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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음(行陰) 구역
심리적 생리적 본능활동과
우주와 마음과 물질에 대한 인식의 편차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지관이나 선정의 지정(止定) 경계를 닦는 가운데 상음(想陰)이 이미 다한 자는 평소의 꿈[夢]과 생각[想]이 소멸하고 자나 깨나 한결같아서[寤寐一如] 밤낮으로 모두 밝으며 비고 고요한 경계 속에 머무른다. 이는 마치 맑게 갠 허공에 장애가 없고 환히 청명하듯이 다시는 더 이상 거친 분별이 마음속에 오고가는 일이 없다. 모든 세간의 산하대지를 보면 마치 밝은 거울이 물상을 비추는 것과 같아서 오더라도 달라붙은 게 없고 지나가도 자취가 없다. 오직 온통 청허함으로서, 온갖 사물을 비추어 그 즉시 적응하며 또렷이 알면서[了然] 장애가 없다. 다시는 과거의 남은 습기가 없고, 오직 그 지극히 진실한 정령(精靈)만이 또렷이 항상 밝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만유의 생멸의 근원이 남김없이 다 드러나며, 시방세계 중의 12종류 중생을 보고 그것의 종류들을 다 이해할 수 있다. 비록 아직은 그 생명마다의 근본 유래를 통달하지는 못했지만 이미 그 공통의 생명 본능을 보았다. 이 생기(生機)는 일정하지 않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희미하게 밝은 광체와 같다. 마치 태양속의 불꽃 그림자[焰影] 빛이 비추는 것 같으며 잡으려 해도 잡혀지지 않으면서 청명함이 있고 혼란스러우면서 하느작거리는 현상이 있다. 이게 바로 생리적 심리적 활동 본능의 궁극적 관건[機樞]의 구멍[竅穴]이다. 이런 경계를 행음 구역이라고 한다. 만약 이 청명하면서도 흔들리며 희미하게 빛나는 본원 성능을 거쳐서 다시 자성 원래의 맑은 경계로 들어간다면, 원래의 습성(習性)이 한번 맑아짐을 거침은 마치 파도가 평온히 가라앉아 한 줄기의 맑은 흐름으로 변화한 것과 같다. 이러한 경계를 행음이 다한 것이라고 한다. 이 사람은 중생탁(衆生濁: 오탁의 하나이다. 중생은 주76을 보라/주92)을 초월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까닭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역시 망상이 잠복하여 그 근본 작용이 되기 때문이다.
① 이런 정지(正知)의 선정 경계 속에 있는 사람이 정심(正心)이 집중되고[凝] 밝아져서, 앞서 위에서 말한 열 가지 천마가 얽어맬 기회를 엿보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비로소 이 선정 경계 속에서 각 종류의 생명의 본원(本元)을 치밀[精細]하게 연구하여 궁구할 수 있는데, 본류(本類) 가운데에서 그는 생명의 본원이 시종 깊고 맑고 원만하고 요동하면서[幽清圓擾] 영원히 쉬지 않고 활동함을 본다. 이리하여 이 원만함과 항상함[圓常] 속에서 망녕되게[妄: 망녕되다. 터무니없다. 도리에 맞지 않다/역주] 스스로 추리[計]와 상상[度]을 일으켜서 이 사람은 두 가지 무인론(無因論)에 떨어진다.
1) 이 사람은 모든 만물이 본래에 원인이 없이 스스로 생겨난 것으로 본다. 그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는 이 정도에 이르러서 생기(生機)가 이미 완전히 깨졌기 때문이다. 안근이 본래 8백 공덕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8만 겁 밖의 모든 중생이 생명 업력의 흐름가운데 있음이 마치 굽이쳐 흐르는 물 한 줄기가 돌고 왕복하는 것과 같아서 여기서 죽어서 다시 저기에 태어남을 본다. 단지 온갖 중생이 마치 바퀴처럼 그곳에서 돌고 있음을 보고 8만 겁 밖에 대해서는 아득하여 전혀 보이는 바가 없다. 그래서 이런 견해를 갖게 되는데, 이 세간의 시방의 모든 중생들은 8만 겁 이래로 본래에 원인 없이 스스로 있는 것이라고 여긴다. 추리와 상상을 통해서 올바른 지혜를 잃어버리고 외도로 타락하여 보리정각의 진성(真性)을 미혹해버린다.
