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학자 손민정 2020년 1월호 춘추초대
춘추초대
음악학자 손민정
한국교원대학교 교수의 인간이 향유하는 음악문화 연구
현재 한국교원대학교 음악교육과 교수로 활동하며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는 음악학자 손민정을 만났다. ‘인간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과 ‘호기심’으로 음악연구를 해온 그는 인터뷰를 통해 ‘위기의 세상에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예술이며, 특히 음악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말했다. 음악학자 손민정의 다양한 음악학 연구를 통해 세상의 아픔이 치료되길 기대한다.
선생님에 대해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새로 전근 오신 음악선생님께서 ‘작곡이론’이라는 전공을 소개해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전에 계셨던 학교에서 이미 작곡이론 전공학생을 지도하신 경험이 있으셨다고 말씀하셨고, 이 분야는 세계의 다양한 곳을 돌아다니며 음악을 연구하는 분야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사실과는 사뭇 달랐지만 말입니다. 일곱 살 때부터 줄곧 피아노를 쳤고 피아노가 음악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저에게는 너무도 새롭고 매력적인 분야라 느껴졌습니다. 그날 이후로 화성법, 대위법, 시창, 청음 등의 음악이론을 개인지도를 통해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자란 부산은 길쭉하게 생겼는데 한쪽 끝이라 할 수 있는 영도에서 피아노를 배우고, 다른 끝이라 할 수 있는 해운대에서 음악이론을 배웠어요. 버스에서 보낸 긴 시간이 나름 즐거웠던 것으로 추억합니다. 막상 대학에 들어가서 음악이론을 공부해 보니 갑갑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주로 서양음악사 및 분석을 공부했고 특히 악보분석이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중학교 때 음악선생님이 설명해 주셨던 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그러던 중, 대학교 때, 이건용 교수님의 전공수업을 듣게 되었고 ‘음악의 시초’라는 주제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음악학, 특히 음악인류학에 대한 진지한 몰입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음악이론, 음악학, 음악인류학, 음악사 등 음악의 전반적인 분야에 대한 연구를 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주로 하시는 연구는 어떤 분야(주제)인지 말씀해주세요.
저는 연구주제를 가리지 않습니다. 인간이 향유하는 음악문화라면 어떤 것이라도 연구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호기심이 많기도 해서 지금까지 연구한 주제는 서양음악, 한국음악, 세계음악, 대중음악 두루두루 걸쳐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깊이를 논하기가 부끄럽지만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의 접점에 다다를 것이라 믿으며 그 날을 위해서 연구의 밑천인 제 호기심을 열심히 유지하려 합니다. 제가 연구했던 주제를 몇 가지 소개하자면 대중음악에서는 한국의 트로트와 록음악의 정치사, 서양음악에서는 19세기 낭만주의에서의 과학주의와 유토피아적 사회주의 그리고 현대음악의 담론, 세계음악에서는 월드뮤직의 문화사 및 교수법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4년 전 한국교원대학교에 재직하면서부터는 음악교육학적인 접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 제가 집중하고 있는 주제는 ‘세계시민교육’과 ‘지속가능교육’입니다. 특히 생태음악학을 음악교육현장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 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연구는 저에게 있어서 삶입니다. 인류학적인 연구를 하다 보니, 결국 삶으로서의 교육이라는 개념을 만나게 되었고 21세기의 삶 속에서는 세계시민교육과 지속가능교육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음악교육은 더 평화롭고 포용적인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개념이 생소하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사실은 이러한 개념이야말로 음악의 본질입니다. 애초에 음악은 생존을 위한 간절한 기도와도 같았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유적지에서 발견한 인류 최초의 기록된 음악은 바로 출산을 위한 기도였기 때문입니다.
논문과 도서를 꾸준히 출간하셨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저서는 무엇인가요?
제가 출간한 책이 많지는 않습니다. 총 다섯 권인데요. 순서대로 말씀드리면, 영국에서 <Riding the Wave(공저)>, <한국에서 ‘트로트의 정치학’>과 <World Star Musics>, 미국에서 <Korean Pop Culture Reader(공저)>, 그리고 최근에 <서울2천년사 중 ‘일제강점기 서울의 교육과 문화’>를 출간했습니다. 저에게는 이 다섯 권의 책이 모두 소중합니다. 각각 책을 쓰는 과정이 달랐고 이 모든 과정은 곧 저에게 배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럼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저서는 <트로트의 정치학>입니다. 실질적으로 효자 노릇을 한 것은 <World Star Musics>였지만 가장 많은 주목을 끌었던 책은 <트로트의 정치학>이었기 때문입니다. 클래식음악 전공자가 대중음악, 그것도 가장 서민적인 장르라 할 수 있는 트로트, 더군다나 일제의 잔재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던 장르를 미국에서 박사논문으로 쓰고 심지어 책으로 발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저서 목록 중 <트로트의 정치학>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자세하게 말씀해주세요.
