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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상향 불국토 부탄 2
(1997년 6월호)
김형근
내가 삼바라출판사에서 발행된 책 <BHUTAN : A Kingdom of the Eastern Himalayas>을 통해서 부탄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건축이었다. 사진속의 건축들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달리는 차 안에서 멀리 보이는 산밑에 모든 건물들은 지붕에 깃발이 꼿혀있고 사진에서 본 것 이상으로 멋있게 보였다. 가까이서 보는 부탄의 건물들의 벽은 한결같이 용, 태극, 짐승 등 여러 가지 모양의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는데 마치 한국 사찰의 단청 같은 느낌을 주었다. 팀푸 입구 가장 큰 도로 변과 도로 위 산에 집들이 여기 저기 있었는데 좀 위험하게 보이는 곳들도 여러군데 있었다. 차들이 빈번하게 다니는 큰 도로 바로 위에 비탈진 곳에 있는 집들은 길도 제대로 없는데 어린 아이들이 도로에서 집으로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놀고 있었다. 산을 깍아 도로를 넓히면서 지형이 변했는데 이에 따라 철거해야 하는 집들을 철거하지 않은 것 같았다.
우리가 부탄에 도착한 때는 4월 초순이었다. 추운 겨울이 지나 이제 막 봄이 시작되어 기후는 따스했고 부탄의 수도 팀푸 곳곳에는 개나리, 철쭉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꽃들이 아름답게 활짝 피어나고 있어 내가 자라나던 어린 시절의 한국의 시골길을 걷는 것 같았다.
팀푸 시내로 들어오니까 부탄의 건물 양식과는 다른 연립주택식의 건물도 들어오고 제법 도시다운 느낌을 주었다. 부탄 외무부에서 미리 정해 놓은 호텔에 갔는데 한쪽이 공사중이어서 아직 간판이 없었다. 2년전 평양을 방문했을 때 더운 물은 말할것도 없고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애를 먹은 경험이 있어 이 호텔에 물이 제대로 나오고 방은 춥지 않은지 걱정이 되었다. 호텔이라고는 하지만 로비가 번쩍거리는것도 아니고 미국 시골의 조그만 모텔 같은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방과 욕실은 맘에 들었다. 침대도 느슨하지 않고 딱딱한 상태가 좋았다 비용은 하룻밤에 $25(750 nultrum ? 부탄의 화폐단위)였다. 이곳 호텔이 다른 나라의 호텔과 다른 점은 텔레비전이 없다는 것이다. 부탄에는 라디오 방송국은 있으나 TV방송국이 없다. 약 8~9년 전에 TV방송국을 개국하였으나 왕이 이끄는 정부에서 볼 때 텔레비전방송은 젊은이들에게 나쁜 영향이 많다고 판단, 방송을 중단시켰으며 다시 개국할 계획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방침에도 불구하고 팀푸시내 곳곳에는 비데오테이프를 빌려주는 가게가 성업중이었는데 테이프는 주로 인도와 네팔 등지에서 온다고 하였다. 부탄을 다녀온 후 만난 미국의 가장 큰 불교출판사 「삼발라출판사」사장 버콜즈에 의하면 자동차가 100대 정도 밖에 없던 10여년 전에도 비데오가게는 많았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가 다음주면 부탄의 비데오 가게에 나온다 한다. 또 팀푸시내에는 극장이 하나 있으며 이 영화도 대개 인도나 네팔 영화를 상영한다고 한다.
