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어느날 백두대간 태백코스를 구간종주하며
흐르는 세월을 찾아 가고자 삼척을 노크하였다
영진안우기호님의 콜로 인하여 삼척을 향하기로 하고 배낭을 챙겼다
금요일 늦은밤 친구의 전화로 인하여 점봉산 진공계곡으로 먼저 방향을 잡았다
토요일 새벽2시에 도킹하여 서울을 탈출성공 홍천을 향하고 조금뒤 인제의 내린천 상류에에 도달하여 보니 어느새 희뿌연 여명이 밝았다
새벽5시 건재상에 도달하여 잠자는 주인을 기다리다 전화를 하여 주인을 깨워서 자재를 차에 옮기고 자상한 주인장의 배려로 모닝커피도 한잔 하였다
드디어 목적지 도착하여 짐을 풀고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중장비가 도착하여 일을 시작한다
통나무집을 짖는 친구가 부럽다 손수 본인이 집을 짖는다 가장 좋은것을 선텍하여 직접 매주 마다 조금씩 조금씩 건축한다
황토를 채우고 다지기를 수차례 일을 하다 흙속에 잔돌에 오른발 뒤축에서 한점의 살이 출장을 갔다 날까로운 돌에 찔려서 ....
어느덧 일이 마무리 될 시점이 되었다 중장비를 보내고 보니 소생도 급하다
삼척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황급히 친구를 보채서 양양 시외버스터미날에 도착하여 삼척표를 구하니 2분전 오늘 삼척행 마지막버스가 출발 하였다나 ...
망연자실 급히 우선 강릉행 우등버스로 대채하였다 터미날에서 정보에 의하면 강릉에서 삼척행이 있다나
일단은 버스에 올라 좌우를 보니 동행의 맑은 바다와 해수욕장이 보인다 여러곳의 마을을 지나 하조대에 이르고 다시 주문진에 이른다
이때 영진안우기호님의 전화 현재 위치를 알리고 나니 버스는 강릉에 도착한다 잽사게 내려 삼척행 직행버스표를 챙기고 출발하는 버스에 몸을 의지한다 주위의 어둠속에 동해를 지나 어느새 삼척터미날에 도착하니 반기는님이 있어 여행의 즐거움이 더하다
하지만 소생이 너무 늦은 시간에 도착하여 죄송한 마음이 가득한대 웃으시는 모습에 ...
안내한 해물탕집에 도착하니 산악회 회원분이 있다 인사를 하고 오가는 술잔에
즐거움을 마주하고 내일을 위하여 오늘을 마무리 한다
현재시간 5시 숙소를 나서니 사방이 조용하다 맞은편 편의점에서 소형사발면에 물을 부어 국물을 마시니 시원하다
일출을 보기위해 영진안우기호님이 소생을 픽업하여 삼척항을 지나 바닷가에 자리를 잡았다
잔잔한 구름속에 서 서서히 떠오르는 붉은 달걀 같은것 아니 시뻘건 용암이 치솟아 오른다
드넓은 바다가 온통 붌게 물들고 있다 소생의 마음도 온통 붉은 색이다 아니 저 용암에 다 타들어 갔다
지나가는 배도 저 구름도 날개짓하는 갈매기도 푸르른 소나무도 마치 모두 모두 타 없어질것 같다
열정과 대지의 열기가 ....
바다의 일출에 넋을 빼앗기고 있는대 옆에서 이동하자는 우기호님의 소리에 정신이 다시 돌아온다
삼척의 새천년도로를 따라 촛대바위에 이르고 수목화같은 장관에 마음을 두고 시내로 이동한다
해장국 곰치해장국이 일품이다 삼척의 명물이구나 시원한 국물에 김치와 곰치가 어울어지고 약간의 야채만 첨가 되었으나 주인장의 정성과 연륜이 담겨있어 더한층 맛깔스럽고 시원하다
대간종주를 위하여 도착한 죽서루 잠시 입장하여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다
죽서루 관동팔경중 제1경이라는 곳
창건자와 연대는 미상이나 <동안거사집>에 의하면, 1266년(고려 원종 7년)에 이승휴가 안집사 진자후와 같이 서루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것을 근거로 1266년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후 조선(朝鮮) 태종(太宗) 3년(1403) 삼척부사(三陟府使) 김효손(金孝孫)이 중건하였다 하며, 누 동쪽에 죽장사(竹藏寺)라는 절과 명기(名妓) 죽죽선녀(竹竹仙女)의 집이 있어 죽서루(竹西樓)라 이름하였다 한다.