이 책은 저에게 영광과 수난을 골고루 가져다주었습니다. 2004년 박사논문으로 제출하고 나서는 곧바로 국제저명학술지 ASIAN MUSIC에서 학술논문으로 기고할 것을 권유받았고 2006년에 게재되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는 석학 초청강연 시리즈에 선정되어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2009년에 책을 발간하고서도 나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우수도서로 선정되었고, 한국문학번역원에서도 화제의 책으로 소개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국내 음악학계에서는 충분한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음악인류학, 특히 대중음악학이 생소했던 탓이라 생각합니다. 지금이라면 조금 달랐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음악학자로서 후학들에게 조언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음악학의 분야는 정말 넓고도 넓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각이 넓고도 넓기 때문입니다. 제가 음악학 수업에서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언젠가 한국의 콜라텍 음악문화를 연구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학문을 보지 말고, 인간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결국 인간을 이해하기 위하여 음악을 연구합니다. ‘인간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시기 바라며, 만일 이미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시다면 다음으로는 ‘호기심’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마음과 머리를 열고서 생각하십시오. 음악연구, 즉 음악학이 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합니다. 그리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위기의 세상에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예술이며, 특히 음악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믿습니다. 음악학을 통해서 세상의 아픔을 치료할 알약을 함께 개발합시다.
향후 활동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앞으로는 초등, 중등, 문화예술교육에 관한 연구와 교육을 더 적극적으로 하고 싶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두 가지 연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세계의 모든 문화권 음악을 이해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사운드스케이프를 교육현장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한국교원대학교는 KOICA(한국국제협력단)의 교육사업을 수행하고 있는데 매년 다양한 국가의 교육종사자들의 재교육(석사과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도 르완다, 나이지리아, 인도네시아 등의 20여 개 국 교육 종사자들과 음악 및 음악교육에 관한 심층적인 면담을 가졌습니다. 이들과의 협력을 통해서 바람직한 다문화 음악교육 인프라를 구축하고자 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연구로 다른 한 가지는 사운드스케이프의 교육적 적용입니다. 사운드스케이프를 번역하자면 ‘소리환경’ 또는 ‘소리풍경’이라 하겠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에는 소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들리는 것에만 집중해 보시면 금방 아실 수 있습니다. 소리는 평화로운 소리가 있는가하면 폭력적인 소리가 있습니다. 층간소음으로 살해도 하지 않습니까? 독일의 어느 공원에서는 난민들의 음악 소리 때문에 충돌이 있었다고도 합니다. 음악교육을 확장시켜 소리교육을 통하여 세상의 갈등을 해결하고 싶습니다. 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보다 포용적인 자세, 그리고 세상에 대한 비판적인 사고 역시 소리교육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그 외 하고 싶은 말씀.
우리 모두 열린 마음으로 음악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음악은 단순한 오락이 아닙니다. 물론 오락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때로는 고통을 치유하는 물리치료이기도 하고, 정치적 행위이기도 하고, 저항의 몸짓이기도 합니다. 음악을 연구하는 이들에게는 더 진지한 고민을, 음악을 연구하지 않는 이들은 더 열린 마음을 바랍니다.
글_ 구희주
음악학자 손민정
1991년 서울대 작곡이론과에 입학하면서 서양음악 이론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1995년 서울대 서양음악학 석사과정을 다니던 중 아르헨티나를 다녀오게 되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음악의 가치에 눈을 뜨게 되었고 석사논문으로 중세시대 스페인 세속가요 칸티가(CANTIGA)에 미친 중동 아라비아 음악의 영향을 연구했다. 음악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학적 연구를 위하여 1998년 오스틴-텍사스 주립대학 음악인류학 대학원 과정에 입학하였고 석사논문으로 한국인 작곡가 윤이상의 음악과 자아에 관한 연구를, 박사논문으로 「한국 대중가요 트로트의 정치학」을 제출했다. 2004∼5년에는 어바나-샴페인, 일리노이 주립대학 음악학과에서 포닥 연구원 및 객원교수를 지내고, 오스틴에서 4년간 ‘로큰롤 음악의 입문’의 주임조교를 맡으면서 쌓은 미국 대중음악 강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바나에서 ‘미국 대중음악사’ 강좌를 맡게 되었고, 학부 교양필수 과목으로 지정되어 있는 ‘월드뮤직의 입문’을 강의했다. 대표적인 논문으로는 키스 하워드 편집의 「KOREAN POP MUSIC: RIDING THE WAVE」(2006)에 수록된 <고속도로의 노래(HIGHWAY SONGS IN SOUTH KOREA)>가 영국에서 출간되었고, 음악학술지 『ASIAN MUSIC』에 「트로트의 규제성과 타협성」(2006 겨울/봄호)이 미국에서 출판되었으며, 국내 음악학술지 『낭만음악』에서 「다문화적 음악의 이해를 위한 소고」(2008)를 발표했다. 저서로는 『WORLD STAR MUSICS-쿠스코에서 도쿄까지 세계음악여행』(음악세계, 2009)가 있다.
출처: 음악춘추 기자들의 이야기 (daum.net)
음악춘추 2020-01월 2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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