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여행7 - 평사리에서 세트장과 박경리 문학관을 지나 최참판 댁을 보다 !
2025년 11월 11일 지리산 피아골에서 구례행 버스를 타고 외곡 3거리에 내려 구례에서 출발해 화개로 가는
버스를 환승해 화개 장터에 도착해 하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악양면 최참판댁 정류소에 내립니다.
박경리 문학비를 지나 상가 언덕을 올라가서 세트장에서 물레방아와 소설 토지에 등장하는 여러 사람들의
집을 구경하고는 빨래터를 지나 위쪽에 박경리 문학관을 찾아 선생의 일생과 작품들을 살펴 봅니다.
그러고는 최참판댁을 보기 위해 걸어가는 중에 벽에는 영화와 드리마 포스터들이 붙어 있는데
아마도 여기 최팜판댁과 세트장에서 찍은 작품들로 거의 백편에 가까워 보이기로 놀랍니다.
이윽고 최참판 댁에 도착해 정문인 솟을대문을 들어서니 왼쪽 담벼락에는 행랑채이고 그 너머 문간채가
있으며 앞으로 걸어가 중문채를 지나면 윤씨 부인이 거처하는 안채이며 오른쪽으로 나가면 뒤채와
최치수가 거처했던 사랑채이며 안채에서 왼쪽으로 나가면 별당아씨가 거처했던 별당채로 연못이 있습니다.
소설 토지(土地) 는 박경리 선생 필생의 역작으로 1969년 6월부터 집필을 시작하여
25년만인 1994년에야 완성된 장편 소설로, 총 5부 25편에 이르며
책 1권에 400페이지 분량이 담겨 있으니 완독하기가 어려운 대하 장편 소설입니다.
박경리씨는 ‘베스트셀러와 작가들’ 이라는 책에서 토지의 지리적 배경으로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를 택한
이유를 밝혔는데, 원래는 만석꾼 최 참판댁 집안에 어울리는 배경으로 전라도 평야가 적합하다고
생각했지만, 통영 출신인지라 전라도 사투리나 풍습에 대해 모르는게 많아 하동군 평사리를 택했답니다.
평사리와 같은 하동군 악양면에 속한 옆 동네 정서리에는 최 참판 댁을 빼다 박은 “조 참판댁
화사별서” 가 존재하는데 그러나 이는 우연으로, 원래 박경리 선생이 토지를
집필할 때는 화사별서를 취재하여 서술한 것이 아니라.... 오직 상상에 의거하여 썼다고 합니다.
알고보니 옆 동네에 최 참판댁과 비슷한 집이 실제로 있었고, 소설에 나오는 것과 거의 똑같은 연당과
곳간에, 심지어 안주인 성격까지도 소설과 비슷했다는 것인데 훗날 SBS 에서 토지를 드라마화
했을때 평사리에 최참판댁 세트장을 만들었는데..... 이때 화사별서를 상당 부분 참고하였다고 합니다.
간도 용정의 경우 집필 당시에는 중국과 수교하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 갈 수 없었고, 지도를 통해 상상
으로 배경을 설정해야 했다는데.... 그런데 수교 후 알려진 결과, 실제 용정 지역과 소설
에서 등장하는 용정은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하니 박경리 의 작가로서의 상상력과 추리력이 대단하다는....
토지의 주요 등장 인물들을 보자면..... 윤씨 부인은 최참판가 사실상의 당주로, 최씨
집안의 마지막 남자 최치수의 어머니이니 카리스마 넘치는 반가 (班家) 의
부인상으로, 엄격하면서도 공명정대하여 하인들과 소작인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습니다.
21세에 요절한 남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연곡사에 불공 드리려고 갔다가 김개주에게 겁탈당해 김환을
낳는데.... 아들 최치수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거리를 두어서, 최치수가 비뚤어지는 원인을 제공합니다.
동학 농민군이 괴멸한후 떠돌이로 위장하여 찾아온 김환을 하인으로 곁에 두며, 별당
아씨 (최치수의 아내) 와 김환의 불륜을 용인하고 나중에 두 사람을
몰래 도망시키는데, 작품 시작 시점이 별당아씨와 구천의 불륜이 드러나는 사건입니다.
최치수는 진작에 반폐인이고 자손은 손녀 서희뿐인데 먼 친척인 친일파 조준구가 유산을 노리고
드나들자, 윤씨 부인은 손녀 서희를 데리고 영지를 돌아보는 등 후계자 교육을 시킵니다.
최치수가 죽고 호열자의 유행으로 앞날이 불투명해지자 서희가 처할 상황에 대비해 금괴와 은괴를 한지에
싸서 서희 방의 장롱 농발 대신 괴어주고 앞일을 잘 헤쳐나갈 것을 당부한후 윤씨부인은 호열자로
사망하고 조준구가 들어앉아 재산을 틀어쥐자.... 서희는 금괴, 은괴 말고는 가진 것 없이 독립하게 됩니다.
