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의인법은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다시 사유하게 한다.
-연화 산길로 오는 당신
조춘
연화 산길로 당신이 오셨는지요
푸른 발자국 즐비합니다
■ 물활론적 세계관
문학 속에서 의인법은 단순한 수사적 기교를 넘어,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다시 사유하게 하는 철학적 장치로 기능한다. 의인법은 무생물이나 추상적 개념에 인간적 속성을 부여함으로써, 세계를 객관화된 사물의 집합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존재들의 연속체로 경험하게 만든다. 이때 세계는 더 이상 침묵하는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감응하며 관계를 맺는 존재의 장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의인법적 상상력의 저변에는 물활론적 사고가 작동함은 물론이다. 물활론은 세계를 단순한 물질의 집합으로 보지 않고, 생명과 의지, 감응이 깃든 존재들의 장으로 인식하는 태도다. 물활론적 세계관에서 자연은 언제나 인간을 향해 말을 걸고 있으며, 인간은 그 부름에 응답하는 존재로 자리한다. 원시 인류에게 자연은 결코 무표정한 대상이 아니었다. 번개는 자연의 분노였고, 가뭄은 인간에게 보내는 경고였다. 자연 현상은 곧 의미였으며, 세계는 끊임없이 인간과 대화하고 있었다.
고대 철학자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규정한 사유 역시 이러한 물활론적 인식과 맞닿아 있다.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고 말했을 때, 그는 단순히 자연을 구성하는 한 가지 물질을 지목한 것이 아니었다. 이 명제는 고대 그리스 철학의 출발점으로 자주 인용되지만, 그 철학사적 의미는 과학적 환원보다 훨씬 깊은 곳에 놓여 있다. 그것은 세계를 살아 있는 것으로 감각하던 물활론적 인식이 신화의 언어를 벗고 사유의 언어로 이동하는 순간을 가리킨다. 신화 속에서 물은 세계 생성의 출발점으로 등장한다. 신화 속 물은 언제나 움직이며, 낳고, 변형하는 물활론적 상상력의 핵심 상징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자연을 외부에서 조작되는 기계적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유기적 질서로 이해했다. 자연은 자율적 원리를 지닌 살아 있는 체계였으며, 인간은 그 질서 안에 포함된 존재였다.
그러나 근대 이후 데카르트적 이원론과 근대 과학의 성립은 인간을 사유하는 주체로, 자연을 측정과 분석의 대상으로 분리했다. 자연은 인간이 이해하고 지배해야 할 객체로 전락했고, 그 순간 자연은 더 이상 인간에게 말을 걸지 않게 되었다. 동시에 인간 역시 자연의 언어를 듣는 법을 상실했다. 그 결과 인간은 자연을 무분별하게 소비하고 파괴하는 존재가 되었으며, 오늘날의 심각한 생태 위기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학 속 의인법은 단순한 표현 기법이 아니라, 침묵 당한 세계의 목소리를 다시 불러내는 사유의 방식이다. 의인법은 인간과 세계 사이에 단절된 대화를 회복시키며, 자연을 다시 말하는 존재로, 인간을 다시 응답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그것은 문학적 장식이 아니라, 세계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적 전환이다.
디카시 「조춘」은 물활론적 사유를 기반으로 창작한 것이다. 연화산 등산길은 아직 겨울의 잔재가 뚜렷한데 바위에 돋아난 푸른 이끼들이 생명의 기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이 갑자기 강한 시적 충동을 유발하며 날시로 포착됐다. 아직까지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는 무채색의 대지에 유독 봄의 생명력을 표상하는 이끼의 존재는 경이로울 수밖에 없었다.
