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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먼저 때렸는데요
일흔둘 정씨 어르신네는 빈 박스나 스티로폼, 신문지를 주워서 하루 만오천 원쯤 번다. 2학년 집 나간 아이 정덕배네 조손가정 할아버지다. 그가 점심을 먹기 위해 주공아파트 정문으로 나가는 중이었다. 햇살 아래 벤치에 자리 잡아 집에서 싸온 도시락 뚜껑을 열고 공복을 채울 참이다. 보행기 밀차를 돌리는데 경비원 박씨가 발목을 잡았다.
- 아저씨, 내일부터 이쪽으로 다니지 마시요.
- ……왜?
밀차가 정지되며 어리둥절하던 정씨의 눈꼬리가 순간 가늘게 떨린다. 불안하다. 밀차에서 떨어진 스티로폼 박스가 바람에 밀려 놀이터 난간에 딱 부딪쳤기 때문이다. 오랜 응어리를 한꺼번에 터치려는 듯 정씨의 눈에 쌍심지 불이 붙는다.
- 미국놈도 지나가고 일본놈 소련놈 죄다 지나가는 이 동네 아파트 출입구를 왜 한국 사람인 나만 못 지나가나?
- 사람들이 의심 한다니까요.
잠재적 범죄자처럼 보인다는 그 금기의 언어를 경비원 박씨가 관성처럼 내뱉어 버린 게 결정타이다. 분기탱천한 정씨가 되로 받은 상처를 말(斗)로 되돌려 주려한다.
- 뭘 의심해. 새끼야. 너 같은 놈은 관리소에 얘기해서 내일 당장 짤라 버려야겠다.
순식간에 두 몸뚱이가 엉겨 붙었다. 그리고 잠시 아수라장 싸움판 정리 후 정씨는 성한 종이를 찾느라 쓰레기 더미 앞에 웅크려 있었고 나는 멍든 상처를 닦기 위해 수돗가에 쪼그려 있다. 그랬다. 두 비탈길 인생이 순식간에 엉켜 붙은 찰나 내가 물 만난 고기로 변신한 것이다. 장년의 평교사, 아직은 근력이 남아있다며 맹활약으로 고래싸움을 막아내다가 그들끼리 휘두른 주먹질에 아귀통 두어 방 대신 먹어준 것이다. 예전부터 그렇게 나는 몸싸움 참견에 민감했었다. 그건 소년 시절 조무래기 콤플렉스에서부터 비롯되었던 것 같다.
70년 여름 점심 시간.
동급생 규율부들이 우르르 명찰 검사를 나왔다. 일 년에 두어 차례 교실마다 비상을 걸며 완장 행세를 벌이던 관행이다. 미리 정보를 얻은 나는 (번호 3번 136센티) 일단 태풍을 피하겠다는 심사로 노란 색종이 바탕에 이름을 쓴 다음 밥알을 으깨어 교복 윗도리에 붙였다. 조무래기들은 불안하게 웅숭거렸고 덩치 큰 규율부들은 선배들 흉내를 내며 동급생 복장을 터치하는 중이다.
찬홍이(172센티)는 덩치와 콧수염과 여드름 종합판으로 선생님들까지 함부로 다루지 못하던 중량급 아이다. 진짜다. 선생님들은 때릴 때에도 분명히 큰 애와 작은 애를 차별했다. 조무래기들에겐 싸대기부터 시작하던 선생님들도 유독 찬홍이에게는 ‘네 이놈’하고 눈만 부릅뜨다가 짐짓 헛기침으로 넘어가주곤 했다. 그 찬홍이가.
- 이게 명찰이냐? 새봉아.
머리를 툭 건드리는 것이다. 얼핏 고개 들으니 찬홍이 역시 노란 색종이 밥풀떼기 명찰이다. 참으려 했다. 문제는 찬홍이가 옆 자리 옆자리 상국이의 목을 흔들며 쪼인트를 날리는 걸 못 견딘 점이다. 강도는 약했지만 단추가 떨어졌다는 이유로 파랗게 질린 상국이를 보는 순간 울툭배기가 터졌다.
- 너나 잘 하세요. 시헐.
찬홍이의 명찰을 가리켰다. ‘이건 뭐야’ 하는 거구의 눈빛에서 쏘아대는 표창을 반사적으로 되돌려 주었다.
- 쬐끄만 놈과 같아? 조진스키.
