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
2022. 1. 1. 브솔방송예배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빌립보서 1장 2절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님은 빌립보 교회뿐만 아니라 로마서, 고린도 전서와 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 전서와 후서 등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모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우리 하나님과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한다고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따라 편지로 전하셨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보내신 디모데 전서와 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등에도 빠짐없이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점은 또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과 주님의 몸 된 교회들에도 꼭 있어야 할 소중한 축복이라고 봅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 선생님이 단지 서신서의 형식상 쓰신 말씀이 아니고, 우리 주님과 아버지 하나님의 간절하신 원하심을 따라 성령님의 감동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 선생님 본인도 그 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을 실제로 많이 경험하면서 주님의 몸 된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반드시 있어야 될 중요성 때문에 열 세권의 서신 서두에 모두 언급하신 줄 압니다.
오늘 새해 첫날의 땅 끝 시간에서부터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을 우리 각자도 크게 힘입어 보고 우리의 각 사람의 삶에서도 지속적으로 이와 같은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실재가 경험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이 은혜와 평강이 우리에게 소중하고 아무리 절실할지라도 우리 스스로는 결코 만들 수도 없고 그런 노력을 시도조차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구할 수 있는 그런 차원의 은혜와 평강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이 은혜와 평강을 얻습니까? 해답은 매우 간단합니다. 바로 내 주님께 참여하면 됩니다. 달리 말하면 문제 많은 나를 주님의 십자가로 넘겨버리고 세상도 십자가에 못박아버리고 부활하신 주님께 속한 자로 주님과 동행하며 길을 가면 그만입니다. 날마다 새롭게 내 주님께 속하여 갈 때 주님의 생명과 평강은 내게 흘러 들어옵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손길은 순간순간 내 삶에 참으로 가까이 임하여 올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에서 사도 바울 선생님은 형제 실라와 함께 더베와 루스드라 그리고 주변 여러 성으로 다녀가며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성도들의 수가 날마다 더해지는 주님의 은혜와 하나님 나라의 부흥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 좋은 시점에 성령님이 사도 바울 선생님에게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또 비두니아 지방으로 가려는 것도 예수님의 영이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로마서 8장 6절 말씀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하셨습니다. 이 진리를 너무나도 잘 아시는 사도 바울 선생님은 결코 서두르지 않고 마음으로부터 주님의 평강을 더듬으면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사도 바울 선생님은 드로아에 이르렀을 때 어느 날 밤에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일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인정할 때 비로소 평강이 임했을 것이고 행선지는 분명해졌습니다.
사도 바울 선생님과 형제 실라는 마게도냐 첫 성 빌립보에서 기회를 따라 복음을 전했습니다. 또 귀신의 영향력 아래 있던 한 여종을 자유롭게 해준 일로 감옥에 갇혔고 매도 많이 맞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 선생님과 실라는 주님과 함께 받는 고난을 기뻐했고 그 밤에 기도하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 옥중에는 주님의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그때 큰 지진으로 옥터가 흔들리고 감옥 문들이 열리고 모든 죄수들의 매인 것이 풀렸습니다. 하지만 바울 선생님과 실라는 주님의 법 곧 평강을 따라서 옥에서 나가지 않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시편 119편 165절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만약에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고 해서 육신의 생각대로 감옥을 탈출했더라면 빌립보 간수와 그 가족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주님 안에서 평안하고 견고하게 그 감옥 그 자리에 있었던 바울 선생님과 실라 때문에 그 열린 감옥문은 간수가 들어오는 열린 천국의 문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했던 루디아 아주머니 집식구들과 더불어 주님이 보시기에 형제들이 보기에도 그렇게 아름답고 든든한 빌립보 교회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이렇듯이 위로부터 임하는 은혜는 평강의 길을 따라 온전케 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법칙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주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았음에도 주님과 동행하는 평강이 흐려질 때는 반드시 주님과의 관계가 무너지고 그 삶이 곤두박질하는 모습이 성경의 여러 곳에서 보입니다.
신구약성서에서는 여러 예가 있지만, 이사야 36장에서 39장에 나오는 히스기야 왕을 생각해보았습니다. 히스기야 왕 십 사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대군을 이끌고 와서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을 쳐서 취하고 예루살렘을 협박하였습니다. 이에 히스기야 왕은 소식을 듣고 신하들을 이사야 선지자에게 보내어 기도를 요청하고 자신의 옷을 찢으며 굵은 베를 입고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크신 긍휼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주님의 사자를 앗수르 진에 보내어 무려 십 팔만 오천인을 쳐서 이스라엘을 그 위경에서 구원해주셨습니다. 또한 히스기야 왕은 죽을 병에도 걸렸으나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는 그에게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은 병을 치유해주셨고 그의 수명도 십 오년이나 연장시켜주셨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은 그 회복된 일로 찾아온 바벨론의 사절단에게 예루살렘 궁전에 있는 보물들을 다 보여주는 어리석음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도무지 근신함이란 마음의 법을 찾아볼 수 없는 빈껍데기 바보 같은 행동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소식을 듣고 주님의 말씀을 히스기야 왕에게 전했습니다. “날이 이르면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가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은 포로가 되어 비참하게 잡혀가게 될 거다.”라고 예고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적지 않게 받았던 히스기야였지만 겸손히 주님께 피하여 속할 줄도 모르고, 주님의 백성 된 위치에서 벗어날 때는 로마서 3장 17절과 이사야 59장 8절 말씀처럼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악인과 다를 바 없이 처참하게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지도자 한 사람이 주님께 대해서 깨어 있지 못할 때는 그 자신만 아니라 나라 전체가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것은 성서에서도 또 지금까지의 역사 속에서도 쉽게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 조국 대한민국도 참 혼란스러운 시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 땅 끝 시간에 나라를 위해 비상으로 두 시간씩 주님의 보좌 앞에 구로하듯 간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너무도 소중한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 다시 함께 기도해요’의 네 가지 기도제목도 그렇습니다. 의인의 간구를 주님은 크게 역사해주실 것입니다.
이 시간도 하늘보좌에서 다스리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사랑하는 우리 주 예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전심으로 믿고 기도하는 모든 형제들과 주님의 교회들 그리고 우리 조국에 임하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