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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파의 일기
이남석(소설가, 한맥문학 등단, 고교 교사)
노파의 방과 내방은 벽 하나 사이였지만 주위의 소음이 없으면 노파가 잠잘 때 쉬는 숨소리나 가래 끓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노파의 눈은 언제나 붉은 꽃잎처럼 충혈 되어 있었다. 웃거나 말을 시작하기 전에는 수줍음을 타는 소녀처럼 손으로 입을 가리곤 했다. 나는 잠자기 전에 노파가 부르는 노래를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곤 했는데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잠에 들곤 했다. 그리고 자주 듣다보니 어느 곡조는 가사를 비슷하게 외울 정도였다.
“자식이란 웬 말인가. 돈을 산더미처럼 벌어도 소용없다네. 이 몸 죽으면 누가 와서 치워줄거나. 병들기 죽기 전에 편히 눈감도록 돌봐 주소서. 하늘나라로 갈 적에 고통 없이 편하게 떠나도록 도와주소서. 천주여.”
오늘도 어김없이 노파의 노래 소리가 벽을 뚫고 들려왔다. 사실 나는 노파와 단 한마디 말도 나눈 적이 없었다. 아침 일찍 공장에 출근하면 퇴근하여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늘 밤 아홉시가 넘어서였다. 이따금 아침에 수돗가에서 머리를 감은 후 다소곳한 자세로 흰 머리카락이 반쯤 섞인 머리를 빗는 노파의 모습을 보곤 했다. 그러면 노파는 양 손으로 축축한 머리를 움켜쥔 채 황급히 나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쫓기듯 방으로 숨었다. 내가 볼일을 마치고 들어가면 그때서야 가지고 들어갔던 것들을 챙겨 다시 밖으로 나왔다.
봄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만사가 귀찮고 뒤틀리는 날이 많았다. 특히 밤에는 쓸데없는 공상과 환상으로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았다. 더구나 노파의 노래까지 들려오는 날은 밤늦도록 잠에 들지 못했다. 최근 들어 어디서 옮았는지 눈병까지 앓으면서 더욱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밤 열두시가 넘도록 노파의 노래 소리와 손톱으로 얇은 석고보드를 긁는 것 같은 기침소리까지 들려올 때면 당장이라도 노파의 방문을 열고 쳐들어가 소리라도 꽥 지르고 싶었다.
“이놈의 인생 어찌 이리 질기더냐. 낙랑장송 푸른 솔도 송충이에 잎을 잃으면 빈 가지만 남기고 허망하게도 죽는다네. 하물며 자식 잃은 이 늙은이야 어떠하랴. 에이야.”
눈에 통증을 이기지 못해 물 적신 수건으로 부어오른 눈을 닦고 있는 중에 노파의 노래가 들려왔다. 화가 난 나는 발로 벽을 차서 경고를 보낼까 하다가 분기를 누르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기껏해야 몇 년도 못살고 갈 불쌍한 노파에게 노래하는 것까지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불쌍한 내 새끼야. 어이 이리도 빨리 갔느냐. 너는 죽고 나는 살았는데 내가 죽어 구천에서 너를 다시 만난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제명을 다 살지 못한 네가 불쌍하여라. 에이야.”
노파는 노래를 멈추고 이번에는 조그마한 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갑자기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노파의 흐느끼는 목소리는 낮고 음산했을 뿐만 아니라 마치 누군가를 저주하듯 살기가 섞여있기 때문이었다. 듣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강렬하게 귓속으로 파고들었으며 금방이라도 노파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 날카로운 손톱으로 내 얼굴을 쥐어뜯을 것 같이 섬뜩했다.
“백년을 살아야 뭣 하리. 오백년을 살아야 무슨 소용이리. 죽으면 썩어질 몸. 시집올 적 꾸었던 꿈은 바람처럼 달아나고 눈에는 헛것만 뵈누나. 에야. 오래 살아도 고통, 죽으려 해도 고통이라네. 아직도 갚지 못한 빚은 산더미 같은데 남은 생에 어찌 그걸 다 갚는단 말인가. 에이야. 살아도 고통 죽어도 고통이라네. 에야 어기야 에이야.”
기계부품을 가공하는 조그만 공장에서 프레스 일을 하는 나는 출퇴근 시간이 다른 일반 회사원들처럼 정해져 있지 않았다. 자동차와 공작기계에 들어가는 정밀부품을 만드는 꽤 잘 나가는 회사로 나름 노하우가 많이 쌓여 매년 매출이 늘어났다. 외주 일감이 많을 때면 야근도 밥 먹듯이 해야 했다. 더구나 같이 일하던 직원 하나가 일을 그만두는 바람에 나는 당분간 그 사람 몫까지 모두 해야만 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일의 능률이 오르질 않았다. 어젯밤에 노파의 흐느낌소리에 잠을 설친데다 아침식사도 하지 않고 출근하여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조장은 기계 앞에서 꾸무럭거리는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어이 상우!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왜 이렇게 힘이 없어. 표정이 꼭 앓다가 나온 사람 같아. 어디 아파?”
“말도 마세요. 어제 밤에 잠을 한숨도 못 잤어요.”
“그렇다고 기계 앞에서 자면 안 돼. 아주 자는 수가 있으니.”
나는 다른 날보다 조금 일찍 퇴근해 쉬기로 작정했다. 오후 다섯 시 쯤에 나는 사장에게 적당히 이유를 둘러대고 서둘러 퇴근했다. 집에 도착한 나는 노파의 방문 앞에 낯선 구두가 놓여있는 걸 발견했다.
“어머니. 제가 어머니한테 뭐를 잘못한 게 있다고.......”
“넌 잘못한 거 없다. 내가 늙은 게 죄지.”
저녁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하려는데 남자 목소리와 노파 목소리가 동시에 벽 저쪽에서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텔레비전을 켰으나 소리와 소리 사이 공백을 뚫고 나오는 두 사람의 대화가 오히려 더 또렷하게 들렸다.
“어머니. 이게 어머니한테 무슨 소용이 있어요? 그리고 제가 어머니를 안모시겠다는 것도 아니잖아요. 어머니 제발 이러지 마세요.”
“그런 말 하지 마라.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이렇게 사는 게 좋아. 너도 늙어봐라. 그러면 내 맘을 알거다. 그러니 제발 귀찮게 하지 말고 어서 네 집으로 돌아가. 난 살아도 여기서 살고 굶어 죽어도 여기서 죽을 테니 염려 말아라. 나 죽은 뒤 내 시신은 다른 사람이 치우도록 내가 알아서 해놓고 죽을 거야. 그것도 신경 쓰지 마라.”
“아니 어머니, 정말 왜 이러세요? 왜 저를 여러 사람들 앞에 대놓고 불효자로 만드시는 겁니까? 이제 제 말씀을 한번만 들어주세요. 제가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어머니.”
“내가 다른 사람들 사는 거 신경 안 쓰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그거 다 네 마음일 뿐이다. 자기들도 살기 바쁜데 누가 남한테 관심을 가져? 내말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냐? 더 밤이 늦기 전에 어서 가거라. 네가 시키는 대로 도장 찍고 원하는 것 다 내줬잖냐. 이제 난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차라리 빈털터리가 되니 편안하다.”
