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
『인 콜드 블러드』,트루먼 카포티,시공사,2006.
『인 콜드 블러드』는 일가족 살인 사건과 그 수사과정을 다룬 실화의 기록물이다. 1959년 캔자스 주 조용하고 작은 동네 홀컵에서 일가족 네 명이 무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클러터 가족은 친절하고 이웃들을 도와주고 평판이 좋은 가족들이었다. 이들은 평범하게 농장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지냈다. 범인은 페리 스미스와 딕 히콕으로 밝혀진다. 여기서부터 카포티는 개입하며 페리와 딕의 사건을 소설로 쓰기를 마음먹는다. 저자는 살인자들을 인터뷰하면서 왜 그들이 살인을 했는지 의문을 제시한다. 의문은 계속 독자와 저자가 호흡하며 소설을 끌고 가는데 결국 정확한 살해원인은 드러나지 않는다. 겉으로 드라는 일은 40달러를 훔쳤다는 것, 딕이 낸시를 강간하려고 해서 페리가 분노했다는 것, 범인들의 환경이 불우했다는 것 정도로 드러난다. 페리와 딕이 도대체 클러티 가족을 살해까지 했을까?
나는 그 사람에게 해를 입히고 싶지 않았어요. 클러터 씨는 친절하고 좋은 신사 분 같더군요. 말도 부드럽게 하고, 그 사람 목을 그어버리는 순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p465)
담당 수사관에게는 현재 범행 동기는 알 수 없지만, 범행 수법 자체에는 확실히 빈틈이 없는 한 명, 혹은 그 이상의 범인을 추적해야 하는 과제가 남겨졌다. (...) 실패로 돌아가긴 했지만 강도를 하려고 한 게 아니라면, 명확한 동기가 없음. 수사관들은 이 동기를 별로 인정하지 않고 있음.(p143)
카포티가 교도소에서 범인들의 살해동기를 파헤치며 연민을 느끼는 대상은 페리이다. 사실 딕은 자신은 죽이지 않았고 페리가 모두 네 명을 죽였다고 증언하고 페리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페리의 부모님은 불화는 끊이지 않았고, 형과 누나는 자살을 한다. 페리에게는 평범하게 살고 있는 또 다른 누나가 있는데, 동생의 범죄 소식을 듣고 만나기를 외면한다.
“그러지 않을 거예요. 사실, 그 애는 우리가 이사한 것도 몰라요. 내가 아직 덴버에 살고 있는 줄 알죠. 부탁인데 그 애를 찾아도 내 주소를 알려주시지 마세요. 무서우니까요.”(p284)
"하지만 난 그애가 두려워요. 언제나 그랬어요. 그 애가 마음이 따뜻하고 동정심이 많은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죠. 상냥하고 툭하면 울음을 터트리기도 하고요. 어떤 때는 음악을 듣고 감동하기도 하고, 어렸을 때는 석양이 너무 아름답다며 울기도 했어요. 어떤 때는 달 때문에 울고. 아, 그 애가 얼마나 남을 잘 속이는데요. 누라라도 자기를 불쌍하다고 생각하게 할 수 있는 애예요....“(p285)
카포티는 다작을 하지 않았지만 <인 콜드 블러드>를 통해 카포티의 문장력에 독자는 매료된다. 자신이 엄격하게 증언에 의한 기록과 조사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해서 쓰며 ‘논픽션 소설’이라는 장르에 매달렸다. 작품은 6년 동안 두 살인자의 삶과 작은마을을 다니며 기록했다. 카포티의 집념이 바쳐진 작품이다.
카포티도 불우했던 시절로 페리 스미스를 인간적으로 사랑하는 감정을 느끼지만 문학적 야망으로 결국 페리를 이용하고 있다. 페리의 사면을 위해 힘써주겠다고 했지만 책은 범인들이 사형선거를 받아야 결말이 나오기 때문에 결국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카포티는 소설의 제목을 페리에 <인 콜드 블러드> 냉혈인간이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인 콜드 블러드>는 냉혈인간을 다루는 스토리지만 아름다운 카포티의 문장에 빠져 결국 페리에게 연민을 보내게 된다. 카포티 자신이 페리에게 감정이입을 느끼면서 결국 이렇게 말한다.
“페리와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같은 집에서 자란 것 같았어. 그런데 어는 순간 나는 앞문으로, 그는 뒷문으로 나간 것 같았지.”
<인 콜드 블러드>(1966)은 500만부가 넘게 팔렸고 완벽하게 성공했다. 그러나 말년의 카포티는 외롭게 죽는다. 카포티의 어머니도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자살했고 35년이나 지냈던 연인 잭 던피도 그를 떠난다. 사교계는 그를 외면했다. 그는 작고 시끄러웠고 프루스트 소설기법을 쓰고 싶어했다. 카포티는 섬세하고 사실적이며 서정적인 문장을 썼다는 평을 받는다. <인 콜드 블러드>를 읽으면서 감정선을 계속 유지하며 페리가 되어가는 카포티의 문장을 왜 무라카미 하루키가 탐닉했는지 알겠다.
<인 콜드 블러드>의 집필과정을 영화 <카포티>에서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본다면 완벽하게 카포티와 페리를 이해할 지 모른다. 카포티를 연기한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연기는 완벽하다. 가는 목소리, 기우뚱한 표정, 짧은 다리, 예리한 표정과 눈썹의 움직임 등이 카포티를 대변하고 있다.
삶은 느닷없이 일이 벌어진다. 조용하고 적막한 일상에 살인사건이 일어나며 벌어지는 캔자스의 작은 시골이 우리 마을이 될 수도 있다. 인생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고 페리도 카포티에게 우리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서평-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