덩빠리 규율부들이 우르르 몰려와 ‘어쭈구리’ 표정으로 병풍처럼 둘러싼다. 다른 놈들은 찍소리없이 잘 견뎌주는데 하필 너만 김밥 옆구리 터치냐는 황당함이다. 이런 때는 먼저 쳐야 한다. 선방을 날린 내 몸이 패대기 당했고 몰매로 정리되었다. 그랬다. 중딩들의 정글에서는 동급생끼리도 결코 대등하지 않았다. 그 후 날마다 자취방 책상에서 외롭게 싸움 궁리만 했다. 더 이상 밀리면 끝장이므로 벽돌이나 나무판자에 주먹을 문지르는 습관이 생겼다. 주먹 마디에 굳은살이 박이게 하며 싸울 궁리에 몰입하면 맞장의 스크린이 좌르르 펼쳐진다.
‘교탁에 발을 받쳐 지렛대 원리로 날아 차야겠다.’
‘책상 위에 올라서서 선방을 쳐야겠다. 제대로만 걸리면 절반은 이긴다.’
상상력은 결의를 단단하게 심어준다. 시간이 지날수록 매운 고추가 되었다는 자신감이 붙기도 했다. (나중 얘기지만 삼십년 후 동창회 뒤풀이 술상에서 상국이가 찬홍이에게 시비를 걸었다. ‘그때 왜 날 때렸니’ 다그치자 찬홍이는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지금은 두 놈의 키가 똑같이 172센티다.)
그랬다. 핸드폰과 컴퓨터, 그 모든 전자제품이 없던 우리들은 수시로 어깨가 근질근질했다. 첫눈이 한겨울처럼 내리던 날 담벼락 너머 북도학교와 패싸움도 했다. (종로의 그 학교는 담벼락 양쪽에 각각 다른 학교가 붙어 있었다.) 맨 처음 담벼락 너머로 눈뭉치 몇 개 던질 땐 순전히 장난일 뿐이었다. 곧바로 담벼락 반대쪽에서 눈덩이 보답이 날아오면서 판이 확장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 모여라. 북도학교와 전쟁이다.
조무래기 덩빠리 따질 것없이 순식간에 수십 명이 모여 담벼락 너머로 눈폭탄을 쑤셔넣었다. 어느새 북도학교에서도 칠팔 십 여명이 모여들어 일전불사 결의를 세우는 중이었다. 찬홍이는 신바람이 나서 담벼락 위 모서리에 덮인 눈사태를 삽날로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헛발을 딛고 ‘악’ 소리를 내며 아래로 떨어졌다. 하필 그때 북도학교 교복들이 몽둥이를 들고 우르르 담을 넘었다. 조개탄 난로 부삽이건 봉걸레 자루건 닥치는 대로 담을 넘자 성을 사수하던 우리 수비대들이 건물 안으로 우르르 도망쳤다. 선두 그룹이 전열을 놓치고 등을 돌리자 얼떨결에 오합지졸이 되어버린 것이다. 찬홍이를 끌고 나오려던 나는 발목이 접혀 쓰러졌고 적군 중 누군가가 낙오병의 등허리에 널빤지를 올려놓았다. 그렇게 패싸움 에너지를 먹으며 무럭무럭 사춘기를 보냈다.
밤꽃 피는 유월.
질곡의 시국, 수십 성상이 쏜살처럼 흐르고 장년의 평교사로 진입하면서 기가 빠지기 시작했고 아이들 다루기도 녹록치 않은 세태를 느낄 즈음이다. 나는 세 번째 줄 중딩 복길이와 기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앞자리 민구의 어깨를 연신 볼펜 찌르기 시늉을 하는 게 눈에 거슬린 것이다. 이런 행태가 여러 번째다.
- 나와.
매섭게 소리쳤으나 복길이는 꿈쩍도 안한다. 초여름 교실로 시베리아 찬바람이 쌩쌩 몰아친다. 뚜껑이 열리기 직전이다.
- 나와.
하마터면 ‘싸가지 없는’이 튀어나올 뻔했다. 나는 흘린 뻔한 욕설을 감추기 위해 더 심각한 표정을 보여주었지만 복길이는 여전히 석고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이제 선생과 제자의 대결이다. 둘만 남고 이 세상 모든 물상이 침잠해버렸다. 제자와의 기싸움, 그 엎질러진 물을 감추기 위해서는 다시 소리친다.
- 나와.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다. 다가가기 싫다. 제자들에게 봉변당하는 스승들의 인터넷 사연 때문은 절대로 아니다. 대구의 여선생은 덩치 큰 제자에게 데굴데굴 뒹굴며 얻어맞았단다. 교실의 구경꾼들에게 ‘바깥에 나가는 놈은 죽엇’ 하며 제압하니 옴짝달싹 못했다나 어쨌다나.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아직 힘이 넘친다. 그 잔혹사를 떠올리며 ‘욱’ 선방을 날리려고 손을 번쩍 올리는 순간 십자가가 번쩍 떠오르는 바람에 재빨리 팔을 내렸다. (나는 크리스찬이 아닌데 왜 십자가가 가로막았는지 이유를 모른다.)