노파는 조금씩 언성을 높이더니 끝내 울음을 터트릴 듯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아들인 듯한 남자는 이런저런 변명 따위를 늘어놓다가 끝내는 안 되겠는지 탕 소리가 나도록 세차게 방문을 닫고 사라졌다. 얼마 후 다시 노파의 노래가 들려왔다.
“세상 사람들 누구나 근심 걱정 갖고 있다네. 어릴 적 아무것도 모르는 놈을 주어다 키워 놨더니 이제는 몸집도 나보다 크고 힘도 장사로구나. 에구. 생각도 컸으면 좋으련만 아직도 어린 철부지. 효도와 불효를 아는 자식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그것을 알아도 실천하는 자식 놈이 몇이나 될까. 차라리 죽으면 편한 것을. 이놈의 지겨운 세상. 에야 에헤야.”
노래를 멈추고 한동안 잠잠하더니 다시 어제처럼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매연에 그을린 하늘을 채운 별들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한꺼번에 지붕 위로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유난히도 노파의 방문이 가깝게 느껴졌는데 문을 열고 슬금슬금 다가와 옆구리라도 쿡 찌를 것 같았다. 문 밖에서는 개 짖는 소리와 함께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 잠잠해졌다.
“내일은 뭐를 할 거나. 봄이 왔어도 내복은 못 벗겠네. 병들어 아픈 몸 추스르기 힘들어도 봄 왔으니 일어나 보세. 시집와서 죽도록 고생했어도 남은 건 병든 몸뚱아리. 에이야. 내 고향에 가고 싶어라. 개울물 시원하게 흐르고 어머니 따라서 빨랫감 머리에 이고 가던 그 냇가 빨래터로 가보고 싶어라. 에야. 손톱 무뎌지고 주름살 늘어나니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네. 세상일은 지겹게도 힘든데 목숨은 고래 힘줄처럼 질기기도 하여라. 에이야.”
노파의 노래가 끝나기 전에 잠에 들리라는 나의 희망은 깨지고 정신은 오히려 분명해졌다. 밤은 사악한 악마처럼 닥치는 대로 불빛을 잡아먹고 있었으며 문에 어른거리는 나무 그림자는 복면을 한 자객처럼 보였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방 안으로 들어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도록 목을 짓누르며 협박할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전날보다 일찍 일어나 밖으로 나와 보니 노파의 방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아침을 빵으로 때우고 급히 마루를 내려서는데 발에 뭔가가 밟히는 느낌이 들었다. 발밑을 보니 누런색 서루봉투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무슨 광고 전단지로 생각하고 지나치려는데 그러기에는 봉투가 두꺼운데다가 미심쩍은 데가 있어 주워들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봉투 안에는 주민등록 등본과 무슨 위임장, 그리고 알 수 없는 서류들이 빼곡하게 넣어져 있었다. 나는 떨어져 있던 자리에 그대로 놓을까 망설이다가 방으로 들어가 구석에 던져놓고 출근했다. 보관했다가 찾는 사람이 있으면 돌려줄 계획이었다.
“상우. 오늘은 어제보다 얼굴이 표정 나쁘지는 않네? 그래, 어제 밤에 잠은 잘 잤나보지?”
“그런대로 잘 잤습니다.”
“다행이네. 그건 그렇고 오늘 저녁에 회식 있는 거 알고 있지?”
“아니 오늘은 또 무슨 회식입니까?”
“어이! 회식에 꼭 무슨 회식이라고 제목을 붙여야 하나? 어제 거래처에서 갑자기 주문이 많이 들어와 사장이 한 턱 내겠다는 거야. 그게 다 우리가 번 돈이지 무슨 사장 제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겠어? 다 내 돈 주고 내가 먹는 거니 빠지지 마라. 덕분에 우리는 앞으로 뺑이 치게 일해야 하겠지만. 어쨌든 오늘 일찍 들어갈 생각은 하지 마.”
“잘 됐네 뭐. 그렇잖아도 요즘 저녁은 매일 굶다시피 했는데 배에 기름기 좀 채워야겠군. 그럼 오늘일은 일찍 끝나는 겁니까?”
“당연히 일찍 끝나겠지. 이 공장도 곧 문을 닫을 텐데.”
“공장이 문을 닫아요?”
“다른 곳으로 옮길 계획이래.”
“난 처음 듣는 말인데?”
“뭔 얘기야? 그전부터 직원들이 다 알고 있었던 일인데.”
그날 저녁은 정말 사장이 거하게 한턱을 냈다. 사장은 이 지역 토박이지만 부친은 육이오 때 월남한 황해도 해주사람으로 남한에는 친척이 거의 없었다. 평소에는 꼼꼼하고 구두쇠이기는 했지만 직원들을 믿고 일을 시켰다. 또한 회사사정이 어려울 때는 은행 빚을 내서라도 직원들 봉급만큼은 꼬박 꼬박 챙겨줬다.
나는 회식이 끝나고 밤 열두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그때까지도 취기가 가시지 않아 주변 사물이 제대로 시야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나는 습관처럼 노파의 방문부터 점검했다. 문에 비친 그림자로 미루어 방 안에는 노파 이외에 또 다른 사람이 함께 있는 것 같았다. 방에 들어가 불을 켜고는 옷도 벗지 않고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얼마나 술과 고기를 많이 먹었는지 속이 몹시 거북했다.
“어머니. 제발 제 말 좀 들어보세요.”
“듣기는 내가 무슨 말을 들어? 네가 나를 무슨 큰 죄를 지은 범인처럼 대하는데, 그것도 이 어미한테. 내가 너한테 뭘 잘못한 게 있냐? 네 덕 보지 않고, 며느리한테 기대지도 않고, 내 돈으로 내가 먹고 사는데 뭘 잘못했다는 게야?”
“아니 언제 제가 어머니한테 잘못했다고 그랬어요.”
“그러면 내가 가지고 있지도 않은 서류를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게 정상이냐? 아니 세상에 제 어미를 이렇게 협박하는 자식도 있냐? 네가 어제 와서 시키는 대로 서류에 도장 찍고 땅문서랑 다 준비해 줬는데 그걸 내가 다시 감췄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야?”
어제 저녁과 마찬가지로 아들로 보이는 남자와 노파의 대화가 이어졌다. 나는 문득 방 한쪽 구석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아침에 문 앞에서 주워 놓고 간 서류봉투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는데 물건을 훔치고 주인에게 들킨 심정이었다. 봉투를 집어 들고 안을 살펴봤다. 혹시 봉투 안에 있는 서류가 노파의 아들이 찾고 있는 그 서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지금 그 서류를 가지고 계셔도 아무것도 하실 수 없어요. 제발 애 먹이지 마시고 그 서류 제게 돌려주세요. 고집부리지 마세요, 어머니. 제가 어제 정신이 없어 깜박 방에 놓고 나갔는데 그걸 못 봤다고 하면 누가 그 말을 믿어요, 어머니.”