2) 이 사람은 모든 결과는 원인 없이 온 것으로 여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일까? 왜냐하면 이 사람은 생명의 내원에 대하여 자기가 이미 그 근본을 보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본래 사람을 낳고, 새는 본래 새를 낳으며, 까마귀는 본래 까만색이고, 고니는 본래 흰 것이며, 인간과 천인들은 본래 기립 동물이라는 것을 알고, 축생들은 본래 옆으로 걷는다고 안다. 흰 것은 씻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요, 검은 것도 염색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8만 겁 이래로 근본적으로 바뀐 적이 없었다. 이 형체의 수명이 다하고 나서도 여전히 예전대로의 그 모습이다. 내가 본래 무슨 보리 정각의 성(性)을 보지 못하는데 보리를 이루는 무슨 사실들이 다시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한 현재의 온갖 물상은 모두 본래에 원인 없이 온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한다고 여긴다. 이러한 추리와 상상으로부터 정변지(正徧知: 진정으로 일체법을 두루 아는 것이다. 즉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구역이다. 신역으로는 정등정각正等正覺이라 한다. 주75를 보라/주93)를 잃고 외도로 타락하여 보리 정각의 진성을 미혹한다. 이와 같은 사람을 ‘원인이 없다는 이론’을 세운 첫 번째 외도라 한다(이러한 이론은 우주만유의 근본이 명연冥然하여 원인 없이 스스로 생겨난 것이라고 본다. 만유현상은 모두 자연적인 법칙으로서 최초에 무슨 목적을 위한 원인이 없고 마지막에도 원인의 결과가 없다고 본다. 자연물리론자의 일부분 이론과 서로 같다).
② 이런 정지(正知)의 선정 경계 속에 있는 사람이 정심(正心)이 집중되고 밝아져서, 외부의 천마가 얽어맬 기회를 엿보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비로소 이 선정 경계 속에서 각 종류의 생명의 본원을 치밀하게 연구하여 궁구할 수 있는데, 그는 생명의 본원이 시종 깊고 맑고 원만하고 요동하면서 영원히 쉬지 않고 활동하고 있음을 본다. 이리하여 이 원만하고 항상함[圓常] 속에서 망녕되게 스스로 추리와 상상을 일으켜서 이 사람은 네 가지 편상론(徧常論)에 떨어질 것이다.
1) 이 사람은 마음[心]과 마음의 경계[心境]에서 일어나는 성능이 양쪽 다 원인이 없다고 궁구한다. 이로부터 마음이 공함을 닦아 익혀 2만 겁 가운데에서의 시방 공간 속의 모든 중생들의 생멸 현상이 모두 여기서 죽고 저기에 태어나면서 순환하고 그치지 않는 작용이 근본적으로 흩어진 적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마음과 경계의 성[心境性]은 항상 존재한다고 미루어 생각한다(이런 이론은 정신불멸론과 같다).
2) 이 사람은 사대(四大)의 본원을 궁구하여 지수화풍 물질인 사대 종류의 본원 성능이 항상 존재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이로부터 물질의 근원을 닦고 익혀서 4만 겁 중의 시방 공간 속의 모든 중생들의 생멸 현상과 사대 성능의 체는 본래 모두 항상 존재하며 근본적으로 흩어 없어진 적이 없다고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사대의 성능이 항상 존재한다고 미루어 생각한다(이런 이론은 물질불멸론과 같다).
3) 이 사람은 6근(안眼 · 이耳 · 비鼻 · 설舌 · 신身 · 의意)과 말나(末那: 이 생명과 함께 태어난 아집我執)과 모든 심신의 집수(執受: 제8식 아뢰야식. 밖의 대상이 있다고 인정하고 그것에 의해 감각이 생기는 것. 감각하는 것. 취하는 것/역주) 작용을 궁구하고, 심의식(心意識)이 최초에 움직인 곳의 본원 내원에 집착하여 그 성능이 본래 항상 존재한다고 여긴다. 이로부터 이 본원을 닦아 익혀서 8만 겁 가운데서 온갖 중생이 그치지 않고 순환하면서 본래에 영원히 존재하고 시종 잃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본원 성능은 항상 존재한다고 미루어 생각한다.