- 왜 부를 때 나오지 않았니?
그리고 한 시간 뒤 교무실에서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묵묵부답이다. 무장해제된 아이는 오로지 침묵으로 버틴다.
- 너를 나오라고 할 때는 해를 끼치려는 게 아니다.
아이를 보내고 눈시울을 꿈먹대는 이 순간에도 세월이 흐르는 중이다. 이제 초로의 문턱에 서서 노여움이 짙어진 대신 눈이 여려졌다. 그런데.
그해 여름.
한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 갑작스런 사고로 망자가 된 제자 소식에 교무실은 무너졌고 우리들은 여름 방학 막바지를 아프게 반납했다. 스승의 책임은 첩첩산중 끝이 없었다. 가족들의 절망을 지켜보며 스승들은 검은 리본을 단 채 2박3일 내내 죄인이 되어 장례식장에 머물렀다. 여선생님들도 무수리처럼 헌신적으로 몸 심부름을 뛰었지만 어떤 지성을 드려도 엎질러진 사태를 해결할 길이 없었다. 곧바로 슬픔을 넘어 행정적 복잡함이 그물처럼 덧씌워지기도 했다.
그때 망자의 친척쯤 되는 이십 대 젊은이가 울멍울멍 상가를 휘젓다가 아버지 또래 조문객 선생님들의 뺨에 손바닥을 날리기 시작했다. ‘근조’라는 검은 리본을 찬 조문객들은 무조건 망자의 스승님이므로 곧바로 표적이 되는 것이다. 애통해하던 네 명의 선생님은 벌겋게 달아오른 볼만 비빌 뿐 아무런 대응을 할 수 없었다. 맨 처음 장례식장을 지켰던 내가 봉변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워낙 생김새가 선생 같지 않아서였고 또 가슴에 리본을 달지 않아서였다. ‘멀쩡한 홍두깨비’를 먹고도 제자를 하늘로 편안이 보내기 위해 옷깃만 여미는 스승의 모습은 참담하다. 나는 부글부글 끓이며 응급실 TV에 눈길을 주었다.
2009년 여름
쌍용차 철망을 사이에 두고 두 집단이 대치중인 두 집단이 브라운관을 채우고 있었다. 한쪽은 해고노동자들이 점거한 공장 현장이고 다른 한쪽은 잘리지 않은 어제의 한솥밥 동지들이다. ‘살아남은 목’들이 ‘잘린 목’들에게 ‘나가 달라’ 시위하며 진입 시도 하려는 풍경이 등장했던 것이다.
‘정상 가동’ ‘정상 가동’
구호를 외치는 ‘남겨진 노동자’의 팔뚝에 해고노동자의 아내가 혼신으로 매달린다.
‘제발 멈춰주세요. 저 안에 남편이 있어요.’
회사측 노동자 대부분이 카메라를 피해 고개를 숙이는데 유독 근육질 사내 하나는 해고 부녀자의 눈물을 외면한 채 터미네이터처럼 무표정하게 구호를 외친다. ‘진짜 노동자인가’ 하는 의구심으로 오래도록 갸우뚱했다.
해고노동자들의 스크럼은 한동안 견고하게 풀어지지 않았었다. 결국 마지막으로 진압 경찰들이 돌진하면서 바닥 식량으로 버티던 성안의 사수대가 무너진다. 지붕 위에서 한 집안의 아버지들이 쇠파이프에 맞다가 넘어지고 넘어진 채 맞는다. 카메라가 이동하면서 노동자들의 화장실 모습을 잠깐 비춰준다. 삐뚤빼뚤 낙서투성이가 현장을 대변한다.
‘돼지 갈비가 먹고 싶다.’
‘가족들 고생시켜서 미안하다.’
70여일의 대장정 끝에 상처투성이의 대타협을 보았지만 결국 해고노동자들은 어마어마한
물질적 배상금을 떠안아야 한다. 아무도 공장의 생산라인을 훼손시키지 않았지만
정상가동으로 움직였어야 할 생산라인이 멈췄다는 이유다. 보수 언론들은 ‘이때다’ 하며
본색을 드러내며 송장에 말뚝 박는다. 전교조 교사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하이에나처럼
물어뜯던 찌라시 문장들이다.