“오늘은 밤이 너무 늦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네가 찾는 그 서륜가 봉툰가 뭔가 하는 거, 그런 거 가지고 있지 않다. 난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이야. 제발 돌아가 다오. 부탁이야.”
노파는 말을 맺으면서 조금씩 울먹거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지금이라도 서류봉투를 들고 노파 방으로 가서 이 서류가 맞는지 확인해 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대화를 엿듣다보니 점점 아들의 행위가 점점 괘씸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오히려 애를 좀 먹이다가 서류를 돌려줘야겠다는 고약한 심보가 발동했다. 아들은 결국 포기하고 새벽 한시가 좀 넘자 떠났다.
아들이 나가자 노파는 다시 그 지긋지긋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평소와 다르게 나는 마술이나 최면에 이끌리듯 노파의 노래에 빠져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마치 깨진 유리파편을 밟고 지나가듯 조심조심 부르는 노래는 오늘 따라서 더욱더 애처롭게 들려왔다.
“근심은 산처럼 쌓여가네. 에야. 그것도 내 죄. 아무리 높은 하늘이라도 구름 없으면 비 아니 내린다네. 돈이야 벌면 되고 더러운 옷가지야 빨면 되지만 이내 근심걱정 버릴 수도 빨 수도 없어라. 에야. 젊었을 땐 나이 들어 애들 다 키우고 한평생 편하게 살 수 있으리라 했는데 이제는 차라리 이것도 저것도 모르고 살던 젊은 시절이 더욱 부러워라. 죽어서도 근심 없어지지 않으면 그 고통 어떻게 감당할까. 에야, 어이야.”
어찌된 일인지 나는 점점 노파의 노래가 자장가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악마의 음울한 목소리처럼 나를 괴롭히던 노래가 애처롭고 따듯하게 느껴졌다. 책상 밑에 숨겨놓은 서류는 어느새 기억에서 까마득하게 잊혀져가고 있었다.
“잘도 간다, 이놈의 세월. 굵고 휘어진 허리는 더 꼬부라지고 머리는 반백이니 맛난 음식도 다 소용 없어라. 한잠 자고나면 아침이 온다네. 에야. 고달픈 인생 내리고 싶어도 기차는 서지를 않네. 이놈에 기차는 어디까지 이 늙은이를 끌고 가려나. 에이야.”
오월이 지나고 유월이 오자 나는 직장 생활에 조금 여유를 찾았다. 사장이 프레스공 한명을 더 뽑았기 때문이었다. 공고를 졸업하고 군대를 갖다온 친구인데 이름은 서필호였다. 아직 일은 서툴렀지만 눈썰미가 좋아 한번 가르쳐주면 잘 기억하고 그대로 따라 했다. 나는 필호가 사람을 대할 때 예절이 있고 고분고분한데다가 말수가 적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전에 있던 프레스공은 일은 좀 숙달된 편이었으나 잔소리가 심해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쌓였었다. 필호가 들어온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사장은 도무지 환영하는 술자리를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필호야! 오늘 저녁 약속 있냐?”
“아뇨.”
“그럼 나하고 저녁이나 같이 하자. 너 들어온 지도 일주일이 넘어가는데 환영식을 하자는 얘기가 없네?”
그날 저녁 나는 필호를 데리고 근처에 있는 감자탕 집으로 갔다. 필호는 공손하기는 했지만 다소 소극적이고 말수가 적었다. 화를 내거나 짜증을 잘 내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은데 도무지 웃음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대화 이외에는 절대로 먼저 말을 거는 법이 없었다. 초저녁이라 그런지 감자탕집 안은 손님도 없고 한산했다.
“일은 어렵지는 않냐?”
“아뇨.”
“뭘 그래. 처음에는 힘들지. 더군다나 너같이 군대 제대하고 곧바로 기름밥 먹는 놈은 처음이다. 요새 네 또래 애들이 어디 이런데서 기름밥 먹으려고 그러냐? 다들 가방 끈하고는 상관없이 쉬운 일만 하려고 하지. 하여간 나는 필호 네가 대견하다.”
“고맙습니다.”
“부모님은 뭐하셔?”
내 질문에 필호는 얼굴색이 약간 상기되는 것 같았다. 동생이나 형이 있느냐는 질문을 하자 역시 얼굴을 붉히더니 고개를 숙였다. 대답하기가 곤란한 듯 보여 나는 더 이상 가족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의지가 굳고 착실한 청년이지만 가족과 관련된 것에는 말하기 힘들거나 곤란한 뭔가가 있음을 알았다.
필호를 보내고 거의 집에 도착할 즈음 저녁 여덟시가 지나 주변이 어둑함에도 불구하고 한 노인이 아파트 진입로 옆 가로등 밑에서 지나는 행인들을 상대로 푸성귀들을 펼쳐놓고 팔고 있었다. 낯이 익어 가까이 가보니 바로 옆방 노파가 보자기 위에 호박잎, 상추, 도라지와 고추 등을 늘어놓고 앉아 있었다. 나는 노파에게 발견되지 않도록 고개를 외면한 채 재빠르게 그 자리를 피했다. 등에서는 나도 모르게 식은땀이 났다.
샤워를 하고 열시가 넘자 노파가 돌아와 방문을 따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강아지가 깽깽거리는 소리와 철벅거리는 물소리까지 같이 들려 왔는데 아마도 노파가 어디서 개를 데리고 와 목욕을 시키는 것 같았다.
“세상 놈들 모두 사악한 놈들이라 해도 너는 내말을 잘 듣는구나. 이리와라. 내 깨끗이 닦아주마. 어이구, 누가 너를 길바닥에 버려놓고 갔냐? 그놈 참 나쁜 놈이구나. 이리와라 이리와. 아 이리와 어디로 도망가니 이 개새끼야.”
강아지가 물에 안 들어가려 하는지 노파의 목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첨벙거리는 물소리와 함께 강아지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노파는 슬프고 어두운 목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보아라, 세상 놈들아. 네놈들 모두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 같다더냐. 영생을 얻는 것 쉬워 보여도 천주를 따르는 신심이 없으면 안 된다네. 보아라, 세상의 더러운 놈들아. 돈에 눈이 멀면 어떤 약도 그 병을 고칠 수 없다네. 창고 가득히 돈과 재물을 쌓아놓고 한 달만 살아 보거라. 그래도 욕심은 또 꼬물꼬물 봄비에 보리 싹 나오듯이 다시 나온다네. 내 세상에 태어나 순진하게 살려 했지만 이 세상이 가만 두질 않았네. 에야! 에이야! 하루가 빨라도 사는 것은 지루하여라. 에야!”
사악한 악마의 눈처럼 검고 붉은 기운을 쏟아 붓는 밤은 지루하고 고통스러웠다. 희미하게 방문에 비치는 그림자는 음산한 영혼의 껍데기처럼 나를 엿보고 있었으며 가느다란 음성으로 흐느끼는 노파의 울음은 억울하게 죽은 귀신들의 노래처럼 들렸다.
