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과 그리스도인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 있을까.
윤석열의 수사가 답보상태다. 경찰이든 공수처든 검찰이든 그를 건드릴 수 없다. 그런 인간을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의 잘못이다. 그가 하루를 버티면 그만큼 대한민국이 무너진다. 그러 인한 손실은 계산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생각나는 단어는 만무방이다. 만무방은 예의와 염치가 없는 뻔뻔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 만무방이 되는가. 그것은 자기 자신밖에는 모르는 사람이다.
윤석열은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사법시험도 패스했다. 누구도 그가 머리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작금의 그를 보고 의아해하지 않는 사람은 태극기부대와 권성동과 나경원을 비롯한 국민의힘 국회의원들뿐이다.
그런 윤석열을 바라보며 나는 나 역시 그와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본다. 내게 만일 윤석열이 지니고 있는 권력과 부가 있다면 나 역시 그와 같은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그에게서 인간이 지닌 한계와 정체성을 확인한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는 윤석열을 통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왜 복음대로 살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발견한다. 윤석열과 같은 사람 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사실 수 없다. 그의 안에는 이미 절대적인 자기 자신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안에 들어가실 공간 자체가 없다.
우리는 여기서 윤석열 부부에게 항상 건진법사나 천공, 그리고 명태균과 같은 무당 비슷한 사람들이 함께 하는지를 보아야 한다. 자신을 절대적으로 여기는 그는 스스로 하나님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그 역시 자신이 절대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그런 그에게는 반드시 그 약점을 보완해줄 존재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인류 역사 속에 무당과 같은 존재들이 함께 했던 이유다.
자신이 神(신)이 된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미래가 궁금하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잘 보라. 절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주변에는 항상 그의 미래를 예측해주는 영매(靈媒)들이 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절대 권력을 유지시켜 주는 일이다.
특히 김건희는 권력의 화신이라고 할 만큼 권력에 대한 욕망이 강한 사람이다. 그는 권력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한다. 그가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접근하여 그 사람을 지배함으로써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 않은가.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교와 미신의 다른 점을 발견한다. 그리스도교는 자기 자신을 부인함으로써 자신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실 수 있게 하는 종교다. 이에 비해 미신은 자기 자신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위해 신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고 그 대가를 요구하는 종교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교회를 다닌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과 솔직하게 대화를 해보면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이유가 “나 잘 살자고” 다닌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자녀들의 행복과 성공을 위해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한다.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미신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를 다닌다는 것,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런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도 잘 살고, 죽은 후에도 천국의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를 원한다.
그 이유는 그런 사람들 역시 윤석열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은 윤석열이 가지고 있는 권력과 부를 지니지 못했다는 사실 뿐이다. 그래서 자신의 절대성을 윤석열처럼 주장할 수 없을 뿐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절대성을 위해 가장 강한 것이라 생각하는 하나님을 미신으로 섬기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을 미신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약간의 헌금을 드리고, 약간의 시간을 드리는 것으로 자신이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는 것이다.
오래도록 글을 쓰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하나님 나라인 교회를 향해 나아가면서 내가 발견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바울 사도처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을 살 수 없다. 그들의 절대성은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모든 것을 내친다. 그 내용이 반박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의 인격을 매도하거나 그 사람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실한 빌미로 사용한다.
결국 자기 부인이야말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출발점이요 관문이라는 사실이 다시금 명백하게 드러난다. 자기를 부인한 그리스도인이라며 자기 비움의 길인 그리스도의 길을 갈 수 있다. 그래야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가 되실 수 있다.
“내가 내 모든 소유를 나누어줄지라도, 내가 자랑삼아 내 몸을 넘겨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런 이로움이 없습니다.”
이 말씀의 옛 버전에서는 “내가 내 모든 소유를 나누어줄지라도, 내가 자랑삼아 내 몸을 넘겨줄지라도”를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번역해놓았다. 옛 버전이 훨씬 더 실감이 난다. 가진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것은 얼마나 큰 희생인가. 그러나 그 일도 “자랑삼아”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자랑삼아 하는 일은 자기를 위해 하는 일이다.
자기에게 절대성을 부여한 사람도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사람이 하는 행동과 동일하게 행할 수 있다. 그것을 가르는 것이 바로 자기 부인이다. 작금의 윤석열이 그것을 우리에게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는 지금 위대한 반면교사로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영적인 가르침을 주고 있다.
대형교회 목사들이나 황금알을 낳는 방송국을 소유한 김장환 목사와 같은 사람들이 윤석열을 옹호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런 그들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은 물론, 그들 모두를 싸잡아 비난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부인하지 못한 사람들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볼 수 있는 은혜가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임하기를 바란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4.12.21 08:52
첫댓글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교와 미신의 다른 점을 발견한다. 그리스도교는 자기 자신을 부인함으로써 자신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실 수 있게 하는 종교다. 이에 비해 미신은 자기 자신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위해 신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고 그 대가를 요구하는 종교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좋은 글이라 생각해서 퍼왔습니다.
정치판에 뛰어든 사람들의 성향들이 다 비슷하겠지요.정말 괞찮은 인물은 그 곳에 안가니까요~
댓글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