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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 유인물부터 한번 볼까 합니다.
華嚴經의 要義
1. 萬法唯心
一眞法界의 本源眞心은 제법의 體性이 된다. 그리고 그 體性은 因緣을 따라서 천 가지 만 가지로 顯現하여 重重無盡法界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重重無盡法界도 결국은 모두가 一心의 所現이다. 그래서 萬法唯心이라고 한다.
화엄경하면은 화엄경에는 이제 여러 가지 뜻이 있게 마련인데 그 뜻이라는 것을 이제 화엄경의 사상이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을 한다면 그 중에 손꼽는 그 화엄경 안에서의 표현되고 있는 사상 중에 그 유심사상(唯心思想)이라고 하는 것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 제목에 보면 화엄경(華嚴經)의 요의(要義)라 해서 만법유심(萬法唯心)이다 그렇게 합니다. 이걸 이제 학문적으로는 화엄경의 유심사상(唯心思想) 이렇게 이제 말을 해요. 그러나 이제 그렇게 딱딱하게 이야기할 게 없고. 화엄경의 요긴한 의미지요. 아주 화엄경에서 여러 가지 가르침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요긴한 그 어떤 의미를 몇 가지를 이제 말씀을 드리면 해인삼매(海印三昧)라든지요, 또 동체대비사상(同體大悲思想)이라든지, 이런 것들도 아울러서 이야기될 건데. 우선 이제 유심사상(唯心思想), 만법유심(萬法唯心)이라고 하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은 불교에서 의례히 뭐 일체(一切)가 유심조(唯心造)야. 「일체 모든 것이 다 모든 것이 다 오직 그저 다 마음이 다 만든 것이야」라고 하는 것은 우리 불자라면 거의 ABC같이 상식화 돼 있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근거가 이 화엄경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그 화엄경 중에서도 19.승야마천궁품(昇夜摩天宮品)이라고 하는 그 품 안에 그 게송(偈頌)이 있고, 그것을 일러서 화엄경에서는 화엄경의 사구게(四句偈)라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사구게라면 화엄경의 의미를 네 가지 구절로써 대표한다. 이렇게 이제 말합니다. 또 금강경 사구게 하면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 그 네 가지 구절인데 그것이 이제 금강경의 정신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구절이다. 이렇게 보는 거지요. 그래서 불교의 경전은 거의 모든 경전이 그 경전의 뜻이 너무 이제 글이 많잖아요. 설명이 많고 그렇다 보니까 요약해서 한 두 마디로 표현할 길이 없겠는가? 다 있습니다. 그렇게 표현될 수 있는 것을 사구게(四句偈)라고 이렇게 말 하지요. 그래서 우리 시식문, 그 영가를 천도하는 천도의식문에 보면은 중요한 대승경전의 사구게만 쭉 모아가지고 들려드립니다. 거기에 보면 약인욕요지 삼세일체불 응관일체성 일체유심조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이것도 아마 여러분들 천도재에 많이 참석해 보신 분은 얼핏 아마 들은 기억이 나실 거에요. 또 범소유상 개시허망(凡所有相 皆是虛妄)도 있구요. 중요한 경전의 사구게(四句偈)는 거기서 다 거론이 됩니다. 그만치 그 경전을 다 읽어드리지 못하니까 사구게만이라도 들려드려서 그 經의 이치를 깨닫도록 그렇게 하려는 배려지요.
화엄경에서는 이 유심사상(唯心思想)이 상당히 중요한 사상이고, 그렇다보니 유심사상을 표현하는 네 개의 구절이 또 화엄경의 사구게가 돼 있구요. 그렇습니다. 거기 우선 그 위에 읽어보면 『일진법계의 본원진심은 제법의 체성이 된다.(一眞法界의 本源眞心은 諸法의 體性이 된다.) 』그랬어요. 이 세상을 우리는 뭐 너 나, 뭐 좋고 나쁜 거, 온갖 차별상으로 그렇게 봅니다. 그런데 깨달음의 안목으로 보면은, 깨달은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은, 하나인 세계고, 그것은 아주 진실만의 세계다. 그래서 일진법계(一眞法界)라 그래요. 진실만의 세계다. 우리는 거짓세계, 무슨 뭐 허망(虛妄)한 세계 그렇게 보는데, 무상(無常)한 세계 그렇게 보는데, 깨달은 안목으로 보면은 전부 진실(眞實)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평등한 하나인 세계다. 그것을 일진법계(一眞法界) 그래요. 그것은 결국은 근원(根源)이 뭔고하니 眞心이야. 우리의 참마음 본원진심(本源眞心), 근본이 되고 으뜸이 되는, 근본이 되고 근원이 되는 本源眞心을 말하자면 諸法의 體性이 된다. 그러니까 온 우주는 한 마음이고, 그 한마음은 모든 存在의 體性이다. 本體다 하는 그런 말입니다.
물은 예를 들어서 형상이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릇에 떠 놓으면 그 그릇 따라서 물의 모양이 다르고요. 또 물을 얼리면은 영도이하로 얼리면 얼음이 되고. 또 백도 이상으로 끓이면 수증기가 돼서 증발해 버리고요. 기체가 되고, 고체가 되고, 액체가 되고, 여러 가지로 그렇게 변하듯이. 그러나 그것은 물의 相입니다. 현상이에요. 모습입니다. 그런데 젖는다고 하는 그 물의 本性은 변함이 없어요.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은 천차만별입니다. 지난시간에 그 마지막에 보면은 중생들의 가지가지 욕망과, 가지가지 이해와, 가지가지 지혜, 온갖 여러 가지의 말과 존재, 뭐 살고 있는 곳, 정말 인생도 가지가지라고 하는 뭐 그런 말이 있듯이. 그야말로 가지가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 본성 똑 같이 누구나 평등한 그런 그 근본자리는 부처님이나 우리나 하나라는 거지요. 그게 말하자면 체성(體性)입니다. 그것은 본원진심(本源眞心)이 그것이 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체성(體性)은 인연(因緣)을 따라서 천가지만가지로 현현(顯現)하여 그랬잖아요. 그 우리가 하나인 그 체성에서 우리가 만난 부모의 인연을 따라서, 또 조상의 인연을 따라서, 지역의 인연을 따라서, 여러 가지 환경의 어떤 인연을 따라서 어떻게? 천 가지, 만 가지로 현현 나타났어요. 그래서 뭐 정말 얼굴도 가지가지고 성격도 가지가지고 그러다보니 그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도 가지가지야. 참 묘한 거지요. 그래서 그것을 화엄경의 관점에서는 중중무진법계 이렇게 말해요. 중중무진법계(重重無盡法界), 첩첩이 겹겹이 쌓여있는 끝없는 그런 진리의 세계다. 법계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중중무진법계重重無盡法界도 결국은 모두가 一心의 所現이다. 한 마음의 나타난 바다. 이겁니다.
여러분의 머리카락은 머리카락이 될 수 있는 인연에 의해서 우리의 一心이 그렇게 나타난 거에요. 얼굴은 우리 일심의 어떤 다른 인연으로 얼굴의 모습으로 나타나고요. 동작, 말, 온갖 것이,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도 역시 우리 一心의 한 표현으로써 나타난 것입니다. 그걸 이제 우리가 깨달을 때가 있어요. 결국은. 아 아니야 나는 나고, 내 마음은 내 마음이고, 내 육신은 내 육신이고,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나무는 나무고, 풀은 풀이이고 다른 것이다 라고 이렇게 이제 현재 우리상식으로는 그렇게 생각이 들지만은 어느 땐가 아 그 모든 것이 내 한마음이 나타난 것, 내 한마음의 편린들이구나, 조각들이구나 라고 하는 것을 알 때가 있어요. 그 일심의 소행이다. 그래서 만법유심(萬法唯心)이라고 한다. 정리를 아주 잘 해놨어요. 간단명료하면서.
그래 고 이제 단순하게 내 혼자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그 경전의 근거문헌 그 19번째 품 승야마천궁품(昇夜摩天宮品)에 나오는 그 경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 중에 밑에 이제 진하게 줄을 그어 놓은 것이 사구게다. 그 화엄경공부했더라고 화엄경 사구게는 여러분들이 다 알고 계셔야 되고, 화엄경 사구게는 외워야 돼요. 그리고 이 사구게는 어디서 나왔느냐? 승야마천궁품, 삼십구품 가운데 열아홉째품, 승야마천궁품에 이런 게송이 나왔다. 그리고 그것을 좀 더 확대해서 보면은
心如工畵師하야 能畵諸世間하나니
심여공화사하야 능화제세간하나니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공화사(工畵師), 그림쟁이, 화가 그 말입니다. 공화사라는 것은 화가와 같다. 이 유명한 구절이에요. 이거 참 스님들도 공부하기 어려운건데 보살님들이 복이 많아서 공부하게 됩니다...마음은 화가와 같아서. 능화제세간(能畵諸世間)이라. 모든 세상사를 능히 그린다. 여러분들이요, 아무리 세상이 뭐 좋느니 나쁘느니, 뭐 대통령이 마음에 드느니 안 드느니, 누가 어떠느니 그래도. 전부 우리들의 마음이 그 사람을 만들어 놓은 거에요. 능화제세간(能畵諸世間), 내가 그림 그린 화가가 돼 가지고 백지에다가 내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려놓은 것이 내 그림이야. 이 세상사는 전부 내가 그려놓은 내 그림이라구오. 능화제세간(能畵諸世間)이라. 그러니 누구 탓할게 없어. 능히 모든 세상사를 그린다.
五蘊實從生이라
오온실종생이라
우리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 우리의 몸과 마음을 오온(五蘊)이라 그래요. 몸은 색이라고 하고. 그 다음에 수· 상· 행· 식(受· 想· 行· 識) 이렇게 느끼고, 이렇게 뭐 춥다 덥다 느끼고, 저 사람은 뭐 마음에 어떻다. 또 뭐 그 사람 성격이 어떻겠다. 이런 등등을 느끼는거, 아 그 사람은 보기가 흉해보이니까 내가 피해가야겠다. 또 이런 생각을 지어가는 거에요. 수· 상· 행· 식 이라는게 ‘아 저런 사람 안 만나야지’ 하고 얼른 피해가버리는 거에요. 그런 어떤 마음의 작용이 전부 수· 상· 행· 식입니다. 그런 인식능력(認識能力)이 있잖아요. 인식능력이 있고 또 인식함으로 해서 내가 어떻게 행동을 취해야 되겠다고 하는 것, 저런 사람을 다시 안 만나야지 하는 이런 생각을 내가 속에서 정리할 줄 아는 것. 이런 것들을 수· 상· 행· 식(受· 想· 行· 識) 이렇게 해요. 그럼 受· 想· 行· 識, 네 가지가 우리의 마음 작용이고. 그다음에 색(色), 우리의 육신이라고 하는 이 肉身 + 受 想 行 識, 정신작용 네 가지. 그렇게 하면 우리 인간, 살아있는 인간이거든요. 그걸 이제 불교에서 오온(五蘊) 이렇게 얘기합니다. 요런건 이제 기초교리.. 요즘 뭐 교양대학 같은데서 기초교리시간에 아주 철저히 공부하는 그런 낱말이 됩니다. 그 우리의 몸과 마음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든지, 내가 전부 세상을 좋게 보던 나쁘게 보던 간에 그것은 전부 내 마음에서부터 난 것이다. 실종생(實從生), 다 마음에서 쫓아난 것이다.
무법이부조로다
無法而不造로다
어떤 현상이던지 법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 모든 것이든지 짓지 않는게 없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내가 다 지어놓은 거에요. 내가 다 만들어 놓은 거에요. 무법이부조(無法而不造). 법마다 짓지 아니함이 없다. 새기긴 그렇게 새겨요. 어떤 사물 어떤 현상이든지 전부 내가 지어놓은 거에요. 상대가 뭐 어떻게 하던지 그건 내가 지어놓은 거에요. 늘 우리는 상대가 어떻게 한다. 아 나는 아무 잘못이 없고 나는 그렇게 잘했는데 상대가 어떻게 한다. 상대가 어떻게 한다 하는 것 전부 알고 보면 내가 지어놓은 것이다. 이렇게 보면은 틀림이 없습니다. 無法而不造. 그 저기 남 핑계 잘 대는 우리 중생들 습관으로 보면은 마음에 안 들죠. 이런 구절이. 마음에 안 들지만은 그래도 이치가 그렇게 돼 있어요. 그건 이제 아직 우리가 중생의 어떤 미망(迷妄)에서 깨어나지 못해서 마음에 안 드는 것이고, 이치는 그렇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어야 돼요. 이치는 그렇다. 그러나 아직은 내가 거기에 그 이치에 내 마음이 계합이 아직은 안 된다. 그 참 깨달은 사람의 생각은 그런 것 같고, 또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은데 아직은 나는 아직 계합이 안 된다. 요건 분명하게 해야 돼요. 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진리가 아니라 라고 이렇게 할 수는 없는 거지요.
