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밭 가는 길 2014, 6.4
1부
요즘 오전 6시는 태양이 솟고도 한참이다. 고구마 밭이 궁금하긴 매일 마찬가진데 오늘은 작심하고 발길을 옮겨본다. 성당 사거리 첫 신호등을 건너면 철로 터널이다. 너비 오 미터도 안 되는 인도 터널이 겨울이면 삭풍 같은 매서운 바람이 깔때기처럼 통로로 빨려들고 여름이면 몇몇 동네 어른들이 무더위 식히는데 딱 참 맞은 곳, 그런 이곳에 언제부터인가 돼먹지 않은 일러스트 벽화가 그려지기 시작하더니 오늘도 방금 전 분탕질을 한 듯, 페인트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나마 나머지 빈 벽을 온통 흉물스럽게 덮어버렸다.
음침한 철로 터널을 나오면 가재라도 기어 나올 듯 한 작은 도랑이 나오고 코딱지 같은 작은 뙈기밭 농장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어 경계를 분간하기도 어렵다. 여러해 전 오이도역과 정왕역 간 철로 변 부지에 상추 열무 들깨랑 고구마 싹도 200포기나 되게 심었었다.
어느 날, 예고도 경고도 없이 불도저가 밀어 엎어 부치고 수림조성용 수목을 심어 버렸었다. 그렇게 해서 그해는 텃밭 좀 가꾸어보려던 욕망은 접어버렸는데 다시 이듬해 오이도 철길 건너편으로 아직 모든 땅들이 수자원 소유일 무렵에 싸리 밭 돌각사리 비탈을 일궈 어렵게 밭을 만든 지인이 옆집에 살고 있었다. 그렇게 힘들게 일군 밭을 한해 농사도 지어보도 못하고 이사 관계로 내게 넘기곤 가버렸다.
땀 한방을 흘린 일 없이 거저 얻은 땅을 오늘까지 십 수 년을 붙혀 먹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거듭되는 농사일이 농사도 안 되게 반복하였는데, 여나무 해 전,인터넷으로 신청하여 심은 감나무 열 그루가 심겨진 이래 감나무도 제 구실 못하고 주인도 제 구실을 잃고 말아 농산지 뭔지 그렇게 이것저것 흉내만 내다 잘되면 고구마 서너 상자 못 되면 싹만 날리는 그런 반복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초봄이면 상추 쑥갓 뿌려 봄 여름 내내 남아돌게 뜯어 먹고 초가을이면 무 배추 심어 겨울 김장김치 넉넉히 담가 먹었다.
금년 들어서는 정말 농사지을 형편이 아니다.
소출은 시원치 않고, 수술 후 후유증은 여전하여 피로하고, 그리하여 의욕은 상실되고, 이제 몸이 지쳐 말이 아니다. 게다가 가을 출판 준비하며, 개인전 준비하랴, 더하여 안 하던 블로그 운영하랴 바빠 죽겠다. 그러나 어쩌랴, 올 한해 농장정리를 못하고 오월이 왔으니 그런대로 또 흉내 내어 놀리지는 말아야지 하며 고구마도 숫자를 줄여 100주를 심었고 상추, 쑥갓, 알타리, 시금치는 이미 사월에 뿌렸다. 엊그제 추기로 비트 한 봉지 사다 뿌렸는데 제법 자랐을 것이다.
