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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에 걸쳐 페북에 썼던 글입니다)
1.
외국어고·자사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 공약을 늪(수렁)으로 끌고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 이거 상당히 염려되는 일이다.
일반고 전환 공약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찬성한다고 하면서 잘못된 시행전략을 내놓은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나의 생각에 이것은 깨끗이 포기하자는 주장만 못하다. 문재인 정부를 늪에 빠뜨려 에너지를 헛되이 소모케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적극적인 비판이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교육공약 중 2개의 공약이 특히 국민적 관심을 끌고 있다. 외국어고·자사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 공약과 고교학점제 실시 공약이 그것이다. 앞으로도 상당기간 그러할 것이다.
“고교서열화를 완전히 해소하겠습니다. 외국어고, 자사고, 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2017.03.22.)
“고교학점제를 실시하겠습니다. 교사가 수업을 개설하고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수강하는, 완전히 다른 교실이 열릴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2017.03.22.)
(외국어고, 자사고, 국제고의) 일반고 전환 공약과 고교학점제 공약! 어떤 것이 더 실행이 어려울까? 물론 둘 다 어렵지만 어떤 것이 더 어려울까? 고교학점제가 열배, 아니 백배는 더 어렵다. 일반고 전환에도 상당한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그래도 고교학점제 실시에 따르는 어려움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언뜻 보면 일반고 전환에 따른 어려움이 더 크게 보일 수 있다. 무엇보다 이해당사자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저항이 아무리 커도 정권에 큰 부담이 될 정도는 아니다. 무엇보다 일반고 전환에 찬성하는 국민이 반대하는 국민보다 현저히 많다.
고교학점제는 오히려 언뜻 쉬워 보일 수 있다. 초기에는 반대 세력이 뚜렷하게 존재하지 않아 별다른 어려움이 없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실행에 들어가면 수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과도기적 혼란이 대단할 것이다. 무엇보다 특히 입시제도의 혼란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자칫하면 문재인 정부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을 것이다. 수능등급제 시행으로 인해 노무현 정부가 받았던 비난의 수십 수백 배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물론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과도기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 온건한(또는 시늉만 내는) 학점제를 시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지 못한다. 이를 통해 과도기적 혼란을 크게 줄일 수 있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큰 혼란이 남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혼란을 상쇄할 별다른 이익이 없기 때문에 어쩌면 더 큰 비난을 불러올 수도 있다. 자신이 없으면 차라리 깨끗하게 접는 게 나을 수 있다.
(물론 현재의 제도에서 큰 혼란 없이 학점제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면이 전혀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 정도의 일이라면 교육청의 재량에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 현명하다.)
실행가능성을 무시하고 오로지 교육적 당위성만을 고려한다면, 나는 고교학점제의 교육적 당위성이 일반고 전환 공약의 교육적 당위성보다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한다. 일반고 전환의 교육적 당위성도 크긴 하지만 고교학점제의 교육적 당위성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고교학점제 공약에 대해선 이중적인 마음을 갖고 있다. 한편으로 문재인 정부가 고교학점제 공약을 강력하게 시행해 주기를 바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깨끗하게 포기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시행해 주길 바라는 이유는 물론 교육적 당위성 때문이다. 그것이 실현돼야 문재인 대통령의 말대로 완전히 다른 교실이 열릴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포기해 주길 바라는 이유는 실패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패할 바엔 차라리 정부의 힘과 에너지를 다른 곳에 투여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일반고 전환 공약에 대해서는 명쾌한 입장을 갖고 있다. 머뭇거리지 말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고교학점제에 비해 교육적 당위성이 상대적으로 작음에도 불구하고 머뭇거리지 말고 시행해 주기를 원하는 이유는 그것이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교학점제에 비해 수십 수백 배 더 쉬운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반고 전환은 어떻게 실행에 옮겨야 하는가? 전면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이 공약은 단계적으로 천천히 추진해야 할 성격의 공약이 아니다. 전격적으로, 전면적으로 시행해야 성공가능성이 더 커지는 공약이다.
일반고로 전환하는 유예 기간을 주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유예 기간은 넉넉하게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고 전환을 명확히 하는 실천적 행위만은 전면적으로 해야 한다.