그래서
여심불역이라.
如心佛亦爾라.
마음과 같이 부처님이라고 하는 문제도 또한 똑같아요. 부처님도 천차만별입니다. 우리 불자님들에게 부처님이 어떤 분이냐? 당신은 마음속의 부처님을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느냐? 라고 물어보면 각양각색이에요. 각양각색입니다. 왜 그러냐? 각자 자기 마음이 만들었기 때문에. 각자 자기가 알고 있는 것 만치 부처님을 알고 있다는 것. 그건 결국 뭡니까? 우리들 마음이 내 능력껏, 내 상식 껏, 내 지혜만치 부처님을 그려놓고 있어요. 그렇게 그려놓고 내가 그 부처님에게 가서 절도 하고, 뭐 달라고도 하고, 호소도 하고, 그렇게 하는 거죠. 마음과 같이 부처도 또한 그러하다. 이 아주 중요한 화엄경에서 아주 중요한 구절입니다. 이런 그 요기에 인용해온 구절은요.
여불중생연이라
如佛衆生然이라
부처님이 그렇듯이 중생도 그래. 내가 아는 중생도 역시 전부 내 마음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거다.
응지불여심이
應知佛與心이
응당히 알아라. 부처와 그리고 마음이
체성개무진이로다
體性皆無盡이로다
그 체성은 모두가 다 다함이 없다. 그러니까 체성은 하나다 이거야. 통일된 하나고, 그 하나는 온 우주를 뒤덮고 있고, 그래서 무진이야. 다함이 없다. 우리가 무진장 뭐든지 많은거 좋아하지요. 사실 우리 본성은 많습니다. 정말 무진장으로 많아요. 진짜 무진장으로 많습니다. 우리의 본체성은요. 우리의 마음은. 그런데 우리는 뭐 조금밖에 못 쓰고 있죠. 그것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약인지심행이 보조제세간하면
若人知心行이 普造諸世間하면
만약에 어떤 사람이 우리의 심행, 心行이라고 하는 낱말 우리마음이 행한다. 우리가 몸이 걸어간다는 것을 身行이라고 한다면, 마음이 움직여서 여기 앉아서 내가 뭐라고 아무리 좋은 화엄경 이야기를 해도, 뭐 다른데 가서 얼마든지 딴 일 할 수가 있어요. 그게 심행의 아주 독특한 장점이라. 그 참 묘하죠. 우리의 마음의 작용이라고 하는게. 그 심행이 마음의 작용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우리의 마음작용이 모든 세상사를 내가 다 짓는다고 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지자(知). 내 마음이 움직여가지고 세상사를 전부 만들어 간다고 하는 사실을 안다면.
是人則見佛이야
시인즉견불이야
이 사람은 어떻게? 바로 부처님을 보는 거지요. 마음의 도리를 알면 그대로 부처님을 보는 거에요. 부처님을 아는 거에요. 마음을 아니까 마음을 알았다고 하는 것은 곧 부처님을 알았다하는 뜻입니다. 불교에서요. 이 화엄경은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그 나름의 부처님에 대한 관점, 또는 뭐 불교에 대한 어떤 그 나름의 이해 같은 것을 그대로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그 다 비워버리고요. 큰마음으로 그래서 화엄경은 어떤 사람이 공부한다고 했죠? 대심범부. 그랬죠? 대심중생(大心衆生), 대심범부(大心凡夫) 큰마음, 마음이 큰 사람이 화엄경을 공부할 자격이 있다 그랬어요. 요즘사람들은 상당히 사회가 발달해서 마음이 옛날 사람들보다 마음이 아주 커졌어요. 그래서 화엄경 공부할 그런 기회가 되지도 않았나 하는 그런 생각도 해 봅니다. 사실은요.
了佛眞實性이로다
요불진실성이로다
부처님의 진실성. 진실한 성품을 다 알았다. 료 자(了)는 깨달았다하는 그런 뜻입니다. 알 지자(知)보다도 훨씬 더 깊이 깨달은 것을 깨달을 료, 알 료라 그래요. 부처님의 진실한 성품을 알았도다.
심부주어신하며
心不住於身하며
마음은 몸에도 머물지 아니하며, 몸 또한 마음에 머물지 않아. 매여 있는 게 아니에요 사실은. 서로가 몸과 마음이 우리가 매여 있다 그러는데 간혹 매여 있죠. 또 중생들은 잘 매여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게 매여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떠날 때 되면 가차 없이 떠나잖아요. 우리 마음이 몸을 떠날 순간이 되면 떠난다고요. 우리가 아무리 마음이 몸을 붙잡고 있고, 몸이 마음을 붙잡고 있어도 아니야. 떠날 때 되면 떠나. 또 어떨 때 그렇잖아요. 몸이 가만히 이불속에 있는데 마음은 딴 데로 별별 곳에 다 돌아다니죠. 자기 다니고 싶은 대로 다 다니는 거야. 이게 또 마음의 그 어떤 그 독특한 면인데. 서로 머물러 있는 것 같으면서도 또 꼭 그렇게 매여 있지도 않습니다. 이게 이제 중도적인 그런 안목이에요. 우리가 사람관계도 마찬가지고, 내 몸과 내 마음관계도 마찬가지야. 몸이 마음대로 되지도 않고, 마음이 몸대로 되지도 않고. 어떨 때 보면 그렇게 친할 수가 없는데, 어떨 때 보면 이게 영 딴 사람이야. 영 다른 사람이야. 몸이 마음 안 따라주잖아요. 그래 끝내는 배신하고 가는 것도 아니에요. 인연이 다해서 가는 거지요. 가서 딴 몸 또 받는 거야. 아 이 몸은 이제 쓸모가 없으니까 이쯤 그만하고 알아서하라 하고, 그냥 마음이 다른데 가 가지고 새 몸 받아서 또 새로운 어떤 그 인생을 시작하잖습니까. 그래서 心不住於身하며, 마음은 몸에 머무는 것도 아니고
신역부주심
身亦不住心
몸 또한 마음에 머무는 것도 아니고,
이능작불사다
而能作佛事다
그러면서도 능작불사라. 불사란 것이 인생사에요 인생사. 사람 살아가는 일이 불사(佛事)입니다. 그 화엄경의 眼目은 화엄경의 사상은 모든 사람사람이 그대로 부처님이라고 하는 것, 사람사람뿐만 아니라 삼라만상 모든 물건 하나하나가 전부 부처님이라고 하는 사실. 지난시간에 그랬죠. 약찬게에 있듯이 바람이다 물이다 불이다 공간이다 그 모든 것이 전부 부처 아닌게 없는 거죠. 이 세상의 가장 소중한 존재다. 그런 뜻에서 그래서 능작불사(能作佛事) 그래 인생사가 그대로 불사입니다. 그 여러분들 불사하는데 많이 도왔죠? 그런 것만이 불사로 우리가 알고 있었는데 화엄경차원에서는 달라야지요 좀. 화엄경반은 불사에 대한 안목도 또 달라야한다고요. 그렇다고 이런 불사 이런거 불사(佛事) 시시한 불사라고 생각을 할게 아니라, 외면할 것이 또 아니로되 그러나 모든 것이 불사다. 인생사 살아가는게 다 불사다. 참 이 묘한 구절이에요. 마음이 몸에 머물지도 아니하고, 몸은 또 마음에 머물지도 아니하면서, 몸과 마음이 합작(合作)을 해서 온갖 인생을 엮어가고 있다. 능작불사(能作佛事) 능히 불사를 지어간다. 참 대단해요. 이거 화엄경에서나 만날 수 있는 구절이죠. 능작불사(能作佛事)한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 간다는게 뭡니까? 가지가지인생 별별 인생 다 살아가지만은 결국은 몸과 마음이 합작을 해서 능작불사(能作佛事) 해 나가야 됩니다.
자재미증유로다
自在未曾有로다
그 자재로움이 정말 일찍이 있지 않더니 있다. 그 자유자재(自由自在). 불사(佛事)를 지어 가는데 또 인생살이 참 묘하지요.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기가 걸어온 하루의 삶을 객관시해 놓고 딱 이렇게 좀 거리를 두고 객관시해 놓고 내가 가만히 저녁에 점검을 해 봐요. 그 참 묘한 하루의 삶을 살아왔죠. 그 미증유야. 신기하다 이 말입니다. 미증유란 말은. 그 자재롭고 자유자재로 살아왔고 또 신기하기 이를데 없고 어째서 여기 와서 화엄경 공부하는 줄 알고 여기까지 와서 듣느냐 말이야. 또 끝나면 어떻게 하면 그렇게 용케도 집에 잘 찾아가고 돌아갈 줄 알어. 참 신기해요. 미증유야 정말. 그렇다고 또 몸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 몸대로 되는 것도 아니면서 그러면서도 가끔 조화를 이뤄가지고 이런 불사(佛事)를 지어간다. 인생을 이렇게 살아간다 이겁니다. 세상과 인생.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뭐 특별한 목표를 정해가지고 이것이 내 지상목표다. 내 인생의 모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게 없어요. 사실은. 좀 마음 턱 놓고 우리가 하루하루 이렇게 살아가는 일 그 자체에서 뭔가 눈을 떠야 돼요. 그 자체에서 삶의 진실을, 그리고 道라고 하는 것에 눈을 떠야 된다. 하는 그런 의미도 여기서 우리가 찾을 수가 있습니다. 자재(自在)에 미증유(未曾有)로다. 자재로와서 참 신기하다. 일찍이 있지 않더라. 아주 신기하고 희유(稀有)한 일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이제 네 구절이 소위 화엄경 사구게지요.
약인욕요지 삼세일체불인댄 응관법계성에 일체유심조니라.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인댄 應觀法界性에 一切唯心造니라.
고거는 이제 고 밑에 번역을 해 놨어요. 다섯째 줄 보면. 만약 어떤 사람이 과거현재미래의 부처님을 알고자 한다면, 법계의 본성을 잘 관찰하라. 모든 것이 오직 마음으로 만들어졌느니라. 제발 요 구절은 좀 외우세요.
약인욕요지 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그 토 외울거 없이. 유식한 사람은 토 안다는 거에요 그냥. 약인욕요지 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뭐 이중에 이미 잘 외우고 계신분도 많을 줄 압니다. 이건 염불책에 많이 나와 있는 거니까요. 그래도 화엄경 배운다고 하면서. 누가 또 화엄경 배우면 화엄경 사구게가 뭐냐? 이렇게 하면 이제 그걸 질문이라고 하느냐? 이렇게 탁 던져야지. (하하하)
이 사구게를 이야기하면서 뭐 고 밑의 이야기는 또 밑에 왠 다른게 그렇게 많으냐? 요 사구게하고 연결되는 재밌는 이야기가 있어서 그래서 내가 여기다 소개를 합니다. 이 사구게가 화엄경 사구게가 위력이 상당히 있어요. 말하자면 뱀이 해탈을.. 이 사구게를 듣고 해탈을 하게 되는 그런 경우고. 이건 또 아마 여러분들 뭐 그 인과이야기 할 때, 뭐 또 법회 같은데서 많이 들어오던 건데 고것도 이제 원문을 딱 이렇게 정확하게 갖다놓고, 번역도 착 갖다 놨으니까. 여러분들 이거 잘 써먹으라고. 어디 딴 데 다니면서 불교 이야기하고, 법회 같은거 혹 하실 때 이런거 집에 가서 식구들한테도 좀 이야기 해 주고 하라고 내가 이제 본문을 이렇게 딱 이끌어 놨습니다.
