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문화유적지 도보 순례 - 소금강산 일원
답사코스 : 탈해왕릉 - 숭신전 - 표암,알평공탄강지 - 소금강산 - 마애삼존불 - 백률사 - 불굴사지 석조사면불상
- 사방불탑신석 - 청동제련소 유적지 - 용강동고분 전체 도보코스
도보코스 : 빨간선
신라 탈해왕를
사적 제174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산 17
이능은 신라 제4대 탈해왕(재위 57~80)으 모신 곳이다. 왕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왜국에서 동부쪽으로 1천리 떨어져 있는 다파니국(또는 "완하국""용성국")의 왕비가 잉태한지 7년 만에 큰알을 낳았다. 이는
상서롭지 못한 일이라 하여 그 알을 궤에 넣어 바다에 버리니 동해 아진포에 닿았다. 그때 한 할머니가 이것을 열어보고
어린아이가 있어 데려다 길렀다.배에 까치들이 울며 따라왔으므로 까치 작(鵲)에서 새조(鳥)자를 떼서 석(昔)으로 성을 삼았다
왕이 세상을 떠나자 <삼국사기>에는 "성북의 양정 언덕에 장사하였다"고 하였고 <삼국유사>에는 "수장하였다가 뼈로 소상을
만드어 동악에 모셨는데 지금의 동악 대신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삼국사기>의 성북이라고 한 점이 혀재의 위치와 부합된다.
이무덤은 높이 4.5m , 지름14.3m 크기로 둥글게 흙을 쌓아올린 봉토무덤이다.주변에 아무런 시설을 하지 않았으며, 겉으로
보아 굴식돌방무덤 이다.
탈해왕릉에 넘어져 자라고 있는 소나무
숭신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55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겨주시 동천동 350-7
숭신전은 신라 제4대 석탈해왕의 제사를 모시기 위한 건물로 광무2년(1898)에 군수이던 권상문의 제안으로 석필복이 월성안에
지었다. 그리고 광무10년 숭신전으로 편액으 받았다. 그 후 1980년 석탈해왕릉 옆인 지금의 위치로 옮겨서 지있다. 원래 자리
인 월성안에는 돌로 만든 팔각형 기둥이 남아있다. 홍살문 안쪽으로 영녕문(永寧門)과 경엄문을 지나며 숭신전이 있다
표암과 표암재
경상북도 기념물 제54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507-7
표암이라는 이 바위 이름은 "박바위" 혹은 "밝은바위"를 뜻하며,신라 6촌 가운데 급량부였던 알천 양산촌의 시조 이알평공ㅇ
하늘에서 내려온 곳이라 한다.<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진한땅에 여섯촌이 있었는데 그 하나가 알천 양산촌
이며 그곳의 촌장은 알평이었는데 그는 처음 하늘에서 표암봉으로 내려와 급량부 이씨 즉 경주 이씨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은 급량부라고 하였으며 고려 태조 23년(940)에는중흥부라고 이름을 고치고 급잠,동상,피상의 동촌을
이곳에 소속시켰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신라 화백회의이 연원이 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표암은 경주 이씨의 근원지인 동시에
신라 건국의 산실로서도 중요하 역사저 유래르 가진 곳이라 할수 있다.
표암재뒤 산위에 "표암유허비각"이 보인다
경묘비
표암재뒤 산위에 있는 표암유허비각으로 오르는 돌계단
표암유허비각
표암유허비각앞에서 내려다 본 표암재
경주이씨 시조 발상지
위치 ; 경북 경주시 동천동 산 16번지
광림대 - 경주이씨 시조 표암(瓢巖)공 휘 알평(謁平)의 초강지(初降地)
광림대 내부 : 알평공이 탄강한 곳
광림대를 지나 숲으로 들어 갑니다.....등산로 주변에는 묘지들도 많고 오른쪽 산아래에는 예비군훈련장도 보입니다.
소금강산 정상에 오릅니다.....이곳에서 조금더가서 오른쪽 비스듬한 길로 내려가면 마애삼존불을 만납니다.
경주 동천동 마애삼존불좌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4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용강동 산 67
이불상은 경주의 북쪽 소금강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조금 내려간 곳에 위치한다. 부처님 세분을 얕은 돋을새김 하였으나.