“빌어먹어도 어찌 내가 네 신세가 되랴. 밤마다 눈물이 비처럼 쏟아져도 다시 옛날로 갈 수 없구나. 동쪽으로 달뜨거든 죽은 내 딸 만나러 가야 하겠네. 바다를 건널까. 아니면 산을 넘을까. 눈 크게 뜨고 내 딸 찾아가야겠네. 그믐달이 지기 전에 억울하게 죽은 내 딸을 찾아가야겠네. 에이야. 속은 왜 이렇게 답답하고 어지러울까. 병들어도 죽지 않으니 먼저 간 네가 불쌍하고 원망스럽구나. 오늘밤 너를 만나더라도 내게 눈물 보이지 말아다오. 네 눈물 볼 때마다 이 에미 마음은 찢어질 듯 아프단다. 에야! 밤 깊어도 잠 오지를 않네. 에이야.”
여름은 이곳 변두리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화탕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으며, 그 안에서 개미처럼 붙어사는 인간들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자정을 넘겨도 사지를 짓누르고 정신과 육체 모두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노파에게는 식구가 하나 늘은 셈인데 그 베개만한 누런 개는 가엾게도 언제나 목에 끈이 묶인 채 노파의 방문 옆 기둥에 묶여 있었다. 옆에 놓인 양재기에는 말라붙은 밥풀과 기름기가 둥둥 떠다니는 국물이 마치 폐수처럼 고여 있었다. 그런데도 노파는 양재기를 닦지 않고 그 위에다 자꾸만 음식물을 넣었다. 개는 처음 집에 올 때보다는 살이 올라 있었지만 그래도 가슴팍 뼈에 붙어있는 살가죽은 마치 못에 얇은 천을 걸어놓은 것처럼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아슬아슬 했다.
저녁에 노파가 집에 돌아오면 잠깐 동안 개를 풀어놓았다. 그러면 이놈의 개가 얼마나 발광을 하는지 어떤 때는 내 방문 앞에도 발자국이 찍혀있거나 누런 털이 문과 마루 틈에 끼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더욱 나를 짜증나게 만든 것은 세탁하기 위해 신발장 위에 올려놓은 옷이나 운동화를 물어뜯어 걸레를 만들어 놓았을 때였다. 그 이후로 나는 물건들을 밖에 내놓지 않았다. 나는 노파가 없을 때 당장이라도 그놈의 개를 집 밖으로 내 쫓거나 패대기쳐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노파의 슬픈 노래를 들을 생각을 하니 소름이 끼치고 오금이 저렸다. 결국 나는 개를 두들겨 패주는 대신 볼 때마다 저주를 퍼부었다.
“에이 이놈의 똥개. 빨리 병들어 뒈지거나 아니면 어디 보신탕집 개장수가 지나가다가 끌고 가버려라. 쳐다보기는 어디를 쳐다보냐, 이놈의 똥개야. 꺼져!”
이렇게 개에게 악다구니를 퍼부으면 뒤로 두어 발자국을 물러서며 내 욕을 알아들었는지 꼬리를 내리고 낑낑거렸다. 그리고 노파의 방문 앞에 바싹 몸을 붙이고는 내 시선을 피한 채 다소곳이 앉았다. 마음이 다소 진정된 내가 손짓을 하며 부르면 수줍어하며 가까이 다가왔는데 마치 그놈의 개도 노파와 살다보니 노파의 성격과 태도를 그대로 닮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지루한 여름이 물러나고 가을이 중반에 들어서자 첫서리가 내리고 나무들은 매달고 있던 잎들을 땅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사이에 나는 공장에서 꽤 비중 있는 위치까지 올라갔다. 사장은 원래 근무하던 조장이 개인 사정으로 공장을 그만두자 나를 새로운 조장으로 앉혔다. 조장은 공장의 공장장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감투만 그럴싸할 뿐 월급은 그대로인데 일만 더 많아졌다. 내가 일하던 프레스 일을 필호가 대신하게 되고 필호 자리에는 새로운 직원을 뽑아야 했다.
필호는 늘 움직이지 않는 바위 같았다. 불만이 있어도 내색하는 법이 없었다. 어쩌다 다른 선반공이나 프레스공에게서 싫은 소리를 들어도 늘 공손히 허리를 굽히고 상대방 말을 고분고분 받아들였다. 내가 조장이 된 그날 필호가 와서 평소와는 다르게 얼굴을 붉히더니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듯 머뭇거렸다.
“무슨 일이야?”
“형님. 아니 조장님, 저, 조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무슨 말인데? 여기서 말하기 곤란하면 이따가 일 끝나고 저녁이나 같이 하면서 이야기 하자.”
그날 오후 늦게 일을 마친 나는 필호와 함께 근처 식당에 들렀다. 밥을 다 먹도록 필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필호가 말을 꺼내기 전까지 엉뚱한 이야기만 하면서 필호의 눈치를 살폈다.
“새로 뽑을 프레스공 말인데요.”
“그래. 이번에 새로 한 명을 더 뽑을 계획이야.”
“제가 아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를 데려다 일을 시켰으면 해서요. 물론 형님이 먼저 그 친구를 만나서 정해야 하겠지만.”
“아니 필호야. 그 얘기가 그렇게 하기 힘드냐? 그냥 편하게 나한테 얘기하지 뭘 그렇게 힘들게 얘기를 해? 우리 공장이 무슨 신문에 광고 내서 사원 공채를 하는 회사냐? 나도 네가 어떻게 우리 공장에 들어오게 됐는지 처음에는 몰랐어.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여기 사장하고 잘 아는 사이라 들어오게 됐다며?”
“맞아요. 여기 사장님 아버지가 이북 사람으로 육이오 때 피난 내려오신 분이거든요. 우리 아버지가 그 사장님 아버지를 큰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따르시죠. 그 인연으로 디 회사에 들어오게 됐어요.”
“그래? 그러면 네가 사장을 만나 직접 얘기해도 되잖아. 왜 나한테 얘기 하냐?”
“아무래도 프레스 일을 할 사람만큼은 형님이 직접 뽑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더구나 프레스 일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고 기술도 있어야 하지만 성격도 맞아야 하고.”
“그래. 그렇다 치고. 누구를 데리고 오려고 하는데? 네 친구냐?”
“예. 제 친구인데, 그런데 여자 친구에요. 대학을 졸업하고 별 뾰족한 일자리가 없어서 학습지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한테 와서는 자기도 기술을 배우면서 이런데서 일하고 싶다고 해서. 물론 제가 말렸는데 그게.......”
“아니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 더구나 여자가 이 힘든 프레스 일을 어떻게 하냐? 더구나 한 번도 이 일을 해보지도 않은 사람이. 너도 알잖아. 공고 나온 남자애들도 이 일 하기 싫어하는 거. 미리 실습을 한 사람도 쩔쩔 매는데 어떻게 단 한 번도 경험 없는 사람이 이 일을 할 수 있겠어?”
“계획이 있습니다.”