그것은 자사고, 외고, 국제고가 존립하는 법적 근거를 폐지하는 하는 것이다. 즉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고치는 것이다. 국회 차원이 아닌 대통령(행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국회의 힘을 빌릴 필요도 없지만 국회의 동의가 그다지 어렵지도 않다. 이 공약은 정확히 똑같지는 않지만 대선 당시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까지도 다 내세운 공약이다.
초중등교육법시행령을 개정하여 공약 시행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일만은 맨 먼저 전격적으로 단행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유예 기간을 주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유예기간이야 넉넉히 둬도 좋다. 하지만 시행령의 개정은 초기에 분명하게 하고 넘어가야 한다.
개정의 핵심은 다음 조항을 삭제(개정)하는 것이다.
초등등교육법시행령 90조 1항 6호(외국어에 능숙한 인재 양성을 위한 외국어계열의 고등학교와 국제 전문 인재 양성을 위한 국제계열의 고등학교)
제91조의3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법적 근거를 그대로 둔 채 당장에 닥칠 곤란을 회피하려는 순간 오히려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이해당사자들의 저항이 오히려 점점 더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일은 진척되지 않고 온갖 법적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도 크다. 이렇게 되면 혼란이 길어져 국민들로선 피로감만 느낄 수 있다. 일반고 전환 공약은 전격적이고 전면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일반고 전환 공약을 단계적으로 천천히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정진후 전 정의당 의원(전 전교조 위원장)이 그런 입장이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서울시 조희연 교육감도 그런 것 같다.
정진후 전 의원이 내세우는 단계는 3단계다. ‘입시 일정 통합 - 일반고 전환 - 근거 법 폐지'다. 그는 거꾸로된 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맨 처음 해야 할 일을 마지막으로 돌리고 있다. 근거 법 폐지(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는 마지막이 아닌 첫째 단계여야 한다. 입시 일정의 통합은 법 개정과 거의 동시에 또는 법 개정 때 명시한 유예기간 동안 시행하면 되는 일이다. 그래야 일반고로의 전환에 따른 사회적 혼란을 그나마 줄일 수 있다.
근거 법 폐지(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가 맨 마지막 단계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나로선 정진후의 이 말이 일을 망치려고 하는 얘기로만 들린다.
아직 단언하기 어렵지만 언론 보도에 의하면 조희연 교육감도 일을 천천히 진행해야 한다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한 것 같다. 조희연 교육감까지 이러면 곤란하다. 물론 언론에 소개된 말만 가지곤 아직 비판하긴 이르다. 조희연 교육감에 대해선 지켜볼 필요가 있겠다. 제발 진의가 잘못 전달되었길 바란다.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한 마디 덧붙인다. 일반고 전환에도 단계를 밟아야 하는 일이 있다. 예컨대 첫해는 1학년 신입생만을, 둘째 해는 1-2학년을, 셋째 해에 1-3학년 전체를 일반고 전환하는 단계를 밟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일이라면 굳이 말을 안 해도 되는 일이다.)
2.
문재인 정부에게는 3개의 선택지가 있다.
1번. 공약 그대로 실행하는 것. 즉 외고 자사고 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것.
2번. 공약을 완화하는 것. 외고•자사고•국제고의 존재는 인정하되 학생선발의 특혜를 폐지하는 것. 즉 일반고와 동일한 시기에 동일한 방법, 즉 추첨으로 선발하게 하는 것. (이것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대선 공약이다.)
3번. 공약을 포기하는 것. 존재와 함께 선발 특혜도 인정하는 것. (물론 공약을 포기한다고 말할 필요는 없고 설립취지에 맞게 운영하도록 엄정하게 관리하겠다고 말하면 될 것이다.).
나는 문재인 정부에게 1번을 더 권유하고 싶지만 1-2-3 중 어느 것을 선택해도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처음 공약을 만들 때라면 1번보다 2번이 더 현실적인 방법일 수 있다. 1번보다는 2번이 더 이해당사자들의 반발이 적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1번을 이미 공약으로 제시했고 그것이 널리 알려진 상황이라면 굳이 2번으로 후퇴할 필요는 없다. 1번이건 2번이건 어차피 초중등교육법시행령의 개정을 거쳐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초중등교육법시행령에는 외고•자사고•국제고 등의 학교에 선발 특혜가 보장되어 있다. 일반고보다 먼저 학생을 선발(제80조) 할 수 있고 추첨이 아닌 다른 방법(제82조)으로 선발할 수도 있다. 어차피 시행령을 개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바엔 처음 공약대로 시행하는 게 더 모양새가 산다.