공식적인 일정은 내일부터 시작되지만 우리는 시간을 아껴 단 한곳이라도 더 많은 곳을 보고 싶어 안내인을 설득하여 짐을 방에 놓자 마자 팀푸시 교외로 나갔다. 처음 방문한 곳은 사찰 겸 중등학교로 사용하는 심토카종(Dzong은 사찰이라는 뜻)이었다. 사찰에 들어서자 안내인은 스님들이 두르는 가사 같은 「캄녜」라고 부르는 크고 흰 무명천을 꺼내 어깨에 둘렀다. 이것은 사찰, 정부청사 등에 들어갈 때 남자들이 존경의 표시로 두르는 것이다. 또한 띠의 색깔로 관료들의 계급을 알수 있다. 우리가 학교에 도착하였을 때는 학교가 끝날 무렵이었다. 평야가 좁은 나라의 사찰이였기 때문에 넓은 잔디밭이나 공간이 없어 학생들은 밖에 있는 배구장에서 배구시합을 하기도 하고 일부는 활쏘기를 한다고 활을 들고 있기도 하였다. 지역사회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정문 앞에서 꽃씨를 뿌리며 흙일을 하고 있는 학생들도 보였다. 이 학교에는 교장선생님과 선생님 몇 명이 사원안에 사시고 스님들은 밖에 거주한다고 하였다. 학교안으로 들어가 보니 나무와 진흙으로 지어진 이 건물들은 오래 되어서 벽을 헐고 전반적으로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았다. 법당으로 들어가 참배를 하려고 하니 마침 그 시간에 라마들이 기도하는 중이라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일반 신도들은 보이지 않았는데 부탄인들은 부탄 달력으로 15일과 30일이 정기적으로 절에 가서 기도를 하는 날이라고 한다.
한국의 사찰은 대개 첫번째 관문인 일주문 다음으로 천왕문,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이문이 나온다. 일주문은 「동리산 태안사」, 「영취사 통도사」, 「선찰대본사 금정산 범어사」라고 사찰의 맨 앞에 써있다. 이 일주문을 통과하여 얼마쯤 가면 「천왕문」이 나온다. 이 문은 불법을 수호하는 외호신인 사천왕(四天王)을 모신 전각이다. 어린이들이나 불교신자가 아닌 사람들이 무섭다고 느끼는 곳이기도 하다. 사천왕상은 인도에서 시작한 것으로 한국, 중국, 일본 불교에는 말할 것도 없고 이곳 부탄에도 공통적으로 있다. 그러나 부탄의 사찰에서는 한국의 경우처럼
「천왕문」에 있지 않고 기둥의 한 부분에 새겨져 있거나 크기가 작아 잘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사찰의 문이 단계적으로 나오는 것은 불국토를 향하는 수행의 과정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사찰의 문은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요, 미혹과 무지의 불각(不覺)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며, 무상(無常)과 고통과 무아(無我)와 부정(不淨)의 인생을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삶으로 전환시키는 문이다.
그러나 부탄에서는 한국 사찰과 달리 문의 뚜렷한 구분이 없었다. 한국사찰과 확연히 다른점은 가는 곳마다 입구에 나무로 만든 큰「마니보주」가 동서남북으로 있는데 이 통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리면서 기도를 한다. 이 마니보주는 우리나라는 거의 없는데 전남 보성의 대원사 현장스님에 의하면 대천 용문사에 가면 윤장대가 있는데 이것과 구조와 의미가 같다고 한다. 또 절안에 들어가면 벽에 빙 돌아가면서 조그만 마니보주가 있다. 영어로는 Prayer Wheel이라고 하는 이 마니보주는 사찰 뿐만 아니라 부탄의 마을 입구 등 부탄 곳곳에 있었다. 이 마니보주를 한번 돌릴 때 마다 다라니를 한번 독송한 공덕이 있다고 한다. 현장스님에 의하면 이 마니보주는 태양계를 중심으로 은하계가 돌듯이 우주의 운행질서를 상징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이곳을 나와 다시 팀푸로 들어오는 길에 잠깐 차에서 내려 지나가는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도 하고 기념촬영도 했는데 그중에는 군인도 만났다. 이 군인들은 대개는 무기는 소지하지 않고 고장난 차를 고친다던가 트럭을 이용하여(경찰이나 군인차는 픽업트럭이다.)주민들의 짐을 나른다던가 주로 대민 봉사활동을 많이 한다고 하였다. 이들이 입는 군복 중 미군과 한국의 해병대 병사들이 입는 옷과 똑 같은 옷들도 눈에 띄었다.