나는 장례식장을 나와 콘크리트 담벼락 사이로 핀 달개비꽃을 본다. 슬쩍 밟기만 해도
망가지는 꽃들이 여름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흔들리며 일어서는 꽃대궁을 보며 허망함과
만감을 교차시킨다. 다시 망자가 된 제자의 문상객이 되어 TV 앞에 서성인다.
이번에는 권투 장면 채널이다. 신인왕전 후보 밴텀급 16강전은 어설픈 아마추어끼리의 대결이었다. 38세 경비소 직원은 3전3패였고 29세의 자장면 배달부는 6전1승5패의 관록으로 링에 오르는 것이다. 이기는 사람은 4전 1승 3패나 7전 2승 5패를 가져가는 것이고 지는 사람은 4전4패나 7전1승6패의 밑바닥 기록이 되는 것이다. 종이 울렸다. 두 무명 복서가 벼랑 끝에 서서 사력을 다해 주먹을 휘둘렀다. 38세는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이며 29세는 어깨가 넓고 작달막해서 장다리와 꺼꾸리의 대결이 되었다. 둔탁한 펀치가 작렬하면서 코피가 터지고 또 그로기 상태로 로프에 기대기도 하면서 그네들의 경기가 판정으로 끝이 났다.
결과는 4전1승3패와 7전1승6패의 관록을 만들어주었다. ‘버스 병원 기술공’이 ‘자장면 배달의 기수’를 이기고 ‘중년의 첫 승리’ 포효를 지르자 좁은 얼굴에 붙었던 죽은깨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경기 후 서로의 맨살을 뜨겁게 끌어안는 상처투성이들은 영락없는 민초들이다.
마지막으로 머쓱한 기억 한 토막.
ㅌ중학교 1학년 3반에는 두 명의 키다리 소년이 있었다. 석구는 정의파였고 경섭이는 즉흥파 스타일이었는데 나는 특히 두 놈과 몸싸움 놀이를 즐겼었다. 첫 인상으로 바싹 겁먹었던 경섭이가 ‘에- 속았네’ 하며 조금씩 개기기 시작할 즈음이다. 복도에서 슬쩍 밀어붙이면 정의파 석구는 아픈 척 엄살을 떨어서 선생님을 만족시켜주었는데 경섭이는 뻣뻣하게 버티거나 오히려 나를 넘기려고 맞붙기도 했던 것 같다. 어쨌든 석구는 경섭이가 나에게 버릇없이 노는 게 못마땅해서 오래도록 벼르던 참이었나 보다.
그날은 가출한 정배네 할아버지가 수업 직전부터 기다리는 바람에 끝종이 울리기 직전 바삐 뒷문으로 나가려는 중이었다. 경섭이가.
- 팔씨름 해요.
허리띠를 잡는 것이다. 나는 바쁜 걸음으로 그냥 머리를 ‘툭’ 쥐어박고 급히 뛰쳐나왔을 뿐이다. 누군가가 내 등을 툭 쳤다는 감각을 막연하게 느끼기도 했지만 마음이 급해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왔다. 막상 교무실에 왔을 때 정배네 할아버지는 다음에 다시 찾아오겠다는 전갈만 남긴 채 그대로 떠나버려서 망연자실 교문 쪽만 바라보았다. 초겨울 하늘이 새파랗게 걸려 있어서 휑한 가슴에 담아보려는 중이다.
그때 키다리 중딩 두 명이 처녀 교사 김 선생한테 끌려 교무실로 내려온 것이다. 석구는 이마가 부었고 경섭이는 광대뼈가 시퍼렇게 멍들었다. 김 선생이 찢겨진 옷깃을 여며주며 카랑카랑소리 지른다.
- 왜 싸웠어.
- 얘가 먼저 때렸어요.
경섭이가 억울하다는 듯이 퍼렇게 멍든 광대뼈를 비비지만 얼굴엔 민망함이 가득하다.
- 너는 왜 경섭이를 때렸니? 이유도 없이.
- 얘가 선생님 등짝을 때라는데 참으란 말인가요? 강병철 선생님요.
갑자기 웬 내 이름, 하며 어리둥절 고개를 들자 교무실의 선생님들도 ‘뭐여’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석구의 어깨 너머로 이파리 죄다 떨어진 은행나무 맨살이 눈에 들어왔다.
- 네가 강병철 선생님을 먼저 때렸다구?
- 강병철 선생님이 먼저 나를 때리고 도망쳤단 말예요. 씨헐.
고요하던 교무실에서 장작 빠개지는 폭소가 터지는데 나 혼자 눈시울이 시큰했다. ‘내가 언제 도망갔어. 삼 색갸.’라고 말해야 하나 우물쭈물하는 중이다. 배추 뿌리 뽑아낸 자리로 억새풀만 하얗게 날리던 초겨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