一起嗔心受蛇身(일기진심수사신) 이라고 하는 말인데. 나도 참 화를 잘 내는 사람중에 한 사람인데. 한번 진심을 일으키면 뱀의 몸을 받는다 그랬어요. 그래도 또 우리는 뭐 업장소멸하는 길이 천가지 만가지가 있으니까. 불교에서는 또 업장소멸하는 길이 많으니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화내고서 화낸거만 생각하면 겁이 나는데. 또 업장소멸하는 길이 또 많으니까. 멸업장진언 한 번만 해도 되고, 뭐 멸정업진언 해도 되고,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
이건이제 강원도 금강산 동도암 홍도라고 하는 비구스님에 얽힌 설환데요. 이 스님이 금강산 동도암에서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근데 혼자 살았어. 그런데 그렇게 여러 해를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 어느 날 병이 들어서 병석에 눕게 됐어요. 그래 공부 많이 한다고 해서 꼭 건강하고 좋은 거 아니에요. 왜냐하면 묵은 업은 어쩔 수 없어요. 묵은 업은 아무리 우리가 정진 열심히 하고, 착한일 많이 해도, 과거생에 지은 업은 어떻게 보면은 오히려 수행을 많이 할수록 병고에 더 많이 시달린다 하는 그런 이야기도 있어요. 사람마다 다 그런 건 아니에요. 왜 그런고하니 수행을 열심히 하면은 과거에 지은 업들, 묵은 업들이 한꺼번에 와 가지고 다 갚아준다는 거에요. 두고두고 갚는게 아니고 한꺼번에 갚을 기회가 생긴다.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빚 같은 건 빨리 갚아버리면 좋죠. 갚을 능력만 있으면 빨리 갚는 게 좋지. 두고두고 갚으면 늘 마음에 걸리지 않습니까. 그래 어쨌거나 하여튼 이 스님도 수행을 참 잘 했는데, 그래 병이 들어가지고서 혼자 그렇게 외롭고 아주 고독하게 지냈어요.
그러다 어느 따뜻한 봄날이었어요. 누더기를 이렇게 입고 나와서 따뜻한 봄날에 이렇게 이제 나무 밑에 자리를 깔고 이렇게 누워있었어요. 그런데 옷을 이렇게 걸어놓고 누더기를 걸어놓고는 깔고 누워있는데. 되게 따뜻했던 모양이야. 그래가지고 누워있는데 한참 있다 보니 바람이 그냥 회오리바람이 확 불어와 가지고 먼지를 확 누워있는 사람한테 일으켜가지고 확 먼지를 덮어씌우고 그러면서 그 옷이 휙 날려가 가지고는 저 시궁창에 가서 뚝 떨어지고 그랬거든요. 그 내려가서 줏을 생각을 하니까 기도 안 차는 거라. 몸은 아주 가누기도 힘들 그런 정도로 환잔데. 그래서 그 순간 그만 화가 어찌 나는지. 평소에도 이 수행을 자기는 잘 했다고 생각하는데. 하도 그 병고에 시달리니까. 늘 그 좀 마음은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내가 이렇게 수행을 잘 하는데 불법이 영험이 도대체 없느냐? 이렇게 수행 잘 하는 사람에게도 병이 이렇게 와 가지고 몸이 괴로우면 어떡하느냐?
사실은 묵은빚은 누구도 부처님도 정업난면(定業難免)이거든요. 부처님도 결국은 자기가 지은 업은 받고 돌아가셨어요. 그러니까 그래서 이제 이 무슨 불법이 영험이 있냐없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래 오랜 세월을 병고에 시달리다가 그런 지경에 이르니까 그 날은 막 사정없이 화를 낸 거야 혼자서. 아 이 막 불법이 영험이 없는가 보다하고. 내가 이렇게 수행했는데 병고에 이렇게 시달리게 하고 말이지, 그 좀 따뜻한데 좀 그냥 누워있게 하지, 바람까지 불어가지고 내 옷을 시궁창에다 멀리 날려 보내지.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냐고. 아 그럴 수도 있지 사실은. 그럴 수도 ...
지금 우리가 편한 마음으로 생각을 하면 전부 그럴 수 있습니다. 요거 잘 들어야 되요. 마음에 잘 새겨야 돼요. 편안한 마음으로 생각할 때는 어떤 일도 그럴 수 있다고 용납하고, 이해하고, 다 내가 포용을 하는데. 조금 마음에 뭐 문제가 있을 때, 병이 들었든지 마음에 병이 조금 들어 놓으면은 못 보는 거야. 아무리 시시한 것도, 정말 별거 아닌 것도 못 보는 것입니다. 화가 치밀고, 그거가지고 문제 삼고, 꼬투리를 잡아가지고, 막 그냥 크게 그냥 문제화하고 그러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아이 뭐 바람 좀 불어서 옷이 좀 날려가지 그거 뭐 있을 수 있는 일이지 그까짓거. 뭐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한데, 병고에 시달려놓으니까, 그 옷 날아간 것이 그리고 또 몸을 가누기가 힘든 상태에서 그 옷 가서 주워 올라고 생각하니까, 그만 화가 치민 거에요. 그 뭐 저 바람이 불어서 옷 날아갔는데 누구보고 화를 내요? 바람 날아가는 바람보고 화 낼거에요 어쩔거에요. 그런데 화를 낸다고요. 그러니까 사실은 그럴 수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인데, 그걸 용납을 못하고 이해를 못하고 화를 내게 된다고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늘 그렇잖습니까 사실. 편안할 때는 뭐 마음이 하늘처럼 넓지. 그런데 좁을 때는 어떻게? 바늘하나도 용납을 못해. 바늘 꽂을 그런 공간도 없는게 우리 마음이야 또. 이 사람도 그랬어요. 그래 화를 버럭 내고는 있었는데. 그러면서 막 그냥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막 하는 거에요. 삼세제불도 소용이 없고, 팔부신장도 믿을 것이 못된다. 아 이렇게까지 공부 잘하는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나를 말이지 화나게 만드느냐하고. 그러곤 할 수 없이 그날 저녁에 이제 들어와서 밤이 됐으니 잠이 들었는데 떡 이제 부처님도 비방했죠, 팔부신장 다 욕했죠. 그래놓으니까 그날 밤 꿈에 토지신이 이제 떡 꿈에 나타나 가지고 경고를 하는데 딱 이런 말을 했어요. 그 말한 대로 내가 고대로 적어놨어요.
“네가 중노릇을 하고 공부를 하여도 헛수고를 했다. 불자로서 자비로써 집을 삼고, 부드럽게 참는 것으로써 옷을 삼으라고 했는데. 자실인의(慈室忍衣)라고 이 법화경에 나오는 말이거든요. 자비로써 집을 삼고 인내로써 옷을 삼으라고 했는데. 그까짓 병을 좀 앓고 바람이 좀 불었다고 해서 진심을 일으키고 그래가지고 무슨 공부를 했다고 할 거냐? 부처님도 정업(定業)을 면하지 못하고 과보(果報)를 받으셨거늘 네까짓 초심비구일까 보냐. 네가 병이 난 것도 과거의 업보(業報)요, 바람이 분 것도 도량신(道場神)이 네 마음을 시험하려고 한 것인데.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화를 내고 신경질을 일으켜 팔부신장(八部神將)과 도량신(道場神)을 불안하게 했으니 그게 무슨 체통이냐?” 이렇게 그냥 신장이 나타나서 꾸짖었어요.
그 신장도 우리 도량신하면 대개 토지신(土地神) 도량신(道場神) 모두가 화엄신중(華嚴神衆) 속에 들어있는 그런 신중의 일종이죠. 그렇게 이제 꾸짖으면서 이 도량신이 큰 구렁이껍질을 갖다가 그 사람에게 확 씌워버리는 거에요 그만. 그래 깜짝 놀라서 깨어보니까 그새 벌써 구렁이가 돼 있어. 큰 구렁이가 돼 있는데. 아 구렁이가 돼 놓으니까 사람 말을 할 수가 있나. 참 이 기가 맥힌 일이죠. 그래서 구렁이가 된 채 할 수 없이 이제 거기서 살았어요. 그러니 이제 방 안에 살 수도 없고. 구렁이는 이제 구렁이 되면 또 구렁이에 맞게 살아야 되니까, 도량 돌담 속에 떡 이렇게 살았어요. 그래 뭐 자기가 살던데 못 떠나요. 대개 보면은. 그래서 그 돌담 속에 살았는데. 마침 그 암자가 비어 있어가지고 어떤 수행 하는 사람이 떡 이렇게 만행을 하다가 동도암에 떡 이렇게 이르게 됐어요. 그런데 큰 구렁이 한 마리가 마당에 이렇게 기어다니는 거에요. 그런데 예사롭지가 않거든. 보니까 뭐 사람을 해칠 거 같지도 않고.
오대산에 우리가 그 전에 여름에 살고 겨울도 살았는데, 여름에 보면 구렁이가 많이 있어요. 오대산 상원사에. 그 느릿느릿해. 그리고 거기서 누가 물렸다는 말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어요. 어느 정도 구렁이가 많은고 하면, 그 담구멍에 어떨 땐 머리가 두 마리도 나와 있고, 세 마리도 나와있고. 새벽에 예불하고 나오면 고무신 위에 안에도 들어가 있고...... 그 정도로 많아요. 그런데 그걸로 그 저 사납진 안 해 또. 이 구렁이가 보니까 사납진 않고 그래가지고 이 수행하는 스님이 거기 갔다 너무나도 이상하고 큰 구렁이를 보고는, 그래서 이제 당신은 자기 아는 대로 여기에 써 놓은거 있지요.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그 불자들은 무조건 축생만나면 이거 해야 돼요.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이렇게 세 번. 나무대방광불화엄경 세 번하고 또 이제 사구게를 또 일러 준거여.
그러니까 이 수행하는 스님은 자기가 알고 있는 그 축생을 제도하는데 축생의 그 업장을 면하게 하는 최고 좋은 그런 특효약을 쓴 것이 말하자면 나무대방광불화엄경이야. 그리고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요것도 화엄경 사구게. 그럼 화엄경 다 해 준거여. 화엄경설법 다 한 거야. 그렇게 이제 해 준거여. 그러니까 그것을 이제 화엄경 사구게, 화엄경 제목을 세 번 들었지, 화엄경사구게를 들었지. 그렇게 듣고는 그만 그 순간 구렁이에서 이제 해탈이 된 거에요.
그렇다고 구렁이 몸을 당장 벗은 건 아니고, 이제 이 사람하고 마음이 교감이 이제 된 거라. 그런 정도로 이제 구렁이 입장에서 해탈을 하게 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 구렁이가 부엌에 들어가 가지고 재를 찍어가지고 이 스님 앞에다 글을 쓴 거에요. 재를 하나씩하나씩 찍어가지고서 마당에다 대고 글을 썼는데, 그 글이 여기에 이제 나와 있는 글이야. 거기에 一起嗔心受蛇身(일기진심수사신) 이란 말이 있는거에요. 이 유명한 말 입니다. 금강산 동도암 이야긴데요. 그 저기 낱낱이 새기기는 그렇고 밑에 번역을 내가 다 해 놨습니다.
행봉불법득인신(幸逢佛法得人身)
다행히 부처님의 법을 만나고 사람의 몸을 얻어
이제 한문 공부하니까 보믄 다 알 수 있어요.
다겁수행근성불(多怯修行近成佛)이라.
오랜 세월 수행하여 성불이 가깝더니
송풍이 불어와 병든 사람 괴롭혀서.
내가 아까 이야기한 그 대로에요.
진심 한번 일으키고 뱀의 몸을 받았네.
그 진심 한 번 일으키고... 그러니까 이 스님은 다른 업은 지은 게 별로 없어. 다른 업을 여러 가지로 지어놓으면 우리는 어느걸 받을지 모르는데, 여러 가지 업을 지어놓은 사람은. 근데 이 스님은 화만 낸 것 그것뿐이야. 그래놓으니까 그만 재깍 받은 거야 그걸. 다른 건 받을게 없어. 다른 빚은 아무것도 없는데 이 진심 낸 그 업을 지어서 받은 거야.
천당과 불찰과 그리고 지옥도
오직 사람의 마음이 지은 바로다.
이거 저 화엄경 사구게 아까 그 화엄사상, 유심사상을 듣고 그대로 그 도리를 깨달아서 지금 하는 얘기에요. 오직 사람의 마음이 지은 바로다.
