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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꼬셔도 온갖 수작 다 부려도 도대체 왜 나를 피하는 거야
좋은 말로 할 때 내 품으로 돌아 와 다오 행복아!!~
으하하하하하~~ 으흐흐흐흐흐!!~
보시고 꼭 리플 다시고 자신의 행복론을 필설해 보시죠
목차
Ⅰ. 들어가며
Ⅱ. 본론
1. 문화영성
1) 문화의 어원과 개념
2) 영성의 개념
3) 문화의 영성
2. 세계의 문화 속 행복론
1) 지성사적 문화로 보는 행복론
2) 종교적 문화로 보는 행복론
3) 나를 찾는 내적 여정
4) 긍정심리학
5) 나이 들어감에 대한 행복의 지혜
Ⅲ. 나오며
Ⅳ. 참고 문헌
Ⅰ. 들어가며
모든 사람은 행복해지기를 원하고 삶의 목표 또한 행복에 있다. 따라서 삶은 근본적으로 행복을 원하고 있으나, 극복하기 어려운 고통스러운 상황과 조건에 놓여 있기 때문에 행복에 이르는 길이 쉽지 않다. 영어 ‘Happy’는 고대영어 ‘happ’에서 유래했으며 행운이라는 뜻이다. 기쁨, 환희, 희열, 황홀함, 사랑 등의 감정이 혼재 되어있으며 결핍과 곤궁으로부터의 자유로움과 사물의 질서에 대한 인식이다. 1)
행복은 원해야만 이루어지는 것이고 자신이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또 행복의 조건을 알면서도 고통스러운 이유는 아는 것을 행하지 못하고 처지나 조건, 또는 능력 때문에 현실적 구현이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복을 실현할 수 있는 여부는 첫째는 조건과 원칙의 본질적 의미를 깨닫는 것, 둘째는 자신의 처지와 조건에 대한 냉철하고 객관적인 분석, 셋째는 조건과 목표를 연결시키는 식견 및 그것을 실현하는 능력배양, 넷째는 예측할 수 없는 운의 개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2)
궁극적으로 인간은 삶의 다양성 안에서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행복을 추구해왔으며, 그러한 노력들은 역사를 발전시키고, 문화를 형성시키고, 인간의 영적 본
성을 고양시켰다. 자본의 세계화와 사이버로 점철된 21세기는 심한 영적고갈을 겪고 있다. 따라서 영적인 문화, 생명의 문화 속에서 자신을 찾고 타인과 함께 더불어 사는 지혜를 철학사상과 종교적 문화를 통해 살펴본다. 그리하여 ‘나를 찾는 내적 여정’을 짚어보고, ‘긍정 심리학’을 통해 ‘늙어감에 대한 수용적 태도’를 알아본다.
Ⅱ 본론
1. 문화와 영성
1) 문화의 어원과 개념
문화란 라틴어 명사인 ‘cultura’에서 파생된 것으로 경작, 재배, 개간, 양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문화는 ‘자연 상태의 어떤 것에 인간적인 작용을 가하여 그것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낸 것’을 말한다.3) 문화는 인간이 만든 것이고, 인간에 의해서 학습되고 전승되는 뚜렷한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내용은 축적되고 공유되며 일정한 체계를 이루고 보편적이면서도 다양하다. 문화가 지니고 있는 의미와 가치가 고정되어 있는지, 아니면 늘 생성되고 있는지에 따라 정적, 동적, 문화로 분류된다. 정적 개념의 문화로는 정신문화, 예술문화, 전통문화가 있으며 동적개념의 문화는 ‘의미화의 실천’이다. 영국 문화연구가인 윌리엄스는 ‘문화는 하나의 사회적 질서가 반드시 그것을 통해 재생산되고 체험 탐구되는 의미화의 체계’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동적개념의 문화는 현실세계를 이해하고 의미를 만들어내는 의미화 실천이다. 코드, 기호, 상징, 브랜드, 이미지는 현실체계를 해석하는 의미체계들이며, 다양한 의미가 나타나는 것은 다양성, 차이성, 타자성을 의식하고 수용하는 다원주의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특정한 사람이나 장소 사물에만 적용되던 고급문화에서 탈피하여 일반적인 사람들도 일반적인 삶에서 문화의 혜택을 누리게 되면서 ‘문화의 일상화’는 현대 대중문화에 밀접한 영향을 받으며 형성, 변화되고 있다. 따라서 현대사회에서는 자민족 중심주의적 문화제국주의에서 벗어나 타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 상대주의를 지향한다.
2) 영성의 개념
영성은 우리 안에 원래부터 주어져 있는 완전성이요 깨달음이다. 그것은 밝은 마음 곧 양심이라고 한다. 이성이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이라면 영성은 의미를 창조하는 능력이다. 영성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누구인지 질문하고 삶의 목적을 알려고 하고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며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 근원에서 하나임을 안다. 무엇이 옳은지를 아는 능력과 옳다고 판단한 것을 선택하려는 의지는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간디는 ‘사람의 위대함은 지성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영혼에 달려있다’고 한다. 고대서적 「요가빈두 우파니샤드」에서는 영적인 존재로 발전시키기 위한 위로 향하는 힘과 자기중심적이며 육제적인 창조물이라는 조건들이 갖는 난폭한 성격의 아래로 향하는 힘이 있다고 한다. 인간 본성의 문제는 삶의 문제와 연결되어 위로 향하게 하는 힘을 발휘하게 되면 문화 속에 영성이 깃들게 된다.