마지막 행선지로 팀푸에 있는 Third King’s Memorial Temple을 찾았다. 버콜즈씨에 의하면 이 사찰은 돌아가신 버콜즈씨 스승인 티벳스님이 건립하였다고 한다. 이사원의 탑은 티벳 탑과 똑 같은 양식이었는데 팀푸시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한눈에 보였다. 그래서 이 탑이 있는 사원이라기에 스님들도 많고 규모가 클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가서 보니 스님들은 없고 대웅전에 들어가 부처님께 참배도 할 수 없었다. 한국의 사찰과 다른점은 조그만 건물에는 수 많은 크고 작은 초들을 놓았다. 이 초들은 야크의 기름(안내인은 버터로 만들었다고 함)으로 만들었는데 이 중 몇 군데는 불을 켜 놓기도 했다. 이 초를 모아 놓은 건물은 부탄 사원 곳곳에 있었다. 여행자들은 사원을 방문하는 동안 자기가 여행하는 날 수 만큼의 기름 값을 사원에 시주한다고 한다. 즉 3일 여행하면 3일어치의 기름값을 5일 여행하면 5일어치의 기름값을 시주하면 된다.
부탄을 방문하면서 느낀 것은 이 나라가 불교 왕국답게 수 많은 국민들이 사원 주위뿐만 아니라 걸어 다니면서도 앉아서도 부지런히 염주와 휴대용 Prayer Wheel을 돌리면서 열심히 기도한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무슨 마음으로 기도를 하는가 하고 물으니 「내 영혼을 위하여」 기도를 한다고 말했다.
이 Third King’s Memorial Temple도 건물들은 낡고 보수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정원수들은 깨끗하게 손질돼 있었다. 사원 안의 한 건물에는 짐승의 해골이 걸려있어서 그 까닭을 물어보니 이것은 야크(Yak, 소 비슷하게 생긴 동물)의 해골인데 이것을 볼 때 마다 사람들이 죽은 야크와 그 야크를 죽인 자를 위해서 기도해 주기 때문에 그 둘 다에게 이익이 된다고 하였다.
이 Third King’s Memorial Temple에서도 노보살님들이 큰 통을 돌리면서 아주 열심히 기도하고 계셨고 관세음보살님 상 주위를 우리나라의 대빗자루와 똑같은 빗자루로 청소하면서 열심히 기도를 하였다. 4월 10일에는 아침에는 일찍 승가학교를 방문하였다. 시간이 등교시간이어서 학교 가는 초등학교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는데 이들은 한결같이 등에 멜빵가방(Back Pack)을 메고 똑 같은 모양의 민속의상 교복을 입고 있었다.
승가학교는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정문에는 학교 현판도 없었다. 이 학교 이름은 “데첸포르프랑”인데 사원으로는 380년 된 것이었으나 이 건물이 학교로 사용된지는 26년째라 한다. 학생수는 350명이고 선생님은 19명이고 10년 과정으로 되어있었는데 수업료는 국가에서 후원하는 학교였다. 이곳의 재학생은 전부 남학생인데 여학생을 위한 승가 학교는 따로 있다고 한다.
교장선생님 캔리지알첸은 1956년 생으로 나와는 동갑이었는데 교장이 된지는 5년이 되었다고 했다. 우리가 도착하였을 때는 전 학생들이 한 장소에 모여서 암송을 하고 있었다. 하루에 몇 시간씩 암송을 한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몇 시간씩 암송을 하니 웬만한 경전을 모두 외울 것 같았다.
남방불교에서 암송으로 경전을 전해 내려온다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직접 그 교육의 현장을 목격을 한 셈이다. 이 학교의 학교생활을 보면 5시에 기상하여 6시반까지 기도를 하고 이때 초와 차와 정화수를 올린다.(이 중 책임자 스님들은 3시 30분에 일어난다. )음식은 올리지 않는다. 6시부터 8시까지는 경전을 암송한다. 그리고 아침 공양을 한다. 9시부터 12시 까지는 각자의 반에 가서 공부를 한다. 12시부터 1시 30분까지는 점심식사와 휴식을 취한다. 1시 30분부터 5시까지는 자율학습 및 그날 배운 것을 복습을 한다. 이때 모든 학생들은 자기가 배운 것을 선생님을 찾아가 공부하고 복습한 것을 설명을 하며 점검을 받는다. 5시에는 저녁 공양, 6시부터 8시까지는 모두 함께 기도, 8시부터 9시까지는 경전암송을 하고 9시에는 잠자리에 들어간다.