내 일찍 비구되어 이 암자에 살았는데
지금은 뱀이 되어 그 한이 만 가지라.
이 몸 뱀이 돼 놓으니까 어떻게? 생각은 뻔한데... 어떻게 그 업을 다 받아야 벗어날 판인데 그 업이 언제 끝날지를 모르는 거에요. 이제는 끝날 때가 됐어요.
차라리 내 몸을 부수어 먼지를 만들지라도
다시는 이 마음에 진심을 내지 않으리
여러분들 이제 앞으로 진심 안 내겠죠 잘. 이런 것 이제 보고 진심 안 내야 돼요.
원하건대 스님께서 인간세상 돌아가거든
나의 모습 이야기하여 뒷사람들 경계하소.
그래서 이제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것입니다.
생각은 가득한데 입으로는 말을 할 수 없어서
꼬리로써 글을 써서 이 마음 알리노니
스님께서 베껴다가 벽 위에 걸어두고
진심이 날라치면 눈을 들어 한번 보소.
아 기가 맥히지요. 이걸 당사자의 그 어떤 절절한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어요. 이거는 단순한 설화가 아니에요. 실지로 이런 일이 있었던 기록이 전해내려 오는 거에요. 그리고 이제 끝에
성 안내는 그 마음 참다운 보시오.
성 안내는 그 입에선 묘한 향기 절로 나네.
성 안내는 그 얼굴 진정한 공양이라.
기쁨과 분노 없음이 영원한 진리일세.
여 뭐 저기 그런 글 있죠.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그런 말 있죠. 그게 여기서 나간 거에요. 그 근원이. 고 밑에 한문 끝의 줄 한번 봅시다.
心裏無瞋眞布施 口中無瞋吐妙香 面上無瞋眞供養 無喜無瞋是眞常
심리무진진보시 구중무진토묘향 면상무진진공양 무희무진시진상
그랬어요. 그럼 마음과, 입과, 얼굴, 그게 뭐죠? 신 구 의 이렇게 되는 거에요. 身 口 意. 面上은 身이 되구요, 口는 口고, 심리(心裏)는 意가 되구. 마음 의자, 생각 의자.
身口意. 어디든지 속으로만 화내고 겉으로 이제 군자연 하고 화 안내는 사람도 있고, 그런데 이제 입으로만 그냥 욕을 뭐같이 퍼부으면서 또 속은 또 보면 별로 화내지도 않으면서 또 그런 사람도 있고요. 또 그냥 얼굴이 그냥 붉으락푸르락하면서 얼굴까지는 화냈는데 그래도 욕은 안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것도 장하지요. 그것도 어지간히 장해요. 그리고 그 세 가지를 다 하는 사람이 있고, 한 가지만 하는 사람이 있고, 또 두 가지만하는 사람이 있고, 각양각색이야 화내는 것도 보면은. 그 수양의 정도에 따라서 이렇게 차이가 나요. 그래놓으니까 요 밑에 경계하기를 身口意 三業 중에 뭐든지 하여튼 내지 마라. 안 내는 게 그게 좋다. 그런 식으로 경계를 했습니다. 고 이제 원문은 여러분들이 이제 맞춰서 잘 이제 살펴보십시오.
내가 왜 요 설화를 인용을 했는고 하면은 화엄경 사구게 또 대방광불화엄경이라고 하는 거 축생보고 그런 말을 일러준다고 하는게 그게 헛일이 아니라는 것. 우리 불자들은 그런 말 하도 많이 들어서 아이고 또 그런 소리한다 또 그런 소리한다. 늘 그렇게 그 저기 크게 뭐 그 효과를 생각을 안 하는데, 마음을 담아서 우리가 요런 것을 믿고 그렇게 해야 되는 거지요. 화엄경 사구게를 여러분들 뇌리에 깊이 심어드리는 데는 아마 요런 설화가 잘 어울릴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또 이 설화가 그냥 뭐 한게 아니라 바로 화엄경 사구게 때문에 이 스님이 뱀의 몸을 이걸 통해서 벗게 됐구요. 그래서 이제 곧 이제 뱀의 몸을 벗고 본래의 그 수행자로 돌아가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7쪽에....
幸逢佛法得人身 多怯修行近成佛
松風吹打病中席 一起嗔心受蛇身
天堂佛刹與地獄 唯由人心所作因
我僧比丘住差庵 今受蛇身恨萬端
寧碎俄身作微塵 更不平心起嗔心
願師還向閻浮提 說俄形容誡後人
含情口不能言語 以尾成畵露眞情
願師書寫懸壁上 欲起嗔心擧眼看
心裏無瞋眞布施 口中無瞋吐妙香
面上無瞋眞供養 無喜無瞋是眞常
다행히 부처님의 법을 만나고 사람의 몸을 얻어
오랜 세월 수행하여 성불이 가깝더니
송풍이 불어와 병든 사람 괴롭혀서
진심한 한 번 일으키고 뱀의 몸을 받았네.
천당과 불찰과 그리고 지옥도
오직 사람의 마음이 지은 바로다 .
내 일찍 비구되어 이 암자에 살았는데
지금은 뱀이 되어 그 한이 만 가지라.
차라리 내 몸을 부수어 먼지를 만들지라도
다시는 이 바음에 진심을 내지 않으리.
원하건대 스님께서 인간세상 돌아가거던
나의 모습 이야기하여 뒷사람들 경계하소.
생각은 가득한데 입으로는 말할 수 없어서
꼬리로써 글을 써서 이 마음 알리노니
스님께서 베껴다가 벽 위에 걸어두고
진심이 날라치면 눈을 들어 한번 보소.
성 안내는 그 마음 참다운 보시오.
성 안내는 그 입에선 묘한 향기 절로 나네.
성 안내는 그 얼굴 진정한 공양이라.
기쁨과 분노 없음이 영원한 진리일세.
입법계품 이것을 우리가 공부하다보면 또 요런 것은 또 경에서 놓칠 수가 있고 그래요. 그래서 이제 간간히 요런 것을 준비해서 보안해서 들려드리려고 그렇게 합니다.
오늘은 7쪽에 입삼매(入三昧)라 그랬어요. 삼은 삼매에 들어간다. 화엄경에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삼매는 해인삼매(海印三昧)입니다. 고것도 이제 나중에 화엄요의 가운데 한 가지로 설명할 기회가 있겠습니다마는 여기에서는 사자빈신삼매(獅子頻伸三昧)라 그랬어요. 빈신(頻伸)이라고 하는 말은, 사자 요 이제 뭐 스승사자를 써도 사자, 동물 사자를 뜻하는 말입니다. 사자가 하품하면서 허리를 펴는 것, 그러니까 가만히 있다가 움직이려고 할 때, 달릴려고 할 때, 하품도 하고 기지개를 펴면서 달릴 준비를 하는 그 단계, 그러니까 힘이 그냥 완전히 차오르는 그 힘이 자기 먹이를 위해서 달릴려고 할 때, 달리기 직전 완전히 힘이 충만해 있을 때의 상태를 사자빈신삼매(獅子頻伸三昧)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빈신(頻伸)이라고 그러는데, 요 이제 부처님께서 경전을 설하게 된다든지 할 때, 어떤 준비과정, 비행기가 하늘을 날려면은 처음에 이렇게 멈춰있는 상태에서 엔진을 최상으로 가동을 하지요. 최대의 출력을 내어 가지고서 그래야 그 큰 비행기가 하늘을 날 수가 있듯이 마찬가지입니다. 큰 진리의 말씀을 하실려고 할 때는 또 그런 그 마음으로부터 힘의 준비, 또 선정( 禪定)의 준비가 충분히 있어야 경을 설할 수 있다하는 그런 뜻에서 빈신삼매(頻伸三昧) 또는 사자빈신삼매(獅子頻伸三昧) 그런 이야기를 해요. 아까 우리가 뭐 사찰에서 늘 그렇듯이 법회 할 때 꼭 간단하지만은 입정(入定)을 하는 것도 우리가 듣는 사람, 설법을 하는 사람, 모두가 가만히 정신을 가다듬고 약간의 선정을 이룬 상태에서 출발을 해야 그 출발이 이제 원만하잖습니까? 그래서 이제 삼매가 여기에 이제 오게 된 것입니다.
1. 獅子頻伸三昧
爾時에 世尊이 知諸菩薩心之所念하시고 大悲爲身하시며 大悲爲門하시며 大悲爲首하시며 以大悲法으로 而爲方便하사 充徧虛空하사 入獅子頻伸三昧하시니라.
爾時에 世尊이 知諸菩薩心之所念하시고
이시에 세존이 지제보살심지소념하시고
그때 세존께서 모든 보살들의 마음에 생각하는 바를 잘 아시고
大悲爲身하며
대비위신하며
대자비로써 몸을 삼으시고
大悲爲門하시며
대비위문하시며
또 대자비로써 문을 삼으시며
大悲爲首하시며
대비위수하시며
또 대자비로써 머리를 삼으시며
以大悲法으로 而爲方便하사
이대비법으로 이위방편하사
또 대비법, 대자비의 법으로써 방편을, 이위방편(而爲方便) 방편을 삼으사
充徧虛空하사
충변허공하사
또 그 마음이 허공에 가득해서 그 마음이 대자비, 오로지 대자비죠. 대비 대비 대비 대비. 오직 부처님은 중생을 위해서 설법하는게 대자비로써 설법하는 것이지, 그 뭐 자비심이 없으면 그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그 자비가 허공에 가득하다 이 말입니다.
入獅子頻伸三昧하시니라.
입사자빈신삼매하시니라.
그래서 사자빈신 삼매에 들어가시니라
부처님이 이제 삼매(三昧)에 딱 이제 선정(禪定)에 일단 들었어요. 삼매에 들면은, 선정에 들면 세상이 어떻게 들까? 또 선정에 든 사람 삼매에 든 사람의 그 인생은 어떨까? 이걸 우리가 한 번 생각해 봐야 됩니다. 우리는 뭐 잠깐 이렇게 독서삼매에 들었다, 뭐 바둑삼매에 들었다, 아니면 뭐 기도삼매, 참선삼매, 잠깐 들었을 때는 조금 고요한 것 같다가, 그 삼매에서 벗어나면 또 시끄럽고 하는데 그런건 삼매가 아니에요. 여기서 삼매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의 삼매 속에서의 어떤 삶. 삼매를 통한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는 것. 이것이 삼매입니다. 가만있는게 삼매가 아니에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지금 살아가고 있는 가지가지 삶은 여러분들 나름대로의 삼매에 의한 삶이다. 이렇게 보면 돼요. 그거는 여러분들의 어떤 정신세계, 여러분들의 나름의 그 마음의 세계가 말하자면 여러분들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죠. 여러분들 마음..
(끊어짐)
여러분들 삶이 그 속에 이미 아로새겨져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런 시간을 여러분들이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내 삼매대로 내 인생을 살아가는 거에요. 내 정신 속에서 무엇을 생각하느냐 하는 것.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내 인생이 펼쳐진다고요. 그 자기 인생 펼쳐나가는거 보면은 그 사람 생각 알 수 있고. 그걸 이제 여기서는 삼매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 알아야 돼요. 그러면 뭐 부처님이 삼매에 들고 나서 어떤 현상이 벌어졌는가? 그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삼매라는건 생각하는 거에요. 우리의 생각을 내 인생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내 인생이 전개돼 나가죠. 내 인생이 계속 전개돼 나가요. 그 전개돼 나가는 것도 내 생각하는 것에 따라서 달라요. 각양각색이에요. 그러니까 수많은 사람이 이 세상에 있지만은 그 사람의 인생이 전부 다르잖습니까? 다 다르다고요. 정말 가지가지야. 여기 뭐 화엄경에서 지난 시간에 있었지만 정말 가지가지의 삶과 가지가지의 생각과 가지가지의 행동과... 그래서 인생이 가지가지로 나눠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가지가지냐? 삼매에 따라서 다 달라진다. 이렇게 우리가 일단 정리를 해 놓고요.