3) 문화의 영성
문화에는 살리는 문화와 죽이는 문화가 있다. 살리는 문화, 생명의 문화를 영성적 문화라고 한다. 원시문화에선 인간은 자연을 편리하게 이용하고자 자연을 달래고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제사를 지냈으며 받은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리는 사육제를 바치는 신앙을 보였다. 인간과 자연의 일치를 기원하는 행위는 역사를 통해 다양한 문화를 양산하고 대속행위를 함으로써 문화의 양적 질적 성장을 이루어 왔다. 따라서 역사를 통해 발전되어온 문화 속에는 영성이 깃들어 있으며 문화 속 영성은 삶을 확장하고 육화하며 각 개인 안에 있는 영혼을 자유롭게 하면서 역사의 투쟁에 더욱 접촉하기를 선호한다. 문화영성은 기쁨과 즐거움 뿐 아니라 고통, 괴로움, 절망, 갈등을 겪는 삶의 자리로서 문화 속에서 갖는 체험을 통하여 영성을 느끼고 삶 안에서 영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현대 문화 속에서 올바른 영성이 열매 맺기 위해서는 먼저 문화에 대한 분별력을 키워야 한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선택에 의한 저항과 창조는 나눔의 영성과 살림의 영성, 어울림의 영성으로 나아가게 한다. 모든 문화는 저항의 영성으로 정화되고 나눔과 살림과 어울림을 실현하기 위한 창조의 영성으로 나아가게 된다.4)
2. 세계의 문화 속 행복론
1) 지성사적 문화로 보는 행복
① 고대서양의 행복론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대표한다. 그리스철학자들은 영혼이 만족하는 상태를 '행복'이라고 한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도덕과 행복의 일치를 강조하는 윤리학의 선조들이다. 도덕은 앎이며 올바름을 분별하는 것은 용기를 부른다. 소크라테스는 진정한 앎을 얻으려 애쓰고 반드시 앎을 행위로 옮겨야하며 바르게 알아야 함을 강조했다. 플라톤은 진정한 앎의 세계이자 본질의 세계로서 이데아의 세계를 현상을 넘어선 이상세계이며, 인간이 추구해야할 것이 가치세계라고 했다. 철학자란 참된 앎을 체득한 사람으로서 실천력 정치력도 가진 사람이다. 철학자중의 최고의 철학자가 국가를 지배함으로써 그 나라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적성과 역할에 맞는 일을 하면서 자신이 누려야 할 몫을 누릴 수 있다고 「국가론」에서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니코마스윤리학」에서 인간의 행위 내지 활동은 모두 목적을 가지고 있고 그 목적을 잘 이루는 것이 선이라고 했고 도덕적 생활 중에 중요한 덕을 중용이라 했다. 행복의 3단계는 첫째는 동물적 행복으로서 향락적인 생활. 둘째는 도덕적 정치적 생활의 만족스런 영위를 통한 인간적 행복, 셋째는 진리탐구에 온 마음을 쏟는 생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행복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의 덕을 주어진 상황에 대해서 이성의 분별력이 지시하는 바에 따르는 최선의 태도라고 말한다. 스토아학파는 소크라테스의 삶과 사상에 영향을 받아 제논이 세운 학파로서 진정한 행복은 ‘도덕적인 삶’에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욕망의 절제가 필요하며 도덕적 자기 사명을 완수할 때 내면의 평정이 찾아오고 참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칼 야스퍼스는 「역사의 기원과 시간에 대해서」에서 인류문명의 정신적 위대한 기초들은 기원전 800년부터 200년까지 600 여 년 동안에 그 기초가 확고하게 놓여지게 되었다고 보고 그 시대를 인류문명의 ‘차축시대’라고 불렀다.5) 이 시기에 그리스에서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활동했고, 인도와 근동에서는 고타마싯다르타, 마하비라, 조로아스터가 탄생하였으며, 중국에서는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등이 출현하였고, 이스라엘에서는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예레미야 등 기라성 같은 예언자들이 활동하였다. 야스퍼스가 이 시대를 인류문명의 ‘차축시대’ 라고 명명한 이유는 그 이후시대 문명은 본질적으로 볼 때 ‘차축시대’에 출현한 위대한 사상가들이 설파하고 가르친 정신적 자양분을 토대로 한 것이며 실질적으로는 그들이 도달한 정신적 영적수준을 능가하지 못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학파는 ‘행복’ 그 자체를 그들이 추구해야할 인생의 목적으로 여겼고, 쾌락을 순간의 쾌락이나 개인적 감각이 아니라 일생을 통해서 지속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즉 이 쾌락은 주로 영혼의 평정에서 발견 되는 것이다. 근대 쾌락주의는 에피쿠로스학파의 영향을 받았으나 개인의 행복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므로 근대의 행복론인 공리와는 차이가 있다. 벤담은 행복론과 관련하여 쾌락과 행복과 선 같은 성질의 것으로 그것을 증진하는 것 일체를 공리라 한다. ‘공리’를 존중하고 그것을 선악의 기준으로 삼으려고 하는 사조를 ‘공리주의’라고 하며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인생의 목적으로 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행복이라든지 쾌락은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자기만을 위한 행복을 넘어 타인의 행복까지 함께할 때 비로소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또 외적인 것만 신경 쓰지 말고 개인의 내적수양이 갖는 중요성에 대해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② 동양철학의 행복론은 공자, 맹자, 노자, 장자가 대표한다. 공자를 중심으로 한 유가사상은 우리를 둘러싼 우주자연을 평화롭고 생명력이 가득한 유기체로 파악했는데 모든 동양사상의 공통된 전제이다. 유가는 우주자연에 깃든 생명력의 본질은 인간의 본질이며 그것은 선천적으로 주어진 도덕성이며 선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또한 인간의 기질과 마음은 어떤 존재보다도 뛰어나다고 생각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선천적 도덕성을 잘 발휘할 수 있는 도덕적 존재라고 본다. 공자의 도덕론은 ‘인’이 핵심이다. 인은 사람과 사람이 공감하고 서로 통하게 하는 ‘인간애’의 근원이기 때문에 모든 선행의 바탕이 된다. 노자와 장자로 대표되는 도가사상은 유가의 봉건적 질서와 문물제도가 지닌 형식성과 편파성을 문제 삼고 덕치주의로 포장된 지배자들의 정치철학이 안고 있는 본질적인 허구성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도덕 체계에 대한 예리한 비판은 지적으로 훈련된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하고 고대사회에서 지적 훈련은 사회적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었다. 노자와 장자는 인간이 얼마나 하잘 것 없는 존재인가를 설명하고 인생론에 있어서 인의예지 등 사회에서 필요한 질서 형식을 중시하기보다는 그것이 갖는 기득권 성격을 비판함으로써 결국 집단이나 권력 중심적 태도로부터 개체 중심적 탈 권력적인 태도로 전환하였다. 노자는 하는 일만 많으면 도리어 혼란을 초래하고 공을 서두르면 파멸에 빠지는 일이 흔한 세상에 비추어 오히려 ‘무위’가 뜻을 크게 이루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다. 장자는 넓은 우주에 비교할 때 인간이란 존재는 소꼬리의 털에 붙은 벌레의 알보다도 미미한 존재라고 말한다. 이것이 그의 ‘제물사상’이다. 노장사상은 인간의 행복은 세속의 이익을 버리는데서 생긴다고 한다.
