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인 12일 먼저 큰스님 연탑을 참배하고 돌아와서 삼회사에서 우리 나름대로 49재를 모셨다. 49재에는 영정을 모신 곳에다 음식을 차릴 수도 없어 아쉬웠는데 마침 아킴에게 미리 부탁한 생화가 온 방을 다 덮고 있었다. 하얀색과 노란색 백합으로 덮인 연좌는 그래도 우리가 가슴에 안은 큰스님에 대한 정성이 표시되는 것 같아 기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삼회사 인창스님과 염불 스님들이 정성껏 해주시는 염불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큰스님의 보살행이 계속 되시길 빌었다.
13일 고산 용천사를 들리고 보전에서 광화사를 참배했다. 저녁에 보전에서 당시 통역을 맡은 홍거사가 주선하여 큰스님의 조카인 허국은 씨를 만났다.
“관정 스님께서 입적하시기 전 사리와 가사를 한국의 굉련(등인) 스님과 대만의 굉재 스님에게 전하라‘는 유언을 하셨습니다.”
허국은 씨는 관정 스님 사리 7과를 가지고 있는데 등인 스님에게 5과를 주고, 나머지 2과는 대만의 제자에게 전해주겠다고 했다. 큰스님의 가사를 가지고 왔는데 등인 스님이 보시고 한국에 늘 입고 오시던 가사가 아니었다며 아쉬워 하셨다. 이날 저녁은 샤먼으로 가서 잤다. 등원 스님은 통역한 홍거사에게 샤먼은 대만의 금문도가 바라다 보이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기 때문에 호텔 방을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잡아달라고 했는데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았다고 섭섭해 했지만 등인 스님과 우리는 큰스님 생각뿐이지 다른 것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9월 14일 오전에 샤먼에서 유명한 관음도량인 남보타사를 가서 참배하고 스님들의 불법행사인 토론회를 참관하였다. 비록 짧은 3박 4일 여행이지만 큰스님에게 해야 할 도리를 하였다는 점에서 마음이 뿌듯했다.
3) 큰스님 삼년상에 참석(2010년 6월 15일)
“큰스님 원적하신지 3년 된다. 중국은 어쩐지 모르지만 우리식으로 하면 3년 마지막 탈상이 된다. 그래서 중국에 가려고 하는데 시간이 되면 같이 가자.”
등인 스님의 말씀에 이번에도 나는 두 말 없이 따라 나섰다. 3년 전에 처음 갔을 때보다는 두 번째라 그런지 샤먼 공항이 그렇게 낯설지 않았다. 그런데다 이번에는 불상을 조각하는 회사에서 모든 일정을 빈틈없이 지원해 주어 편안했다. 등원 스님이 스승께서 운영하시는 샌프란시스코 여래사 관세음보살을 이 회사에 주문했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바이어 대접 차원에서 우리의 현지 일정을 모두 맡아서 해 준 것이다. 우리는 우선 천주시 동쪽 혜안현에 있는 화봉성 석각조각 유한공사에 가서 11면 관음상을 보고 주문 일을 마쳤다. 사장이 직접 나서서 우리를 안내하고 차를 선물하기도 하였다. 나는 돌로 만든 부엉이 조각을 하나 선물을 받았다. 회사에서는 중국 동포인 김춘월이라는 한국 담당 직원으로 하여금 우리를 안내하게 해주었다.
선유현에 도착하여 회사에서 잡은 일급호텔에 자리를 잡고 아킴에게 연락하였다. 그날 저녁은 아킴이 작년에 한국 가서 서교수님으로부터 너무 많은 대접을 받았다며 대신 우리를 채식식당으로 초청하여 크게 한턱을 냈다. 너무 부담이 되었다.
다음날 큰스님의 부도에 가서 사가지고 간 목부용을 심었다. 가까이 사는 마을 사람들이 와서 함께 심어주어 어렵지 않게 식수를 마칠 수 있었다. 등인 스님이 마치 상주가 3년상을 마친 것 같다고 하면서 하염없이 우시는 것을 보고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 이렇게 깊은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침 비가 좀 내려주어 나무 심는 날로서는 아주 알맞은 날이었다. 나는 등인 스님을 동행하면서 크게 도움을 줄 능력이 없었지만 등인 스님과 늘 함께하는 것으로 나의 성의를 다했다. 중요한 일정이나 모든 것은 등원 스님이 철저하고 완벽하게 다 하시기 때문에 그저 믿고 따라다니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서교수님이 새로 만든 비문 내용을 알고 싶다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고 해서 내 사진기로 몇 장을 찍었는데 빗물에 반사가 되어 제대로 찍기가 어려웠다.
이것으로 우리가 이곳에 온 1차적 목적은 다 마쳤다. 우리는 다시 샤먼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천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유명한 서호가 있는 항주로 날아갔다. 이곳에는 등인 스님의 조카가 살고 있어 호텔 예약을 비롯해서 모든 안내를 다 해 주어 편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다음날 조카의 안내로 서호를 걸어서 돌아보고 유명한 영은사를 들렀다. 영은사 참배를 마치고 등원 스님이 가보고 싶어 하는 정자사를 찾아가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절 대웅전 편액 위에 구평등상이란 글귀가 있는데 이 내용이 바로 등원 스님이 어릴 때 보았던 경계이기 때문에 꼭 가보고 싶었다고 한다. 이날 저녁은 조카가 사는 가흥에서 잤는데 내일 목적지인 상해 가는 길 중간지점에 있어 편리 했다. 복건성에서는 회사에서 다 해주어 돈을 바꾸지 않았고, 조금 바꾼 돈은 큰스님 부도에서 도와준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느라고 다 써버렸기 때문에 중국 돈이 없어 하루 종일 조카 신세를 졌는데 가흥에서 돈을 바꾸어 유명한 중의 마사지를 받는 등 저녁을 편안히 쉬었다.
18일 상해에 도착하니 등원 스님이 영취사 신도가 마중 나와 옥불사를 안내했다. 옥불사는 두 스님도 그렇지만 나에게 그 기운이 너무 좋았다. 특히 등인 스님은 옥불의 상호가 너무 좋다며 좋아하셨다. 점심 때 평양 옥류관에 가서 식사 대접을 받았다. 나는 처음 가본 북한 식당이라 처음에는 좀 어색한 감이 있었지만 역시 같은 말을 쓰는 민족이라 쉽게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고, 음식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점심 먹고 아직 비행기 시간이 남아 있었는데, 등인 스님이 옥불사에 다시 가보고 싶다고 해서 우리는 다시 옥불사로 달려갔다. 이미 외부인 입장 시간이 끝났으나 사정해서 간신히 들어가 다시 한 번 부처님을 뵐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은 정말 뜻 깊고도 즐거웠다. 관정 스님에게 감사드리고, 등인 스님에게 감사드리고, 등원 스님에게 감사드리고, 그리고 현지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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