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일 시문학 기념관

취재 김선자 시인
몇 일전부터 문학기행 일정을 잡고 바쁘게 지내다가
어젯밤 조태일 시인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발췌해보았다.
시대적 배경이 낳은 인물인지 요즘 우리 현대시와는 전혀 다른 흐름에서 오랫동안 사색에 잠기다가
결국, 나름대로 어떤 결과도 얻지 못한 채 잠자리에 들었지만 긴 시간 잠을 제대로 청할 수가 없었다.
아침 일찍 깨어 베란다 창문을 열었다
가슴으로 안기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았다
마음은 온전히 조태일 시인에 대한 생각으로 복잡하였다.
서둘러 아침을 챙기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조심스럽게 동행을 부탁하였다
1시간쯤 잡고 출발한 거리인데 1시간 20분을 달렸어도 몇 군데 보이던 이정표조차 보이지 않는다.
행여 길을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망설이면서도 보성에서 부터 섬진강으로 역류하는 보성강 물길 따라 나 있는 2차선 도로는
서두를 필요 없이 차분하게 마음의 여유를 주었다.
석곡 톨게이트를 나와 10분쯤이라는 관리소장님의 말과는 달리
30분쯤 달려왔을까 태안사 이정표가 크게 한눈에 들어온다.
마을을 지나 태안사가 2.2km 남았다는 이정표에 심장은 제멋대로 뛰기 시작하였다.
관리소를 지나 비포장도로를 1.5km쯤 달렸을까 동리산 태안사 들머리에 위치한
조태일 시 문학관이라는 표지판이 우측에서 한눈에 들어온다.
차를 주차하고 내리는 순간 시선은 어느새 국토론을 노래한 비 앞에 먼저 멎는다.

국토서시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지필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
연작으로 350여 편의 시를 썼다던 국토라는 시를 한 행, 한 행 가슴으로 읽으면서 그를 대지적 상상력으로 꾸며낸
눈물의 민주성 시인이라고 표현했던 의미를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발길을 관리사무실 쪽으로 돌려 먼저 소장님께 한비문학을 소개하고 인사를 나눈 후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충 조태일 시인의 시 세계를 들은 후
소장님의 안내를 받으면서 지하 조태일 시인을 기리는 문학작품 3천여 점이 있는 전시관으로 내려가려던 중
계단에서 내려다보는 건물 구조가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운영 실태와 그 이유를 여쭈어 보았다.

(뒤로 보이는 지하 1층 지상 1층으로 되어 있는 조태일 시 전시관 )
본 건물 위치는 태안사에서 고인의 시적 성과를 기리기 위하여 기증한 부지에 정부의 보조금으로 곡성군에서
2003년에 문학관을 지어 현재 운영도 곡성군에서 한다고 한다.
그리고 건물 형태는 조태일 시인이 좀체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시인의 성품을 닮은 품 너르고
나지막한 단층으로 땅을 파고 지하쯤 되는 위치에다가 한옥과 절집의 재래적 형태로 지었다고 한다.
구조는 1층 관리사무실, 창작실(4개) 지하 1층에는 시집전시관, 조태일 시문학기념관, 행사실로 구분되어 있었다.
창작실 운영은 개인이 대여 1일(만원) 스스로 창작하는 식으로 운영한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문예창작 등 강의는 3km쯤 떨어진 폐교된 학교를 문화학교로 명칭하고 그곳에서 한다고 한다.

전시관을 들어서자 중앙에는 평상시 조태일 시인이 아꼈던 고서들이 가지런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한국의 대표작(우리나라의 최초의 근대시집인 최남선의 "백팔번뇌" 최초의 번역시집 "오뇌의 무도")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박두진 시인의 "해", 김기림시인의 "문학개론", 이은상 시인의 "노산 시조집" 등 오래된 고서들이
조태일 시인의 혼을 담고 전시되어 있었다.

지하 1층 시집 전시관 북쪽 벽에는 조태일 시인의 시집을 중심으로 많은 시집이 정리되어 있었다.
살펴보던 중 이 시집들이 어떻게 선정되어 이곳에 꽂히는지 궁금하여 소장님께 여쭈어 보았다.
시인의 뜻을 기리어 마구잡이로 받아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민족문학 작가협회에서 선별하여 보내는 책을 전시한다고 한다.
세세하게 구체적으로 보고 싶지만 다음 장소를 옮겨 조태일 시문학 전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입구에 들어서면 고운 시인이 그의 문향이 이곳에 영원히 새겨지기를 바라는 내용의 글이 있다.
그리고 일자로 정리된 문학관 안에는 벽면으로는 근대적 문학의 배경과 인물, 시인의 약력, 자라온 배경 등 여러 가지가
걸려 있고 중앙으로는 시인이 소장하던 고서, 시인의 육필 원고, 시인의 생활을 볼 수 있는 옷과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많은 자료를 자세히 설명하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그 중 남다르게 눈에 띄었던 몇 개만 소개하려고 한다.

조태일 시인이 평상시 몸에 지니고 다녔던 유품들

녹두장군사진 : 조선 후기 동학 농민 운동의 지도자이면서 전라도 지방에 집강소를 설치하여 동학의 조직강화에 힘썼으며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운 녹두 장군은 조태일 시인의 정신적 지주였나 더 위급한 상황에서도 모든 것 다 두고 도피 다녀도 녹두장군의 이 사진만은 챙겼다고 한다.

