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자전거 도둑(2)
태희를 앞세우고 은정이라는 여자 애의 집을 찾아간 것은 그 이튿날
저녁이었다. 늘 바라보기만 하고 올라 간 적이 없는 계단을 한참 동안
걸어 올라가자 허름한 판자 집들이 나왔다. 서울 시내에 아직도 이런
집들이 존재한 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트막한 야산을
등뒤로 하고 오밀조밀하게 엎드려있는 판잣집들을 가로질러서 태희의
뒤를 따라갔다. 시멘트 덩어리가 덕지덕지 묻어있는 합판으로 벽에는
커다란 남자의 성기와 그보다도 더 커다랗게 그려진 가위가 있었다.
그리고 맞춤법이 틀린 욕들이 아무렇게나 쓰여 있었다. 여지저기 널려
진 배설물과 분비물들을 조심하면서 한참을 가자 작은 집이 나왔다.
"여기가 은정이네 집이에요"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큰 소리로 주인을 불렀다.
"계십니까?"
대답이 없었다. 나는 다시 한 번 큰소리로 주인을 불렀다.
"여보세요 아무도 없어요?"
대답대신 안에서 쿨룩쿨룩 하는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조심스럽
게 방문을 열었다.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방안은 어두웠다. 퀴퀴한 냄새
가 코를 찔렀다. 태희가 라이터를 켜자 비로소 방안의 모습이 눈에 들
어왔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던 할머니가 쿨룩쿨룩 자지러진 기
침을 하면서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태희는 전등의 스위치를 찾아서
방안의 전등을 켰다. 비로소 방안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신문지
로 바른 벽에는 비에 젖어서 얼룩진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었고 여기저
기 곰팡이가 피어있었다. 한 쪽 구석에 요강이 있었다. 퀴퀴한 냄새
의
근원은 거기서 나는 것이었다. 견디기 힘든 대변 냄새가 방안 가득 차
있었다. 구역질이 날것 같아서 코를 감싸쥐었다. 다른 쪽 구석에는 담
배꽁초 굵기의 라면이 퍼진 채 냄비에 가득 들어있었다.
"누구요 ?"
할머니가 전등 빛이 눈이 부신지 얼굴을 가리면서 물었다.
"은정이를 만나러 왔어요"
태희가 큰 소리로 말했다.
"뭐라고? 잘 안 들려 크게 말해 내 귀가 좀 어두워서"
"은정이를 만나러 왔다고요"
"은정이는 주유소에 갔어"
할머니의 말에 태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도망치듯 밖으로 나갔다.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자 메슥거리던 속이 가라앉았다.
먼저 밖으로 나온 태희가 가래침을 뱉으면서 말했다.
"아마 그 주유소에 있을 거예요, 한 번 만나러 가실래 요?"
"만나 봤자 뭘 어쩌겠어"
"그래요 형 잘 생각했어요 은정이 아버지는 교도소에 있고 엄마는 가
출을 했고 노망난 할머니랑 은정이랑 둘이 살아요, 전에는 주유소에서
일했는데 그만두고 이제는 술집에 나간 다고 하더라구요"
"도대체 은정이라는 애는 몇 살이냐?'
"고등학교 이 학년 나이니까 열 여덟 살 일 꺼 에요"
기분이 찜찜했다. 마침 자전거포 주인도 자전거를 돌려 줄 테니 은정
이를 나무라지 말라는 생각이 떠올라서 딱한 처지의 은정이를 어쩌랴
하는 생각에 은정이를 만나는 일을 단념했다.
"기분 더럽군 태희야 술이나 마시러 가자"
"물론 형이 사는 거죠"
"그럼 임마 내가 자전거 도둑놈의 술을 얻어먹을 놈으로 보이냐?'
"도둑, 도둑 하지 말아요 듣는 도둑 기분 나빠요"
태희랑 술을 마실 요량으로 번화가 쪽으로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마
침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거리에는 점포들이 휘황찬란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여기 저기 기웃거리다가 우리는 길가의 포장마차를 들어갔
다.
소주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열 두 시가 넘
어있었다. 태희는 술이 약한지 인사불성으로 취해서 횡설수설하고있었
다. 그렇지만 나는 술이 취하기 는 고사하고 자꾸만 정신이 또렷해지
고 있었다. 불현듯 차희의 얼굴이 떠올랐다. 차희야 너는 지금 어디
서
누구랑 무얼 하고 있느냐. 그때 포장마차 밖이 왁자지껄했다. 꾸벅꾸
벅
졸던 태희가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한참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아
서 나가 보니 한 사십대의 아저씨가 아직 어려 보이는 아가씨의 머리
채를 붙잡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여자 애는 제법 귀여운 얼굴을 했
지만 어려 보였고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구경꾼들은 많았지
만 아무도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야! 이년아 기껏 술 사고 팁까지 주었는데 왜 외박이 안 된다는 거
야 이년 이거 순전히 날강도 같은 년 아니야"
이미 술이 취할 대로 취한 사십대의 사내가 여자 애의 따귀를 후려쳤
다.
