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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엿보기 브레이크(한국문연)
김미순 경남 거제에서 태어났다. 2015년 신라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면서 《월간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꿀벌펜션』, 『참치하역사』가 있다.
시인은 비행에 성공할 때도 고도를 높이지 않는다. 그것은 시인이 중력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중력은 지상과 물체 간의 중력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질량을 가진 모든 사물을 말한다. 애초에 시인이 날아오르려는 의지를 가진 것은 세계를 관찰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너무 고도를 높이면 대상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시인은 관찰자의 숙명을 타고났으며 그것을 거부하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몸에 새겨지는 상흔을 바라보며 관찰을 지속할 뿐이다.
그늘은 오늘도 침묵한다 나는 미세하게 흔들리며 걷는다 발목이 시큰거린다 우왕좌왕하는 사이 우산은 지붕을 타고 안개를 키운다 추운 바람이 따뜻하다 창밖의 감나무는 어둠까지 몰고 와 혼자 쪼개지고 있다
깊은숨을 내쉬며 엑스레이 앞에 선다 흔들린다 렌즈를 보며 말을 참는다 여전히 흔들린다 꽁치통조림을 흔들어본다 그때 성당에서 종소리가 들렸다 눈물이 말랐다는 말을 이해하겠다 시간을 쓸어 담고 있다 초침이 거꾸로 간다 태엽을 감았다 갤러리에서 보았던 얼굴이 국화 송이로 피어난다 책상에서 떨어지는 꽃병
파도는 나무통 안에 조용히 누워 있다 해일이 몰려온다 수평선은 밖에 있고 지평선은 이어져 있고 의자는 밖에 있고 손잡이는 안에 있다 “내가 누군지 알아?” 누가 밖에 있고 누가 안에 있는 걸까 끝없이 나는 모른다 불안한 심장 박동 소리가 짐승들을 깨운다 오늘이 첫 비행이다 불시착이다 빈집에 물이 가득 찼다 아무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수족관이 깨어진다 ― 「핸드헬더」 전문
시의 제목인 「핸드헬더」는 아마도 영상촬영 기법인 핸드헬드 기법에서 왔을 것이다. 핸드헬드 기법의 특징은 삼각대 등 카메라를 고정하지 않고, 사람이 직접 들어 어깨나 손으로 받쳐 찍는 방법이다. 이때 사람의 호흡이나 이동으로 인해 화면이 흔들리면서 현장성과 사실성을 준다. 시인이 굳이 이러한 제목을 사용한 것은 사물과 대상에 경도되려는 자신을 관찰자의 지위로 고정하기 위한 다짐의 결과일 것이다. 시인의 예민한 관찰로 인해 스스로도 ‘미세하게 흔들리며 걷는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사실 모든 사물은 떨리고 있다. 그 진동의 주기와 강도가 극단적으로 차이가 날 뿐이다. 시인이 세계를 관찰하는 이유는 이 세계의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당연하다고 믿는 진리의 일부분에서 발견한 균열과 모순이 발견된다. 이러한 문제들을 외면하면 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인은 외면할 수 없다. 세계의 모순과 내면의 고통이 겹쳐져 있기 때문이다. 사진이나 영상을 찍을 때 촬영자는 되도록 숨을 멈춰야 한다. 충분한 양의 빛과 안정적인 셔터 속도가 확보된다면 문제가 크게 되지는 않지만, 그렇지 않을 때 대상을 선명하게 포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둠을 다루고자 할 때는 특히 더 그렇다. 빛이 있을 때 어둠은 더 선명해진다. 시인은 그늘이 여전히 침묵한다는 사실을 안다. 세계는 질문에는 더 큰 질문과 더 큰 모순으로 답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모순과 고통을 직시한다. 손에 직접 카메라를 들고서, 스스로 관찰 기계에 가까워지면서도 말이다. 질문에서 다른 질문으로, 작은 모순에서 더 큰 모순으로 가면서도 다시 새롭게 질문을 던진다. 관찰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불안한 심장 박동 소리가 짐승들을 깨’우고 있기 때문이다. 핸드헬더가 손을 떠는 이유는 숨을 쉬고 있기 때문이다. 뜨거운 피가 흐르고 그것이 비록 짐승과 같은 삶일지라도 우리는 생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 부정은 실패나 포기만을 도출하기 때문이다.
-김건영, 시집해설 「코끼리 드론의 심상 기록술」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