최치수 (崔致修) 는 최참판가의 당주로 원래 허약하게 태어나 신경질적인 성격이었는데, 어머니
윤씨부인에게 하루아침에 이유도 모른채 외면당하면서 냉소적이고 음산한 성격으로 성장합니다.
늘 차갑고 골병 기침을 하던 중에 노비인 귀녀가 자신을 유혹해 임신하고 최씨 집안 재산을 차지하고 싶어 안달
하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으나, 냉소적인 성격 때문에 그런 꼴도 보는 재미가 있다며 방관하다가 뒤틀린
성격이 발동해 귀녀를 강포수와 결혼시키려 하니, 귀녀를 자극해 그날밤 귀녀와 결탁한 김평산의 손에 살해됩니다,
열세살에 한살 위인 첫 아내와 결혼했는데.... 외모가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최치수와
"두 날비둘기 같이" 의가 좋았는데 12년만에 혈육을 남기지 못하고 사망했고
그후 10여세 아래로 미모가 출중한 별당아씨와 재혼했으나, 첫 아내와는
달리 정을 전혀 주지 않아서별당아씨가 김환(구천) 과 불륜을 저지르는 계기가 됩니다.
별당아씨는 최치수가 첫 부인을 잃은후 재혼한 부인으로 서희의 생모인데 서울의 가난
하나 엄한 가풍의 좋은 집안에서 자라 빼어난 외모를 지녔지만 냉정한 남편에게
외면당해 외롭게 살던 중에 머슴으로 들어온 이부(異父) 시동생 김환과 사랑에 빠집니다.
남편에게 들켜 갇히지만 시어머니 윤씨부인의 도움으로 김환과 도피해 떠돌며 살다가 묘향산에서
병으로 죽으니, 김환에게는 아름답고 신비한 진달래꽃의 이미지로 남았으며, 딸 서희에게는
자존심과 긍지에 큰 상처를 남긴 애증의 여인으로. 특이하게 등장 인물의 회상과 꿈속에만 등장합니다.
최서희는 “토지” 주인공으로 최치수와 별당아씨의 딸인데, 윤씨부인의 명석한 두뇌와 배포
최치수의 불같은 성깔과 도도함, 별당아씨의 미모를 다 물려받은 여인이니 다정했던
어머니는 노복과 도망치고..... 무섭기만 해서 가까이 가지 못했던 아버지는 살해 당합니다.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을 이끌어가던 할머니마저 호열자에 걸려 사망한후 11세 어린 나이로 만석
살림을 물려받지만 먼 친척 아저씨뻘인 조준구가 어린 서희의 후견인을 자처하며 재산을
빼앗는 것 만으로도 모자라 일본군과 결탁해 안전마저 위협하고.... 자신의 꼽추 아들
병수와 강제로 결혼시키려 하자 길상을 비롯 평사리 사람들과 함께 간도 용정으로 야반도주합니다.
윤씨부인이 만일을 대비해 몰래 남겨준 금괴를 자본으로 곡류, 재목 등의 투기사업을 벌여 크게 성공하며,
성공을 위해 공개적으로 친일 행각까지 서슴치 않아..... 아버지 친구인 이동진 등을 경악하게 합니다.
이상현을 연모했지만 이미 혼인했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하인 길상과 결혼하여 환국과 윤국
두 아들을 얻는데, 하지만 길상이 독립운동에 뜻을 둔 것과 길상과의 신분 격차로 인한 사회적 시선
때문에 갈등을 겪다가, 길상만 간도에 남고 서희는 두 아들을 데리고 거대한 부를 일구어 금의환향합니다.
평사리의 석이, 서울의 임역관등 여러 조력자들의 작업을 활용해 조준구가 평사리 땅문서,
집문서를 전부 자신에게 팔게끔 조종해 고향집을 수복하나, 목표를 이룬 직후 깊은
허탈감에 빠져서는 평사리로 돌아가지 않고 진주에 거처하며 폐인이 된 봉순이를 돌봅니다.
돌아오지 않은 길상을 위해 대외적으로는 친일파로 활동하면서 은밀하게 항일운동을 돕고, 길상이 체포
되어 옥살이를 하고 석방된 후에도 남편과 가족의 안전을 위해 애쓰는데, 5부에 이르러 징용
이나 징병을 피해 지리산으로 숨어든 젊은이들을 돕고.... 평사리 사람들의 정신적인 지주로 살아갑니다.
김길상은 절에서 자란 고아로 뛰어난 그림 솜씨를 보여 탱화를 그리는 승려, 즉 금어로
자랄 예정이었지만 우관 스님에 의해 소년 시절에 참판댁에 심부름꾼으로 보내져,
자신 보다 7살 어린 서희의 응석을 받아주며 놀이 상대 겸 보호자 노릇을 하게 됩니다.
준수한 용모와 뛰어난 머리로, 서희가 용정으로 이주한후 서희의 사업을 돕는데 서희를
향한 마음과 두고 온 봉순에 대한 마음으로 갈등하다가 회령에서 옥이네와
동거를 하는데 이것이 서희를 자극하는 도화선이 되어 결국 연모하던 서희와 결혼합니다.
