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과 이이는 주자의 제자들
세계 철학사의 관점에서 논하자면, 이황과 이이의 철학은 송원(宋元) 시대 중국에서 발흥한 주자학(朱子學) 혹은 성리학(性理學)의 본령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두 사람 모두 주희(朱熹, 1130~1200)라는 남송(南宋, 1127~1279)의 철인을 성인(聖人)의 반열에 올려 큰 스승으로 추앙하면서 오로지 주자(朱子)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분석하고, 설파하기 위하여 한평생 노력했던 16세기 조선의 주자학자(朱子學者)들이었다. 그들 스스로 주자의 제자임을 자부했고, 오늘날 동아시아 철학사를 정리하는 학자들도 대개 그들의 철학을 주자학의 연장으로 정의한다.
주자학은 12세기 이래 동아시아의 보편적 학문으로서 막강한 지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조선의 사대부가 주자학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는 별 문제가 없다. 먼 옛날부터 인류는 인종, 지역, 나라에 상관없이 먼 곳에서 발원한 종교, 철학, 사상, 제도, 예술, 복식, 음식까지 무엇이건 유용하고 좋으면 주저 없이 가져다 썼다. 그러한 문화 교류와 상호 침투의 과정을 통해서 인류의 문명사가 전개되었다. 이른바 중화 문명도 예외가 아니다. 일례로 당(唐, 618~907) 제국은 불교, 이슬람, 기독교, 배화교까지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개방성을 보였다. 중세기 유럽 각 지역의 지식인들 역시 그 시대의 보편 철학을 수용하여 라틴어로 사유하면서 독자적인 사상을 발전시켰다.
그렇다면 본질적 문제는 퇴계와 율곡이 주자학을 통해서 얼마나 심오하고, 독창적이고, 체계적이고, 합리적이고, 보편타당한 철학 사상을 만들었냐이다. 주자학을 수용하여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조선의 사대부 지식인들은 인간의 심성(心性)과 우주의 질서에 관한 나름의 독특하고 심오한 철학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다만 두 사람의 철학이 조선 고유의 참신하고 독특한 철학이 아니라 주자학의 연장이었다는 점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우선 두 사람의 문집 어디를 읽어봐도 주자학적 기본 전제의 타당성 여부를 캐묻고 따지는 비판적 사유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들은 16세기 조선에 태어나서 주자학을 배우며 자랐고, 주자학의 심층적 이해를 위해서 철학 논쟁을 벌였고, 주자학의 확산과 보급에 힘썼던 주자의 제자들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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