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노원구청을 방문했다. 구청 옆에는 수백 톤의 방사능 폐기물이 2년 6개월 넘게 자리를 떠나지 못 하고 있었다. 주민들로선 방사능 문제로 지역의 이름이 계속 오르내리는 일이 좋을 리 없다. 그럼에도 방사능에 오염된 쓰레기가 서울시내 어딘가에 임시로 보관 중이란 사실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임에 틀림없다. 지난해 9월 SBS는 ‘방사능 아스팔트 280톤, 도심 공터에 방치’라는 제목으로 이 문제를 보도하기도 했다. 방사능 아스팔트로 기분이 좋지 않은 건 노원 주민뿐만이 아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2012년 겨울 두 차례에 걸쳐 방사능 아스팔트의 일부를 경주 방사성폐기물처리장으로 반입시키려고 했다가 강한 거부에 부딪혔다. 아직 완공도 되지 않은 방사성폐기물처리장에 주민 동의도 거치지 않고 폐기물을 반입하려는 시도에 대한 저항이었다. 결국 주민과 원자력안전위 측은 “2014년 6월 방폐장이 준공되기 전까지 주민동의 없이 더 이상 핵폐기물을 반입하지 않는다”는 ‘서면합의서’를 작성하고 200여 톤의 방사능 폐기물만 들여오기로 했다. 방사능 아스팔트가 노원구과 경주시에 절반씩 나눠서 보관 중인 이유다. 2011년 11월 시작된 방사능 아스팔트 사건의 가장 큰 쟁점은 방사선 피폭의 건강영향이었다. 당시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방사능 피폭량을 최대 0.68밀리시버트(mSv)로 평가하고 일반인 기준허용치인 1밀리시버트 이하라서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평가했다. 방사선 전문가들도 원자력안전위와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 대한방사선방어학회가 마련한 설명회에서 이재기 한양대 교수(원자력공학과)는 ‘보수적인 시나리오’로 계산해도 외부피폭은 0.5밀리시버트 수준이며 아스팔트 마모로 인한 비산먼지를 흡입하는 경로 등 내부피폭 가능성에 대해서도 일축했다. 이재기 교수는 무엇보다도 낮은 수준의 피폭량에 의한 인체 영향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고, 심지어 저선량의 방사선 피폭이 ‘건강에 이로울 수 있다’는 주장을 동물실험 결과를 근거로 제기하기도 했다.
2011년 11월4일 노원구 주택가에서 방사능 아스팔트를 걷어낸 자리에서 환경운동연합 활동가가 방사선을 계측하고 있다. 2000년에 포장된 것으로 알려진 오염된 아스팔트를 걷어내자 방사선 수치는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 아스팔트에서는 고농도의 방사성 세슘137이 검출됐다. 사진=이지언 인체에 무해하다고 여길 만한 방사선 피폭량의 최소값이란 존재하지 않다는 관점이 과학자 사회 내부에 폭넓은 합의를 얻었지만, 방사능 사고 피난대책이나 핵발전소의 폐쇄 관련 정책 결정으로까지 연결되진 않는다. 노원구 방사능 아스팔트 사건은 단적으로 이를 증명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방사능 아스팔트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자치단체들이 실시한 아스팔트 철거와 주민건강 역학조사와 같은 대책을 폄하하며 오히려 지나친 불안과 스트레스가 더 해로울 수 있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아스팔트에서 방사성 세슘137의 농도가 방사성물질 관리기준 이상으로 검출됐고, 노원구의 의뢰에 따라 법제처가 방사능 아스팔트의 처리에 대해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해석을 내리고서야 정부는 스스로의 책무를 인정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일어난 대규모 재난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천문학적인 양의 방사성물질이 유출돼 광범위한 지역의 오염과 수십만 명의 피난민이 발생했다. 일본 정부도 막대한 재원을 투입해 장기 건강 추적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지만, 많은 방사선 전문가들은 회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다수의 인구가 받은 피폭량이 너무 미미하기 때문에 역학조사가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이유에서였다. 2013년 세계보건기구(WHO)는 후쿠시마 건강조사 보고서에서 “건강피해는 발견 가능한 수준 이하”라고 발표했다. CNN은 “후쿠시마의 방사능, 신체보다는 심리적 피해”라는 제목으로 이를 보도했다. 세계보건기구는 직접적으로 측정한 피폭량이 아닌 2차 자료에 근거한 추정치를 모델링에 활용했고, 매번 그랬듯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협의를 거쳐서 방사선 영향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사진=Christoph Bangert/Stern/laif/Redux 지난해 3월 후쿠시마 지역의 어린이 13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후쿠시마현 건강관리조사 결과, 41%의 갑상선에서 최대 2센티미터 크기의 종기와 5밀리미터의 혹이 발견됐고, 이는 방사성 요오드의 흡입이나 섭취에 의한 결과라고 추정됐다. 하지만 조사단은 종기와 혹의 크기가 너무 작아서 추가적인 검사를 실시해야할 정도는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같은 해 6월9일자 <재팬타임즈> 기사에서는 후쿠시마 의과대학이 175,499명의 아이를 대상으로 실시한 결과 12명에게서 갑상선암 양성 반응이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15명은 발암 확률이 높다는 진단을 받았다. 당국으로선 이 수치를 그다지 높지 않다고 해석하고 방사능과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근거로 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많은 아이들에게서 갑상선암이 나타난 사실을 심각한 징후로 받아들여야 하고, 장기간 동안 발병자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추적조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하는 목소리도 많다.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페로에 따르면, 방사선의 건강영향에 대한 회의적이고 모호한 해석은 정부와 산업계가 핵발전소를 계속 유지하고 늘리는 데 기여해왔다. 기후변화 논쟁에서 소수에 불과한 ‘온난화 회의론자’와 달리, 저선량 방사선의 건강영향을 부정하는 이들은 ‘과학자 사회 내부에서 인정받는’ 전문가들이다. 찰스 페로는 “이들 전문가 대부분은 더 이상 저선량의 방사선이 무해하다고 주장하진 않는다. 그 대신 불확실성의 범주에 무해성도 포함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건강피해가 약간 생길 순 있지만, 너무 미미해서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찰스 페로는 “이런 견해는 저선량 방사선의 영향을 철저히 조사하거나 적극적인 피해 예방조치를 취하는 것이 소용없다는 이유로 현상유지를 요구한다. 방사능 피해 부정론자들은 과학적 모호성을 통해 정부와 사업자가 전 세계적으로 핵발전을 확대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고리1호기에 이어 한국 원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월성1호기의 운명은 지금 심판대에 올랐다. 운영사인 한국수력원자력(주)가 월성1호기의 10년 수명연장을 신청했고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심사를 진행 중이다. 여론조사를 보면 71%의 주민들이 월성1호기의 수명연장을 반대하는데 ‘잦은 고장 등 노후원전에 대한 불안’이 반대의 주요 이유다. 월성핵발전소가 ‘정상 가동’일 때도 방사성 트리튬이 대량 방출돼 지하수뿐 아니라 주민의 체내에도 높게 검출됐지만, 한수원은 ‘건강 피해를 입힐 수준은 아니다’고 밝혔다. 이들이 미량의 방사능에 대해 진짜 걱정하는 것은 건강피해가 아닌 핵발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확대다. 핵산업계가 막대한 재원을 들여 ‘사회적 수용성 제고’를 위해 공을 들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낮은 수준의 방사선 영향을 부정하며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스트레스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이 글은 <레디앙> 에너지정치 칼럼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