필호는 아주 진지하게 여자 친구를 데려다가 일을 가르치고 숙련공으로 만들 계획을 설명했다. 이런 경우는 특별하기 때문에 나는 직접 사장을 만나 얘기를 했다. 그런데 사장은 의외로 선선히 허락했다.
필호가 데리고 온 여자 친구는 이름이 최상영으로 키는 크지 않았지만 다부진 체격에 차분한 성격이었다. 필호에게서 프레스 다루는 법을 배울 때는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따라했다. 필호도 자기일 이외에 상영이를 가르쳐야 하는 부담이 있었지만 성실하게 가르쳤다. 남자 직원만 있던 공장에 여자직원이 들어오자 전보다 직장 분위기는 훨씬 부드러워 졌으며 다른 직원들도 모두 좋아 했다.
상영이가 들어오고 난 뒤부터는 공장일이 술술 잘 풀렸다. 나는 괜히 필호가 부럽기도 하고 여자 친구인 상영이가 대견스럽기도 했다. 평소에 같이 일을 하다가도 쉬는 시간이 되면 두 사람이 작은 소리로 말을 주고받거나 일을 마치고 퇴근할 때 같이 손을 잡고 나가는 걸 보면 지금까지도 혼자 사는 내 마음 한구석이 쓸쓸해지는 걸 억제할 수 없었다.
쓸쓸하면 술로 최면을 걸어 세상을 잠시나마 낙관적으로 바꿨다. 화가 나거나 타협할 수 없는 이기적 현실이 답답할 때는 노파가 키우는 개에게 화풀이를 했다. 온갖 번뇌와 망념으로 잠이 오지 않을 때는 노파가 혼잣말로 지껄이는 기도나 노래를 듣는 것으로 일상을 기계처럼 돌렸다. 인생에 끼어든 우연이 준 기회들을 일부러 비켜가려고 하지 않았다.
시월 두 번째 금요일 공장에서 일을 끝내고 퇴근했는데 노파의 방에서 인기척이 났다. 그놈의 개는 내가 마치 주인이나 되는 양 꼬리를 흔들며 앞으로 달려들었는데 주먹을 들어 때리는 시늉을 해도 목에 걸린 끈을 질질 늘여가며 폴짝 폴짝 뛰었다.
“나는 여생도 내 맘대로 못산단 말이요?”
“나도 할마이한테 이러고 싶지 않다이. 하지만 생각해 보오. 요새 젊은 애들 말 듣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못하제이요. 괜히 고집 부리지 말고 거저 큰아들 하자는 대로 그 땅문서 내 주고 아들 곁을 떠나도 떠납시다. 나도 피난 와서리 지금까지 고생 진절머리 나게 했지만서두 남은 건 이 늙은 몸뚱아리 하나요. 나 거저 자식들 효도 바라고 키우지도 않았지만 기렇다고 자식들한테 빌붙어 살고 싶지도 않아. 그러니 할마이, 내 하자는 대로 하고 같이 제천으로 내려갑시다. 거게이 가면 살 터전도 내 미리 준비 다 해 놨으니 걱정할 것 없수다. 할마이.”
“아니 내가 그 문서 가지고 있지 않대두 그러내? 걔들이 그날 밤 저기 농속에서 꺼내가지고 나갔어요. 내가 다 도장까지 찍어 주구. 가다가 흘렸는지 버렸는지 없어졌다면서 나보고 내놓으라고 그러는데. 내 눈으로 농에서 꺼내가는 걸 똑똑히 봤어요. 정말 나는 그놈의 서류 몰라요, 몰라. 또 지금 어디 있는지 난 그런 땅문서에 관심 없어요.”
“아니 기럼 그 문서를 양쪽 모두 어데다 둔지 모른단 말이오?”
“그렇대두 그러내요? 만일 내가 가지고 있었다면 벌써 자식을 줬든지 찢어버렸던지 태워 없앴든지 했을 거예요. 그리고 내가 왜 윤영감을 따라서 제천을 가요? 난 그저 여기가 좋아요. 죽을 때가 다 되어 가는데 어디 가서 또 고생을 시작한단 말이에요.”
남자의 목소리가 귀에 익숙했다. 더구나 억센 북한 사투리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투였다. 남자는 땅이 가라앉을 듯이 한숨을 쉬더니 한동안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간혹 남자의 기침소리가 들리곤 했는데 노파는 이후로 단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남자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낯익은 목소리의 남자를 확인하기 위해 문을 열어보고 싶었지만 혹시나 노파가 같이 따라 나라나왔을 것 같아 그대로 앉아 있었다. 툭탁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더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날 이후 노파는 나보다도 일찍 일어나 개에게 밥을 주고는 집을 나갔다. 아파트 진입로에서 하던 푸성귀 장사도 그만 둔지가 며칠 되었다. 하지만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긴 것인지도 몰랐다. 특별한 외출복장을 하지 않고 간편한 차림으로 나가곤 했는데 내가 퇴근을 한 직후 오후 늦은 여덟시 반에서 아홉시 사이에는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짐작에 노파가 어디 식당 같은 곳에 일을 나가는 것 같기도 했다.
이따금 노파의 아들이 찾아와 방문 앞을 두리번거리다가 나와 마주치기도 했다. 노파가 집을 비운 사이 문 앞에서 자물통을 만지작거리면서 잡아당겨보기도 하고 열쇠를 찾는 듯 방문 주위를 세심히 살펴봤다. 한번은 퇴근한 나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그 순간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나를 못 본 척 하면서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노파는 아들이 왔다 간 것을 눈치 챘는지 보기만 해도 무거워 보이는 둔탁한 자물통으로 바꾸어 방문을 걸어 잠갔으며 열 때는 보통 공을 들여서 여는 것이 아니었다.
또한 억센 북한 사투리의 남자도 가끔 집을 들렸다. 그러나 끝내 그 남자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어느 날인가는 한밤 깊은 잠에 들었는데 그 북한 사투리의 남자와 노파가 큰 소리로 주고받는 얘기에 잠을 깨고 말았다. 두 사람은 밤 열두시가 넘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낮추었다 하면서 옥신각신 했다.
“거 참 이상하이. 정철이는 나만 보먼 어머이가 땅문서를 주지도 않고 또 같이 살지도 않으려 하니 답답하다면서 하소연을 하던데. 할마이는 또 그 땅문선가 뭔가를 아이 가지고 있다고 하니 내 참 답답하이.”
“윤영감이 정철이 말은 믿고 내 말은 못 믿겠다는 뜻 같은데. 내가 지금 거짓말 하는 사람으로 보여요? 내가 그까짓 땅문서 하나 때문에 천주를 속이는 거짓말을 한다니 어이가 없어요.”
“물론 나도 할마이 말을 전적으로 믿소. 하지만서도.......”
“분명 걔가 시키는 대로 서류에 도장 찍고 내가 가지고 있던 땅문서도 넘겨줬어요. 나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는 게 없다니까? 그러니 이제 그런 일로 다시는 오지 마세요. 피곤해서 지금 자야 하니 이제 그만 집으로 가세요.”
“아, 알갔소.”