"야 이 미친놈아 내가 처음부터 외박은 안 한다고 몇 번을 말했어"
사내가 여자의 머리채를 틀어쥐고 구경꾼들 쪽으로 여자의 얼굴을 돌
렸다.
"야 이년아 내 돈 내놔"
"지가 처먹은 술값을 왜 내가 내냐 "
언제 다가 왔는지 태희가 등뒤로 와서 속삭이듯이 말했다.
"형! 쟤가 바로 형 자전거를 훔쳐간 은정이라는 계집애 야"
사내는 키가 컸고 덩치가 있어 보였다. 어림잡아도 120kg는 넘어 보
였다. 사내의 팔뚝은 쇠말뚝처럼 단단해 보였다. 아무도 나서서 말리
는
사람이 없었고 오히려 사내와 눈이라도 마주칠까봐 조심하면서 그 상
황을 즐기고 있었다. 술집이 즐비한 거리에서는 흔히 있을 수 있는 풍
경이었지만 은정이를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람
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가서 은정이를 잡고있는 사내의 팔을 뜯어내었
다. 사내가 나를 아래위로 훓어 보더니 말했다.
"넌 뭐야? 이년의 기둥서방이라도 된단 말이야 다치기 전에 어서 꺼
져"
"점잖으신 분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나이 어린 여자를 이렇게 망신을
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나이 드신 아저씨가 참으셔야 하는 것이 옳
아요"
사내가 허공을 쳐다보면서 시니컬하게 웃었다.
"어릴 때 서당을 다니셨나 어디서 공자왈맹자왈이야 이 미친놈"
사내가 내 멱살을 움켜잡았다. 단단한 완력이 온몸으로 전해져 오면
서 소름이 돋았다. 사내가 나를 번쩍 들어올렸다. 숨이 막혀오면서 하
늘이 노랗게 보였다. 나는 최대한 정신을 집중해서 사내의 명치를 앞
차기로 찼다. 헉 소리가 나면서 사내의 손에 힘이 풀리더니 사내가 나
를 내려놓고 털썩 주저앉았다. 제대로 맞은 모양이었다. 한참동안 숨
을
몰아쉬던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나는 한발 뒤로 물러서서 가볍게 마
치 이소룡이 대결을 하듯이 몸을 껑충껑충 뛰었다. 오래도록 운동을
하지 않아서 몸이 무척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운동을 할 때라
면 이런 사내하나쯤 때려눕히는 것은 별 일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자신
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여자나 괴롭히는 못난 놈 얼마든지 덤벼라 내가 아주 혼쭐을 내주겠
다."
멋있게 하느라고 하는 말이었지만 내 목소리는 이미 겁에 질린 듯이
떨려서 나오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사내와 나를 지켜
보고 있었다. 사내가 목을 좌우로 흔들어 우두둑우두둑 소리를 내더니
천천히 다가왔다.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사내가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
면 발로 낭심을 찬다거나 허벅지를 강타할 생각이었다. 다행히 사내는
완력만 셀뿐 동작이 빨라 보이지는 않았다. 사내가 갑자기 돌아서서
달려가더니 어디선가 병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는 땅바닥에 탁 쳐서
반쯤을 깼다. 그리고 병의 목을 들고 천천히 다가왔다.
"쥐새끼 같은 놈 오늘 네놈 얼굴에 그림을 그리겠다"
사내가 천천히 다가왔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사내가 내 앞으로 바
짝
다가서서 내 얼굴에 깨진 병을 들이대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는 입고있던 티셔츠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내 심장을 손바닥
으로 탁탁 치면서 말했다.
"나 김갑봉 이는 죽지 못해서 환장한 놈이다 죽을 자리가 없어서 죽
지 못했었는데 오늘 마침 네놈이 죽여준다니까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
군 여기가 심장이야 여기를 찔러 네 녀석은 힘이 세니까 한 번 만 제
대로 찔러도 즉사 할 꺼야 자 어서 찔러 친구"
사내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사내를 노려보
았다. 두렵지도 떨리지도 않았다. 정말 사내가 나를 죽여주었으면 하
는
심정이 들었다. 그 때 어디선가 경찰 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누군
가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사내의 병든 손을 차버리
고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죽어라 고 뛰었다. 그리고는 곧장 집으로 돌
아와 문을 잠그고는 방안에 주저앉아서 한숨을 내쉬었다. 경찰한테 엮
이는 것은 정말 피곤한 일이다. 어쨌든 거리에서 싸움을 했으므로 나
를 귀찮게 굴 것이 뻔했으므로 나는 정말 번거로운 것은 질색이다. 다
만 태희가 나를 안다고 하지나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핸드폰이
계속 울리고 있었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핸드폰을 받을 기분이 아니
었다. 샤워를 마치고 잠을 청하려는 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
다.