지금은 바위면이 떨어지고 이끼가 심하여 정확한 모습을 알기가 매우 어렵게 되어있다.가운데 여래상은 민머리이며 머리둘레
에는 두광을 2중으로 하였고 머리 위에는 상투모양을 큼직하게 조각하였으며 내부에 선을 돌렸고 얼굴은 넓적하게 조각
하였다.옷은 양 어깨에 걸친것으로 보이며 왼손은 무릎에 올리고 오른손은 들어올린것 같다.오른쪽 보살상은 길쭉한 얼굴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둘레에 두광을 2중으로 하였다. 정면을 향하지 않고 본존을 향하고 앉은 모습이 특이하다.왼쪽 보살상은
얼굴과 몸체 부분의 바위가 떨어져 자세히 알수 없지만 머리 둘레에는 2중으로 두광으로 돌렸고, 다행히 머리에 쓴 관에 불상
이 새겨져 있어 관음보살임을 알게한다. 따라서 이 불상들 중에 가운데 부처는 아미타불이며,오른쪽은 대세지보살 이라고
판단된다.옷의 표현등 조각 수법을 보아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마애삼존불좌상 을 둘러보고는 왔던길을 다시 올라가 백률사로 향합니다
소금강산에서 백률사로 갈려며 삼성각을 먼저 들러야 합니다
삼성각 오른쪽 외벽에 그려진 호랑이를 봅니다.
아무방향에서 봐도 호랑이 눈과 정면으로 마추치게 됩니다. 지금은 왼쪽에서 봤을때 입니다...눈이 마주칩니다.
정면에서 봤을때 입니다...정면에서 봐도 눈이 마주 칩니다.
오른쪽에서 봅니다.........눈이 마주 칩니다....아무곳에서 봐도 호랑이 눈은 피해 갈수 없습니다...
범종각 : 이차돈의 순교 장면이 종에 새겨져 있습니다..
이차돈의 순교장면 입니다 :
리는 떨어져 나갔고 목에서는 하얀피가 솟구칩니다. 하늘에서느 꽃비가 내리고 땅은 흔들거립니다..
백률사 대웅전앞에는 석등만 있고 탑이 없습니다....절마당이 좁아 탑을 쌓을자리가 없어 절마당 앞에 보이는 자연석에 탑을
조각하여 탑을 대신 합니다. 또한 대웅전 마당에는 대비관음상이 도리천에 올라갔다가 돌아와서 법당으로 들어 갈때 밟았던
발자국터가 절마당의 돌위에 남아 있다는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확인을 못했습니다..
백률사 : 왼쪽에 범종각, 범종각뒤로 종무소 , 대웅전, 대웅전 오른쪽뒤에 삼성각
백률사에서 조금내려오면 "불굴사지 석조사면불상" 입니다
보물 제121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산 4
이불상은 경주의 북쪽산이 소금강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높이 약3m의 커다란 바위에 여러 보살상을 조각한 사방불 형태이다
불상은 서쪽면에는 아미타삼존불,동쪽면에는 약사여래좌상,남쪽면에는 삼존입상이,북쪽면에는 보살상 두분이 새겨져 있는데
특히 북쪽면 보살상 중 한분은 얼굴이 열하나.팔이 여섯달린 관세음보살입상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보기 드문 것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이 백률사르 찾았을때 땅속에서 염불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땅을 파보니 이 바위가 나와서
바위의 사방에 불상을 새기고 절을 지어 굴불사라 불렀다고 한다. 최근의 발굴조사에서 고려시대의 건물터로 확인 되있다.
서면
북면
동면
남면
이제는 시내로 들어갑니다...백률사 사거리에서 시청뒤 시민공원으로 갑니다
경주 동천동 사방불탑신석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5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770-3
이 석조물은 탑에 사용된 몸돌로 여겨진다. 네 면에 조그 파들어간 듯이 조각되 불상은 좌상으로 각각 다른손 모양을 하고
있지마 두광과 신광을 모두 갖추고 있다.네 면에 불상을 조각하 것은 동서남북 네 방향에 있는 부처를 상징하는데 이곳의
불상은 일반적을 등장하느 사방불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네 면의 아래쪽에 앞으로 튀어나온 받침에 8개의 3겹 연꽃이 조각
되어 있다. 불상 윗쪽에소 앞으로 튀어나온 부분이 있어서 얼핏보면 지붕처럼 보이는데 윗면에 8개의 3겹 연꽃이 조각되어
있다. 탑신석 윗면에는 위에 놓일 탑신 받침을 조각 하였다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이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볼수 없는 특이하 모습이다 1982녀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탑신석의 위치가 조금 옮겨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현재 여에 있는 4개의 돌로 짜맞춘 기단부와 서남 모서리에만 남은 탑구 석재는 당시에 출토된 것이다
1999년에 주변을 작은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용강동 고분으로 가던중 만난 "청동제련로"가 확인된 문화유적지
시청에서 걸어서 5분거리에 있는 용강동 고분
경주 용강동 고분
사적 제328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용강동 1130-1
이 고분은 "개무덤" "고려장"으로 불리던 폐고분으로 파괴가 심하여 1986년 경주고적발굴조사단이 발굴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