4) 이 사람은 이미 망상의 본원이 소멸하여 다하고 생리적으로는 더 이상 유동하여 돌아가는[流動運轉] 작용이 없으며 생멸하는 망상심이 이미 영원히 소멸했다. 그래서 이성(理性) 중에서 자연도 불생불멸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들은 마음의 추리로써 망상을 초월하는 하나의 이성을 가정하여 항상 존재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들은 어떤 사물이 항상 존재한다고 추리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변지를 잃고 외도로 타락하여 보리정각의 진성을 미혹해버린다. 이런 사람을 원만하고 항상하다[圓常]는 이론을 세운 두 번째 외도라고 이름 한다.
③ 또 이런 정지(正知)의 선정 경계 속에 있는 사람이 정심(正心)이 굳게 집중되어 외부의 마구니가 얽어맬 기회를 엿보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비로소 이와 같은 선정 경계 속에서 각 종류의 생명의 본원을 치밀하게 연구하여 궁구할 수 있는데, 그는 생명의 본원이 시종 깊고 맑고 원만하고 요동하면서 영원히 쉬지 않고 활동하고 있음을 본다. 그리하여 자기와 타자(주관인 나와 객관인 외부 경계)에 대하여 추리와 상상을 일으키고, 이 사람은 네 가지 전도(顚倒)된 견해에 떨어져 일부는 무상(無常)하고 일부는 항상[常]하다는 이론을 낳는다.
1) 이 사람은 자기의 영묘하고 영명한 마음이 시방세계에 두루 가득한 것을 관찰하고는 이 맑고 투명한 것이 바로 가장 궁극적인 신아(神我: 영혼. 외도가 설하는 아我인 아트만/역주)라고 여긴다. 이로부터 미루어 생각하기를, 나는 본래에 시방 공간 속 어느 곳에나 두루 있어서 없는 곳이 없으며, 응결되어 밝으면서 움직이지 않는다. 온갖 중생은 모두 내 마음속에서 스스로 태어나 스스로 죽고 나의 심성만이 항상 존재한다. 그 나머지 모든 것은 생(生)이 있고 멸(滅)이 있어서 필경에는 무상(無常)한 성(性)이라고 한다(이런 이론이 유가瑜伽 학술의 근원이다).
2) 이 사람은 자기의 마음을 반성 관찰하려 하지 않고, 단지 시방의 무수무량한 국토세간만을 두루 관찰하되 겁운(劫運)이 파괴할 때 존재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는 필경에 무상(無常)한 종성(種性)이라고 이름 하고, 그 공계(空界)의 성능은 도리어 겁운의 영향을 받더라도 파괴되지 않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상존(常存)하는 성(性)이라고 이름 한다.
3) 이 사람은 따로 스스로 반성 관찰해보니 자기의 마음이 확실히 정밀하고 미세함이 마치 물질의 미진과 같다(물질의 원자 에너지와 같다). 비록 육허(六虛: 동서남북 사방과 상하/역주)에 두루 흘러 변동하면서 가만히 있지 않지만 그 천연의 성능은 근본적으로 바뀜이 없다. 그것은 이 몸을 생겨나게 하고 소멸하게 할 수 있지만 그 자체는 본래 파괴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의 본성은 상존하다고 이름 한다. 그 나의 천연의 본성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나오는 생사 작용은 무상(無常)한 성(性)이라고 이름 한다.