2) 종교적 문화로 본 행복론
독일 종교학자 루돌프 오토는 「성스러움의 의미」라는 책에서 종교를 ‘엄청나고도 매혹적인 신비’라고 정의했다. 또 20세기 최고의 신학자 중 하나인 폴 틸리히는 종교를 ‘궁극관심’이라 정의했다.6) 종교는 인간이 당면한 궁극적 물음을 보거나 참된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자세이다. 종교를 이해하는 것은 인간이해 자체의 전제 조건이다. 따라서 다양한 세계종교문화의 영성을 알아보고자 한다.
①불교
불교는 붓다(기원전 563-483년)에 의해 창시되었다. 싯다르타는 29세가 되는 어느 날 궁궐 밖 세상을 구경하면서 처음으로 늙는 것, 병드는 것 죽는 것을 알았다. 심리학자 카를 융(1875~1961년)에 따르면 30대 초반이 되어야 인생사에서 참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개인화 과정’이 시작된다고 한다7). 캐나다의 정신과 의사이면서 심리학자 겸 문필가였던 버크(1837~1902년)도 사람이 살아가다가 어느 단계에서 극적인 의식의 변화를 체험하게 되는데 이 새로운 의식을 ‘조명’혹은 ‘우주의식’이라한다.8) 보통 30세쯤에 체험을 한다. 싯다르타도 30세에 접어들면서 이런 문제가 바로 자신의 문제로 새롭고 심각하게 다가옴을 느낀다. 싯다르타는 출가하여 고행을 통해 대략 ‘네 단계의 선정’을 거치고 ‘세 가지 앎’을 얻게 된다. 붓다의 이 성불체험은 불교의 핵심적인 사건이다. 붓다라는 이름은 산스크리트어로 ‘깨친 이’라는 뜻으로서 존칭이다. 붓다는 속세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사람을 위해서 가르치기로 결심한다. 우선 지나친 쾌락과 고행을 피하고 중도의 길을 택하라고 한다. 중도의 내용은 ‘사성제 팔정도’이다. 사성제는 ‘고, 집, 멸, 도’이다. 팔정도는 여덟 가지 바른 길인 ‘정견, 정사, 정언,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이다. 그런 다음 ‘무아’의 가르침을 설파했다. 자아는 집착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거기서 해방되어야 한다. 나중에 이를 일러 제법무아, 제행무상, 일체개고와 더불어 불교에서 말하는 ‘삼법인’을 이룬다. 붓다 입멸 후 승단은 교리상의 문제로 상좌부 대중부로 나뉘었다가 기원전 1세기경에 대중부 대신 대승불교가 출현했다. 대승불교는 사변적 개인적 운동이다. 나중에 개인의 구원에만 관심 있어 개인적 수행을 통해 ‘아라한’이 되는 것을 종교적 이상으로 삼는 소승과 나뉘어 진다. ‘공’의 가르침은 ‘궁극 실재’가 우리의 실재나 말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서 거기에 생각이나 말이 들어갈 틈이 없다는 것, 그래서 ‘빈 것’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도불교는 기원전 3세기 인도를 다스리던 아쇼카 성왕이 불교로 개종하면서 주변나라는 물론 시리아와 그리스까지 선교사를 보냈다. 전성기를 지나 8-9세기경에 쇠퇴하고 13세기경에는 인도에서 실질적으로 사라지고 만다. 외적 이유는 힌두교가 부흥하면서 불교를 박해하고 이슬람의 인도 침공으로 불교 사원이나 경전이 소실되어 승려들이 다른 나라로 흩어졌기 때문이며, 내적 이유는 불교가 일반서민에게 뿌리박지 못하고 전문 승려를 위한 종교로 변했다는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동서양의 접촉이 잦아지면서 서양에서 불교에 관심을 갖는데, 불교의 평화주의적인 태도나 참선처럼 깨달음을 강조하는 입장에 호감을 가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②유대교
서양종교를 분류해보면 대표적 종교가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이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는 지금의 팔레스타인에서 생겼고 이슬람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나왔다. 모두 중동지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 정신사를 지배해온 그리스도교 사상은 유대교와 그리스 철학이었다. 종교적으로는 예루살렘에서 철학적으로는 아테네에서 흘러나온 두 줄기 강이 합류하여 그리스도교라는 종교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유대교는 그리스도교 뿐 아니라 이슬람교의 근원이 되므로 유대교를 이해하는 것은 이들 종교를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유대교의 시발점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유대인들이 자유로운 민족으로 해방된 출애굽사건이다. 이때부터 히브리 백성들은 야훼신과 맺은 언약을 통해 야훼신이 함께하시는 선택된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공고히 하게 된다. 출애굽은 유대인에게 새로운 법, 자의식, 신관, 종교를 제공한 중요한 사건이다. 다윗의 재위기간(기원전1000~961년)은 이스라엘왕국의 전성기였으나, 아들 솔로몬 재위기간 (기원전961-922년)에 생긴 종교적 정치적, 군사적 실책으로 민란이 일어나는 등 기초가 흔들리다가 결국 남북이 두 동강으로 갈라져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대로 갈라졌다. 기원전 722년 북방 이스라엘이 앗시리아 왕국의 침입을 받아 멸망당하고 열지파가 뿔뿔이 흩어짐으로써 ‘디아스포라(이스라엘의 흩어짐)’의 시초가 되었다. 남쪽 유대는 기원전 586년 바빌론 왕 네부카드 네자르의 침략을 받아 멸망했는데 북방 이스라엘이 먼저 사라졌고 유대인만 남았으므로 이스라엘 민족을 그때 이후 ‘유대인’이라 부르게 되었다.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유대인을 해방시키고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했지만 소수만이 예루살렘에 돌아오고 상당수 유대인은 그대로 바빌론에 주저앉아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더욱 확대시킨 셈이다. 기원전 333년 알렉산더 대왕이 이집트로 가는 길에 유대를 점령해서 자기 세력권 안에 두었다. 이때 이후 유대를 비롯한 중동지역에 그리스 문화가 풍미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63년에 지파 사이의 갈등이 내전으로 확대되고, 시리아에 주둔하던 로마군대가 이를 평정한다는 구실로 유대에 진주해 식민지로 삼고 심한 세금으로 수탈하기 시작했다. 유대인 사이에서는 메시아가 나타나 자신들을 해방시키리라고 믿고 점점 메시아주의가 팽배하게 되었다. 여러 사람이 메시아라고 나타나기도 했고, 예수가 그 대망의 메시아라고 믿고 따르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여전히 메시아가 오길 고대하고 있었다, 기다리던 메시아가 오지 않자 열성당들이 66년에 로마에 반기를 들었다. 