夫蘇山成, 落花巖
우리나라 고대국가는 고구려, 백제 , 신라, 가야, 등 이다.
고구려의 왕의 고씨성, 신라는 김씨성, 백제는 여씨성,현재의 의령여씨 다.
백제는 bc 18년 부여(요동,만주)의 주몽의 아들 온조가 건국 했다.
수도는 위례성(한성, 풍남토성, bc 18년~ ad 475년: 약 500년)
공주는 (웅진, 공산성: ad 475년~ 538년: 약 16년), 부여는 (부소산성, 사비성: ad 538년~ ad 660 년 : 약 123년)이다.
백제역사는 사학자들이 약 680년으로 보고 있다.
부소산은 충청남도 부여읍에 있는 부소산성이다.
백제 사비시대의 도성이다.
사비는 부여 일대를 사비현이라 했고, 금강을 사비 라했다.
그래서 부소산을 사비성이라고도 한다.
여기에는 영일루(迎日樓), 사비루(泗比樓), 고란사(皐蘭寺), 낙화암(落花巖), 부여박물관 등 이 있다.
백제하면 백마강이다.
그리고 금강의 애칭이기도하다.
백마강은 부여읍 정동리 범바위 부터 현북리 파지산 까지 약 16 km을 말한다.
금강은 전북 장수군 장수읍 신무산(神舞山, 897m) 발원 한다.
의자왕때 나당 연합군에게 황산벌에서 패전 소식을 듣고 궁인들이 치마을 입고 꽃잎이 바람에 지듯
백마강 낙화암에서 몸을 던졌다 했다.
전장의 승자의 기록이라지만, 도저히 낙화암에 삼천명이 있을 만한 한 공간 없다,
그리고 신라 2만과 백제 오천이 싸웠는 데, 궁중에 삼천명이 있을리 없다고 본다.
필자는 충남 조치원(세종시) 4년을 보냈다.
백마강 구드레나루터에서 황포돛 배를 軍, 동료와 함께 타고 참 구경은 황홀 했다.
부소산은 (106m) 애월읍 하귀리 수산봉(122m) 보다 낮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아름다운 풍경이 경이롭다.
절벽의 높이는 (낙화암) 약 60m 로 제주시 도두봉 눞이 만큼 하다.
백마강의 노랫 가사는 애절하다.
서정적 멜로디에 아련한 가사는 한국인의 정서를 담고 있다.
백마강의 고요한 달밤아
고란사의 종소리 들리어오면
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 꿈이 그립구나
아아~ 달빛 어린 낙화암 그늘 속에서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백마강은 소정방이 백마의 머리를 미끼로 하여 용을 낚았던 바위를 조롱대(釣龍坮)라 한다.
또한 말(馬)은 "크다" 백제에서 가장 큰 강이라는 뜻이라고도 한다.
조롱대는 그림에서 낙화안 바로 아래 백마강에 떠있는 가운대 돌이다.
부소산 고란사의 절벽에는 고란초가 자란다.
고란초는 양치 식물이면서 고사리 목 여러해 살이 풀이다.
잎이 뻗은 지름은 3~4, 4cm이며 비늘 조각이 있다.
단옆초이면서 잎자루는 길이가 5~25cm이면서 광택이있다.
표면은 녹색이고 뒷면은 약한 힌색이다.
잎은 2~3개로 벌어지기도 한다.
백제의 문화는 무왕때 전성기라 볼 수 있다.
익산시에는 무왕때 신라 선화공주를 薯童謠(서동요)를 서라벌에 유포시키면서 꾀여내여,
신라 진평왕의 셋째딸과 결혼한 후 미륵사 9층석탑을 창건(639년) 했다.
(삼국유사 기록)
서동요는 신라의 향가다.
善化公主主 隱他密之嫁良直古,선화공주주 은밀지가량직고.
해석: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얼어 두고.
薯童房之 夜矣卵之 拘遣去如, 서동방지 야의란지 구견거여.
해석: 맛둥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그런데, 미륵사지 석탑 있는 사리 함과 함께 적혀있는 글을 풀이 한 결과, 사리봉영기에, 무왕의 왕후는 좌평(국무총리)의 딸 사택씨다.
학계에서는 설왕설래 된 상황이면서, 논픽션(nonfiction) 아니고 픽션(fiction) 아닌가 하기도 하다.
미륵사 탑은 원래 9층(추정)6층만 남아 있다.
높이는 14,5m이다.
여기서 유물이 2만 3천여 점이 솟아져 나왔다.
미륵사지 면적은 1, 298입방미터, 필자가 찿았을때는 웅장한 육층석탑과 금동사리함, 금동풍탁 등 보는 것 만으로도 나를 압도했다.
그리고 백제 "금동대 향료" 부여 능산리 사찰의 공터에서 발견 되였다.
부과하여 공산성은 충남 공주시에 금강을 끼고 있다.
공주시 인구는 일십만 이천명이다.
면적은 864, 29 평방 미터이다.
백제시대는 웅진성(熊津成)이다.
부여의 부소산성은 대부분 토성(土成)이지만 공산성은 대부분이 석성(石成)이다.
공산(公山)의 높이는 약110m이다.
공산성에 오르면 공주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또한 금강을 따라 아스란히 부소산성이 보이기도 한다.
어떻튼, 역사와 경치 따라 찾아 볼만 하다.
부소산성과 대동소이하다.
성의 길이는 2,660m, 토성은 735m, 석성은 1,800m)이다.
제주의 성 길이보다 길다.(약: 1,800m)
성내에는 당시 무기고, 쌀 창고 등 건물터가 발견 되였다.
필자가 봤을때는 성 내는 하나의 분지처럼 넓었다.
조선시대는 관찰사가 공주의 행정 군사 유생의 중추적 이었다.
그래서 충청도는 양반이라 유래했다.
현재는 공주는 교육, 문화의 도시다.
그리고 충남의 대전은 호남선 경부선 분기점이다.
일제시대 공주로 철로를 넣을려 했는데 공주읍의 유생들이 기(氣)가 없앤다 해서 대전으로 옳겼다 한다.
또한 무열왕 능이 있다.
1500년 전의 모습이 고스란히 발굴되었다.
금(金)으로 부장된 것은 이집트 파라오무덤(4천년전)과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유일무일하다.
공주 박물관에 가면 백제의 공주 역사를 감상 할수있다.
필자는 휴일이면 공주를 들렸다 유성 온천에서 즐기기도 했다.
글/그림: 虎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