 사후에 붙여진 것이라고 합니다.
‘무라사키’ 는 『원씨물어』의 여주인공 무라사키노 우에에서 유래했다고 하며 그리고 ‘시키부’ 는
아버지의 관직명, 즉 대학료를 통괄하는 식무성의 식무대승 이라는 명칭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귀족의 자녀일지라도 여자일 경우 가나(문자) 와 와카(일본 고유 형식의 시)
정도만 교육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그러나 딸의 재능 을 알아본
아버지는 무라사키에게 한문 까지도 가르쳤으며 그녀는 998년에 나이 차가
상당한 지방관 후지와라노 노부타카와 결혼 하여 슬하에 1녀를 두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혼한지 3년 만인 1001년에 당시 유행하던 전염병으로 인해 남편이
사망 했다고 하는데..... 여러 이유로 그녀의 결혼생활은 원만하지
못했으니 남편과의 부부 싸움을 노래로 읊은 것이 지금 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남편과 사별한후 무라사키는 『원씨물어』를 집필하기 시작했는데 이 작품에 대한 평가가
높아서 1005년 이치조 천황(일왕)의 부인 후지와라노 쇼시의 가정교사 일을 시작하여
1018년까지 지속했다고 하며 무라사키의 남편은 노부타카라고 하는 것이 통설 입니다.
그러나 이론도 존재하니 예를 들어 『권기(権記)』의 기록에 의거하여 노부타카와
결혼하기 전에 키노 토키부미와 결혼 했다고 하는 주장도 있으며 또한
가마쿠라 시대 공가(조정의 귀족) 의 계보를 집대성한 『존비분맥(尊卑分脈)』
에 의하면..... 그녀가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첩 이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합니다.
많은 여성과의 다채로운 연애 와 겐지 사후에 후세들이 경험하는 삶의 갈등 을 그리고
있는 모노가타리 문학 으로...... 헤이안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니 ‘아와레’
문학의 백미 라고 불리며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いづれの御時にか、女御、更衣あまたさぶらひたまひけるなかに、いとやむごとなき際にはあらぬが、
すぐれて時めきたまふありけり。はじめより我はと思ひ上がりたまへる御かたがた、めざましきも
のにおとしめ嫉みたまふ。同じほど、それよし下らふの更衣たちは、ましてやすからず。朝夕の宮仕
へにつけても、人の心をのみ動かし、恨みを負ふ積りにやありけむ、いと あつしくなりゆき、
もの心細げに里がちなるを、いよいよあかずあはれなるものに思ぼして、
"어느 덴노의 치세였던가. 뇨고· 고이가 시중들고 계신 분 중에 그다지 고귀한 신분은 아니지만
아름다워 특별히 총애 를 받는 사람이 있었다. 처음부터 ‘자신이야말로 사랑받을 만한
여자’ 라고 자부하고 계신 분들은 어이가 없다 하여 멸시하고 질투 하신다. 같은 정도의
고이나 그보다 낮은 신분의 고이들은 더더욱 마음이 편치 않다. 아침 저녁 미카도를 시중들
때마다 그녀들의 마음을 산란하게 하여 원망을 받는 일이 쌓이고 쌓인 탓인가. 매우 병이 깊어져
가엾게 친정에 돌아가는 일이 잦아진 것을, 미카도는 점점 더할 나위 없이 그리운 사람으로 생각하셔"
여류 문인 무라사키 시키부 (紫式部) 는 973년생으로 『겐지모노가타리』 외에 『무라사키시키부닛키』와
가집 『무라사키시키부슈』 등 작품을 남겼으니 어릴 때부터 한문 서적과 불전, 음악 등을 배웠는데
997년 후지와라노 노부타카와 결혼해 1녀를 얻지만 남편과 사별하고는 겐지모노가타리 를 썼다고 합니다.
겐지 모노가타리 는 54권으로 구성 되어 있으니 주인공 히카루 겐지의 출생
에서 연애, 영화, 만년에 이르는 일생 을 다루는 「기리쓰보(桐壷)」에서
「구모가쿠레」까지를 정편이라 하며 겐지 사후의 이야기를 속편 이라고 합니다.
특히 속편 중에서 무대를 우지(宇治) 로 옮겨 그의 자식 대인 가오루 와 손자인
니오우미야 를 중심으로 그리고 있는 부분을‘우지 쥬죠(宇治十帖)’ 라고 합니다.
• 제1부 : 히카루 겐지가 고마노 소닌(高麗の相人)의 예언대로 쥰다이죠덴노(准太上天皇)
에 올라 최고의 영화를 누리는 약 40년간의 시기로, 후지쓰보(藤壷)
중궁 과 무라시키노 우에(紫の上) 를 비롯하여 많은 여성과의 교섭 이 그려지고 있다.
• 제2부 : 부나 지위와는 관계없이 인간 내면의 고뇌 를 중심으로 히카루 겐지의
만년 이 그려지고 있는데 「구모가쿠레」 권은 권 명만 존재합니다.
• 제3부 : 교토를 떠나 우지를 무대 로 히카루 겐지의 후대 인 가오루와
니오우미야, 그리고 우지의 하치노미야의 딸인 오이키미(大君)·
나카노키미(中の君)· 우키후네 (浮舟) 의 남녀 관계가 그려집니다.
4백자 원고지 2,600장 에 이르는 장편으로 인생의 무상함이나....... 자연의 아름다움 을 접하여
생기는 절절한 감동이나 정취를 말하는 모노노아와레 (もののあはれ)’의 정서를 자연
스럽게 담아내고 있으며 가나 문장의 모범적인 문체를 완성시킨 작품으로 인정받는다고 합니다.
헤이안 시대의 미의식에는 ‘오카시(をかし)’ 와 ‘아와레(あはれ)’ 가 있으니 ‘아와레’ 는
깊은 공감과 우미한 정감 을 말하며 『겐지모노가타리』가 대표적 작품이다. ‘오카시’
는 강한 흥미 를 일으키는 미적 감각으로 세이 쇼나곤의 『마쿠라노소시』가 대표적이다."
대 귀족 후지와라씨(藤原) 집안(아버지, 어머니에 남편이 후지와라) 의 무라사키
시키부 紫式部 는 당시 일본의 독특한 취미 이던 "40가지 향의 냄새" 를
맡는데 일가견이 있었으니 茶道(다도) 와 더불어 香道(향도) 가 성행했다고 합니다.
겐지이야기의 후반부 무대인 교토 남부 우지시에는 겐지모노가타리 뮤지엄 源氏物語 博物館
(원씨물어박물관) 이 있으니 사철 케이한 우지에키 앞인데....... 소설에 나오는
장면들을 재현해 놓았고 수십가지 향을 맡았던 기구도 전시하며 646년 우지강(宇治江)
에 만들었다는 우지바시 宇治橋 다리에는....... 무라사키 시키부 (紫式部) 의 석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