결국 70년 로마황제의 아들 티투스가 이끄는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벽만 남고 완전히 파괴되었다. 유대인들은 이웃 여러 나라로 뿔뿔이 흩어져 피난가고 열성당원 일부는 마사다산정 끝에서 항복하는 대신 집단자결로 저항을 마무리 지었다. 이후 유대인들은 완전히 흩어지게 되고 유대인은 종교적 민족적 중심지가 없이 모두 디아스포라 상태에서 떠돌며 살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유다인들이 모인 곳에는 ‘시나고그’라는 회당이 세워졌는데 2000년 동안 유대교의 중심이 되었고, 랍비는 유대교를 이끄는 중심인물로서 실질적으로 신부나 목사 같은 역할을 한다. 6세기 초 바빌론에 있던 랍비들에 의해 편집된 탈무드는 유대인에게 히브리 성서와 함께 최고의 권위를 가지는 종교서적이다. 유대인을 해방시킨 것은 1789년 프랑스 혁명이었다. 이른바 ‘인권선언’을 통해서 모든 사람이 법 앞에는 평등함을 선언 했는데 그 속에 유대인도 포함되었다. 유대인은 적어도 법적으로 게토에서 해방되어 주류사회에 편입되었다. 19세기 이후 유대인 중에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많게 되자 자신들의 나라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했다. 1896년 테오도오 헤르츨은 「유대국」이라는 책을 써서 ‘조국시온으로 돌아가자’라고 호소했다. 이 운동은 ‘시온주의’라고 하는데 곧 유럽 여러 나라로 확산되었다. 개별적으로 팔레스타인에 이주한 유대인들은 시온 주의자가 영국 외상을 설득해서 ‘영국정부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을 위한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우호적으로 생각 한다’는 ‘벨푸어 선언’을 발표하게 했다. 이에 고무되어 전쟁이 끝난 후 영국이 관장하던 팔레스타인으로 유대인들이 대거 이주했다. 1933년 히틀러는 ‘유대인 문제의 해결’이라는 반유대인 규정을 제정했다. 1941년에는 ‘최후의 해결’이라는 정책으로 유대인을 완전히 말살하기위해 대량학살이 이루어졌다. 1947년에는 유엔 총회에서 팔레스타인을 분할해서 유대인에게 나라를 건설하도록 허용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험난한 난관을 극복하고 1948년에 탄생시킨 조국이 바로 ‘이스라엘’이다. 정통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철저히 지킨다. 7일에 하루를 쉬고 그 ‘쉼’을 성스럽게 한 것은 유대교가 인류를 위해 이룩한 중요한 공헌이라 할 수 있다. 길고 긴 구원의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부지불식간에 이스라엘 선민사상이 넓고 깊어져 왔다.
③ 그리스도교
그리스도교는 현재 세계에서 신도수가 가장 많은 종교이며 18억~20억으로 세계인구의 3분의1에 해당한다. 그리스도교는 나자렛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 기초한 종교라 할 수 있다. 예수는 기원전 4년에 갈릴리에서 태어나 30세 때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후, 성령의 인도함으로 광야에서 40일간 금식과 기도로 보내는 동안 사탄의 유혹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가장 처음 외친 복음이 ‘회개 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였다. 이 선포는 예수 가르침의 핵심이다. 제도나 규제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의미가 없다고 말했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성찬식 때 떡과 포도주가 ‘예수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화체설을 믿고, 프로테스탄트는 떡과 포도주가 예수의 희생을 기념하고 그의 현존을 상징하는 것으로만 받아드린다. 십자가 위에서 한 ‘일곱 가지 말’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요’(마르코복음15:34)이다. 이 말은 시편에 나오는 말로 하느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이 십자가 죽음을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으로 여긴다. 예수의 시체를 무덤에 옮긴 후 정식으로 장사하기 위해 무덤으로 가보니 무덤이 비어 있었다. 예수가 부활한 것이다. 예수가 죽음을 이기고 부활했다는 확신은 절망 중에 있던 제자들과 그를 따르던 사람들에게 용기와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결정적 요소가 되었다. 예수는 40일 만에 하늘로 승천하여서 지상에서의 임무를 마감하였다. 이후 예루살렘 교회가 형성되었으며 초대 지도자는 베드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수가 많아지면서 유대인의 반대와 박해도 커져갔다. 이 때 그리스도인 박해에 앞장선 사람 중에 다소출신 유대인 사울이라는 사람은 그리스 철학과 유대전통을 함께 배운 바리새파에 속한 지식인이었다. 예루살렘 예수쟁이 박멸운동에 진력하다가 멀리 다마스커스에 있는 예수쟁이들 까지도 박해하기 위해 가는 길에 부활한 예수의 음성을 들었다. 그 후 3일 동안 앞도 못보고 음식도 못 먹었다. 거기서 아나리아라는 그리스도교 인에게 안수 받아 눈도 고치고 세례를 받았다. 그는 당장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다니며 ‘예수가 하느님 아들’이심과 ‘그리스도’이심을 전했다. 그 사건으로 옛 사울은 죽고 새사람 바울이 되었다. 바울은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라 자처하고 당시로서는 세상 끝이었던 지중해 연안 전역으로 전도여행을 세 번이나 다녔다. 바울의 가르침은 종말관, 인간관 등 다양하며 가장 중요한 사상중 하나는 ‘그리스도 안에 신비주의’라 할 수 있다. 예수가 죽은지 35년이 지난 후부터 마르코 복음, 마태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등이 차례로 기록되었다. 예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여 다른 사람도 그런 신앙을 갖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신앙고백서였다. 70년 이후 예루살렘 교회를 뒤이어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크, 로마 등의 교회가 중요한 교회로 등장했다. 