북한 사투리의 남자가 돌아가자 나는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하지만 다시 노파의 노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자다가 깬 나는 편두통이 일어날 정도로 짜증이 났지만 그렇다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세상은 험악하네. 가진 놈들은 더 험악하여라. 내 몸 부지하는 것 힘들지만 가진 놈들 횡포는 더 힘들고 견디기 어려워라. 에야. 내 신세를 생각하면 늦은 밤에 흐르는 건 눈물뿐이라네. 달빛이 밝게 비추던 고향에 왜 그리도 가고 싶을까. 에야! 누가 노자 아니 줘도 죽기 전에 내 힘으로 고향에 가련다. 그것도 안 된다면 죽어서라도 고향에 가련다. 고향에 모신 어머니 산소에 들러 마음껏 울어보리라. 에야. 가을밤이 깊어도 내 속병만큼 깊으랴. 멀쩡하던 육신 나이 먹으니 병들고 나약하여 아무짝에도 쓸모없네. 에야. 에이야.”
노파는 마치 떨어진 낙엽을 주워들고 사색에 잠긴 소녀처럼 때로는 청승맞게, 어떤 때는 슬픈 곡조로 노래를 불렀다. 나는 노파가 부르는 노래의 내용이 무엇인가 귀담아 듣다가 혹시 밤새도록 흐느끼는 것은 아닌가하고 불안했다. 성대가 뜨거워졌다가 식듯 목소리는 갈수록 작아지고 처량한 음색으로 변했다.
“나는 밤만 되면 괴롭다네. 잠이 제대로 오기를 하나. 행복한 꿈을 기대할 수나 있나. 눈에 보이는 건 있어도 손에 잡히지는 않네. 혹시 귀신이라도 나타나면 차라리 하소연이라도 하련만. 아! 온갖 생각에 잠을 잘 수가 없구나. 에야. 언제나 가려나 내 고향. 언제 뵈려나, 우리 어머니. 우리, 우리 어머니, 어머......”
노파는 끝을 흐리며 노래를 멈추더니 아주 작은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여기저기서 가을벌레들 노래 소리가 들리고 서리가 내리는지 몸이 으쓱거렸다. 드문드문 켜져 있는 가로등 불빛에 저만치 보이는 집과 담벼락 그림자들은 지친 노숙자들처럼 드러누워 있었다. 누워 있던 개는 내가 나온 것을 알아차렸는지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나 꼬리를 흔들었다.
다음날 저녁 퇴근을 하고 집에 온 나는 집 주인으로부터 아주 황당한 소식을 들었다. 내가 없는 동안 노파의 아들이 찾아와 내 방을 뒤졌다는 것이다. 노파의 아들이 계획적으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집주인은 노파에게 밀린 집세를 받기위해 왔다가 노파의 아들이 내방에서 나오는 걸 봤다고 했다.
“그게 사실입니까?”
“아니 그렇다니까? 평소에 문을 안 잠그고 다니는 거요?”
“그럴 리가 있어요? 보세요. 문고리에 자물통이 달려 있잖아요. 잠겨있고. 그건 그렇고. 아니 여기 할머니는 집에 안계셨어요? 그 양반이 내 방을 뒤지라고 시켰을 리는 없는데.”
“아니 그 노인네를 어떻게 믿어요? 약기로 말하면 여우는 저리가라 인데. 하지만 아들인가 뭔가 하는 남자가 당신 방에서 나올 때 그 노인네는 없었어요. 아 그래서 내가 아들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지. 왜 남의 방에서 나오냐구.”
“그랬더니요?”
“뭐 문이 열려있었다나? 문이 열려 있길래 처음에는 누가 있는 줄 알았다가 인기척도 없고 이상하여 잠깐 들어갔었다는 거야.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왜 남의 방에 들어갔느냐고 따졌더니 대충 얼버무리고는 황급하게 집을 나가더라구요. 나는 그래서 혹시 아저씨가 일부러 문을 잠그지 않았구나, 했었지요.”
“무슨 얘기에요. 문은 항상 잠그고 이렇게 열쇠는 내가 가지고 다니는데. 보세요.”
“그러게요. 어떻게 땄지?”
주인이 말끝을 흐리며 둘러대자 나는 급히 방안으로 들어가 주변을 살펴봤다. 크게 어질러진 곳이나 없어진 물건은 없었다. 책상 서랍도 닫힌 그대로였고 창문도 잠겨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열쇠는 없었을 텐데 어떻게 방문 자물통을 땄는지 그것이 의심스러웠다. 왜냐하면 열쇠는 언제나 내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시 방 안 곳곳을 세밀하게 점검했지만 아무데도 사람 손이 닿은 곳은 없는 것 같았다. 책상 밑에 깊이 감춘 서류봉투도 그대로였다. 일단 없어진 것은 없으니 안심은 됐지만 그래도 기분은 몹시 상했다. 당장이라도 그 아들놈을 경찰에 신고하거나 아니면 그놈의 집으로 달려가 멱살이라도 잡고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나도 뒤가 구린데가 있는데다가 괜히 긁어서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고 분을 삭이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대문 밖으로 나가 좌우를 살펴보던 나는 노파가 배낭을 메고 구부정한 자세로 걸어오고 있는 걸 발견했다. 나는 무엇에 놀란 사람처럼 급히 방안으로 들어갔다.
“아니 어느 놈이 내 방문 열쇠를 가져다가 문을 땄어? 세상에 도둑이 이제는 부자건 가난한 늙은이건 가리지도 않고 뒤지는구나. 에구 이런. 가져갈 것도 없는 늙은이 집을 누가 열었단 말인가.”
“아드님이 왔다가 갔어요.”
“아들이?”
“예! 할머니! 아드님이 할머니 방문을 땄어요.”
노파가 집주인에게서 문이 열린 까닭을 듣고는 마루에 주저앉아 장탄식을 했다. 아들은 노파의 방문을 열고 다음에 내 방문을 열었던 것 같았다. 노파는 안절부절 못하더니 갑자기 비를 맞아 축 늘어진 봉숭아 꽃잎처럼 청승맞게 울기 시작했다. 주인은 노파가 자기 말을 알아듣지 못한 줄 알고 재차 소리를 질렀다.
“할머니, 울지 마세요. 좀 전에 아드님이 왔다가 갔어요. 아드님이 방문을 열어놓고 갔어요. 도둑이 든 게 아니에요 할머니. 그리고 할머니 밀린 방세도 모두 아드님이 주고 갔어요. 그렇게 듬직한 아드님이 있는 줄 몰랐네. 잘 사시는 것 같던데, 아드님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게 노파의 아들을 남의 방이나 훔쳐보는 도둑놈처럼 말하던 주인이 오히려 아들을 두둔하는 말을 하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노파는 주인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냥 서럽게 울더니 마루에 올려놓은 배낭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주인이 밖으로 나가려는데 노파가 문을 획 열더니 날카로운 소리로 쏘아붙였다.
“아니 그놈이 내 열쇠가 어디 있는지 알고 문을 열어? 당신이 내가 열쇠를 감추어 놓은 장소를 알려줬지? 그렇지? 어디 말 좀 해 보슈.”