이 학교에서는 연중행사로 보름동안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 기도를 한다.
부탄의 대부분 사찰은 캬규파에 속하는데 이 학교도 캬규파에 속한다고 햇다. 이곳에서는 113개의 경전을 공부하는데 책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고 암송으로 하며 이외에 수학, 역사, 음악 등의 과목을 배운다.
운영상의 어려움은 크게는 없으나 나이가 어린 학생들의 경우에는 선생님들이 부모의 역할을 하여야 하는 것 등이 때로는 힘들다고 한다. 이 학교는 10년이면 모든 과정이 끝나는데 이 과정이 끝나면 더 큰 승원에 가서 3년 동안 더 공부를 하거나 또는 「 탕구 」같은 기도중심 사원에 가서 기도를 하거나 아니면 승가대학에 진학을 한다. 도중 하차를 하면 일반 절에 보내져 스님들의 시자가 되거나 승무, 단청들의 일을 배우게 된다. 이 학교에 외국인 학생은 없으며 교장스님은 한국인으로는 우리를 처음 만났다고 했다. 교장스님의 인도로 법당에 들어갔는데 부탄 사원의 법당은 1층에만 있는 경우는 없고 2층, 3층으로 올라가면서 각 층마다 잇는데 층층마다 가운데 불단을 중심으로 좌, 우와 앞쪽에도 조그만 불단들이 있었으며 각 층마다 있는데 층층마다 가운데 불단을 중심으로 좌, 우와 앞쪽에도 조그만 불단들이 있었으며 각 불단마다 삼존불을 모신데도 있었으나 어떤 불단들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보현보살, 문수보살 외에도 많은 수의 보살과 더불어 이들이 라마라 부르는 수많은 라마상들이 불단 위가 넘쳐 나도록 봉안되어 있었다.
2층에 법당에 들어갔을 때 이들이 푸자라고 부르는 죽은 사람의 위패를 모셔놓은 조그만 재단이 있어서 몇 일간 기도를 하느냐 물으니 49일간 매일 세번의 축원을 한다고 했다. 법당을 나와 교장스님의 집무실로 가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대화도중에 시자스님들이 볶은 옥수수와 쌀 그리고 차를 정성스럽게 대접해 주었다. 나는 이 교장스님께 <보림>향 한통과 서울 <구룡사>에서 제작한 달력 등을 선물로 주었는데 아주 좋아하면서 다음에 부탄에 오면 꼭 다시 방문해달라고 했다. 이 학교에서 나와 우리는 향 만드는 공장으로 갔다. 팀푸시 변두리에 있는 이 향공장은 20년 전 현재의 주인이 공장을 설립하였는데 우리가 방문하였을 때는 공장 주인 부부와 18살 된 딸, 5명의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팀푸시에는 이 공장외에도 3개의 공장이 있다고 한다. 나는 난생 처음 향공장을 보게 되었고 금년 1월부터 한국에서 만든 <보림>, <취운>, <정관> 등을 미주에 보급하고 있기 때문에 대단한 흥미를 가지고 갔다. 이곳에서는 Sandalwood에다 Cardimum Clove, Dye Nut, Cinamon을 혼합하여 향을 만든다고 하였다. 향공장 안으로 들어가 향을 만드는 과정을 보니 간단한 기계설비를 갖추고 대부분 두 손으로 작업을 하였다. 나의 어린시절 우리나라 떡 방앗간이 연상되었다. 이 공장에서 만드는 향은 한국 향이나 일본향처럼 가느다란 향이 아니고 중국 향 같이 굵은 향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