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두 에세이
201동 비둘기, 성북동 비둘기
남대희(시인)
어느 날 201동 옥상에 비둘기 한 쌍이 둥지를 틀었습니다. 사랑과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가 우리 아파트에 둥지를 튼 것은 참 좋은 징조라 생각하며 흐뭇해 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처음엔 암수 한 쌍이 둥지를 틀더니 얼마 가지 않아 네 마리가 되고 여섯 마리가 되고 지금은 수십 마리가 옥상 난간에 앉아 배설물을 쏟아놓는 바람에 옥상이 온통 비둘기 배설물 천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요즘은 우리 직원들이 비둘기 배설물을 처리하느라 고역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비둘기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깃털이 눈부시게 하얀 공작비둘기, 염주비둘기, 녹색깃털을 가진 녹색비둘기, 검은색의 흑비둘기, 머리에 왕관을 쓴 듯한 관비둘기, 이른 봄날 야산 기슭에서 구슬프게 우는 산비둘기 그리고 양비둘기, 전서구 등이 있습니다. 공원이나 역 앞 광장에 있는 비둘기는 야생인 양비둘기가 길들여진 것인데 이 중에서 특히 집을 잘 찾는 녀석을 골라서 개량한 것이 우편용 또는 군사용으로 이용했다는 전서구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천연기념물 제215호인 흑비둘기를 비롯하여 산비둘기, 양비둘기, 염주비둘기, 녹색비둘기 등 5종이 서식하고 있는데 우리 201동 옥상에 있는 비둘기는 양비둘기입니다.
비둘기 한 쌍이 201동 옥상에 처음 둥지를 틀었을 때는 귀엽고 예쁜 마음에 먹이도 간혹 주기도 하고 알을 품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해서 마냥 즐겁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젠 알을 낳기만 하면 없애기 바쁘고 둥지도 모두 수거해서 없애버립니다. 그럴 때마다 비둘기들의 애처로운 날갯짓이 어찌나 슬퍼 보이던지 가슴이 아팠습니다.
비둘기의 알을 줍고 둥지를 없애면서 「성북동 비둘기」를 쓴 김광섭 시인의 마음을 생각했습니다.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 김광섭, 「성북동 비둘기」 전문
시인이 63세 때 썼다는 이 시에서 도시화, 산업화 과정에서 쫓기는 비둘기의 애처로움을 의인화해서 우리에게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지 둥지 잃은 비둘기의 문제가 아니라 빛나는 문명 속에서 비둘기같이 소외되는 내 이웃을, 그리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추방되어 가는 현실을 가슴에 금이 가는 심정으로 노래한 것은 아닐까요?
오늘도 201동 옥상에서 가슴에 금가는 심정으로 비둘기의 둥지를 치웁니다.
내 가슴에 소외된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과 사랑과 평화의 사상만큼은 굳건히 남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