문을 열고 내다보니 태희가 은정이를 데리고 문 앞에 서있었다.
"여긴 뭐하러 왔어?"
내 말에 태희가 대답했다.
"형 다친데 없나 하고 그리고 은정이가 형 보고 싶다고 해서 데리고
왔어"
"별 일은 없었어?"
내가 은정이에게 물었다.
"아저씨 덕분에 요 경찰들이 왔을 때는 나도 이미 도망을 쳤고 그 아
저씨도 어디론 가 도망을 갔어요"
"사람들이 모두 그냥 뿔뿔이 흩어져서 사라지니까 경찰들이 와서는
누군가 허위신고를 했다고 투덜거리더니 그냥 갔어요"
"누추하지만 들어와라"
은정이와 태희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아휴 홀애비 냄새"
은정이가 코를 움켜쥐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홀애비라니 이형은 아직 총각이야 숫총각"
"요새 숫총각이 어딨어 다 짜가지 호호호"
은정이는 갑자기 숨이 넘어갈 듯이 웃어대다가 그 웃음이 울음으로
바뀌어 큰 소리로 마구 흐느껴 울었다. 술을 많이 마신 것 같았다.
"태희 오빠 나 이 아저씨랑 잘 테니까 오빠는 그냥 사라져 줄래"
태희가 은정이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밖으로 나갔다. 나는 어색
한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나도 한 대 줄래요?"
은정이를 바라보니 코앞에 바짝 다가서서 당돌한 눈빛으로 내 눈길을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빤히 마주 쳐다보았다. 눈썹에서 눈물이 흘러
서 말라붙은 것이 마치 아이들이 흙장난을 치며 놀던 흔적처럼 느껴졌
다.
"몇 살 이냐?"
"열 여덟, 영계지 뭐"
"집으로 돌아가라 할머니가 기다리잖니"
"아저씨한테 너무 미안해서 그래요 아저씨 자전거도 훔치고 또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내 목숨을 구해 주기도 했잖아요"
"하하하 그게 무슨 생명의 은인이야 난 누가 나를 죽여 주었으면 하
면서 사는 사람인데 마침 그 정도의 남자라면 나를 죽여줄지도 모른다
는 희망으로 나섰던 거야 결국 운이 나빠서 죽지도 못했지만 말이야"
"아저씨는 나를 안아보고 싶지 않아?'
"너처럼 비린내 나는 아이는 안고 싶지 않아"
"아저씨가 뭘 몰라서 그러는 모양인데 열 여덟이면 진짜 영계야 아저
씨들은 나랑 자지 못해서 안달을 하는데"
순간적으로 화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나는 은정이의 뺨을 후려쳤다.
"야 이 멍청한 계집애야 네 몸을 네가 소중하게 생각해야지 그리고
인생을 좀 진지하게 살아봐라, 너처럼 어리고 너처럼 예쁘고 너처럼
똑똑한 애가 어째서 그렇게 막 사는지 나는 이해가 안 간다. 날 좀 봐
라 혼자서 먹고 혼자서 싸고 혼자서 울고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
고 시계추처럼 회사와 집으로 오락가락 하면서도 정말 외로워서 죽을
지경이면서도 난 내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산다. 내가 너라면 난 너처
럼 아무렇게나 막 살지는 않는단 말이야 이 얼간아!"
은정이가 뺨을 싸안고 고꾸라졌다.
"울지마 은정아 난 다만 네가 열심히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등을 두드리면서 위로했지만 은정이는 내 손을 뿌리치고 더욱
서럽게 울었다. 너무 서럽게 울었으므로 당황해서 달래던 나는 은정이
의 등을 싸안고 같이 울었다.
"아저씬 바보같이 왜 울어?"
울다가 갑자기 고개를 든 은정이가 미소를 띈 얼굴로 내게 물었다.
눈가에 바른 아이섀도우가 흘러내려서 장마철 물난리를 겪은 연탄창고
에서 흘러나오는 물처럼 까만 얼룩이 얼굴 여기저기 함부로 칠해져 있
었다.