오십천(五十川) 층암절벽(層岩絶壁) 위에 세운 이 누는 자연암반(自然岩盤)을 초석(礎石)으로 삼고 암반 높이에 맞춰 길고 짧은 기둥을 세운 5량구조(五樑構造)의 팔작집인데 공포(공包)에서는 익공계수법(翼工系手法)과 다포계수법(多包系手法)이 혼용(混用)되었는데 천장구조(天障構造)로 보아 맞배집이었을 가능성도 있어 조선(朝鮮) 후기(後期)까지 여러 번의 수리(修理)로 많은 변형(變形)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액(書額) 중 '제일계정은(第一溪亭)'은 현종(顯宗) 3년(1662) 부사(府使) 허목(許穆)이 쓴 것이고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는 숙종(肅宗) 37년(1711) 부사 이성조(李聖肇)가 썼으며, '해선유희지소(海仙遊戱之所)'는 헌종(憲宗) 3년(1837) 부사 이규헌(李圭憲)이 쓴 것이다. 이 밖에 숙종, 정조(正祖), 율곡(栗谷) 이이(李珥) 선생 등 많은 명사(名士)들의 시액(詩額)이 걸려 있다.
본 누의 남쪽에는 별관(別館)인 연근당(燕謹堂)이 있었다 한다. 두타산의 푸른 숲, 굽이쳐 흐르는 오십천, 기암절벽(奇岩絶壁) 등과 어울려 절경(絶景)을 이루고 있다.
죽서루 옆에 용문바위가 있다 용이 승천할 때 생긴것이다 그리고 여성의 음부와 같다고 하여 다산을 기원하는 많은 전설이 있단다
드디어 산행을위하여 버스가 출발 하였다
굽이 굽이 돌고돌아 높은령을 넘어서니 오늘의 출발지가 보인다
건의령 앞이다 잠시 몸을 푸는사이 건의령은
태백시문화원에서 정리해 놓은 전설에 따르면 이렇다. 고려 말 삼척으로 유배온 공양왕이 근덕 궁촌에서 살해되자 고려의 망국 유신들이 이 고개를 넘으면서 관모와 관복을 걸어 놓고 다시는 벼슬길로 나가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고 한다. 그래서 고개 이름이 관모를 뜻하는 건(巾)과 관복을 뜻하는 의(衣)를 합쳐 건의령이 됐다는 것이다. 대동여지도에도 분명히 건의령이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도 국토지리정보원의 5만분의 1 지도에는 한의령(寒衣嶺)이라고 표기돼 있다. 도로표지판도 마찬가지다. 두 이름 다 내포 의미가 비슷하기는 하지만, 한 가지로 통일이 돼야 할 것 같다.
건의령에서 푯대봉(1,009.2m)으로 오르는 초입은 소나무 숲길이다. 잘 생긴 적송인데, 태백국유림관리사무소에서 ‘태백송’으로 육림 중인 소나무다. 이 소나무 종자를 번식시켜 광산재해 산림복구용으로 보급할 것이라고 한다. 척박한 조건에서도 잘 자라는 이 소나무의 후세들이 폐광 후의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기를 기대해 본다.
소나무숲을 벗어나면 대부분의 등성이는 참나무가 차지하고 있다. 물론 드문드문 아름드리 금강송이 웅자를 드러내며 자신들의 존재를 확인시킨다.
조그만 이정표가 나온다 푯대봉과 구부시령등을 표시하고 있다
이정표조금지나 잠시 입산주를 위하여 준비항고 고시래를 하고 한잔의 술을 마신다 오가는 덕담과 오늘의 안전을 기원하며 출발 을 드디어 푯대봉이다 많은산악회의 표지가 보이고 앞으로 전진 전진 한참을 내려가는대 길이 이상하다 잦은가지가 길을 막고 작은나무가 길을 가로 질러있다
산악대장님의 소리가 들린다 잠시 정지 정지 현재인원점검 그리고 위치파악을 한다 무전으로 선두를 부르고 후미를 부르며 인원점검 ...