“아니 할머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내가 할머니 열쇠가 있는 곳을 어떻게 알아요? 아드님이 와서 그냥 문을 연다고 하길래 난 할머니가 이미 열쇠가 있는 곳을 아드님에게 알려준 줄 알았죠. 할머니가 열쇠를 놓은 곳을 내가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안다고 해도 내가 왜 아드님한테 일부러 열쇠가 있는 곳을 알려줘요. 할머니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그놈이 내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를 못하는데 어떻게 문을 땄단 말이야.”
주인은 화가 났는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팔짱을 낀 채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노파는 멍 하니 문 밖을 쳐다보다가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개는 끙끙거리면서 노파에게 배고프다는 소리를 질러댔지만 노파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밤은 두려움에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는 사람의 목을 한 번에 조일 듯 노파의 방과 내 방을 서서히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노파는 아무데도 외출을 하지 않았다. 바람은 동풍에서 북풍으로 바뀌고 날씨는 점점 스산해지기 시작했다. 노파의 노래도 계절의 변화를 따라가는 것이었을까? 예전보다 힘이 빠지고 쓸쓸함으로 가득 차 마치 우울증 환자가 이승의 마지막에서 부르는 노래 같았다. 이따금 저녁 늦게 피곤에 절어 잠에 들려고 하면 윤영감이라는 노인이 전보다 자주 찾아와 밤늦도록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어떤 때는 제법 목소리를 높여가면서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윤영감이 가고 나면 노파는 늘 하던 습관대로 훌쩍거리면서 밤늦도록 신세타령조의 노래를 불렀다.
십이월이 되자 이미 겨울을 예고하던 절기가 제철을 만난 듯 차갑고 사나운 추위를 쏟아 붓기 시작하였다. 아침만 되면 얼어버린 수도를 녹이기 위해 뜨거운 물을 준비해야 했다. 노파는 내가 수도를 녹이고 물을 떠가는 동안에는 나오지 않고 있다가 출근을 하거나 아니면 방 안에서 오랫동안 나오지 않으면 그때서야 슬금슬금 눈치를 보면서 나와 물을 떠가곤 했다.
‘빌어먹을 놈의 노파. 한번이라도 더 일찍 나와 수도를 녹여놓으면 안되나? 물을 데워 개새끼까지 목욕을 시키는 주제에 한 번도 먼저 나와 수도꼭지를 녹여놓는 법이 없으니.’
나는 부아가 치밀어 올라 노파가 있는 방문을 향해 큰 소리로 저주라도 퍼붓고 싶었다. 더구나 그놈의 개까지 꼬리를 흔들면서 내가 수도를 녹이고 있는 모습을 비웃기라도 하면 당장 주먹으로 개새끼의 골통을 박살내고 싶었다.
“순실아. 너 밤새도록 추웠지? 이리 들어와라. 에구 내 새끼. 어여, 어여 들어와 순실아. 이따가 아침 먹고 목욕 시켜주마.”
노파는 방문을 살짝 열고 개한테 이렇게 중얼거렸는데, 나는 더 이상 그 열통 터지는 광경을 견디다 못해 부리나케 내 방으로 들어가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 동안의 내 기분일 뿐이었다. 어느새 나는 밤마다 노파의 심정을 헤아리는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노파의 슬프고 청승맞은 노래에 몰입하다 보면 그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우울하고 불행한 여생을 보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은 죄 너무 많아 죽어도 어찌 천국에 들어갈까. 살아도 지옥인데 죽어서도 지옥에 떨어진다면, 에구 죽어도 원통하고 서러우리라. 늙은 영혼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오직 밥만 축내는 돼지만도 못하다네. 영감이 살아 있다면 이런 모습으로 살지는 않을 텐데. 국화꽃은 시들어도 향기가 있다는데, 이 몸은 늙으니 군둥내만 나누나. 먼지 같은 인생 아무렇게나 살아간들 어떠하리. 자식에게 버림받고 세상 사람들도 모두들 나를 비웃네. 에야.......”
십이월 하순이 되자 회사는 주문이 많지 않아 오후 네 시 반에 공장 문을 닫고 모두 퇴근했다. 금요일 아침에는 필호와 상영이가 내 책상위에 쪽지를 남겨 놓고 동시에 결근을 했다. 물론 전날 내게 결근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정식으로 결근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아 출근하겠거니 생각했었다. 다행이 일감이 많지 않아 다른 직원들에게는 대충 얼버무리고 사장에게는 보고하지 않았다.
일이 끝나고 다른 직원들과 저녁식사를 같이 하면서 간단한 송년회 약속을 했다. 그날은 한동안 끊었던 술을 마셔 제법 흥이 날 법도 한데 오히려 더 불안하고 답답한 기분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직원들과 헤어져 집에 도착할 때까지도 전혀 그 기분이 새롭게 바뀔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늦게 집에 도착한 나는 노파의 방문 앞을 살피는 것도 싫증이 났다. 그렇다고 내가 소경이 아닌데 피해갈 수도 없었다. 마루 밑에는 신발 두 켤래가 놓여 있었지만 인기척은 나지 않았다. 방 안에 들어와 윗도리만 벗은 채 침대에 드러눕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 저도 아버지 때문에 너무 힘들고 괴롭습니다. 저녁마다 어머니하고 매일같이 싸우시고 난리에요. 이제는 두 분이 싸우는 데 신물이 날 정도입니다. 할머니, 저 이사람 하고 결혼할 작정입니다. 물론 직장은 변변치 않지만 차라리 빨리 결혼해서 아버지 어머니 곁은 떠나 독립하는 게 속이 편할 것 같아요.”
벽을 통해 들리는 소리는 틀림없는 필호의 목소리였다. 회사에 결근계를 내고 여기를 왔다니 더욱더 모를 일이었다. 노파를 할머니라고 부르는 걸 보니 짐작컨대 필호가 노파의 손자쯤 되는 것이 확실했다. 잠시 후 노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하구나! 부모에 의지하지 않고 살려고 하니. 필호야! 나는 너를 믿는다. 내가 죽으면 네 애비보다도 네가 와서 제사를 지내줄 거라고 믿고 있어. 그렇지?”
“걱정 마세요, 할머니.”
“ 필호야.”
“네, 할머니. 말씀 하세요.”
“네 애비가 네 엄마하고 싸우는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너도 알고 있을 거야. 그 땅문서 때문이지. 사실 난 지금 그 땅문서를 가지고 있지 않아. 그날 네 애비가 와서 가지고 나가는 걸 내 눈으로 똑바로 봤거든. 그런데 네 애비는 그 등기문서를 내가 감추고 안주는 줄 알고 저렇게 시시로 나를 괴롭히니 이 할미가 정말 마음이 아프고 고통스럽다.”
