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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년 10월 20일 폴 발레리, 말라르메 등의 후기 상징象徵주의 작가들과 더불어 프랑스 현대시 구축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받는 랭보가 태어났다. 랭보는 겨우 37세이던 1891년 11월 10일 세상을 떠났다. "천재는 요절한다"는 속설을 실감나게 하는 향년이다.
상징주의는 논리적이고 지적인 내용보다 언어의 뉘앙스nuance(주로 말투나 표현의 차이에 의해 달라지는 섬세한 느낌이나 분위기)를 중시하는 19세기의 문학 경향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상징은 매개인 사물과 그 매개가 암시하는 의미의 이중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겉으로 비유와 유사한 구조이나 무한하고 다양한 내적 아날로지analogie를 갖는 점에서 다르다."라고 설명한다.
상징은 무한하고 다양한 내적 유추analogie를 갖는다는 점에서 비유와 다르다고 했으니, 비유는 내적 유추가 다양하지 않다는 뜻이다. 과연 박목월의 "강나루 건너서 / 밀밭길을 /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 또는 김광균의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같은 비유적 표현은 의미 파악이 쉽다.
나그네는 구름에 달 가듯이 (정처없이) 간다. 낙엽은 망명정부의 지폐처럼 (쓸모없는) 무용지물이다. 상징적 표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예를 들어 상징인 '태극기'만 보아도 그 의미는 각양각색이다. 랭보가 불과 19세이던 1873년에 출간한 산문시 <지옥에서 보낸 한철>은 상징주의 작품답게 온통 상징으로 가득차 있다. 한 부분만 읽어본다.
"어느날 저녁 나는 미美를 내 무릎에 앉혔다. 그러고 보니 지독한 치痴였다. 그래서 욕을 퍼부어 주었다. 나는 정의에 항거하여 무장을 단단히 했다. 나는 도망했다. 오 마녀여, 오 불행이여, 오 증오여, 내 보물을 나는 너희들에게 의탁했다."
무슨 뜻인지 해석하기 어렵다. 무한하고 다양한 내적 유추가 어떤 것인지 랭보는 실감나게 보여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왜 상징주의를 "상징적 방법을 통해 형이상적 또는 신비적 내용을 암시적으로 표현하려는 문예사조"라고 설명하는지 그 까닭이 가늠된다.
랭보는 <지옥에서 보낸 한 철>에서 "인생이란 우리 모두가 견뎌야 하는 희극"이라고 했다. 그는 "나는 내가 지옥에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고도 썼다. 상징주의 작가는 언어의 뉘앙스를 중시한다고 했는데, 과연 랭보 특유의 말투(표현)에서 비롯된 남다른 느낌과 분위기가 물씬 풍겨난다.
인용한 표현만 보면 랭보는 자살했을 듯 여겨지지만 그렇지는 않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저버리는 대신 시를 버렸다. 랭보는 21세 이후 시 창작을 그만두고 아프리카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무역에 종사하는 상인이 되었다.
랭보가 스물하나에 버린 시를 누군가는 정년 퇴직 후에 비로소 생전 처음으로 써본다. 그렇게 사람은 서로 다르다.
이 글은 현진건학교가 펴내는 월간 '빼앗긴 고향'에 수록하기 위해 쓴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투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