하지만 독립운동에 대한 열망 및 아내와의 신분 차이에서 오는 심적 갈등 때문에, 서희가 두 아들을 데리고
귀국할때 간도에 남아 독립운동 조직에 합류했다가 계명회 사건에 연루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고 출소후 도솔암에 관음탱화를 조성해 감동을 주며 그후 일본의 예비검속으로 감옥에 갇힙니다.
토지는 연재 기간이 26년에 달할 정도로 길었던 탓에 여러번 바꾸었는데, 제1부는 1969년 부터 1972
년까지 <현대문학>에 연재되었고 제2부는 <문학사상> 에 1972년 부터 1975년까지 그리고
제3부는 1977년 부터 1979년까지 <한국문학> 에 연재했으며 동시에 <주부생활> 에 함께 실렸습니다.
1980년에는 집필지를 원주시 박경리문학공원으로 옮긴후, 자연과 인간의 공생적인 삶에 대해 고민
하며 4부 구상으로 들어갔으니 앞부분은 <마당> 과 <정경문화> 에 실렸고, 1987년 부터
<월간경향> 에 발표되었으며 제5부는 1992년 부터 1994년까지 <문화일보> 에 연재되었습니다.
토지의 첫 단행본 출간은 1973년 문학사상사(심성출판사) 에서 이루어졌으니 1부가 전 5권으로
출간되었고, 1978년까지 2부 5권과 3부 3권을 더 간행했으며 1976년에는 영문
출판사에서 전 10권이 간행되었으며 이후 삼성출판사에서 세번이나 모습을 바꿔 재출간됩니다.
지식인이 무엇을 다 창조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도자기를 만든 사람만 하더라도 지식인이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 문제는 어떤 미적 의식이에요. 이것은 신앙과도 통하는 거예요.
이런 창조적인 면에서 우리는 일본이나 다른 나라에 대해서 조금도 뒤떨어진다 할 수 없어요.
따라서, 우리도 자존심이라 할까, 자기에 대한 존엄성을 가져야 한다고 봐요. 존엄성이라는 것은 오만과는
달라요. 이것은 자기 스스로가 자신을 지키는 것으로 욕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가장
숭고한 것을 지키는 것이에요. 우리의 역사가 치욕스러운 역사가 아니라는 것도 이 존엄성과 관련이 있어요.
또, 한가지 주목할 일로 농부들의 문제가 있어요. 한국은 외국과 달라서 농(農)이란 것이 상당히
중시되었어요. 일본은 농이 상 (商) 의 다음이고, 러시아는 농노의 숫자로 재산을
따졌고 서구에서는 장원 제도하에서 농노가 있었으니 농부라는 것이 노예에 가까운 신분이었지요.
우리나라에서는 달랐어요. 물론 핍박을 받았지요. 가난하여 보리죽을 끓여 먹었지만, 사회적 신분으로 볼때는
상인 위였거든요. 유교가 농민들에게도 흘러갔던 것입니다. 제사라든지, 의식 구조라든지, 조상 숭배
라든지 모든 것이 농부들에게 흘러갔는데, 이것은 농부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식시키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릴때 보면 제일 창피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부모 기일에 물을 안 떠놓는 것이었어요. 물론, 형식에 흐른
것은 나쁘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높인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또 우리나라 농민들은 손님이 오면 옷을 갈아
입고 맞았으며, 제삿날에는 정장을 하였지요. 이러한 예의 범절은 우리 농민에게 미의식이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우리의 농부에게 이처럼 무엇인가 다른 점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저는 토지에서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용이
라든지 영팔이 같은 인물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부여했던 것입니다. 비록 농부지만 범접할 수 없는
자의식 이런 것을 그네들에게 부여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보리죽을 먹어도 인간으로서 비천한 짓을 못한다는...
한 작가가 40대에 쓰기 시작하여 60대 후반에 완성을 보게 된 이 작품은 문자 그대로 '필생의 역작'
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작품이다. 26년이라는 세월 동안 5부 16권의
대작을 완성한 작가의 집념은 우리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치열한 작가정신의 표현이다.
전권이 독자로 부터 큰 호응을 받은 것은 우리의 독서풍토에 새로운 기록을 세웠으며, 무엇보다도 집필기간
이나 작품의 길이에도 불구하고 끝없는 인물유형의 창조와 새로운 긴장의 유지는 우리 소설의 문학적
승리로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다. ― 김치수, '광복50년 한국을 바꾼 100인' 월간중앙 1995년 신년호 별책
토지야 말로 우리 문학에서 대표적으로 볼 수 있는 '총체소설' 로서 농민과 중인을 중심으로 양반
으로부터 노비에 이르기까지 사회 모든 계급을 망라한 우리 인구 전체의 삶의 모습을 재구성했다.
별의별 갖가지 인물들과 성격들을 재현하고 창조함으로써 인간사의 모든 것을 모아들여 또 하나의
거대한 실존적 세계를 만들어냈다는 것, 언어가 창조할 수 있는 삶의 세계의 실재를 파노라마
적으로 전시했다는 소설의 거대성을 나는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 김병익 '현대문학' 2008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