그중에서도 여러 가지 정치 문화 종교적 이유로 로마교회가 가장 중요한 교회로 인정받았고 로마 교회 주교가 강력한 지도자로 부상하여 드디어 교황이 되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306-337)황제가 밀라노 칙령을 공표하고 그리스도교를 공인하였고, 393년 테오도시우스 황제 때 그리스도교를 로마제국의 공식 국교로 선언하였다. 중세교회는 1054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로 나뉘고 동방교회는 ‘그리스정교회’라고 하고 서방교회는 ‘로마 가톨릭교회’라 하였다. 동방교회는 1453년 이슬람의 침공으로 인해 모스크바로 옮겼고 서방교회는 로마가 본부였다. 12-13세기에 유럽전역에 대학이 생기고 각 대학에서 가장 중요한 과목이 신학이었다. 이때 활동하던 신학자를 ‘스콜라 신학자’라고 하는데 이들은 신앙과 이성을 종합하려고 노력한 사람들이다.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신학자를 꼽는다면 토마스 아퀴나스를 들 수 있다. 그의 책 「신학대전」은 신학적인 모든 물음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과 성서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일목요연하면서도 일관된 구조로 설명하고 논증한다. 또한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자 중에 가장 사랑받은 사람은 아씨시의 프란체스코(1182-1226년)이다. '사랑과 청빈의 복음'을 다시 세우라는 소명을 깨닫고 수도공동체를 만들어 청빈과 기도의 생활을 하고 나병환자 등을 돌보는 일에 헌신했다. 15세기 인쇄술이 발달되면서 성서를 직접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교회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베드로 성당 건축과 면죄부를 파는 일 등에 반대하는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독일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성서를 가르치던 젊은 신학자 마틴 루터 (1483-1546년)는 교회에서 하는 일 중에서 옳지 못하다고 생각 되는 것 95개 조항을 적어 1517년 10월 31일 비텐 베르크 교회 문에다 못 박았다. 교회가 ‘믿음과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친데 반해 루터는 이른바 ‘믿음으로만’을 강조하고 하느님의 은총으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했다. 루터의 저항운동을 ‘프로테스탄트 운동’이라 부른다. 루터 이후 칼뱅파의 일부인 ‘청교도’들이 박해를 피해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으로 갔다. 영국에서도 헨리 8세가 새 왕비를 맞으려고 교황에게 이혼을 허락해 줄 것을 요청했다 거절당하자, 무시한 채 새 왕비를 맞아들인 다음 로마교회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1534년 스스로 영국교회 수장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성공회’라 한다. 영국인 조지폭스(1624-1681년)에 의해 시작된 종교단체인 ‘퀘이커’는 목사나 신부 없이 침묵 중에 앉아 ‘내면의 빛’을 기다리는 예배를 드리다가 영감이 오면 조용히 발언하여 다른 이를 위해 ‘섬기는 자’가 된다. 이들은 노예제도반대, 평화운동 등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교황 요한 23세가 1962- 65년 사이에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하고 프로테스탄트나 동방교회와의 화해와 공존의 방향으로 돌리는 혁명적인 교회쇄신을 단행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교회들이 갈래갈래 갈라지는 것을 본 많은 그리스도인은 교회일치운동을 전개한다.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하나로 뭉쳐 세상에 더욱 효과적으로 봉사하자는 의도였다. 이런 움직임을 ‘에큐메니컬 운동’이라고 한다. 그밖에도 흑인신학, 해방신학, 여성신학, 민중신학 등이 나와 ‘일상의 신앙화’를 드러냈다.
④이슬람교
이슬람은 ‘복종’이라는 뜻이고 ‘무슬림’은 복종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이슬람교는 현재 거의 12억 신도를 가진 종교로서 수적으로 그리스도교 다음으로 큰 종교일 뿐 아니라 가장 빨리 성장하고 있는 종교이다. 이슬람은 중동의 아랍 여러 나라에서 신봉하는 종교로 보통 알려졌지만 이란, 아프리카,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필리핀, 중국, 러시아 등에서도 중요한 종교이다. 지리적으로 볼 때 신도의 반 이상이 중동 지역 동쪽에 퍼져있다. 창시자 무하마드는 570년 메카에서 유복자로 태어나 25세 되었을 때 15살 연상인 여인과 결혼했다. 610년 40세 되던 해 라마단 달 어느 밤 동굴에서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읽으라,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계시한 것을’하는 소리를 들었다. 무하마드는 극적인 종교체험인 계시에 따라 하느님이 한 분 뿐이라는 것, 심판이 임박했다는 것, 평등 박애 등 윤리적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 등을 가르치고, 우상숭배나 영아살해를 금하라고 외쳤으며 유일신 신앙과 윤리적 삶을 강조했다. ‘예언자의 도시’라 부르는 도시 ‘메디나’로 피신한 서력 622년을 이슬람력의 원년으로 삼았다. 메디나에 기도하는 집 ‘모스크’를 짓고 매주 금요일에 모이기로 하고 개인적으로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하는 제도를 수립했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여섯 가지 서원을 한다. 첫째는 한분이신 하느님 외에 다른 신을 경배하지 않는다. 둘째는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 셋째는 간음하지 않는다. 넷째는 영아살해를 하지 않는다. 다섯째는 나쁜 말을 하지 않는다. 여섯째는 정당한 일에 있어서 예언자에게 불순종 하지 않는다. 이슬람 전통에서 예루살렘은 메카, 메디나와 함께 3대성지로 꼽히는 곳이다. 이슬람 경전은 「꾸란」이다. 아랍문학의 모델이 되어 아랍어를 배우는데 가장 좋은 책이다. 「꾸란」은 하느님의 직접적인 계시라 믿으므로 이것이 가지는 권위는 세계 어느 경전보다 크다. 이슬람은 교리중심의 종교라기보다는 실천 중심의 종교라 할 수 있다. 다섯 가지 실천을 해야 한다. 첫째, 하느님 외에는 신이 없으며 무함마드는 예언자라는 고백을 하고 증언하는 것이다. 둘째, 하루에 새벽 정오 오후 일몰 밤 이렇게 다섯 번씩 기도해야 한다. 셋째, 헌금을 해야 한다. 넷째, 라마단 한 달 동안 낮 시간에 단식을 한다. 다섯째, 일생에 적어도 한번 메카로 순례를 하고 와야 한다. 근대에 와서 이슬람은 찬란했던 권력과 문화에도 불구하고 쇠퇴하기 시작했다. 몽골인이 지배세력으로 떠오르면서 과거 500년 동안 쌓은 이슬람 전통을 말살했기 때문이다. 세계 종교분쟁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세 종교가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하고 있어서 아브라함적 종교라 불리고, 다 같이 하느님을 섬기는 유일신교인 이슬람교, 유대교, 그리스도교가 서로를 좀 더 이해하고 협력한다면 세계평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⑤ 힌두교
