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보스'는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의미한다. 그러나 본절에서의 '포보스'는 앞절의 담대함의 반대 개념으로 노예가 갖는 두려움을 가리킨다. 이러한 '포보스'는 사랑과 함께 공존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그 사랑을 소유하고 있다면 앞절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서 전혀 두려움이 없이 담대해질 수 있다.
비록 죄는 두려움을 유발시킬지라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사랑을 소유한 자들에게 사랑은 담대함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 본문은 사랑과 두려움이 공존할 수 없는 이유이다. '형벌'에 대해서 혹자는 마지막 날과 연결시켜 하나님의 정죄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며, 혹자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방해하는 고통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 두 가지 해석은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자.
즉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하고 사랑 안에서 생활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상호간의 내주와 사랑의 관계를 유지시켜 나가게 되며 그 결과 마지막 날에 죄로 인한 정죄함에서 오는 두려움을 갖는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갖는 담대함을 갖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이 갖고 있는 사랑은 공존할 수 없는 두려움을 내어쫓기 때문이다.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 개역성경에는 반의 접속사인 '데'가 생략되어 있다.
헬라어 본문의 '데'는 본문이 17절 상반절의 내용, 즉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하나님의 사랑'을 역으로 진술한 것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인 상호간의 내주로 인하여 사랑은 이미 하나님의 자녀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졌다. 그러기에 믿음과 사랑 그리고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었다. 이와 반대로 만약 누구든지 담대함이 없이 두려움에 사로잡힌다면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하지 못하였으며 그 사랑의 실체를 온전히 성취하지 못한 자이다.
[호 13:14]"내가 저희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목전에 숨으리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음부'(쉐올)란 죽은 사람이 가는 사후 세계로 여겨졌다. 그들은 온 우주는 하늘과 땅과 지하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중 음부는 지하 세계로서 모든 자가 사후에 가는 곳으로 간주되었다. 이들은 음부가 어둡고 침묵이 흐르며 모든 것을 잊는 망각의 세계로 생각했다. 또한 본 구절에서 '권세'란 '야드'인데, 여기서는 상징적인 의미로도 쓰였다. '속량하며'는 기본어가 '파다'로서, '값을 주고 석방해 내다', '구원하다'의 뜻을 갖는다.
'내가 음부의 권세로부터 그들을 속량하겠느냐? 내가 사망으로부터 그들을 구속하겠느냐?'로 번역하는데, 이는 부정적인 의미로서 속량하거나 구속하지 않겠다는 뜻임을 알려준다 구속하리니 - 이에 해당하는 기본어 '가알'은 '(값을 주고)무르다', '배상하다'의 뜻이다. 사망아...어디 있느냐. 음부야...어디 있느냐 - 본 구절은 크게 두 가지로 번역된다. , 음부야 나는 네 멸망이 될 것이다'로 번역한다. (2)'에히'를 '아이'의 뜻으로 보아, 한글 개역 성경처럼 번역한다.
칼빈은 전자를 지지하나, 카일이나 크리숌등은 후자를 따른다. 여하튼 본 구절은 사망과 음부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에 별 영향력을 행하지 못하리라는 뜻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회복의 약속을 암시하는 말이기도 하다. 뉘우침이...숨으리라 - 본 구절은 (1) 긍정적인 의미로서 하나님께서 구원하고자 하시는 계획을 바꾸지 않는다는 뜻, 즉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구원이 반드시 이루어짐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 (2) 부정적인 의미로서 이스라엘의 회개가 하나님의 눈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형벌이 확실히 임할 것으로 보는 견해등이 있다. 어느 해석을 따르든지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이 동전의 앞뒷면처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고전 15:55]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