물론 2번으로 후퇴하는 것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단 명확하게 해야 한다. 외고•자사고•국제고의 존재 그 자체는 인정한다는 것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존재는 인정하고 선발방법만 바꾼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야 이해당사자의 반발이 조금이나마 줄어들어 실현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1번을 실행하기 위한 전단계로서 2번을 시행한다고 하면 어차피 이해당사자들의 반발은 그대로다. 괜히 과도기적 혼란만 길게 할 뿐 별다른 이익이 되지 못한다.
뭐 나로선 3번, 즉 공약포기 선택도 크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교사로서의 나는 교육개혁을 우선적으로 원한다. 하지만 국민으로서의 나는 교육개혁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로선 3번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1번–3번을 잘못 뒤섞어 버리는 것이다. 예컨대 1번을 목표로 하면서 2번을 과도기로 삼는 것이다. 과도기적 혼란을 길게 할 뿐이다. 1번이 전략적 목표라면 2번은 거칠 필요가 없다. (물론 1번을 위해 시행령을 개정할 때 2번을 위한 개정도 함께 하여 유예 기간 동안 시행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내가 무엇보다 염려하는 것은 초중등교육법시행령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교육청을 통해 외고•자사고•국제고의 지정을 취소하는 방법으로 공약을 실행하는 것이다. 이것은 기나긴 소모전으로 흐를 뿐이다. 이해당사자의 반발은 반발대로 계속되고 과도기적 혼란만 길게 하여 오히려 개혁의 동력만 상실케 할 뿐이다.
교육 문제를 전쟁에 비유하는 것읏 좀 거시기 하지만 이 문제를 전쟁에 비유해보자.
초중등교육법시행령을 그냥 둔 채로 교육청이 외고•자사고•국제고를 학교별로 심사해서 일일이 지정을 취소하는 것은 소모적인 백병전을 벌이는 것이다. 대포를 버려두고 총칼로 힘겹게 싸우는 것이다. 반면에 초중등교육법시행령을 개정하는 것은 대포를 쏘는 것이다. 대포 한 방이면 끝날 전투를 굳이 총칼로 소모전을 벌일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앞글에서 내가 비판한 정진후 전 의원의 주장이 대략 여기에 해당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래서 초중등교육법시행령의 개정에 대한 권한을 획득했다. 즉 앞의 비유적 표현을 계속하면 문재인 정부는 대포를 손에 쥔 것이다. 대포 한 방이면 전쟁(외고•자사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은 승리로 끝난다. 이후의 자잘한 전투는 대세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대포를 쏘면 일반고 전환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결국은 포기할 것이다. 그러나 대포를 쏘지 않으면 전쟁은 지루하게 계속된다. 일반고 전환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자신들이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계속 전쟁에 임할 것이다. 이건 국가적으로 큰 손해다. 사회적 에너지의 낭비다.
공약을 실행에 옮길 자신이 없는가? 3번을 선택하시라. 공약을 실행에 옮기고 싶은가?
그렇다면 먼저 대포를 쏘라.
3.
조희연 교육감을 위한 변명
서울시교육청이 평가 대상이었던 외고•자사고 전부를 재지정 했다. 지정 취소를 기대한 분들의 실망이 클 것이다. 조희연 교육감에 대한 비판이 상당히 거셀 듯하다.
그러나 조희연 교육감에겐 특별히 잘못이 없다. 조교육감이 훌륭한 일을 했다는 게 아니다. 그냥 별다른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조희연 교육감은 법(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지켰을 뿐이다.
시행령에 규정된 지정 취소 조건은 상당히 엄격하다. 시행령 제90조 4항의 규정들을 읽어보시라. 그 중의 하나인 4호만 해도 그렇다. 교육감이 학교의 운영성과를 평가하여 지정을 최소할 수 있게 되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지정 목적 달성이 ‘불가능’ 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이 규정을 90조 4항의 취지대로 시행하지 않고 외고•자사고 폐지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법적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권한남용이라는 비난을 피하지 못한다. 지정 취소된 학교들이 재판을 걸면? 나의 판단에는 교육감이 무조건 진다. 90조 4항 4호를 이용한 외고•자사고 폐지 전략은 혼란을 자초할 뿐이다.