"흙장난 하던 어린애 같애"
말을 마치고 한참동안 웃었다. 은정이가 거울 앞으로 가서 자신의 얼
굴을 보더니 한참동안 배꼽을 잡고 웃었다. 좀처럼 웃음을 그칠 것 같
지 않던 은정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화장실 바닥에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다가가서 은정이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한참동안 토한 은정이는 비틀거리면서 화장실을 나갔
다. 나는 은정이가 함부로 토해 놓은 오물을 청소했다. 역한 소주냄
새
때문에 견디기 힘들었지만 화장실의 창문을 열어놓고 수돗물을 뿌려서
확실하게 청소를 하고 방향제를 뿌려서 냄새를 제거했다. 그리고 거실
로 나와보니 은정이는 거실의 소파 위에서 잠들어 있었다. 몇 번을 흔
들어서 깨우려 했지만 가볍게 코까지 골면서 끙하고 돌아누웠다. 화장
지를 가져다가 얼굴에 묻은 얼룩과 입가에 묻은 오물을 닦아주고 문을
잠그고 불을 껐다. 그리고 내방으로 들어와 잠을 청했다. 오래도록 뒤
척이다가 억지로 잠이 들었다. 깨어 보니 어느새 여덟 시가 넘어있었
다. 지저분하던 방안과 거실은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있었고 전기 밥솥
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냉장고를 뒤져서 찌개를 끓여
놓은 모양이었다. 은정이는 보이지 않았다. 일어나서 억지로 세수를 하
고 식탁 앞에 앉으니 메모지 한 장이 눈에 띄었다. 그 내용은 이러했
다. "아저씨 울다가 웃으면 어디어디 공기 털 난다고 놀리던 생각이
나요 우리 어제 울다가 웃다가 했죠? 나야 어려서 그렇다지만 아저씨
는 다 큰 어른이면서 그리고 난 참 못 됐죠? 자전거도 훔치고 아저씨
가 날 도와주었는데 술 주정만 하고 거기다가 용돈도 없어서 아저씨
지갑에서 오 만 원 가져가요 이건 훔치는 게 아니라 빌리는 거 에요,
나중에 꼭 갚아 줄게요 그리고 나 아저씨 말대로 막 사는 여자 아니에
요 사실은 나도 고민이 많다고요 아저씨 덕분에 결단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안녕히 귀여운 주정뱅이 안 은정 올림"
보름이 지났다. 마침 월급이 나왔으므로 태희와 갔던 자전거포를 찾
아갔다. 내 자전거를 다시 돈을 지불하고 사려는 생각에서였다.
"은정이가 돈을 돌려주고 찾아갔어요, 돌려주려는 줄 알았는데 자기
가 타려고 했나?"
심드렁한 음성으로 자전거포의 사내가 말했다.
퇴근하다가 불현듯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가고 싶었다. 천천히 걸어서
초등학교에 갔다. 누군가가 자전거를 타고 운동장을 돌고 있었다. 나
는
학교의 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계단으로 올라가 앉아서 학교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야트막한 야산으로 저녁 해가 막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
데
운동장에 은정이가 있었다. 은정이는 노랗게 물들인 머리를 휘날리면
서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나는 은정이가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은정이는 즐거운 모습으로 환하게 웃으면서 자전거를 타고 있
었다. 한참동안 타다가 갑자기 멈추어 서자 누군가 달려왔다. 태희였
다. 달려온 태희가 은정이가 타고 있는 자전거 뒤로 올라탔다. 은정이
가 다시 출발했다. 처음에는 뒤뚱뒤뚱 불안한 출발을 했지만 곧 다시
신나게 운동장을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이 운동장을 열 다섯 바
퀴를 돌고 정문을 통해 밖으로 사라진 후에도 한참동안 넋을 놓고 앉
아있었다. 그들이 타고 있던 자전거는 내가 타고 다니던 자전거가 분
명했지만 이제는 자전거를 되찾고 싶은 생각이 없었으므로 모르는 척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에 태희는 은정이가 술집을
그만두고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검정고시 학원을 다닌다는
말을 전해 주었다. 저녁에 퇴근을 해서 집으로 돌아오니 잃어버렸던
자전거가 집 앞 가로수에 묶여 있었다. 거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
자 문 위에 있던 편지봉투 하나가 툭 떨어졌다. 안에는 자전거를 묶은
열쇠와 돈 오 만 원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메모지도 아무 것도 없었
다.
나는 그 귀여운 자전거 도둑이 부디 행복하기를 빌면서 그 돈으로 내
일 할머니에게 쌀이라도 사들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 보다고 그
귀여운 자전거 도둑이 보고 싶었으므로.... 감사..
카페 게시글
창작詩, 창작소설..
김갑봉전.11.자전거도둑.(2)
백발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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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1.25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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