4) 이 사람이 상음이 다한 것을 자기가 알고서는 생명 본능의 활동인 행음의 흐름이 쉬지 않는 것을 보고 곧 추리하기를 행음이 바로 항상 존재하는 상성(常性)이고, 색(色: 마음 물질의 빛과 에너지이다)과 수(受: 감각)와 상(想: 생각)이 이제 모두 소멸하였으니 이런 것들은 모두 무상성(無常性)의 것이라고 이름 할 수 있다고 한다. 요컨대 그들은 이로부터 추리 상상하기를, 일부분은 무상하고 일부분은 상존한다고 한다(이런 이론은 대체적으로 현대의 자연과학과 일부 철학에서 말하는 이론과 같다. 즉, 주관 물리세계는 존재하지 않고 객관 우주세계는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외도로 타락하여 보리 정각의 진성을 미혹한다. 이런 사람들은 일부 상존의 이론을 세운 세 번째 외도라고 이름 한다.
④ 또 이런 정지(正知)의 선정 경계 속에 있는 사람이 정심(正心)이 굳게 집중되어 외부의 마구니가 얽어맬 기회를 엿보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비로소 이와 같은 선정 경계 속에서 각 종류의 생명의 본원을 치밀하게 연구하여 궁구할 수 있는데, 그는 생명의 본원이 시종 깊고 맑고 원만하고 요동하면서 영원히 쉬지 않고 활동하고 있음을 본다. 그리하여 시간과 인아(人我)에 대하여 추리와 상상을 일으켜서 이 사람은 네 가지 유변론(有邊論)에 떨어질 수 있다.
1) 이 사람은 미루어 생각하기를 생명활동의 생원(生元)은 본능적으로 그치지 않고 쉬지 않고 흘러가니[流行] 과거와 미래를 추측할 수 있는데, 이것을 유변(有邊)이라고 이름 하고, 현재의 마음은 생각 생각 끊어지지 않고 서로 이어지는 것을 추측하여 무변(無邊)이라고 이름 한다.
2) 이 사람은 8만 겁 초에 중생 존재가 있었음을 볼 수 있다. 8만 겁 이전에 대해서는 적연하여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으므로 8만 겁 이전의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을 무변이라고 이름 한다. 8만 겁 초 시작에 중생이 있었을 때를 유변이라고 이름 한다.
3) 이 사람은 자기가 온갖 것을 두루 알고 무변성(無邊性)을 이미 증득했다고 여긴다. 기타 모든 사람들은 모두 나의 능지성(能知性) 가운데서 나타나지만, 나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능지성의 변제(邊際)를 알지 못하므로 다른 사람들은 무변(無邊)의 마음을 얻을 수 없고 유변(有邊)의 성(性)만 갖추고 있을 뿐이라고 여긴다.
4) 이 사람은 행음(行陰)의 공성(空性)을 궁구하여 자기가 본 바에 의지하여 자기 마음으로 계산하고 상상하여, 온갖 중생의 한 몸 가운데 양면의 작용이 있어서 절반은 생기(生起) 작용이고 절반은 공(空)하기 때문에, 세상의 온갖 것도 절반은 유변이고 절반은 무변이라고 여긴다. 요컨대 그들은 이로부터 유변과 무변을 추리하고 상상하여 외도로 타락하여 보리 정각의 진리를 미혹해버린다. 이와 같은 사람들을 변제(邊際)의 이론을 세운 네 번째 외도라고 이름 한다.
⑤ 또 이런 정지(正知)의 선정 경계 속에 있는 사람이 정심(正心)이 굳게 집중되어 외부의 마구니가 얽어맬 기회를 엿보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비로소 이와 같은 선정 경계 속에서 각 종류의 생명의 본원을 치밀하게 연구하여 궁구할 수 있는데, 그는 생명의 본원이 시종 깊고 맑고 원만하고 요동하면서 영원히 쉬지 않고 활동하고 있음을 본다. 그리하여 그가 알고 본 경계 가운데서 추리와 상상을 일으킨다. 이 사람은 네 가지 전도된 견해에 떨어질 수 있어서 따로 하나의 불사(不死)의 존재가 있다고 꾸며대어 말하며, 네 가지의 모순 대립되는 이론을 멋대로 세우고 스스로 오히려 그 집착하는 잘못된 이론을 두루 헤아린다.