하긴 가는길에 길을 안내하는 리본이 하나도 안보인다 했는대 (**우리나라 산행은 아니 전 산행길에는 거의 리본이 보인다 모든산악회의 홍보와 안전산행을 위하여 길에 표시를 하기 때문에 **)
영진안우기호님의 결정 빽도를 지시하신다
다시 푯대봉으로 산행의 즐거움이 더욱 더해지는 에피소드가 하나 발생한다
이정표에서부터 다시 출발 하니 즐거움이 더해진다 한참을 지나서는 참나무숲과 관목 지대를 번갈아가며 구부시령을 향한다. 구부시령 직전에서 크게 솟구치는 것 말고는 편안한 길이다.
좁은소로에서 이름모를 아름다운 꽃을 발견하였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한껏 멋을 부린것이다
돌아 보니 아까 푯대봉에서 빽도한 길이 보인다 그냥 전진하여도 이길과 맞닷는 길이 된다
웃음을 지어본다
좌우로 숲길이 이다 어느새 배꼽시계가 시간을 알린다
모두의 의견을 청취하고 종합하여 드디어 어느 평평한 장소에서 만찬을 시작한다
오늘의 제일미 삶은 돼지편육이 한소쿠리는 나온다 거기에 파김치가 궁합을 이루니 곡차의 맛이 절로 우러난다
산해진미가 지금의 이것만 하랴 특생수가 있고 하늘에는 맑은 구름이 있고 숲에서는 피톤치드가 어울러지는 백두대간의 한 장소
드디어 구부시령에 도착하였다
구부시령(九夫侍嶺·960m). 한자 이름 그대로, 만나면 죽고 만나면 죽고 해서 아홉 남편을 모셨다는 여인이 이 고개의 동쪽 삼척시 도계읍 한내리에 살았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 한다.
그 마지막 다음 열 번째가 소생이었으면 그런 전설은 없었을 터인대 ㅋㅋㅋ...
실제로 그런 여인이 있었건 없었건, 따비밭에 목숨을 의탁해야 했던 강원도 산골 마을의 신산한 삶이 투영된 이름으로 들린다. 지금은 통행로로서 구실을 잃은 고개지만, 옛날에는 태백시 하사미동 외나무골과 삼척시 도계읍 한내리를 이어주던 고개였다 한다
대간의 특성상 우측은 낭떠러지이고 좌측은 완만하다 바람을 맞으며 도착한곳 덕항산이다
화전과 삶의 애환이 서린곳이기도 하다 멀리 시선을 두고 잠시 사색에 잠기고 ..
다시 출발 하여 숨이 한턱에 가득채워 넘으니 이정표이다
이곳에서 방향을 결정하여 골말로향한다
이능선이 코등능선이란다 사람의 코등을 보면 생각난다 좌우에 길이 없다 오진 능선으로만 길을 간다 또 이곳의 계단이 이천개나 된단다
내려오는 중간에 926계단 중간지점이 보인다 하산하는 길이 많이 가파르다 우리 중년음방서 산행하기는 무리인것 같다 하지만 까이거 가면되지 ....
하산 중간지점에서 환선굴이 보이고 또 관음굴이 보인다 관음굴이 음부와 같다고 한다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모습이다
다리에 쥐가 날무렵 물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시원하다 길이 보인다
물을보고 족탕을 하니 물이 마치 얼음물이다 조금 지나니 마비가 된다 어느새 흐르는 물에 피곤함도 땀의 냄새도 함께 흘러간다
삼척에 도착 하산주 한잔 마시고 버스터미널에서 표를 사고 잠시 시내구경을 하고 버스에 몸을 의지한다
화려한 조명과 무거운 공기가 가슴을 짖눌러 깨어보니 동서울이다
삼척에서 고마운 영진안우기호님에게 이글을 빌어 감사하는 마음도 함께 올림니다
9월 어느날 추억의 한페이지를 정리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