어젯밤 비가 20미리는 왔다니까 밭 해갈은 그런대로 된 셈일테고 작물도 거짓 말 못하니 조금은 자랐을 것이다. 오이도 역(4호선 출발지 역)뒤 자그마한 동산엔 아직 모 부대의 잔재가 버티어 있고 아카시아 숲이 기슭으로 덮혔는데 흙보다 돌이 많은 산, 그런 산 비알이 철로와 접하여 겨우 승용차 하나 지나갈 만한 길 하나로 경계하고 있다. 고물상 동네라 별명이 붙을 정도로 폐기물 수집업체가 난무했는데 몇 해 전 시흥시가 법 조례를 들어 정비하기 시작 하면서 줄기 시작하더니 하나 둘 사리지고 이젠 몇몇 업체만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내가 이용하는 철로부지 ‘고구마 밭 가는 길’ 오른 쪽도 예외가 아니게 그런 동네였는데 이제 몇 없고 철거된 업체 중 하나에 업종을 달리하여 들어와 성업하고 있는 화물운반용 목재 판넬 공장이 매일 요란스레 기계톱 소리를 내며 송판을 자른다. 바짝 말라보이나 강단이 있어 보이는 내 또래 사장님이 매일 베트남 여성 하나를 데리고 나무 자르는 일을 보며 지나치다가 지난 해 겨울 허리 잘린 드럼통 안에서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불길을 보고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이 인연이 되어 이제는 조용히 지나치려 해도 들키고 만다. 질마산 너머로 부는 바람이 전철 간선을 따라 몰아치면 북녘삭풍이 못지않게 매섭다. 그러면 한결같은 모닥불은 수시로 던져 넣는 폐목재에 의해 길고 붉은, 때로는 노란 불 혀를 서너 자는 게 빼물며 타오른다.
잠시 쪼그리고 앉아 불을 쪼이며 몇 마디 수작할라치면 “모닥불에 거지 살 찐다”는 속담이 남 말이 아님을 실감하는, 그래서 행복한 순간을 겨우내 느꼈던 그런 골목을 지난다. 오늘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인사고 없고, 모닥불도, 열심히 나무 동강을 던지던 베트남 여성도 없어 깨끗한 기계톱 선반만 썰렁하다. 계절은 못 속인다 하더니 엊그제 뿌린 씨앗이 안자라 철이 거꾸로 가려나 했는데 이젠 제법 태양은 길어지고 오전의 열기도 예사롭지가 않다. 벌써 열흘은 넘게 고구마는 심어 놓고 죽었는지 말랐는지, 아님 잘 자라는지 무심했으니 수술을 빌미로 게으름은 피웠지만 ‘곡식은 주인의 발걸음을 듣고 자란다’는 속담에 민망할 정도다. 그보다는 농장 주변의 할머니 할아버지 아저씨들이 민망하고 볼 낮이 부끄럽다.
마음이 한가로우면 섬세함이 보이던가, 오늘은 딱히 한가할 마음도 아니련만 벼르다가도 지쳐 걸음 내 딛지 못 하던 다른 날에 비하면 한결 마음은 노고지리, 하늘까지 맑았다.
왼쪽은 감자밭, 오른쪽은 아카시아 숲, 신호등 없는 협로를 까불치며 넘나들던 참새 몇 마리가 문득 멈춰 발아래 피어있는 따개비 같은 꽃을 들여다보는 사이 제풀에 놀라 날아가 버리고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아카시아 숲 꽃송이에 코를 대 보는 순간, 이제는 동네 텃새가 되어버린 때까치란 놈이 양철 긁는 소리를 내며 자지러지게 운다.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켜 가던 길을 재촉하는데 지난해 겨울, 흰 눈, 싸래기 눈이 살짝 뿌리던 날,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화인 맞은 양심의 산물이 덩그러니 두 개 놓인 채 아직 그대로다.