그 다음 “대장엄누각(大莊嚴樓閣)”이라고 하는 제목 밑에 보면
2. 大莊嚴樓閣
入此三昧已에 一切世間이 普皆嚴淨하니 于時에 此大莊嚴樓閣이 忽然廣博하야 無有邊際하며 金剛爲地하고 寶王覆上하며 無量寶華와 及諸摩尼로 普散其中하야 處處盈滿하며 瑠璃爲柱에 衆寶合成하야 大光摩尼之所莊嚴이며 閻浮檀金과 如意寶王으로 周置其上하야 以爲嚴飾하며 危樓逈帶하고 閣道傍出하며 棟宇相承하고 牕闥交暎하며 階墀軒檻이 種種備足하야 一切皆以妙寶莊嚴하니 其寶가 悉作人天形象하야 堅固妙好가 世中第一이라 摩尼寶網으로 彌覆其上하며 於諸門側에 悉建幢幡하니 咸放光明하야 普周法界하며 道場之外에 階鄧欄楯이 其數無量하야 不可稱說이나 靡不咸以摩尼所成이러라.
入此三昧已에 一切世間이 普皆嚴淨하니
입차삼매이에 일체세간이 보개엄정하니
이 삼매(三昧)에 들어가고 나니까, 말 이자(已)는 들어가고 나니까, 일체세간(一切世間)이, 모든 세상이 보개엄정(普皆嚴淨)하더라. 널리 다 아주 장엄(莊嚴)하고 청정(淸淨)하게 되었더라. 그러니까 부처님은 부처님의 생각이 이러한 사자빈신(獅子頻伸)이라고 하는 그 말속에 많은 뜻이 다 포함되어 있지요. 그 삼매에 들어가고 나니까 부처님의 인생은 부처님의 살아가는 그 삶은 아주 아름답게 펼쳐진다 보개엄정. 아주 아름답게 펼쳐진다 이거야. 그리고 그 어느 한 장소만이 아니고 부처님이 가는 곳마다, 부처님이 있는 그 세상 그 어디까지도, 끝까지 너무 아름답게 잘 장엄이 돼 있더라. 하는 그런 말입니다. 그럼 그 다음은 장엄이야기만 하는 거에요. 결국은 장엄이야기만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생각이 그렇다보니까 그 생각 속에서 펼쳐지는 부처님의 인생은 장엄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그 우리가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게 제일 중요합니다. 그게 아까 말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지요. 내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 하는 것. 그 마음먹는 대로 내 인생은 펼쳐지게 돼 있고, 그리고 이미 내가 겪고 있는 삶은 결코 다른 사람에게 원망할게 아니고, 결국은 그것은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이 그렇게 만들어놨다라고 하는 것. 제발 그렇게 생각해야 돼요. 우리가. 이치가 그렇습니다. 이건 뭐 내 마음 편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면 또 마음도 편해요. 왜냐? 왜 편하냐? 이치가 그러니까. 이치대로 생각했으니까 편할 수밖에 없어요. 그 이치가 그래요 또. 이치가 그렇고 이치대로 생각하다보니까 마음도 편해요. 마음도 편하다고. 여기에 펼쳐지는 부처님의 생각 그 생각 속에 표현되는 부처님의 세계는 뭐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세계에요. 너무나도 휘황찬란하고 그런 세계지만 한 번 우리가 엿보고 넘어가야지요. 그런 그 부처님의 삼매에 들고나니까 세상이 전부 아름답게 꾸며졌더라. 그 어떻게 꾸며졌냐?
于時에 此大莊嚴樓閣이 忽然廣博하야
우시에 차대장엄누각이 홀연광박하야
그때 대장엄누각(大莊嚴樓閣)이 홀연광박(忽然廣博)해서 대장엄누각이 크게 장엄해 놓은 그런 누각이 있었는데 그 누각이 홀연히 넓어져버려 크게.. 이 집도 넓어졌으면 좋겠는데 이건 땅에... 광박 아주 넓어지더라. 홀연히 넓어지더라. 갑자기 어느 순간 그냥 아주 뭐 허공처럼 툭 터져지더라.
그래서
無有邊際하며
무유변제하며
무유변재야. 변재가 없다. 가:(테두리)이 없다 이거에요 가:이. 경계가 없다.
金剛爲地하고
금강위지하고
그리고 다이아몬드로 땅이 됐어. 부처님이 그러니까 생각이 그러니까 그냥 온 세상이 다이아몬드야. 그렇다고 뭐 땅이 변해가지고 다이아몬드 됐다는게 아니라, 그 누가 봐도 다이아몬드... 그것도 사실은 순전히 우리 주관의 문제에요. 순 우리 생각문제라고. 정말 진짜 다이아몬드라 해도 다이아몬드가 필요 없는 사람에게는 그거 아무 가치 없는 거에요. 다이아몬드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다이아몬드야 사실은. 그러니까 내가 늘 이야기하지마는 인도라고 하는 땅은 우리나라보다도 더 척박한 땅이야. 그런 척박하고 돌짝은 많고 모래 많은 그런 땅에, 그런 땅에 부처님이 그 땅이 변한 것은 아닌데 그 땅이 다이아몬드로 보이더라 라고 하는 것. 그것은 부처님의 마음이 그만치 아름답게 장엄이 돼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만치 세상을 보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거에요. 그래 우리가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요. 세상이 아름답습니다. 세상이 좋다고 생각할 줄 아는 그런 마음이 준비돼 있는 사람에게는 세상이 좋아요. 참 좋다고요 세상. 그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부정적으로 볼 게 아니라, 늘 긍정적으로 보는 그런 마음자세 그걸 이제 가져야 되는 거지요. 부처님은 그런 마음이 준비돼 있으니까 다이아몬드로 땅이 됐고.
寶王覆上하며
보왕부상하며
보왕부상이라. 보밴데 왜 왕자를 썼는고하니 보배 중에 최고가는 보배로써 그 위에 덮었다. 누각위에 척 이렇게 덮었더라. 땅은 밑에 있으니까. 다이아몬드로써 땅이 깔려있고 최상의 보배로써 위에 저 이렇게 치장을 했고.
無量寶華와
무량보화와
무량보화. 한량없는 보배 꽃과.
及諸摩尼로
급제마니로
그리고 마니도 이제 여의주를 마니라고 그래요. 여의주로써.
普散其中하야
보산기중하야
보산기중이라. 보배로 된 꽃과 그리고 여의주를 가지고 곳곳에다 그 가운데다 보산(普散) 널리 흩었더라. 무슨 뭐 한 평만 흩은게 아니고, 백 평 천 평만 흩은게 아니고, 온 세상에다 전부 여의주를 그냥 다 흩어놨어. 곳곳에 여의주 천지니까 누가 주워갈 일도 없고, 주워갈 필요도 없는 거죠.
處處盈滿하며
처처영만하며
처처영만하여 곳곳에 그 여의주가 그냥 흘러넘쳐.
瑠璃爲柱에
유리위주에
또 유리로 기둥이 되고.
衆寶合成하야
중보합성하야
여러 가지 보배로써 합성을 해 가지고서.
大光摩尼之所莊嚴이며
대광마니지소장엄이며
크게 빛이 나고 있는 마니주로써 장엄한 바이며
閻浮檀金과
염부단금과
염부단금. 이 금 이름이여. 염부단금이라고 하는 금. 아주 최상의 금이죠.
또
如意寶王으로
여의보왕으로
여긴 아예 마니라고 하질 않고 여의라고 번역을 바로 해 버리네. 마니라고 하는 말도 여의라는 뜻입니다. 마음대로 되는. 떡 나오라면 떡 나오고, 밥 나오라고 하면 밥 나오고 하는. 그게 여의봉 그러죠. 여의봉. 여의보라고 하는 것도 이제 그런 것입니다. 여의보왕으로써
周置其上하야
주치기상하야
주치기상이라. 그 위에 또 두루두루 두어서 펼쳐두어서.
그래서
以爲嚴飾하며
이위엄식하며
잘 꾸몄고
危樓逈帶하고
위루형대하고
위루(危樓)라고 하는 것은 높이 솟은 누각을 이야기 하는 거에요. 아주 그 말하자면은 난간이 이렇게 위태롭게 밑에서 보면 아주 그 위태롭게 보이는 그런 아주 그 아름답게 꾸며놓으면 이제 그렇죠. 그런 누각이 멀리까지 이렇게 두르고 있고.
閣道傍出이라
각도방출이라
돌아가면서 누각의 그 길이 옆으로 옆으로 절로 높이 눅각에 다닐 수 있는 길들이 옆으로 나 있더라.
그리고
棟宇相承하고
동우상승하고
동우가 상승이야. 요건 이제 제일 위에 있는 대장엄누각 대장엄누각이니까 그 누각을 이제 설명하는 거에요. 구석구석 설명하는데, 그 누각을 보조하는 옆에 있는 뭐 기둥이라든지, 또 작은 집들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전부 연결이 연결이 돼 가지고 그 큰 누각이 있으면 그 주변으로 이제 돌아가며 회랑이라든지, 작은 누각이라든지, 작은 전망대라든지, 뭐 이런 것들이 아주 누각하나만 우뚝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보조적인 것들이 죽 이렇게 둘러쳐져있는 그런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牕闥交暎하며
창달교영하며
창달교령이라. 요거는 창문이에요. 누각에 또 문이 있어야지요. 창문들이 서로서로 이렇게 마주보고 있는 거에요. 이쪽 창문을 열면 저쪽 창문하고도 마주보이고, 저쪽 창문하고도 마주보이고 전부 이제 서로서로 이렇게 연결이 돼 있고.
階墀軒檻이
계지헌람이
또 계지(階墀). 요건 이제 섬돌 지자(墀)에요 섬돌 계(階), 계단 계(階), 섬돌 지(墀) 그러는데 계지헌람(階墀軒檻) 섬돌과 계단과 난간과, 요 람자(檻)도 이제 난간에 조그만한 그 정자 같은 거. 난간 옆에 나 있는 정자 같은 그런 것들이
種種備足하야
종종비족하야
종종비족이야. 가지가지가 다 갖췄어. 그 모양새가 어떻게 그렇게 아름답게 잘 꾸며져 있는지. 예를 들어서 뭐 우리 세상에 있는 누각 궁전 이런 것을 말한다면 글쎄 자금성의 한 만 배쯤 될까. 자금성의 ... 그렇게 이제 여러 가지가 다 조건이 잘 갖춰져 있고
一切皆以妙寶莊嚴하니
일체개이묘보장엄하니
전부 아무거나 뭐 시시한 나무나 도구로 쓴 게 아니고 전부가 아주 아름다운 보배로써 장엄을 했더라. 이게 다른 세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인데 우리 마음이 아직도 이렇게 밝아지질 못했어요. 부처님 마음은 이렇게 환히 밝아져놓으니까, 모든 것이 이렇게 소중하게 보이고 값지게 보이고, 아름답고 소중하고 미증유같이 정말 신기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입니다. 가능하면 같은 값이면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아름답고 소중하고 값지게 보면은 그 사람은 값진 세상에 사는 거고. 아이 시시하다. 에이 더러운 세상이다 하면은 그 사람 더러운 세상에 사는 사람이에요.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좋은 세상에 사는 그거에요. 그 부처님은 정말 이 세상을 너무나도 아름답고 다이아몬드같이 소중한 그런 세상으로 본 거에요. 잘못 본 것이 아닙니다. 그만치 가치 있고 소중하게 본거에요. 그러니까 저 모든 사람들을 전부 부처님같이 존경하고, 부처님으로 생각을 하고, 그렇게 사는 거지요. 그러면 자기만 좋은 거지요. 그러면. 그렇게 못 보는 자기 인생을, 그래 자기가 처해있는 이 세상을, 그렇게 소중하고 값지게 못 보는 사람은 못 보는 사람만 손해인거에요 사실은.
其寶가 悉作人天形象하야
기보가 실작인천형상하야
그런데 그 보배들이 전부 사람의 형상을 갖췄다. 사람이나 천상의 형상을 지었다. 실자(悉) 다 그렇게 만들어져있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뭐 이렇게 보배형상을 해도 뭐 동물형상, 사람형상 뭐 이런 거 있는데, 전부 사람형상으로 이렇게 해 가지고서. 말하자면 사람처럼 소중하게 그렇게 이제 보인다는 그런 의미가 있지요.
堅固妙好가 世中第一이라
견고묘호가 세중제일이라
그래서 견고묘호가 세중제일이라. 견고하고 묘하고 좋은 것이 世中에 세상에선 제일이더라.