1) 이 사람은 생명본능 활동 중의 변화의 근원을 관찰하여 그것이 쉬지 않고 변천하는 것을 보고는 이를 변함[變]이라고 이름 하고, 상속운행(相續運行)하는 현상을 보고는 항상함[恒]이라고 이름 한다. 자기에게 보이는 곳을 보는 것을 생(生)이라고 이름 하고, 능히 보는[能見] 근본을 볼 수 없는 것을 멸(滅)이라고 이름 한다. 상속운행하는 기본 원인 중에는 끊어지지 않는 성능이 하나 있다고 인정하여 증가[增]라고 이름 하고, 상속운행하고 있는 중에는 그 사이에 서로 격리된 틈이 있는 곳을 감소[減]라고 이름 한다. 그 하나하나가 존재하는 것을 보고는 유(有)라고 이름 하고, 그 하나하나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는 무(無)라고 이름 한다. 이러한 도리들은 모두 얻은 바를 마음을 써서 관찰함으로써 발생하는 차별의 지견이다. 만약 법을 구하는 사람이 그에게 와서 그 사람의 의미와 이치를 묻는다면 그는 답하여 말하기를 나는 지금 생(生)이면서도 멸(滅)이다. 또 유(有)이기도 하고 무(無)이기도 하다. 증가[增]이기도 하고 감소[減]이기도 하다고 하여, 어느 때나 그 말을 어지럽게 하여 애매모호하게 함으로써, 와서 묻는 사람으로 하여금 막연해서 이해하지 못하게 하고 그가 본래 묻고자 하는 문제를 잃어버리게 한다.
2) 이 사람은 그 마음에 모두 고정된 존재가 없음을 자세히 관찰하고 자기가 무(無)로 인하여 증득했다고 여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와서 물으면 그에게 무(無)자 하나만 답을 한다. 무자 이외에는 말할 만한 다른 언어가 없다.
3) 이 사람은 그 마음이 모두 그가 생각하고 움직이는 기점 처소가 있는 것을 관찰하고는 자기가 유(有)로 인하여 증득을 얻었다고 여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와서 물으면 시(是: 그렇다/역주)자 하나만 답한다. 시(是) 이외에는 말할 만한 다른 언어가 없다.
4) 이 사람은 유(有)와 무(無)를 보았지만, 그의 경계는 오히려 모순 속에 빠져있어 그 마음도 이 때문에 어지럽다. 만약 어떤 사람이 와서 물으면 그는 답하여 말하기를 유(有)이기도 함이 바로 무(無)이기도 함이라고 답한다. 무이기도 하는 가운데는 유이기도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모든 것에 그 말을 꾸며대고 어지럽게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추궁하고 힐난할 방법이 없게 한다. 요컨대 그들은 모두 추리와 상상으로부터 허무한 잘못된 이론을 억지로 꾸미고 어지럽게 세워서 외도로 떨어져 보리 정각의 진성을 미혹해버렸다. 이런 사람은 네 가지 전도(顚倒)된 모순적인 불사교란(不死矯亂: 불사교란론은 외도 16론의 하나. 뱀장어를 잡듯이 잡을 곳이 없는 의론이라는 뜻. 회의론자 산자야의 설이다/역주)으로 스스로 그의 허무한 잘못된 이론을 옳다고 주관적으로 구상하는[徧計], 다섯 번째 외도라고 이름 한다.