흥망이 부침하는 휴대폰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망해 기물조차 처분할 길이 난감하여 예다가 팽개친 것인지, 뜯겨진 통신 삼사 마크 자욱이 선명하다. 비탈진 도로 옆 땅까지 놀리기 아까워 누군가가 심어놓은 호박 넝쿨이 무성하게 자라더니 지난해 여름 장마엔 커다란 애호박 하나가 굴러 떨어져 도로 복판까지 딩굴며 놓였었다. 줒어 오기도 민망하고 가져가기도 무겁고 짐스러워 그대로 넝쿨 숲에 감춰두면 다시 굴러 떨어지기 일쑤이던 그런 호박넝쿨이 올해도 칡넝쿨과 사이좋게 이 비탈을 덮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올 가을, 잘 익은 노오란 늙은 호박 하나 도로 복판까지 굴러 떨어지면, 그리고 그때까지 저 화인 맞은 휴대폰 진열장이 그대로 방치된 날이면 나는 결코 그 늙은 호박을 넝쿨 속으로 다시는 쑤셔 박지 않을 것이다. 비록 짐스러워도, 그날이 때까치 빡빡 긁어대며 짖는 날이어도 말이다.
열차 하나가 절개지 벽을 바짝 끼고 4호선 마지막 역을 힘겹게 들어서고 있다. 당고개에서 출발한 열차가 두 시간 넘게 달려 막 종착지에 들어서면 안내인은 핸드 마이크를 들고 송도 행 열차의 바꿔 타기 안내를 할 것이고 그 소리는 곧 야산 기슭에 부딪쳐 메아리 칠 것이다.
오른 쪽 00부대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정왕 주민들 중 거의 없을 것이다. 몇 해 전 부대에 근무하던 중사 하나가 잉크통을 들고 우리 샵을 찾아 충전 의뢰 했을 때 들은 이야기로, 순둥이 똥개가 새끼 다섯 마리를 낳아 이제 지인(知人)들한테 한두 마리 나눠주기 시작했다는 정보 말고는 아는 게 나도 없다.
처음 이사 와서 오이도 역사도 짓기 전, 지척으로 보이던 산 하나가 저 군부대 산이었고 그 기슭으로 이미 누군가의 개간했던 흔적이 돌 무지 축성처럼 보였던 저 비알 밭이 가까이 보니 무슨 산성 유적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무지 돌을 쌓아 만든 뙈기 밭 아래로 이제는 백 평도 넘는 농장들이 서너 개 씩이나 주인을 달리하고 있다.
지난 가을, 농사일들이 갈걷이로 마무리를 할 즈음, 비알 밭 농지에서 갈무리하던 여자 하나가 지나다 하는 내 인사를 받고는 농지 분양의사를 떠본다. 백 만 원이면 사방 한 평밖에 안돼 보이는 조립식 컨테이너 방을 하나 덤으로 얹혀 한 백 평을 되게 분양을 하겠단다. 사실 분양이란, 말도 안 되는 수작인데 거져 주면 주었지 백 만원 분양이라니. 백 만원이 뉘 집 강아지 이름인 줄 아나. 하긴 애초 돌무지 산을 파 일군 노력을 생각하면 결코 싼 값은 아니지만 주인이 애초 수자원 소속이었다가 지금은 시로 넘어 갔던 것이 다시 서울에 사는 개인들에게 분양된 상태. 언제 내 놓으라는 요청이 있을지 모를 땅을 언감 백 만원은 지불 못할러라. 냉정은 가끔 후회 없는 결과를 가져온다.
옆집은 벌통이 수십 개는 벌려놓고 성업 중인데 이제껏 지나면서 벌통지기 아저씨는 누군지 얼굴한번 본 일 없다. 언젠가 말이라도 부쳐 볼 요량으로 움막 같은 원두막으로 바싹 들어가 보았으나 주인은 어디가고 벌들만 윙윙하여 그대로 나온 이래로 아직 한번 본 일이 없다. 벌이면 그 군집생활에서 오는 오상(五常)중, 군신유의(君臣有義)의 유신(有信)함이 하도 신기하여 가까이 보고 관찰해볼 빌미를 얻으려 애썼는데 좋은 기회다 싶어 가보면 늘 주인은 없고 연락처도 없고 하여 예의 여자에게 물어봐도 그는 모른단다.
벌통집이 저 벌통이나 송두리 채 주며 분양받으라면 또 모를까.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