摩尼寶網으로 彌覆其上하고
마니보망으로 미부기상하고
마니보배 그물로써. 요것도 저 마니보배로 가지고요 전부 그물을 짰어요. 그물에 뭐 마니보배 뭐 한두 개를 이렇게 박아놓은 정도가 아니고, 전부 완전히 그물을 짜 가지고서. 그 궁전, 대장엄누각궁전을 완전히 그 그물로 이렇게 덮었습니다. 그 아주 뭐 멋있게 옷 입는 사람들 보면 더러 그러데요. 보면은. 속에 옷 입고 그물 같은 옷도 하나 걸치데... 그러니까 제석천에도요. 제석천 제망중중(帝釋天 帝網重重) 우리가 예불할 때 제망중중(帝網重重) 그러지요? 그건 이제 제석천의 궁전을 덮고 있는 그물을 이른 말입니다. 그런데 그 그물에는 마니주로써 그물을 짰는데, 그게 이제 그물의 구슬 구슬이 전부 서로 반사가 돼요. 그러면 다른 한 구슬에 다른 모든 구슬이 거기 비추고, 이쪽 구슬에도 또 다른 구슬이 또 비치고, 이렇게 해서 중중(重重)이야. 중중중중중중하고 무진무진무진하다 그런 표현을 하거든요. 중중중중중중이에요. 그렇다고 중(僧)만 있단 뜻이 아니고 거듭거듭거듭거듭 반복해서 그 구슬에 쌓였다. 이건 이제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 거울을 한두 개나 이렇게 세 개나 겹쳐놓고 이렇게 보면은 전부 그 그림자가 첩첩이 쌓이지요. 그런 식으로 돼 있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제석천에도 마니보배로써 그물을 짜서 덮었고, 여기에 대장엄누각 지금 우리 공부하는 여기 바로 대장엄누각 제목이 바로 대장엄누각인데 그 대장엄누각 위에도 그물을 짜 가지고 덮었다. 그 그물은 마니보배로써 짰더라.
於諸門側에 悉建幢幡하니 咸放光明하야
어제문측에 실건당번하니 함방광명하야
어제문측(於諸門側)에. 그리고 모든 문 옆에는 실건당번(悉建幢幡)이라. 깃대를 전부 세워놨어. 깃대를 착 세워가지고 깃대에서 깃발이 펄럭이고 멋있죠. 깃발이 펄럭이고. 뭐 아시안 게임한다고 깃발 걸어놓고 야단이죠. 그런 식으로 깃발이 펄럭이고. 그런데 그 깃발에서는 함방광명(咸放光明)이야. 전부 광명을 발하고 있어. 광명을 놓고 있어. 저~ 빛난다 그거에요. 그 깃발에.
普周法界하며
보주법계하며
보주법계라. 어느 한 곳에만 그런게 아니고, 곳곳에 그 법계에 두루두루 그런 풍경이 펼쳐져있더라.
道場之外에
도량지외에
도량 밖에는. 그리고 도량 밖에는.
階鄧欄楯이 其數無量하야
계등난순이 기수무량하야
계등(階鄧). 계단 계자(階), 계단 등자(鄧)입니다. 계등난순(階鄧欄楯)이 계단과 난간들 난순(欄楯)이라고 하는 것은 계단 옆으로 쭉 이렇게 옛날에 잘 지은 정자(亭子) 보면은 그 갈수록 난간(欄干)이 착 이렇게 아름답게 펼쳐져있죠. 그 뭐 대웅전(大雄殿) 같은데 가도 역시 이제 그렇게.. 2층 뭐 3층 지어놓으면 난간이 그렇게 있게 마련이죠. 난순이 기수무량(其數無量)이라. 그 숫자가 한량이 없어.
不可稱說이나
불가칭설이나
가히 그게 얼마나 많다라고 일컬어 말할 수 없으나
靡不咸以摩尼所成이러라.
미불함이마니소성이러라.
미불함이마니소성이더라. 마니주로써 이루지 아니한 바가 없더라. 전부 마니주 구슬 중에서는 이 마니주가 그렇게 좋은가 봐요. 여의주니까 뭐 뜻대로 되는 구슬이니까 좋을 수밖에요. 그 마니주로써 전부 그렇게 만들어져있더라.
여기 또 그런 장엄 이야기가 아주 계속되는데. 이와 같이 참 나는 참 화엄경이 좋다고 하는 점이 바로 이런데 있구나. 그래 이 화엄경의 그 이러한 표현이 우리 마음에 이제 어떻게 이해가 돼야 되느냐? 이게 도대체 이런 세상이 어딨냐 말이야. 지금같이 과학이 발달하고 아주 물질이 풍요로와가지고 그냥 감당을 못하는 이런 시대에도 이런 걸 만들지도 못하고, 도대체 이런게 있지도 않고, 어떤 부잣집에도 이렇게까지 해 놓은 것은 세상에 아직도 없는데, 무슨 도대체 이런 이야기가 어디 있느냐? 삼천 년 전 말이지. 그 저 그 문명 물질은 아직도 미개했던 그 시대에 어떻게 이런 모습을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었느냐? 바로 그겁니다. 그게 이제 사실은 현상이 어떠냐라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현상을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보느냐? 어떤 마음으로 보기에 그 현상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느냐. 나는 이거 참 요즘 잘 쓰는 샤프펜 이게 저 0.9mm짜리거든요. 옛날에는 샤프펜 우리나라에서 나온 것 0.6mm 0.5mm짜리 쓰면은 자꾸 부러지고 부러지고 그러는데. 이 0.9mm가 돼서 안 부러져. 그리고 이건 국산이 아니고 일제야. 그런데 아주 좋아해가지고 나만 쓰는게 아니라 우리 은해사 스님들에게 선물도 많이 하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이게 보통 좋은게 아닌데 하도 쓰니까 시들해. 시들하다고요. 쓰면서 늘 좋다고 생각하지만은 그렇게 아주 신기하게 그렇게 좋게 느껴지지가 않는 거야. 왜냐? 뭐 가면 얼마든지 살 수 있으니까. 여 상점에 가도 얼마든지 사고. 그 흔하니까. 그런데 사실은 이게 옛날에 아주 정말 귀할 때 이거 하나 만났으면은 이거 아마 쓰지도 않고 올려놨을 거야 어디다. 올려놓고 한 번씩 내려가 구경만하고 만지는 것도 조금만 만지고 놔두고 아마 그랬을 거에요.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하는 그런 자세에 따라서 얼마나 소중하냐 하는 거에요.
결국 이 세상에 소중한 물건은 따로 없습니다. 절대 없어요. 사람도 소중한 사람 따로 없습니다. 모두 소중한 사람이야. 모두 소중한 사람이고, 모두 소중한 물건이고. 내가 지난 시간에도 그랬죠. 사람입장에서 보면 쌀이 소중하지만, 쌀하고 겨의 입장에서 보면 겨도 쌀 못지않게 소중해. 겨가 없으면 쌀이 없어. 또 겨는 쌀을 만들기 위해서 또 존재하는 거야. 그럼 어느게 더 가치 있다고 도저히 누가 판단할 수가 없는 거에요. 그럼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소중하지 않은게 없습니다. 똑같이 소중해요.
담 쌓을 때 어떻게 하는지 압니까? 돌담 쌓을 때요. 큰 돌만 쓰는게 아니에요. 작은 돌을 꼭 필요한데는 작은 돌을 쓰는데, 작은 돌이 없을 때 어떻게 합니까? 큰 돌을 깨 가지고 작은 돌 쓰는 거에요. 그런데서도 우리가 눈을 좀 떠야 돼. 절대 뭐 그게 어느 것이 큰 돌이 더 좋다, 작은 돌이 좋다 그게 없습니다. 똑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어요. 큰 돌을 희생해서라도 작은 돌 만들어야 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어느 것이 더 귀해요? 꼭 큰 돌이 귀하다면 왜 큰 돌 깹니까? 큰 돌 깨서 왜 작은 돌 만드느냐고요. 정말 큰 돌이 귀한 거라면 안 깨야지. 작은 돌이 쓰일 때는 작은 돌이 귀한거야. 작은 돌이 소중하다고요. 세상일은 그래 돼 있습니다. 그걸 이제 우리는 모르고 우리는 그저 우리 잣대로 우리 식대로 우리 안목만 가지고 자꾸 비추니까 뭐가 안 맞아. 안 맞고 그냥 불평불만 투성이고, 속상한 것 투성이고 이제 그런데. 부처님은 툭 터진 마음을 가지고 사물 하나하나를 보니까 전부 다이아몬드고, 전부가 마니주고, 전부가 여의주고, 일체가 보배고, 너무 현재 있는 그 모습 그대로가 너무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거에요. 현재 있는 그 모습.
이 순간이요 여기 저 화엄경을 설할 때 어떤 줄 압니까? 인도. 그 화엄경 이게 이제 결집은 나중에 됐지만은 이 무대는 부처님이 성도하시고 바로 21일동안, 성도하시던 그 날부터 21일 동안 설하신 것이다. 그렇게 돼 있잖아요. 그럼 그때는 신도가 한 사람도 없었어. 신도가 없으니까 절 지어준 사람도 없었어. 기껏해야 나무 밑에서 길상초라고 하는 그 풀, 부처님이 그 깔고 앉았던, 부처님이 그 깔고 앉았다고해서 길상초라고 했어 또 그것도. 그 무슨 풀인지 알 수가 없지 뭐. 아무 풀이나 그냥 옆에 있는거 손에 그것도 낫도 없어가지고 손으로 뜯어가지고 그걸 깔아가지고 거기에 앉아있었어요. 순전히 그것뿐입니다. 거기에 가보면 부다가야 내가 몇 번 가 봤지만은 거기에 아주 척박해 가지고 농토도 잘 안돼요. 곡식도 잘 안 되는 그런 지역이라. 그런 지역에서 이렇게 아름답게 화려하게 그려놨다고요. 그 자리에 앉아가지고 토굴하나 없어 뭐. 오두막하나 없고 초가집하나 없는 그 자리에 앉아가지고 이렇게 그려놨는데. 그건 어째서 그러냐? 그 다 뭐 꿈속을 헤매고 무슨 환상에 사로잡혔냐? 아니에요. 깨닫고 보니까 이 세상이 너무 아름답고 소중해. 하나하나가 전부 신기하고 값지고 소중해. 제발 중생들이여!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 정말 소중하고 값지다는 걸 좀 알고 살아라. 그런 뜻입니다.
그 눈을 뜨면은 정말 눈을 뜨면은 그렇게 값지고 소중한 거에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눈을 뜰려고 자꾸 생각안하고 그저 밖에서 찾는 거에요. 자꾸 밖에서 찾는 거에요. 요즘 뭐 선전하는데 보니까 뭐 티베트 스님들이 쫙 나오면서 안을 보라 이러던가요? 안을 보라. 안을 보라. 그 티베트 스님들이 만행하는 거 모습 여럿이 이렇게 나오더라고요. 좌선하는게 떡 나오고. 얼른 보니까 거기는 안을 보라 아주 참 선전이 좋아. 안을 보면 안에 모든 문제가 다 있다. 안에 해결책이 다 있다. 그래 아름다운 세상도 전부 내 안에서부터 내 마음속에서부터 전부 펼쳐지는 거에요. 절대 밖에 있는게 아니에요. 여러분들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 하지만은 그거 모르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모르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야. 불교도 뭐 불교 좋아하는 사람이 좋지. 불교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야. 불교 때문에 뭐 얼마나 속상한 사람이 많은데... 불교 잘 되면은 아주 속상한 사람 많다고요. 그거도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결국은 일체유심조야 일체유심조. 참 이 한마디는 만고의 명구야. 일체유심조.
그러니까 내 행복도 내가 행복하게 만들어가면 행복하고, 내가 행복하게 만들어가지 못하면은 내 인생도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니다. 이것도 뭐 정말 불자들은 그런 상식을 너무 잘 알고계시죠. 얼른 마음이 그렇게 돌아가진 않더라도요. 그래도 의식적으로 늘 우리는 훈련을 쌓아야합니다. 훈련을 쌓아야 돼요. 이 대목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나는 별을 세 개나 붙여놨어요. 대장엄누각 크~~~! 이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무슨 거짓말 같기도 하고, 무슨 만화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은 아닙니다. 바로 깨달음의 안목으로 인생과 세상을 볼 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이 인생은 그렇게 값지고 소중하고 아름답다. 그런 뜻이 이 속에 포함돼 있습니다.