⑥ 또 이런 정지(正知)의 선정 경계 속에 있는 사람이 정심(正心)이 굳게 집중되어 외부의 마구니가 얽어맬 기회를 엿보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비로소 이와 같은 선정 경계 속에서 각 종류의 생명의 본원을 치밀하게 연구하여 궁구할 수 있는데, 그는 생명의 본원이 시종 깊고 맑고 원만하고 요동하면서 영원히 쉬지 않고 활동하고 있으며 운행하여 쉬지 않고 있음이 마치 끝없는 흐름과 같음을 본다. 그리하여 추리와 상상을 일으켜서, 이 사람은 ‘죽은 뒤에 상(相)이 있다’는 데 떨어져 마음속에 전도된 지견이 발생할 것이다. 혹은 자기가 뜻을 굳세게 하고 이 몸을 굳게 지켜서 말하기를 사대(지地 · 수水 · 화火 · 풍風) 종성의 색이 바로 나[我]라고 한다. 혹은 나의 자성이 원융하여 모든 국토 세간을 두루 포함하고 있다고 여기거나, 나의 속에는 본래 스스로 물리의 성분을 포괄하고 있다고 말한다. 혹은 목전의 물리 광색이 나의 운용에 따라서 순환왕복 작용을 일으킨다고 여기고, 또 말하기를 광색은 본래 바로 나의 부속으로서 온갖 물리 현상은 모두 나가 나타난 것이라고 한다. 혹은 내가 생명본능 활동의 중간에 의지하고 붙어서 내가 물리 색상 속에 있다고 여긴다. 요컨대 이 사람들은 죽은 뒤에 상(相)이 있다[死後有相]고 미루어 생각하여, 이러한 네 가지 순환적 상대적인 현상 가운데서 겹겹이 반복하여 16가지 종류의 상(相)으로 발전할 수 있다. 혹은 이로부터 미루어 생각하여 번뇌는 어디까지나 번뇌이고 보리(정각자성正覺自性)는 결국 보리이며, 보리와 번뇌 두 가지 성능은 나란히 나아가 서로 저촉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그들은 이러한 추리와 상상을 통해서 죽은 뒤에 상(相)이 있다고 여기는 까닭에 외도로 타락하여 보리 정각의 진성을 미혹한다. 이러한 사람을 5음(색色 · 수受 · 상想 · 행行 · 식識) 가운데에서 내가 죽은 뒤에 상이 있다고 세워서 마음속에서 전도된 이론이 발생하는 여섯 번째 외도라고 이름 한다.
⑦ 또 이런 정지(正知)의 선정 경계 속에 있는 사람이 정심(正心)이 굳게 집중되어 외부의 마구니가 얽어맬 기회를 엿보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비로소 이와 같은 선정 경계 속에서 각 종류의 생명의 본원을 치밀하게 연구하여 궁구할 수 있는데, 그는 생명의 본원이 시종 깊고 맑고 원만하고 요동하면서 영원히 쉬지 않고 활동하고 있음을 본다. 이전에 이미 제거 소멸시켰던 색수상(色受想)의 음(陰) 경계에 대하여 추리와 상상을 일으킨다. 이 사람은 ‘죽은 뒤에 상(相)이 없다’는 데 떨어져 마음속에서 전도된 견해가 발생할 수 있다. 그는 색상이 끝내 소멸로 돌아가고 심념은 본래 묶임이 없음을 보고는, 그는 ‘받아들여 느끼는[領受] 감촉 작용도 소멸하여 온갖 것이 결국 관련됨이 없을 것이다. 감각 작용 성능이 흩어져버릴 경우 설사 아직 생리가 있더라도 만약 받아들여 느껴 감촉하는 상념의 마음이 없다면 초목이나 다름없다. 지금 이 생리적인 실질이 여전히 있어도 오히려 얻을 상이 없는데, 죽은 뒤 얻을 상이 더더구나 어디에 있겠는가!’ 라고 여긴다. 이 때문에 깊이 파고들어 찾아보아 죽은 뒤에는 상이 없다고 여긴다. 이와 같이 반복 순환 식으로 연구 탐색하여 색 · 수 · 상 · 행 네 가지 음(陰)이 서로 반복하기 때문에 8무상(八無相)의 이론이 있다. 이러한 추리로부터 열반(자성원적)이나 인과 등 온갖 것이 공(空)하며, 한갓 이름만 있을 뿐 실질적인 의미가 없고, 모두 궁극적으로는 단멸(斷滅)한 것이라고 여긴다. 요컨대 그들은 이 추리와 상상으로부터 죽은 뒤에는 모든 것 다 끝나버린다고 여겨서 외도로 타락하여 보리 정각 진성을 미혹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5음(몸과 마음인 색수상행식) 가운데서 죽은 뒤에 근본적으로 상(相)이 없다고 세우고 마음속에서 전도된 이론을 세운 일곱 번째 외도라고 이름 한다.