무엇보다 외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의 개정을 통하는 것이 정답이다. 법에 근거해서 존재하는 학교니까 법을 바꿔서 없애야 한다. 이것이 가장 빠르다. 그리고 갈등과 대립을 그나마 적게 한다. 문재인 정부에게 가는 부담도 오히려 덜어 준다.
첫째, 시행령 개정을 통해야 빠르다. 법을 개정하는 동시에 대세는 결정된 것이다. 물론 유예 기간은 필요한 만큼 줘야 할 것이다. 하지만 유예 기간을 생각해도 이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교육청이 일일이 평가하여 지정 취소하는 방법을 취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지만 설사 가능하더라도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시행령 개정을 통해야 빠르고 혼란이 줄어든다.
둘째, 시행령 개정을 통해야 갈등과 대립을 최소화할 수 있다.
교육청의 평가(심사)를 통해 외고•자사고 전체를 폐지하려하면 우리사회의 갈등과 대립이 위험한 정도로까지 커질 수 있다. 이것은 외고•자사고 당사자들에게 심각한 모욕을 주는 가장 어리석은 방법이다.
외고•자사고 관련자들은 악마가 아니다. 그들도 그냥 보통의 교육자들이다. 보통의 학부모이고 보통의 학생들일뿐이다. 일반고의 교육자, 학부모, 학생들과 질적으로 다른 존재가 아니다. 더 훌륭할 것도 없지만 특별히 더 사악한 존재도 아니다.
외고•자사고가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입시학원으로 변질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대략적으로만 맞는 말이다. 그렇게 말하면 입시학원으로 변질된 것은 일반고도 마찬가지다. 외고•자사고가 더 심하다고? 그렇기는 하다. 더 심한 것 맞다. 그런데 그것은 상당부분 외고•자사고에 학력(성적) 우수생이 현저히 많이 들어간 데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외고•자사고 당사자들이 특별히 더 비교육적인 존재여서 그런 게 아니다.
내가 말하는 요지는 외고•자사고의 존재가 우리교육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서 학교와 당사자들을 개별적 차원에서도 그렇게 봐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교육청의 평가를 통한 외고•자사고 폐지는 외고•자사고 하나하나를 비교육적 집단으로 만드는 행위다. 단순한 수준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수준의 비교육적 집단으로 규정하는 행위다. 이것은 외고•자사고 당사자들을 심각하게 모욕 주는 것이다. 평가를 통한 폐지는 그들이 그러한 벌을 받을 만한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을 때만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시행령의 개정을 통해 외고•자사고를 폐지해도 당사자들이 모욕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목욕감은 교육청 평가를 통해 폐지될 때의 모욕감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
교육청 평가를 통한 외고•자사고의 폐지는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것은 외고•자사고 당사자들의 분노감에 불을 지르는 방법이다. 그래서 우리사회의 갈등과 대립을 현저히 격화시키는 방법이다.
셋째, 시행령 개정을 통해야 문재인 정부에게도 오히려 부담이 덜 갈 수 있다.
교육감이 지정을 취소한다고 지정 취소가 완료되는 것이 아니다. 교육감의 지정 취소 행위는 반드시 교육부장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시행령 90조 5항의 내용이다.
교육감이 지정을 취소하는 것으로 일이 끝나 버리는 것이라면 이로 인한 부담은 대부분 교육감이 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의 부담이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장관이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이 필수라면 문재인 정부의 부담은 줄지 않는다.
교육부장관이 동의를 해줄 때마다 이해당사자들의 원망은 어차피 문재인 정부에게로 향하게 되어 있다. 문재인 정부로 향하는 원망의 총량은 어차피 줄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원망의 총량이 증가할 수도 있다. 평가에서 탈락할 때마다 당사자들이 심각한 모욕감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외고•자사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은 문재인 대통령의 중요한 공약이다. 실행하려거든 가급적 빠르게, 혼란과 갈등과 대립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실행하길 원한다. 나의 판단에 그것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의 개정을 통하는 것이다. 이글의 결론을 바둑에 비유해서 얘기해보자.
“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은 바둑판에 놓이는 첫 번째 돌이어야 한다”
4.