그 다음에 이제 종종보장엄(種種寶莊嚴)이라. 가지가지 보배로 또 장엄되었다. 요 이제 그런 맥락에서 여러분들이 이제 소화를 하시면 되겠어요.
3. 種種寶莊嚴
爾時에 復以佛神力故로 其逝多林이 忽然廣博하야 與不可說佛刹微塵數諸佛國土로 其量正等하며 一切妙寶로 間錯莊嚴하며 不可說寶로 遍布其地하며 阿僧祇寶로 以爲垣牆하며 寶多羅樹로 莊嚴道側하고 其間에 復有無量香河가 香水盈滿하야 湍激洄澓하며 一切寶華가 隨流右轉하야 自然演出佛法音聲하며 不思議寶인 芬陀利華가 菡萏芬敷하야 彌布水上하며 衆寶華樹를 列植其岸하며 種種臺榭의 不可思議가 皆於岸上에 次第行列하야 摩尼寶網之所彌覆며 阿僧祇寶가 放大光明하며 阿僧祇寶로 莊嚴其地하며 燒衆妙香하야 香氣氛氳하니라.
爾時에 復以佛神力故로
이시에 부이불신력고로
그때 다시 부처님의 신력을 쓴고로 부처님의 신력(神力), 신통력으로
其逝多林이 忽然廣博하야
기서다림이 홀연광박하야
그 서다림(逝多林), 말하자면 이 화엄경이 설해진 장소죠. 그 서다림이 홀연광박(忽然廣博)이라. 또 확 홀연히 광박(廣博) 아까 홀연히 넓어졌다 그랬죠? 여기도 이제 넓어졌다. 널찍하게 됐다. 이 말이에요. 서다림이 지금 거기 그 기원정사가 있던 터인데 지금 제일 넓어요. 그런데 여기서 말한 것은 그 보다 더 아주 툭 터져버렸다 이거지.
與不可說佛刹微塵數諸佛國土로 其量正等하며
여불가설불찰미진수제불국토로 기량정등하며
여불가설불찰미진수(與不可說佛刹微塵數) 모든 불국토와 더불어 그 양이 정등(正等) 똑같더라. 이 말이야. 말로 이루 설명할 수 없는 먼지와 같은 많고 많은 세계로 더불어 그 양이 똑같이 그렇게 서다림이 기원정사가 그렇게 툭 터져 넓어졌다.
一切妙寶로 間錯莊嚴하며
일체묘보로 간착장엄하며
그리고 일체 묘한 보배로써 간착장엄(間錯莊嚴)이라. 사이사이에 장엄했더라.
不可說寶로 遍布其地하며
불가설보로 변포기지하며
불가설보(不可說寶)로 이루 말할 수 없는 보배로써 변포기지(遍布其地)라. 그 땅에 두루두루 다 펼쳤더라. 아까는 누각(樓閣) 설명이고. 누각에서 밖으로 나와 가지고 누각은 서다림에 있으니까 서다림(逝多林)이라고 하는 그 땅 설명이야. 그 땅에 두루두루 펼쳐져있고.
阿僧祇寶로 以爲垣牆하며
아승지보로 이위원장하며
아승지보배(阿僧祇寶貝)로써 이루 말 할 수 없는 보배로써 이위원장(以爲垣牆). 담 원자(垣), 담 장자(牆)입니다. 말하자면 담을 그래도 또 쳐야 누가 못 들어오게 하는 사람도 없지만은 담을 그렇게 쳐야 아름답거든요. 담을 그렇게 만들어놨고.
寶多羅樹로 莊嚴道側하고
보다라수로 장엄도측하고
또 보다라수(寶多羅樹), 보배로 된 다라수(多羅樹)로써 장엄도측(莊嚴道側)이라. 길가에 도측(道側)에, 길가 쭉 이렇게 가로수로 만들었더라 이 말이야. 가로수도 전부 보배로 된 거에요. 보배 가로수가 길을 장엄하고 있고.
其間에 復有無量香河가 香水盈滿하야
기간에 부유무량향하가 향수영만하야
그 사이에 부유무량(復有無量)하노라. 가로수만 있으면 재미없지요. 그 옆으로 물이 흘러야지 물이 흘르는데 뭐가? 향하(香河), 한량없는 향기로운 물이 향수영만(香水盈滿)이야. 향기로운 물이 철철 흘러넘치고 있어. 향수(香水)가 영만(盈滿)이야. 여러분들 향수 뭐 조그마한 손가락만한거 조그만 병에다 겨우 하나 가지고 있죠. 여기는 그냥 큰 강에 향수(香水)가 그냥 철철 흘러넘치는 거야. 향수가 영만(盈滿)하야. 이 향수 아무리 써도 머리 안 아픈 향수에요. 그 아주 화학으로 만든 화학작용으로 만든 향수는 맡으면 머리아파도 이거 아무리 맡아도 아무렇지도 않은 그저 향기만 날뿐인 그런 향수입니다.
湍激洄澓하며
단격회복하며
그리고 단격(湍激), 요건이제 말하자면 물여울을 말하는 거에요. 여울 단(湍), 여울 격(激). 물이 여울져 흐르면서 또 회복(洄澓) 빙빙 돌기도 하고. 향수(香水)가 막 흘러가면서 이렇게 여울도 지기도하고, 천천히 흐르기도 하고, 그리고 휘휘돌기도 하고. 하며.
一切寶華가 隨流右轉하야
일체보화가 수류우전하야
일체보화(一切寶華)가 일체보배로 된 꽃이 수류우전(隨流右轉) 흐름을 따라서 오른쪽으로 돈다. 그 부처님도 우리가 돌때 오른 쪽으로 돌고, 탑을 돌 때도 오른쪽으로 돌고. 오른쪽으로 회전하는게 그게 이제 그 말하자면 길상스러운 그런 모습이다 하는 것입니다.
自然演出佛法音聲하며
자연연출불법음성하며
그래서 자연연출불법음성(自然演出佛法音聲)하며. 불법 부처님의 법의 음성은 저절로 거기에서 흘러내려오며 연출하더라.
不思議寶인 芬陀利華가 菡萏芬敷하야 彌布水上하며
불사의보인 분타리화가 함담분부하야 미포수상하며
그리고 부사의 보배인, 불가사의 보배인 분다리화 요건 연꽃중의 한 가지지요. 분다리화. 분다리화가 함담분부(菡萏芬敷)하고 연꽃봉오리 함(菡), 연꽃봉오리 담(萏), 또 향기로울 분(芬), 펼 부(敷). 아주 그 연꽃봉오리가 향기롭게 펼쳐져있고. 그리고 미포수상(彌布水上)하며 물 위에 그 연꽃들이 죽 이렇게 펼쳐져있지요. 연꽃은 의례히 물 위에 떠 있지 않습니까? 그래 미포(彌布), 가득히 떠 있다 이 말이야. 연꽃 밭에. 요즘 우리나라도 연꽃 밭이 아주 유행이데요. 그 물위에 그 연꽃, 그 향기로운 연꽃봉오리들이 가득히 펼쳐져있으며.
衆寶華樹를 列植其岸하며
중보화수를 열식기안하며
중보화수(衆寶華樹)를 온갖 보배로 된 여러 가지 보배로된 꽃과 나무들을 열식기안(列植其岸)이라. 그 언덕에다가 죽~~ 펼쳐가지고 나열해가지고 심어놨으며.
種種臺榭의 不可思議가 皆於岸上에 次第行列하야
종종대사의 불가사의가 개어안상에 차제행렬하야
전망대 사자(榭)입니다. 전망대 될 때 전망대 사자(榭). 전부 전망대에요. 가지가지 그러니까 언덕에 죽 이렇게 있는데, 나무가 있고 언덕이 있고, 이걸 그림으로 그려도 좋을 그런 내용이에요. 그 사이사이에 가다가 또 어떻게? 전망대가 있어야지. 앉아서 쉴 데가 있어야 되고. 바라보는 전망대가 있어. 가지가지 전망대의 불가사의(不可思議)라. 불가사의한 그런 전망대들이 개어안상(皆於岸上)에 차제행렬(次第行列)이야. 그 언덕위에 쭉 이렇게 펼쳐져 있는 거야. 그 가다가 쉬기는 뭐 일도 아니지요. 언제든지 가다가 쉴 수 있는 그런 전망대가 사이사이에 죽 이렇게 있고.
摩尼寶網之所彌覆며
마니보망지소미부며
마니보망지소미부(摩尼寶網之所彌覆)며 전부 마니구슬로 만들어놓은 보배 그물로써 그 전망대 위에 전부 덮었어. 장엄이 모양이 좋죠 그러니까 아주. 너무 아름다운 그런 그 마니보배로써 전부 덮었다 이겁니다. 아승지보가 뭐 거기서 구슬 따갈라면 얼마든지 따가고 뭐 맘대로 알아서하라는 거죠.
阿僧祇寶가 放大光明하며
아승지보가 방대광명하며
아승지보배가 방대광명하며 큰 빛을 이제 거기서 또 놓고 있는 거야. 거기에 이제 그물에 있는 보배, 그 보배에서, 수도 없는 보배에서, 빛을 그냥 그 나름대로 전부 번쩍이고 그렇게 있다.
阿僧祇寶로 莊嚴其地하며
아승지보로 장엄기지하며
아승지보배로 장엄기지하며 그리고 또 그 언덕에 언덕을 이루고 있는 그 땅은 전부 온갖 보배를 가지고서 그 언덕에 땅이 돼 있다.
그리고
燒衆妙香하야 香氣氛氳하니라.
소중묘향하야 향기분온하니라.
그리고 소중묘향燒衆妙香하야 여러 가지 아름다운 향을 피워가지고서 향기분온香氣氛氳하더라. 향기가 자욱하더라. 분온(氛氳). 자욱할 분(氛), 자욱할 온(氳). 향기가 분온하더라. 안에 이제 분자(氛)가 있잖아요. 또 안에 이제 또 온자(氳)가 있으니까 향기가 자욱하다.
그러니까 여기 이제 서다림에 서다림을 여기서 얘기하고 있어요. 서다림이 있고. 그 서다림은 땅이 넓고, 그 서다림 주변에는 담이 쳐져있고, 또 언덕이 있고, 강이 있고, 그 강에는 향수가 흐르고, 그 강 따라서 죽 언덕이 있는데 언덕위에는 뭐가 있다? 누각이 사이사이에 쉴 수 있는 누각이 쭉~~~ 이제 수도 없이 펼쳐져있고 그 누각 위에는 또 마니보배로써 이렇게 덮었고, 또 그 언덕위의 땅은 전부 말하자면은 그물로써 보배로써 이루어져있고, 그리고 또 그 땅에 아름다운 향을 피워가지고서 향기가 또 자욱하고 하는. 아주 이 세상에서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이 안 되는 그런 아름다운 광경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기 저 그 아미타경을 흔히 우리가 이야기를 하는데요. 그건 이제 극락세계. 그건 이제 아미타부처님 입장으로 이야기하면은 극락세계가 이상세계다. 이렇게 이제 하구요. 그런데 이 화엄경은 이제 화장세계를 이상세계라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아미타경에도 보면은 뭐 그 땅에 뭐 보배로 되고, 뭐 여러 가지 이제 극락세계 장엄을 이야기했는데, 화장세계를 장엄한 설명하고는 비교가 안 되지요. 책이 양도 얼마 안 될뿐더러
그 설명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여기 화엄경에는 아주 화려하고 뭐 정말 이게 사실이라면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도저히 뭐 도대체 이런 세상이 어디 있는가 할 정도로 그렇게 아름답고 또 많고 풍부하고 너무 넉넉하고요. 이렇게 이제 표현이 돼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의 어떤 그 이상적인 세계의 극치를 말할 때 화장세계, 화엄경에서 말하는 화장세계다 이렇게 이제 말할 수가 있고요. 그 화장세계에 대한 그런 그 아름다운 모습은 이렇게 화엄경구절 대목대목에 이렇게 오늘 봤듯이 이렇게 잘 나와 있고. 이렇게 상상도 못할 아름다운 그리고 넉넉한 또 그리고 세상에 희귀한 보배를 가지고 꾸며놨다고 하는 사실. 이것은 결국 현실적으로 현실적으로 있어봐야 그것이 보배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보배가 아니라고 내가 말씀을 드렸어요. 다이아몬드 실제로 다이아몬드라 하더라도 다이아몬드가 필요 없는 사람에겐 그건 아무 소용없는 것이고 보배도 아니에요. 그런데 여기는 그 다이아몬드가 아니냐 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고 인도 그 땅이 부다가야의 부처님이 앉아계신 그 주변이 정말 보배로 돼 있냐 하는건 문제가 아니고, 내가 보배로 볼 줄 아는 정말 흙덩어리고 돌덩어리라 하더라도 그것을 소중하고 보배로 볼 줄 아는 그런 내 마음이 준비돼 있느냐 안 돼 있느냐 이게 문제에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아무리 좋은 것 가지고 있어도 좋은 것으로 느낄 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좋은 것으로 느낄 줄 아는 마음이 있으면은 그 무엇도 다 중요한 것이에요.