⑧ 또 이런 정지(正知)의 선정 경계 속에 있는 사람이 정심(正心)이 굳게 집중되어 외부의 마구니가 얽어맬 기회를 엿보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비로소 이와 같은 선정 경계 속에서 각 종류의 생명의 본원을 치밀하게 연구하여 궁구할 수 있는데, 그는 생명의 본원이 시종 깊고 맑고 원만하고 요동하면서 영원히 쉬지 않고 활동하고 있음을 본다. 그는 행음이 아직 존재하는 경계 속에서 색수상(色受想) 세 가지 음이 이미 소멸하였음을 보았다. 그리하여는 유(有)와 무(無)를 쌍으로 추리하여 행음은 유(有)이고 색수상 세 가지 음은 무(無)로서 자체가 서로 모순된다고 여긴다. 이 사람은 ‘죽은 뒤에 온갖 것이 다 아니다[非]’는 데 떨어져 전도된 이론을 일으킨다. 그는 색수상 작용 가운데서 살펴보니 그것이 마치 있는 듯이 보이지만 자세히 깊이 파고들어 찾아보니 또 없다. 그는 본능활동의 행음이 쉬지 않고 흘러가는 가운데서 자세히 관찰해보니 그것이 마치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또 없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렇게 순환 왕복하면서 이상의 색수상행 네 가지 음의 서로 상대적 여덟 가지 상[八相]을 궁구하여 보니 모두가 고정된 현상이 아니기에, 단지 한 가지 점을 자기 뜻대로 붙들어서 말하기를 죽은 뒤에도 상이 있어 존재하기도 하고 또 얻을 상이 없기도 하다고 한다. 다시 또 미루어 생각하기를 온갖 본능활동 작용은 모두 고정된 성능이 없으며, 모두 허망하게 변천하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자기가 이미 대도(大道)를 통달했으며 진리를 깨달았다고 마음속으로 느끼고, 유나 무가 모두 아니라고 여긴다. 그리하여 허(虛)와 실(實)을 종잡지 못하고 아득하여 파악하지 못한다. 요컨대 그들은 모두 이로부터 추리 상상하기를 죽은 뒤에는 온갖 것이 다 아니며, 몸 뒤에는 어둡고 아득하여 잡을 그 무엇이 없다고 하면서 외도로 타락하여 보리 정각의 진성을 미혹한다. 이런 사람들은 5음(몸과 마음인 색수상행식) 가운데서, 죽은 뒤에는 만사가 다 아니다 라는, 마음속에서 전도되고 모순된 이론이 발생하는 여덟 번째 외도라 이름 한다.
⑨ 또 이런 정지(正知)의 선정 경계 속에 있는 사람이 정심(正心)이 굳게 집중되어 외부의 마구니가 얽어맬 기회를 엿보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비로소 이와 같은 선정 경계 속에서 각 종류의 생명의 본원을 치밀하게 연구하여 궁구할 수 있는데, 그는 생명의 본원이 시종 깊고 맑고 원만하고 요동하면서 영원히 쉬지 않고 활동하고 있음을 본다. 몸이 ‘죽은 뒤에는 무엇이든 다 허무하다’고 여기고 추리 상상을 일으켜서 이 사람은 곧 일곱 가지 단멸(斷滅)의 이론에 떨어질 수 있다. 그들은 사후에 신체가 단멸(욕계)하거나 욕념(欲念)이 다 소멸하거나 고통이 다 소멸하거나 극락이 다 소멸해버리거나 극사(極捨: 4선四禪과 무색계無色界/역주)가 다 소멸해버려서, 이런 것들은 결국에 없는 것이라고 여긴다. 이렇게 순환적으로 파고 들어가 칠제(七際: 지地,수水,화火,풍風,공空,식識,각覺의 일곱 가지 변제邊際. 사선四禪 사공천四空天 등이라는 설도 있다)가 다 끝나고, 눈앞에 나타나 있는 온갖 것은 마침내 소멸로 돌아가며, 소멸하고 난 뒤에는 다시는 있을 리 없다고 여긴다. 요컨대 그들은 모두 이로부터 추리 상상하기를 죽은 뒤에는 완전히 단멸한다고 하며 외도로 타락하여 보리 정각의 진성을 미혹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5음(몸과 마음의 색수상행식) 가운데서, 죽은 뒤에는 모두 단멸로 돌아간다고 세우며, 마음속에서 전도되고 모순된 이론을 발생하는 아홉 번째 외도라고 이름 한다.