연화 산길로 당신이 오셨는지요
푸른 발자국 즐비합니다
이 디카시의 화자는 “연화산길로 당신이 오셨는지요”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대화적 국면으로 진행한다. 조춘이라는 제목이 말하듯 봄과의 대화이다. 이 질문은 봄이 왔다는 단순한 감탄이나 확인이 아니다. 질문은 언제나 상대를 전제한다. 물활론적 사유로 봄을 응답할 수 있는 인격체로 인식하며 던진 질문이다. 그런 점에서 봄은 인격체로서 ‘당신’으로 호명됐다. 이 호명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주체와 객체의 구도를 벗어나, 나와 너의 관계, 즉 대등한 인격적 관계로 이동한다. 이 한 문장만으로도 세계를 대하는 관점이 두드러진다. 이어지는 “푸른 발자국 즐비합니다”라는 구절은 얼핏 보면 화자의 관찰처럼 보이지만 고도의 응답이다. 이 디카시의 행 배열을 주목해야 한다. 이 문장이 먼저 오고 질문이 뒤따랐다면, 그것은 자연 현상을 보고 봄을 추론하는 인식의 과정이었을 것이다. 이 디카시는 도치법으로써 행을 바꿔 봄과의 대화적 국면을 구축한다. 질문이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푸른 발자국 즐비합니다”가 놓인다. 이 순간 두 번째 행은 더 이상 설명이 아니라 응답이 된다. 봄이 말로 대답하는 대신, 자신이 지나온 흔적으로 대답하는 형식이 된다. 그것은 사진기호가 입증한다. 겉으로 볼 때 문자기호는 화자가 봄이 도래한 것을 감동하며 자문자답한 것 같지만 2행은 화자가 자연의 말을 대신한 것이다. 그러니까, “푸른 발자국”은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라 봄이 남긴 행위의 흔적이며, 봄이 사용하는 언어다. 이끼가 돋은 바위와 길은 침묵 속의 발화이며, 화자는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아니라 응답을 듣는 자로 자리한다. 또한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대화가 동일한 언어를 주고받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기호 체계가 감응하는 사건으로 드러난 매우 유니크한 미적 체계를 드러낸다. 이 디카시에서 드러나는 대화적 국면은 서정시에서 이례적이다. 전통적인 서정이 감정의 독백이라면, 이 작품의 서정은 통화에 가깝다. 인간은 질문하고 봄은 자연기호로 대답한다. 이 점에서 디카시라는 장르의 본질을 또 다른 관점에서 선명하게 드러낸다. 문자기호는 인간의 질문이고, 사진기호는 자연의 응답이다. 두 기호가 결합함으로써 하나의 대화가 성립한다.
이 디카시에서 봄이 의인화된 당신은 다양한 상징성을 드러낸다. 계절적 봄은 생명의 도래이며 변화의 시작이다. 또한 인간의 염원에 대한 세계의 응답으로서의 존재론적 상징으로 상승한다.
극순간 멀티언어예술로서의 디카시는 극서정성을 드러낸다. 극순간의 정서가 표출되는 것이 디카시의 본질적 국면이다. 이 디카시는 물활론적 세계관을 기저로 의인화를 미적 구조로 구축하며 산 위에서 봄이 성큼성큼 지나간 것을 매우 역동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한다. 평면적 서정이 아니라 동적 서정이라는 데서도 특별하다.
디카시 「조춘」이 보여주는 것은 봄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세계와 관계 맺는 하나의 태도다. 자연을 해석하려 들기보다, 자연이 이미 보내고 있는 신호에 귀 기울이는 자세. 설명하기보다 질문하고, 지배하기보다 응답을 기다리는 태도다. 이 디카시는 그런 태도가 가능해지는 찰나를 포착한다. 인간과 세계가 잠시 같은 주파수에 맞춰진 그 짧은 순간, 디카시는 서정이 되고, 대화가 되며, 하나의 시적 사건으로 완성된다.
AI가 생성한 AI 글쓰기 이미지
■ 황석영 소설 「할매」
문학매거진 《시마》 2026년 봄호 SIMA 초대석 인터뷰를 위해 서울에 다녀 왔다. 이도훈 발행인과 오혜정 편집장과 유익한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오혜정 편집장이 한양대에서 「AI 글쓰기」 교양강좌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잠시 AI 글쓰기 관련 대화도 나눴다. 오혜정 편집장으로부터 AI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AI 글쓰기의 성격 등에 대해 대학의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이도훈 발행인도 AI 글쓰기는 미국에 비해 한국은 보수적이라는 지적을 했다. 최근 소설 같은 경우 신춘문예 응모자수가 2배로 증가한 것도 AI 영향이라고 덧붙였다. 단편소설 한 편을 완성하는 데도 긴 시간과 고통스러운 집필 과정이 필요했으나 AI를 활용하면 서사 구조 설계나 관련 자료를 찾는데 시간이 단축되기 때문에 '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심리적·기술적 문턱이 낮아진 것도 한 요인으로 보인다. 신춘문예의 많은 응모작들에서 AI 활용이 의심되는, 매끄럽지만 개성 없는 문체와 데이터 조합에 의한 전형적인 서사 패턴에 대한 아쉬움이 공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AI가 기존의 데이터를 학습해서 생성해 내는 작품이 인간 창작자를 아직은 능가하지는 못하는 국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석영 작가는 소설 「할매』를 집필하며 생성형 AI를 협업자로 활용했다고 밝혔다. 황석영은 “챗GPT 써보니 박사급 인재 10명을 두고 일하는 것 같다”고도 말했다. 그는 서사적 뼈대와 질문을 AI에 입력하고, AI가 관련 데이터를 바탕으로 텍스트를 생성하면 그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체와 문제의식으로 다시 다듬고 배치하는 방식을 취했다. 현재는 시보다는 소설 같은 산문에서 AI의 글쓰기의 위력이 더 나타나는 것 같다.
첫댓글
인간은 자연의 부름에 응답
하는 존재
교수님 감사합니다
문학 속 의인법은 단순한 표현 기법이 아니라, 침묵 당한 세계의 목소리를 다시 불러내는 사유의 방식이다*****
잘 공부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