조태일 시인의 체온이 느껴질 것 같은 서재

조태일 시인의 서재 어머니의 단아한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조태일 시인이 오늘날 문학세계에서 존경받는 인물이 되기까지는 어머니의 힘이 컸다고 한다
청량리 부근에서 보따리 장사를 하시면서 학비와 생계를 이어 갔다고 한다

조병화 시인이 돌아 가시기 전 애제자인 조태일 시인에게 보낸 글 (조태일 시인의 고운 심성을 알 수 있었다)

조태일 시인이 소장하던 고서와 육필 원고

조태일 시인의 시집 8권과 훈장이 보관되어 있다
그런데 어딘가 허전하다. 시집 8권중에 있어야 할 식칼론이 없다
소장님이 계속 수소문하여 구하려고 하지만 소장하고 있다는 사람만 있지 실제 보내오지 않는 것이 아쉽다고 한다

조태일 시인 약력
1941년 곡성군 태안사에서 대처승의 아들로 태어남
1946년 경희대학교 2학년 재학당시 [경향신문]신춘문예에<아침선박>으로 등단
1965년 제1시집 [아침선박]간행
1970년 제2시집[식칼론]간행
1974년 자유와 민주쟁취를 위해 자유실천문인협회를 창립
1975년 제3시집[국토]간행, 긴급조치 9호로 판매금지 당함
1977년 양성우시인[겨울공화국]발간사건 연루 고은시인과 함께 투옥
1981년 평론집[고여 있는 시와 움직이는 시]간행했으나 판매금지 당함
1982년 항일민족시선집[아아 내나라]를 엮어 간행
1983년 제4시집[가거도]를 간행했으나 판매금지 당함
1985년 문학선집[연가]간행
1987년 제5시집[자유가 시인더러]간행
1991년 제6시집[산속에서 꽃 속에서]간행[다시 산하에게]간행, 편운문학상 수상
1992년 공저[문학의 이해]간행, 제35회 전라남도문화상 문학박사 수상
1993년 성옥문화상 예술부문 대상 수상
1994년 이론서[시 창작을 위한 시론]간행
1995년 제7시집[풀꽃은 꺾이지 않는다]간행, 만해문학상 수상
민족문학 작가협회 부사장 역임,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역임
1996년 산문집[시인은 밤에도 눈을 감지 못한다]간행
1998년 이론서[알기 쉬운 시 창작 강의]와[김현승 시 정신 연구]간행
1999년 제8시집 [혼자 타오르고 있었네], 9월7일 간암으로 별세, 장례식날 청와대로 부터 문화 훈장 추서
조태일은 민중적 생명력에 대한 일관된 긍정과 자연 사물에 대한 섬세한 관찰을 통해, 단절과 억압의 역사 속에서 낙관적이고 근원 지향적인 시 세계를 완성해간 우리 시대의 탁월한 시인이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강렬한 남성적 음역(音域)과 생애는, 1960년대 이후 펼쳐진 현대사와 서정시의 미학이 얼마나 긴밀하게 일치할 수 있는가를 선명하게 보여준 뜻 깊은 사례이다. 그의 시 세계는 생명에 대한 추구라는 일관성을 보여주었고, 민중적 삶을 직접적 소재로 삼던 데서 자연 사물로 시선을 돌리는 변모 양상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의 시 세계에 끊임없이 흐르는 시적 에너지는 저항성과 천진 성이다. 결국, 조태일의 시적 여정은 저항성과 천진성이 공존하고 갈등한 세계이다.
소장님의 말을 빌리면 이분은 전설 속에 사람으로 남아야 분인 것 같다.
나도 이분의 대표적인 시를 접하면서 이분의 시 세계에 나도 모르게 흡수되고 있었다.
조태일 시인의 『나의 處女膜』, 『식칼論』, 『國土』연작시 중 대표시다.
그리고 순간 마음에 와 닿았던 이분의 시 하나만 소개하고 싶다.
풀 씨 /조태일
풀씨가 날아다니다 멈추는 곳
그곳이 나의 고향.
그곳에 묻히리.
햇볕 하염없이 뛰노는 언배기면 어떻고
소나기 쏜살같이 꽂히는 시냇가면 어떠리.
온갖 짐승 제멋에 뛰노는 산속이면 어떻고
노오란 미꾸라지 꾸물대는 진흙밭이면 어떠리.
풀씨가 날아다니다
멈출 곳 없어 언제까지나 떠다니는 길목,
그곳이면 어떠리.
그곳이 나의 고향,
그곳에 묻히리.
- 조태일 시집, 『풀꽃은 꺽이지 않는다』, 창작과 비평사, 1995년

조태일 문학관 찾아오시는 길
조태일 시문학 전시관을 구경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려
조태일 시인이 태어난 태안사를 들렀다.
태안사 130여 곳의 칸마다 너무나 고요하여 발소리조차 내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바람이 몹시 불어 다음을 기약하면서 아쉬운 발길을 돌려 돌아오는 길은
갈 때와 다르게 섬진강을 끼고 국도를 돌아 여유를 부리고 오는데 온전히 조태일 시인의 시상들로 가득하면서 내심 뿌듯하기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