⑩ 또 이런 정지(正知)의 선정 경계 속에 있는 사람이 정심(正心)이 굳게 집중되어 외부의 마구니가 얽어맬 기회를 엿보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비로소 이와 같은 선정 경계 속에서 각 종류의 생명의 본원을 치밀하게 연구하여 궁구할 수 있는데, 그는 생명의 본원이 시종 깊고 맑고 원만하고 요동하면서 영원히 쉬지 않고 활동하고 있음을 본다. 몸이 죽은 뒤에 결정적으로 따로 존재가 있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추리와 상상을 일으켜서 이 사람은 다섯 가지의 열반(적멸寂滅)이론에 떨어져 들어갈 수 있다. 혹은 욕계의 천인의 경계가 바로 진정한 열반이 의지하는 경계라고 여긴다. 왜냐하면 그들은 천인 경계의 광명이 청정함을 보고서 사랑하고 그리워함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혹은 초선(初禪)의 이생희락(離生喜樂)의 경계가 우려(憂慮)의 핍박을 받지 않으므로 바로 열반의 경계라고 여긴다. 혹은 이선(二禪)의 정생희락(定生喜樂)의 경계가 고통에 핍박을 받지 않으므로 바로 열반의 경계라고 여긴다. 혹은 삼선(三禪)의 이희득락(離喜得樂)의 경계가 오직 지극한 희열이 있어 따라 머무르므로 바로 열반의 경계라고 여긴다. 혹은 사선(四禪)의 사념청정(捨念清淨)의 경계가, 고통과 즐거움 두 가지가 다 사라지고 다시는 윤회생멸성의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바로 열반의 경계라고 여긴다. 요컨대 그들은 이 다섯 가지 천인 유루의 경계에 미혹하여 바로 진정한 청정한 무위의 극치라고 보고 이 다섯 곳은 절대적으로 안온하고, 가장 뛰어넘기 어려운 청정함이 의지한 곳이라고 본다. 이렇게 순환 왕복하여 모두 이 다섯 곳을 궁극으로 여기고 외도로 타락하여 보리 정각의 진성을 미혹해버린다. 이런 사람들은 5음(몸과 마음인 색수상행식) 경계 속에서 다섯 가지 열반 경계를 나타냄을 세우며, 마음속에서 전도되고 모순된 이론이 발생한 열 번째 외도라고 이름 한다.
이상에서 말한 열 가지 선정 중의 미치고 허망한 지해[狂妄知解]는 모두 자기 마음의 행음이 생명본능 활동 가운데에서의 마음을 써서 교호 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미치고 허망한 지해의 깨달음의 경계가 나타난 것이다. 중생은 어리석고 미혹하여 알지 못하며, 자기가 반성하고 숙고해보려 하지 않고는 이런 경계가 나타나는 것을 만나게 되면, 이런 어리석은 미혹을 올바른 지해(知解)로 여겨서 스스로 일컫기를 이미 성인의 지위에 올랐다고 한다. 정말 크나큰 거짓말[大妄語]로서, 결과적으로 무간지옥에 떨어진다. 내가 열반한 뒤에 내가 한 말을 반드시 말법시대에 전해 보여 주어서, 널리 두루 온갖 중생으로 하여금 그 가운데의 의미와 이치를 깨닫게 하여 심마(心魔)가 스스로 깊은 죄를 일으키지 못하게 하라. 진정으로 수행하는 일반 사람들을 보호하고 이러한 삿된 견해들을 소멸하게 함으로써 그의 심신으로 하여금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하고 무상정각의 도를 추구하는 데 대하여 곁가지들의 갈림길의 잘못을 만나지 않게 하라. 자기 마음에서 작은 것을 얻어서 만족하는 편견이 일어나게 하지 말고, 이를 대각법왕(大覺法王)의 청정한 지표로 삼으라.
남회근 선생 능엄경 대의 풀이에서

첫댓글 고맙습니다 지심귀명 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