‘힌두’라는 말은 ‘인도’라는 말과 같다. 힌두교란 인도에서 발생한 종교라 할 수 있는데 그중에「베다」의 권위를 인정하는 전통적 종교만을 일컬어 힌두교라 한다. 힌두교는 창시자가 없다. 세계 종교 중에 가장 오래되고 복잡한 종교이다. 힌두교 전통에는 세계 여러 종교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성이 거의 다 포함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종교적으로 다양한 요소가 공존한다. 예배의식을 위해 여러 노래를 지어 부르고 나중에 이를 모아 「베다」라고 했다. 베다라는 말은 ‘앎’이라는 뜻이다. 기원전 9~7세기에「우파니샤드」라는 문헌이 생겼다. ‘우파니샤드’란 학생이 스승 가까이에 경건히 앉아서 우주와 인생의 깊은 뜻을 찾아 서로 대화한 기록이라는 뜻이다. ‘우파니샤드’는 최초로 대화체로 된 문헌이며 스승은 제사장급과 무사계급에 속한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우파니샤드’에서는 ‘이해’ 혹은 ‘깨달음’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강조된다. 기원전 3세기~기원후 3세기경에 ‘마누 법도론’이 있다. 힌두교인의 실제 종교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문헌이다. 사성제도인 브라만, 크샤트리야, 바이샤, 슈드라, 불가촉천민이 있으며 모든 사람은 태어난 계급에 맞는 역할과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거기에 따르는 법을 잘 지키는 것이 종교 생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바가바드기타’는 기원후 3세기에 생겨난 것이다. 이전까지의 모든 종교사상이 흘러들어가 있고 또 거기서 모든 종교사상이 흘러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힌두교 역사상 중요한 문헌이다. ‘바가바드’는 주님이고 ‘기타’는 노래라는 뜻이다. 본래는 ‘마하바르타’라는 대서사시의 한 부분이었는데 나중에 독립된 문헌으로 떨어져 나와 널리 읽히게 되었다. ‘바가바드기타’는 ‘신애’가 종교생활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경전이다. 현대 힌두교 개혁자로서 간디(1869~1948년)는 다양한 종교적 전통에서 얻은 지혜와 이성에 따라 사회를 개혁하고 인도독립을 이루려고 노력했는데 이를 위해 그가 채택한 가장 유명한 원칙은 아힘사(비폭력)와 사타그라하(진리파지)이다. 힌두교는 오늘날 이슬람교와의 충돌로 인도인의 관용적정신이 시험대에 놓였다고 볼 수 있다.
3) 나를 찾는 내적 여정(에니어그램)
세상을 깨끗이 하고 싶거든 내 집 앞부터 청소하라고 했다. 따라서 먼저 자기 자신의 내적 상태를 알지 못하고 외적인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면 모래위에 집짓기와 다름이 없다. 에니어그램이란 <ennea-아홉>와 <gramma-문자, 점, 무게>로 이루어진 말이며 ‘9개의 점으로 이루어진 그림’이라는 뜻이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형성하는 9가지 성격유형(ego 자아고착)과 그 특성들 간의 상호관계를 나타내는 도형이다. 에니어그램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사막의 교부들에게서 유래했다고 밝혀지고 있다. 19세기 구루지예프에 의해 처음 세상에 소개되었고 그의 제자 우스펜스키가 스승의 가르침을 기록한 <가족을 찾아서>라는 책을 발간하게 되면서 서양에 알려지게 되었다. 칠레의 아카조가 이를 발전시켜 또 하나의 계보를 형성했다. 이를 나란조가 전수받아 현대 심리학과 접목시켜 좀더 체계적으로 정립하였다. 우리에게는 본래의 나와 세상 속에서 만들어진 나가 있다. ‘세상 속에서 만들어진 나’란 살면서 스스로 형성하거나 사회적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모습이다. 대표적인 용어로 이를 그리스어로 persona 라 한다. 가면, 탈, 배역이라는 뜻이다. 외적으로 보이는 persona는 성격, 인격, 신념, 습관, 자아이미지, 가치관, ego system 등이다. 이 페르조나는 자신이 맡고 있는 배역과 사회적으로 필요해서 만든 얼굴과 살아가며 형성한 생존방식이다. 페르조나와 자기를 동일시 하면 참나(본성)는 잊혀진다. 페르조나에 자신이 더 강하게 고착되어 있으면 있을수록 본성을 일깨울 필요성도 없어진다. 그러나 자신의 본성으로 살면 진정한 자유, 은총, 구원, 자기실현을 누릴 수 있다. 에니어그램은 영적 성장의 과정에서 기본요소인 자기 인식에 관한 것이다. 의식개발 작업에 필요한 현존, 자기관찰의 실천, 자기 경험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다. 에니어그램과 함께하는 자기탐색은 자신의 성격유형을 찾고 그 유형에서의 주된 문제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한다. 아홉 가지 유형에서 자신의 행동 메커니즘을 발견할 수 있고 이중에 하나가 자기 행동의 근본이 된다. 에니어그램에서는 인간을 3중심과 9유형으로 설명한다. 3중심이란 본능센터(장중심), 감정센터(가슴중심), 사고센터(머리중심)이다. 누구나 태어날 때는 3중심이 균형을 이룬 통합된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왜곡된 경험으로 3중심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발달시키게 된다. 이것은 결핍의 소산이다. 여기서 9가지 유형의 성격이 파생된다. 모든 사람에게는 여러 성격 유형이 혼합되어 있지만 특정 패턴의 기본적인 성격유형을 가지고 삶을 한결같이 유지한다. 사람들은 발전하고 변화를 시도해보지만 기본성격유형에서 다른 유형으로 옮겨가지는 않는다. 에니어그램의 목적은 성격유형을 인식하고 메커니즘을 통찰하고 분별함으로써 자유롭고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즉 영적 존재로서의 근본적인 모습을 재발견 하도록 도와준다.