여러분들 지금 책 이거요. 요즘 책 찍기 쉬워가지고 전부 책 한 권씩 다 이렇게 다 가질 수 있지만은 옛날에는 책 한 권씩 못 가졌습니다. 이 책 한권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해야 되는데요. 이거 처음에는 말하자면 전부 한번 써요. 써 가지고 그 다음에는 나무를 준비해 가지고 나무에다 새기잖아요. 처음에는 종이에 써 가지고 나무에다 붙여가지고 나무에다 새기는데 도장 새기듯이 새기는데 그 새길 나무를 준비하는데요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린다고요. 해인사 팔만대장경 그 저 조각하는 나무 뭐 3년간 바다에 담궈가지고 3년간 그늘에 말리잖아요. 그렇게 건조해야 트지를 않는 거라. 그 나무도 아무 나무나 하는게 아니에요. 자작나무라고 해서 거제도에나 저 강화도에 있는 나무. 그 저기 깊은 산에 더러 있어요. 백두산에도 가면 자작나무 많다고 그러데요. 이쪽 저 북한쪽으로. 그런데서 베 가지고 새기기까지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어요. 그래 또 종이를 구하고 먹을 구해가지고 한 장 한 장 찍어야 비로소 한 권의 책이 되는 거에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여기에 계시는 백 명이면 백 명, 백오십 명이면 백오십 명이 갖을 수 있는 백오십 권 이 두꺼운 책을 150권 만들려면 몇 년 불사에요. 몇 년 불사. 그러니까 뒤에보면 전부 돈낸 사람들 그 어려울 때 돈낸 사람들 이름이 다 올려져있는 거에요. 옛날 책에 보면은. 그렇게 이제 했는데, 그렇게 했을 때는 그 책이 소중한줄 우리가 잘 알죠. 어렵게 만들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만들기 쉽다고 해서 이게 소중하지 않다라고 이렇게 보면은 그건 곤란하지요. 어떻게 했던지 간에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역시 소중한 거에요. 소중하지 않다하면은 국보를 갖다 책을 펼쳐놓고 봐도, 국보로 지정된 책을 펼쳐놓고 봐도, 한권의 책에 불과해요. 똑같다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그런 마음의 자세. 거기에 따라서 내 인생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하냐. 내가 사는 이 세상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하냐. 내 인생이 정말 얼마나 정말 소중한 인생이냐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요는 그런 마음의 자세, 그런 마음의 준비를 늘 이제 하고, 또 그런 마음이 되도록 우리가 수행해 나가는 것이고, 결국은 내 인생은 그리고 내가 사는 세상은 내 마음이 만들었다라고 하는거. 여기에서 벗어나면 그 사람 불행한 사람이에요. 절대 남 핑계대고 세상 핑계 대봤자 그것은 절대 그건 잘못 아는 것입니다. 정말 잘못 아는 거에요. 그거는. 우리가 꼭 그렇게 살면서 그렇게 핑계대고 싶지요. 남 핑계대고 싶고 세상 핑계대고 싶지만은 아이 대통령이 뭐 그 모양이냐고 욕을욕을 해쌌고 그러고 싶지만은 그거 다 소용없는 일이고 내가 근본은 나한테 있으니까 근본은 결국 나한테 있어요. 내 마음에 달렸다 라고 하는 거. 그것이 이제 시종일관된 부처님의 깨달음의 정신이고, 부처님의 마음이 그렇고, 정신이 그렇다보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전이 전부 그렇고 그 중에 특히 이제 화엄경이 주로 그런 사상을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그 저기 동도암 이야기하며 동도암에서도 역시 이제 화엄경이 말하자면 중심이 돼서 그런 설화가 제대로 생명을 갖을 수 있게 됐어요. 화엄경 사상이 아니면 이 동도암 이야기가 생명을 잃어버립니다. 동도암 이야기도 생명이 있게 된 것도 결국 화엄경 정신 화엄경 정신 가지고 이런 그 빛나는 이야기를 후대에 남길 수 있었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오늘 공부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염화실에서
첫댓글 오늘 강의도 만만치 않습니다. 배울 내용이 참 많아요. 글이 길고 번거러우시겠지만 그래도 끝까지 꼭 읽으시고 가르침을 가슴에 깊이 새겨 두시기 바랍니다. 아 그리고 읽으신 후 글 올린 분들에 감사의 댓글도 잊지 마시면 좋겠습니다. 그런 게 다 공부거든요
이 정도 글을 녹취하려면 그 노고는 말씀드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안해 보신 분은 모르시겠지만, 해 보신 분들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녹취하신 분이 바치셨는지, 정말 감사의 마음이 아니 일 수 없지요. 그리고 이 글을 퍼와서 단락을 분류하고 글자 크기 조절하고 색깔까지 각양각색으로 넣는 작업도 만만한 작업은 아닙니다. 아마 파랑새님이 이렇게 정리하는데는 줄잡아도 30 분 내지 한 시간 정도 걸리셨을 거에요.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작업니다. 이런 공양을 받으시고 감사 댓글 하나 안 남기실 분이라면, 아예 처음부터 보현행원 공부한다고 말씀도 하지 마시고, 이 글 읽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말씀을 다소 과격하게 드리는데, 정말 그런 공부 해 보셔야 아무 소용없습지요 알을알이만 늘고 상만 높아집니다. 그러니 그런 공부는 하실 필요가 없어요 차라리 글도 안 읽고 댓글도 안 다시는 게 업을 짓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 댓글 아니 다실 분들은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용은 궁금하고 읽고 지나가시는 분들이 누구신지 제가 어느 정도 다 압니다 대부분 이곳에 오래 오신 분이고 대개 도 수순보살 이상인 분들이시지요 그러니 슬그머니 오시지 마시고, 당당하게 감사의 댓글을 꼭 올리시기 바랍니다. 점 하나만 찍으셔도 됩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까 한번 대답들 해 보시지요...
홍도스님 이야기에도 나오지만, 수행 깊이와 화 안 내고 감사를 잊지 않고 그러는 것은 전혀개의 문젭니다. 김지하시인께서도 반말하는 신부님, 스님 때문에 카톨릭, 불교가 문제라고 지적하지 않으십니까 작은 일 하나에도 감사할 줄 알고, 그저 지나가는 공양물 하나에도 거기 깃든 이름모를 분들의 정성을 생각하고...이런 게 모두 수행이요 찰나매라는 걸 아셔야 합지요...공부는 그렇게 짓는 거랍니다...이런 이야기는 그만 각설하고...카페 벗님들 충분히 제 마음 이해하셨을테니......
1.무비스님이 올리신 경전의 유심게를 지나치지 마십시요.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마음이 오온을 짓는다'는 대목입니다. 이 대목이 화엄의 안목과 상좌부 안목이 연히 차이가 나는 부분이랍니다.
상좌부에서는 인간=오온으로 해석하여, 정신(혹은 마음)과 물질을 분리합니다. 그런데 화엄의 견해로는 '정신도 마음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합지요 이건 아주 중요한 차이입니다. 화엄의 마음은 물질, 비물질을 모두 포함하는 마음입지요 즉, 세상이 보이는 세계, 보이지 않는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때, 화엄의 세계관은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가 대립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에 보이는 세계도 함께 포함된 개념의 보이지 않는 세계를 뜻하는 겁니다
따라서 상좌부는 끝까지 이분법을 못 버립니다. 제가 보는 상좌부 수행의 문제점 중 하나가 이런 부분이에요. 그 반면, 대승이나 화엄은 처음부터 일원론으로 들어갑니다. 이건 아주 중요한 관점의 차이이니, 우리 불자님들은 꼭 이 부분을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신도 마음에서 나온 것! ⇒물질도 마음에서 나온 것 선생님 오타 맞으시지요? ㅎㅎ
OOOOOOOOOOOOOOOOh NO no 파랑새님 YOU WRONG
ㅠㅠㅠㅠ~~~~~ !!!! 우째 이리 안목이 안터지는건가요~~~ 부처님께 죄송하네요 ㅠㅠㅠ _()()()_
이 정신은 육신과 상반되는 정신을 말함이 맞지요? 그러면 정신이 마음에서 나온것이 맞겠습니다... _()()()_
2. 홍도스님 수행의 문제점은 위에서 제가 이미 말씀드렸고...사자빈신매는, 제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아마 수능엄매, 금강매 등의 다른 이름일 겁니다. 매 중의 매, 최후의 매를 말하는 것이지요.
3.매에 드신 후에 나오는 경전 대목은 어렵게 보실 것은 없습니다. 요약하면, '이 세상은 본래가 화장국토엿다'는 것, 그리고 화엄의 중요 특징인 '동시성불', 또 화엄의 핵심인 '대긍정의 끝없는 전재 및 자기 대'를 중심으로 보시면 이해가 빠르실 겁니다.
이 세계가 본래로 화장세계라는 건 아미타정토관과 많이 다릅니다. 극락정토는 법장비구의 서원으로 정토가 아닌 세계가 정토로 변한 것이지만, 화엄의 정토는 부처님과 상관없이 본래부터 정토라는 겁니다. 관점의 차이가 히 다르지요. 화엄의 관점으로는, 법장비구의 원력과 상관없이 우리 모두가 화엄정토에 이미 살고 있고 우리 모두가 이미 부처님이란 뜻이 됩니다...
아미타불과 화엄의 부처님과의 관계는 예로부터 논란이 많은데, 중국 화엄사들은 대개 법장으로 대표되는 성원융관을 따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아미바툴=비로자나불로 보시는 거지요. 의상대사께서 부석사의 주 법당을 아미타불의 극락전으로 만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라고 학자들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화엄 초기에는 아미타불의 극락정토가 더 상위 개념이냐 아니면 화엄의 연화장 정토가 더 상위 개념이냐 하는 문제로 정토과 많이 싸웁니다. 에고...주석 기도 이리 힘들어서야...그만 할립니다.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이 글 하나 가지고 씨름하네...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수고로우심으로 저희들은 한걸음 더 나아간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_()()()_
고맙습니다. 점만 찍고 인쇄하여 열공하겠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연무심님 정말 재밌습니다 저도 화엄경을 이렇게 공부하기는 처음입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씀인지 오리무중이었는데 이제 알음으로는 다가 설 수 있을 것같아서 감사하고 환희롭기 그지없습니다 카페 덕분에 도반님들 덕분에 이런 공부 할 수 있어 정말 정말 감사하고 기쁩니다 이인연 공덕되어 우리 모두 부처님께 나아갈 수 있기를 발원합니다... 우리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생명 나무마하반야바라밀 _()()()_
나무마하반야바라밀다 !!!!!!!!!! 정성스런 공양에 화엄경 맛나게 배우고 있읍니다. 고맙고 고맙습니다......._()__()__()_
파랑새님 _()()()_
마하반야바라밀...감사합니다. _()_
마음이 오온을 만든다는 말씀은 정말 눈여겨 봐야 할 말씀입니다. 이런 걸 지적하시는 분이 아니 계시는데, 이 대목이 아무리 이해가 어려워도 꼭 그렇게 깊이 사유해 보셔야 합니다. 마음이 정신과 물질 모두를 만드는 겁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영혼, 정신 작용이 마음에서 나왔다는 것이 화엄의 견해입니다. 이건 어렵고 쉬운 차원의 문제가 아니니, 꼭 제 말씀을 새겨 보시기 바랍니다._()_
이제 돌아와서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