황폐화 - 정상화 논쟁
“ 자사고 때문에 일반고가 황폐화됐다.”
“ 자사고 폐지해도 일반고가 정상화되지 않는다.”
오랜 논쟁이다. 어느 말이 맞나?
그런데 황폐화-정상화란 단어가 참 오해를 낳기 쉬운 말이다. 상황을 지나치게 과장하기 때문이다.
자사고가 생긴 후에 일반고의 상황이 나빠진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어느 정도로 나빠졌는가? 그 나빠진 정도를 표현할 적절한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적절한 단어가 존재하지 않다보니 자사고를 비판적으로 본 사람들이 초기에 사용한 단어가 ‘황폐화’란 단어다.
초기에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들은 이 단어를 곧이곧대로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즉 정말로 자사고 때문에 멀쩡하던 일반고가 쑥대밭이 됐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이 널리 사용되다 보니 자사고로 인해 일반고가 나빠진 정도가 과장되게 표현되는 문제가 발행했다. 황폐화란 단어는 적절치 못한 단어다. 상황을 더 적절하게 드러내는 표현은 없을까? 한 단어로는 어렵다. 수식어를 사용해야 한다. “상당히 나빠졌다”가 좋을 듯하다.
그런데 ‘정상화’란 단어도 적절치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물론 자사고가 없어져도 일반고가 정상화되는 것은 아니다. 당연한 얘기다. 일반고가 가진 문제는 여전히 그대로 남는다. 하지만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되면 지금의 일반고들이 좋아지는 것은 분명하다. 얼마만큼 좋아질까? 자사고의 등장으로 인해 나빠진 만큼은 좋아질 것이다. 물론 이 정도를 갖고 일반고가 ‘정상화’ 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이 무시할 정도로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상당한 의미가 있다.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되면 기존의 일반고는 “상당히 좋아진다.”
그럼 상당히 나빠진 것은 도대체 얼마만큼 나빠진 것이고 상당히 좋아지는 것은 도대체 얼마만큼 좋아지는 것일까? 2012년에 썼던 한국일보 칼럼에서 도움을 좀 얻어 보자.
“ 언제부턴가 수업이 학생을 가르치는 시간이 아니라 학생과 전쟁을 하는 시간이 되었다. 학교붕괴니 교실붕괴니 하는 말이 나온 지가 10년쯤 되었으니 꽤 오래 전부터일 것이다. 그래도 어느덧 적응이 되어선지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수업이 힘들다고 심하게 푸념을 하는 교사는 많지 않았다.”
“그런데 2010년부터 서울시의 일반계고에서는 교사들의 푸념 소리가 부쩍 늘기 시작했다. 그해엔 주로 1학년 담당 교사들의 푸념이 많아졌다. 2~3학년을 담당하는 교사들은 그게 뭐 어제오늘의 일이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1학년 담당 교사들은 '수업 안 해본 사람은 몰라'하는 반응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작년에는 2학년 담당 교사들의 푸념도 상당히 많아졌다. 그리고 올해, 상황은 뻔하다.”
“ 자사고로 중상위권 학생들이 대거 빠져나가는 바람에 일반계고에서는 중상위권 학생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런데 이 학생들은 대부분의 교사들이 수업의 기준으로 삼는 학생들이다. 그리고 수업참여도가 상당히 높은 편인 학생들이다.”
“현저히 얇아진 중상위권 학생층. 더 두꺼워진 하위권 학생층. 여전히 존재하는 최상위권 학생층. 일반고의 성적분포도는 이렇게 수업의 진행 자체가 너무도 어려운 상태로 변해버렸다. 수업하는 교사로서는 이보다 더 나쁜 성적분포도를 상상하기 어렵다. 결국 일반계고의 수업붕괴 현상은 점점 더 일반적인 현상이 되어가고 있다.”
“ 문제가 수업붕괴로만 그친다면 그나마 다행일 수 있다. 일반고에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교우관계가 이전에 비해 나빠질 수밖에 없다. 학급의 교우관계에서 허리 역할을 해주던 학생층이 현저히 얇아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로 인해 학교폭력마저 증가했을지 모른다. 이것은 사회의 중산층이 붕괴됐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 학교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중산층이 튼튼하지 않은 사회가 자신을 건강하고 평화롭게 유지할 수는 없다. 그것은 학교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