4) 긍정적 심리학
긍정심리학은 미국의 심리학자 마린 셀리그먼이 처음 사용했다. 불안, 우울, 스트레스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보다 개인의 장점과 미덕 등 긍정적인 감정에 초점을 맞추는 심리학의 새로운 연구 동향을 일컫는다. 긍정심리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며 마음수행을 통해 긍정적인 생각들을 신중하게 가려내고 부정적인 생각들을 물리친다. 이러한 노력이 가능한 것은 뇌의 구조와 기능 때문이다. 뇌는 인간의 모든 행동과 의식 무의식의 출발점이다. 현대에 ‘뇌과학’이니 ‘뇌내혁명’등 뇌 연구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9) 뇌에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크게 세층으로 나뉘는데 뇌간, 변연체, 대뇌피질로 구성되어있다. 파충류 뇌에 해당하는 뇌간은 뇌의 가장 아래쪽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호흡, 순환, 생식, 소화 등 생존에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생명의 뇌’이다. 인간이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없고 조절해서도 안 되는 기능이다. 정상적일 때 면역력과 자연치유력 등 인체의 재생능력이 활성화되며 건강이나 체력 면에서도 여러 가지 이로운 작용을 한다. 변연계는 뇌간 윗부분에 자리하고 있으며 웃고, 울고, 화내고, 기뻐하는 감정, 욕구, 충동 등과 같은 파충류가 가진 것 보다는 고차원적인 포유동물로서의 특징을 드러내는 기능을 관장하는 ‘감정뇌’이다. 변연계는 생존에 가장 필요한 본능에 속하는 식욕과 성욕 등을 관장한다. 감정뇌인 번연계는 대체로 생각뇌인 대뇌피질에 의해 짓눌리고 억압당하기 쉽다. 영장류에 해당하는 대뇌피질은 주름이 많이 잡혀있고 전두엽, 두정엽, 후두엽, 측두엽 등 네 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외부의 세계를 깊이 인지하고 생각하며 인과율에 따라 앞뒤를 분간하고 판단하며, 언어를 토대로 기억, 분석, 종합 창조하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두뇌활동이 이루어지는 ‘생각뇌’이다. 즉 각종 기술 문명과 문화를 가꾸고 예술을 통해 창조적인 작업을 한다. 또 오감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외부의 사물이나 현상과 접촉하고 거기서 입수한 정보를 시시각각 대뇌피질의 안쪽에 있는 변연계로 전달한다. 뇌간은 무의식적으로 작동하고 대뇌피질과 변연계는 인간의 의식이 개입하여 작동된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셋은 각각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함께한다. 고도로 발달된 대뇌피질의 작용은 본능과 지성의 안내를 받는다. 균형 잡힌 뇌를 키워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자신의 뇌에 어떤 것을 입력할 것인지는 자신에게 달려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뇌를 단련하다」라는 책에서 ‘흔히 사람은 마흔을 넘기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 하지만 스무 살이 지나면 자기 뇌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했다.10) 뇌는 놀라운 적응력이 있어서 새로운 학습과정을 통해 마음의 부정적인 상태를 긍정적인 상태로 변화시킨다. 따라서 마음의 수행을 통한 사고의 전환으로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은 실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뇌세포 재생능력에 관한 연구 자료에 의하면 머릿속에 새로운 습관의 경로를 만드는 데는 총 21일이 걸리며 배운 것을 머릿속에 단단히 박아 습관적인 활동이 되게 하려면 다시 63일이 필요하다고 한다.11) 행복한 삶의 비밀을 찾아내서 근육운동 하듯이 뇌 운동을 하는 것이다. 하루야마 시게오는 「뇌내 혁명」에서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은 추상적인 관념 상태에서 그치지 않고 반드시 구체적인 물질로 변화되어 육체에 작용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12) 긍정적일 때는 뇌세포가 활성화되고 육체를 이롭게 만드는 ‘베타엔돌핀’이라는 유익한 호르몬이 분비되어 인체를 젊게 하며 암세포를 파괴하고 마음을 즐겁게 한다는 것이다. 생각을 바꾸면 삶이 달라진다. 절망하며 살 것인지 희망하며 살 것인지는 자신의 생각에 달려있다. 긍정적인 생각을 통해 나를 회복하고, 삶의 의미를 잃어가거나 지쳐있는 많은 현대인들에게 봉사를 통해 회복된 나를 나눌 수 있다. 봉사는 진정한 삶의 가치와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치료제와 같아서 남을 도움으로써 자신의 삶에 기쁨과 행복을 느끼게 한다. 사랑은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니, 삶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행복의 열쇠이다.
5) 나이 들어감에 대한 행복의 지혜
늙어감에 대한 심리적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우리 사회와 문화는 늙어가는 것은 무언가 잘못된 일처럼 불안해하고 피해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영적으로 가치 있는 삶이라는 자긍심을 갖기 위한 지혜를 찾아보고자 한다. 탄생해서 청년기를 넘기는 시점부터 신체의 분열 과정에 가속도가 붙는다. 보기 좋은 몸을 유지하기 위해, 몸의 분열 과정을 막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예외일 수는 없다. 물질적 형태를 가진 모든 생명체에 주어진 운명이다. 따라서 늙어가는 것은 극복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수용해야 한다. 늙음에 대한 육체적 현상에 구속될 것이 아니라 마음과 영혼의 문제로 보아야 나이 들어감에 대한 긍정적 삶을 모색해 나갈 수 있다. 육체는 비록 퇴화되어 가더라도 영적으로 더 성숙해지고 조화로울 수 있는 시기가 노년기이다. 늙는다는 것은 삶의 연속선상에서 성장되어지는 과정이며 성장이란 상실을 통한 성취과정이다.13) 즉 걱정을 잃으면 믿음이 오고 두려움을 잃으면 자신감을 얻는 과정과 같다. 나이듦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역설은 영적 활력을 유지시켜 주는 길이다. 나이 들어감을 수용하는 태도에는 자신의 내적 상태를 안정되고 평화스럽게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수동적 삶의 자세와 외적 활동을 활기차고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내적 상태에서 인생을 볼 때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제 1의 인생은 자신의 힘에 의존한 시기이고 제 2의 인생은 힘의 한계와 좌절을 체험하는 시기이고 제 3의 인생은 그 힘을 극복하여 진정한 자유와 내적 충만을 누리는 시기이다.14) 이때 인간은 비로소 완전해지고 자비롭게 된다. 우리는 사는 동안 적극적인 의지로 무언가 이루기 위해 발버둥친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을 내맡긴 수동의 자세에서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오직 능동적인 삶만이 가치 있는 삶처럼 세뇌되어 있다. 물질과 기능 중심의 현대사회에서 소극적이고 수동적 자세는 게으름이나 무능처럼 여겨져 비난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풍조 속에서 점점 여유를 잃고 초조해지면서 기능적 존재로 변해간다. 인생의 모든 것을 내가 내 힘으로 찾을 수 있고, 원하기만 하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것처럼 열정적인 삶을 산다. 그러다가 마침내 지쳐서 포기하고 원망하고 실망하고 좌절을 체험하면서 내 의지대로 되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말문이 막히고 의욕이 없다. 그때에 비로소 어딘가에 자신을 맡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외적인 힘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목마름을 갖게 되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욕구로부터 자유로울 때, 온전히 내맡기는 삶을 살 때, 자기 자신이 바뀌어져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걸림돌을 제거함으로써가 아니라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일 때 변화된 모습으로 태어난다. 새로운 삶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의 연약함을 인정해야 한다. 힘의 논리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때 비로소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되며 자신과 이웃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갈증을 느끼게 된다. 고통이 은총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는 평온함과 기쁨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제 3의 인생은 평화의 삶이다. 노년기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혼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문을 열어야 한다. 새로운 문을 연다는 것은 나이듦의 목적에 관한 새로운 생각과 태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예전의 생각이 들어있는 마음의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이 들어감의 긍정은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찾고 그 사랑으로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지혜를 찾게 된다. 예일 대학교의 외과 교수이며 「사랑, 의학 그리고 기적」의 저자인 버니시걸 박사는 인간의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고, 기존의 항암치료를 보완해주는 새로운 행동치료법을 창안해냈다.15) ‘긍정적인 메시지인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하느냐, 부정적인 메시지인 두려움과 죽음의 메시지를 전달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몸은 생물학적 화학적 반응을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몸은 성장을 촉진하고 건강을 유지하게 하는 화학물질을 만들어내고, 세상을 두려움과 죄책감으로 바라보면 몸은 균형을 잃게 되어 여기저기 고장 나고 쇠약해지게 된다. 노화를 막고 젊어지기 위해 비타민이나 주름방지 크림 등 다양한 약품과 화장품을 사용하고 있지만 젊음의 샘은 마음에 있다. 그 샘의 이름은 사랑이다. 긍정적인 마음과 사랑이 있다면 노화의 속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고통에서 기쁨으로 마음과 태도를 바꾼다면 늙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살기위해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인다면 타인의 도움이 되어줄 수 있고 도움을 받을 수도 있어서 행복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Ⅲ. 나오며
21세기는 문화의 시대이며 여성의 시대이며 영성의 시대이다. 또 컴퓨터와 인터넷에 의한 정보지식의 시대이며 생명공학의 시대이다. 반면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경제적 양극화를 감당해야 하는 시대이다. 과학의 발전은 생명과 환경을 위협하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생명조작과 자연파괴와 상대적 빈곤감에 의한 정서적 불안감은 예전에 비해 더욱 증대해 가고 있다. 따라서 어느 때보다 전인적 자기계발과 깨달음이 필요하다. 생활 속에서 잃어버린 영성과 진심 속에서 잃어버린 지혜와 정보 속에서 잃어버린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를 예민하게 통찰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고귀한 본성인 영성은 회복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자료, 정보, 지식, 지혜 보다 우선적으로 영성적인 삶의 태도를 정립하여야 하는 것이다. 심리학자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설」에서 마지막 단계인 ‘자기실현의 욕구’는 사랑, 선행, 봉사 등을 통한 자신의 존재의미를 구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에릭 프롬은「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인류의 가장 근본적인 두려움은 다른 인간들과 멀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변치 않는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애정과 자비심 그리고 서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관계를 맺어야 한다. 함께 더불어 행복해지는 삶을 사는 것이 영성적 삶이다. 다양한 문화와 환경과 어려움 속에서도 영성적 삶을 일궈내는 노력이 나이 들어갈수록 안정되고 평화스러운 삶을 맞이하게 도와줄 것이다.
Ⅳ. 참고 문헌
김경재 「이름없는 하느님」2003 삼인
오강남 「세계 종교 둘러보기」2004 현암사
이정호 「행복에 이르는 지혜」방송대 출판사
영국BBC 다큐멘터리 「행복」2005 예당
김민수 「문화복음화와 문화사목」2008 평사리
달라이 라마 「행복론」2002 김영사
차동엽 「무지개원리」2007 위즈앤비즈
리처드 P. 존슨 「내 영혼의 리필」2005 옮긴이 한정아 열린
이제민 「제3의 인생」2006 바오로딸
돈 리처드 리소. 러스 허드슨 지음 주혜명 옮김 「에니어그램의 지혜」한문화
김창남 「대중문화의 이해」한울 아카데미 1998. p.10
첫댓글 내용이 진짜 많네요 세계의 교는 따로 공부 안하셔도 되겠어요 전 파일을 올려주시면 프린트해서 보려구 했는데... (이렇게 컴화면으로 읽으면 힘들어서요...) 암튼 '영성'이란 단어가 제겐 와닿는 단어가 아니었는데 언니들 읽으니 조금 이해가 가는 둣해요 뭐든 맘먹기 나름이죠... 우리 모두 아름답고 멋지게 나이들어서 오랫동안 함께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