만약 내가 여기 살고 있다는 걸 필호가 안다면 놀라는 것은 물론이고 사이가 이상해질 것 같았다. 더구나 노파가 필호와 나 사이의 관계를 안다면 더 이상 얼굴을 마주보며 한집에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책상을 바라보다가 문득 서류가 든 봉투가 떠올랐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문제는 내가 숨겨놓은 서류봉투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나는 책상 밑에 숨겨놓은 봉투를 꺼내어 조심스럽게 그 안에 들어있는 서류들을 살펴봤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종이가 황금빛 날개를 달고 하늘로 훨훨 날아오르는 착각이 들었다. 잠깐 서류가 돈으로 보인 것이다. 서류들은 이런 내 마음을 꿰뚫어보는 듯 기괴한 냄새를 풍기며 나를 노려봤다. 갑자기 어릴 적 아버지가 어머니와 내가 잠들어 있는 것을 확인하시곤 벽장에서 논문서를 꺼내어 놓고 그것들을 한 장씩 넘기면서 유심히 살펴보시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내가 죽어도 절대 네 아버지한테는 이 땅을 안 물려준다고 했지만 내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니. 땅문서를 주면 바로 팔아먹을 것 같아 그동안 주지 않았던 거야. 그게 어떻게 해서 산 땅인데 팔아먹어. 너도 이 할미 생각을 알아야 해.”
“예 할머니. 왜 모르겠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필호야. 고맙다.”
“하지만 할머니. 그 땅문서를 할머니가 가지고 계신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건 아니잖아요?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오히려 아버지한테 주시고 마음 편하게 여생을 사시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뭐? 아니 필호야! 너도 네 애비하고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게야? 그렇니?”
“그게 아니고요, 할머니.”
“됐다! 더 이상 네 말도 들을 필요 없어! 그 애비에 그 자식이지.”
“할머니!”
“그만 하거라. 자꾸만 말을 보태봤자 내 가슴만 아파진다. 이제 그만 돌아가거라.”
“필호씨! 저는 할머니 생각도 맞는다고 생각해요.”
처음으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상영이 끼어들었다. 하지만 얼마간 침묵이 지나가더니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노파가 먼저 일어나 문을 연 것 같았다. 잠시 후 필호와 상영이가 노파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방문이 닫혔다. 나는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방문을 살짝 열어 밖을 내다봤다. 하지만 마당에는 마무도 없었다. 다시 방문을 닫고 아예 잠가버리자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곧이어 개 짖는 소리와 함께 노파의 노래가 들려왔다.
“사는 것 지겨워도 내 목숨 스스로 끊을 수 없다네. 피땀 흘려 얻은 재산이 다 무슨 소용이랴. 우리 어머니 차라리 날 낳지 않으셨다면 이 고통을 당하지 않았을 것을. 늙은 놈 젊은 놈 모두가 한통속. 한겨울 추운 냉방에서 자니 뼈는 으스러질 것 같고 마음은 우울해라. 어쩔거나 이 가련한 인생. 에이야.”
필호와 상영이가 돌아가고 노파는 다시 음울한 음유시를 내 뱉었다. 그것은 마치 잎을 모두 떨어뜨린 은행나무가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울부짖는 것 같은 음성이었다. 노파는 삼십분 이상을 노래를 이었다 끊었다 하다가 끝내는 울기 시작했다. 밤이 깊어지자 달빛은 희미한 형광등 불빛처럼 창문을 비추고 문풍지를 때리는 겨울바람은 노파의 노래를 천천히 얼리기 시작했다.
그 다음날은 출근하기로 한 필호와 상영이가 또 결근을 했는데 이번에는 내가 보고도 하기 전에 사장이 이미 알고 있었다. 결국 프레스 일을 할 사람이 없으니 내가 알아서 해야 했다. 사장은 두 사람이 결근한 것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 아마 다른 직원이 나오지 않았으면 눈에 불을 켜고 그 이유를 따졌을 것이다.
“프레스는 조장이 알아서 하고 두 친구는 당분간 못 나올 것 같으니 그리 알고 있어요. 아, 그리고 임시로 한 달 정도 프레스 일을 할 만한 다른 사람도 알아보고.”
나는 뭔가 석연치가 않았다. 사장의 얘기를 곰곰이 분석해보니 어제 두 사람이 나오지 않은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뉘앙스가 진했다. 하지만 내가 그것까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당장 내 앞에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주제에 남의 일까지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어머니! 그 자리에 공장을 짓고 보상금을 받으면 더 넓은 땅을 살 수 있는데 왜 그러세요. 제발 제 말 좀 들어보세요. 그러니 그 땅 문서 제발 어디다 놨는지 알려 주세요, 어머니.”
“네가 그날 내가 보는 앞에서 그 땅문서를 가지고 나갔는데 내가 어디서 그 땅문서를 찾아오란 말이냐. 나는 정말 모른다. 너한테 주고 그 다음은 나도 몰라. 이제 제발 나를 그만 좀 괴롭혀라.”
집에 돌아오니 또다시 노파와 아들이 땅문서로 다투고 있었다. 나는 지금이라도 보관하고 있는 서류를 슬그머니 노파의 방문 앞에 가져다 놓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너무 늦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노파나 노파의 아들 모두 나를 의심할 것이다. 뒤늦게 나는 그 서류를 주워 보관하고 있는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분란은 결국 땅문서를 감춘 내가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사장과 노파의 아들, 그러니까 필호 아버지와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미 일 년 전부터 사장은 공장을 더 넓은 곳으로 옮겨야 하기 때문에 부지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그 공장부지가 다름 아닌 노파 소유의 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윤영감은 바로 사장의 아버지였다.
하지만 나는 복잡하게 꼬이고 있는 이 일이 책상 밑에 깊이 숨겨놓은 땅문서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토지에 관한 서류는 다른 사람이 발급받을 수도 있지만 필호 아버지가 그렇게 못하고 있는 것은 실소유주가 노파이기 때문이었다. 노파가 아들이 토지에 관한 서류를 발급받는데 도와주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만에 하나 우연히 노파의 아들이 없어진 땅문서를 내가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신변에 무슨 불길한 일이 닥칠 것만 같았다.
“노상우씨죠?”
“아, 네. 맞습니다.”
“바로 이 집에서 사시구요.”
“네.”
그날 퇴근하고 대문을 들어서자 안에서 경찰관 두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바로 내 손에 수갑이 채워질 것 같은 두려움으로 몸이 떨리기까지 했다. 몸집이 다부지고 눈매가 날카롭게 올라간 사복경찰관은 계속 뭔가를 알아내려는 듯 내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바로 옆방에 노인 한 분이 살고 있다는 건 알고 계시죠?”
“벌써 삼년이 넘었는데 그걸 모르겠습니까?”
“그러면 그 방에 자주 들락거리던 사람들도 본 적이 있겠군요.”
“자주는 보지 못합니다. 와도 방에만 있다가 나가니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은 별로 없습니다. 대신 방 안에서 주고받는 대화를 들은 적은 있습니다. 근래 들어서 자주 여러 사람들이 할머니를 찾아와 서로 얘기를 주고받다가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래요? 누군지는 몰라요?”
“글쎄요. 제일 자주 오는 사람은 할머니의 아들인 것 같고. 가끔 윤영감이라는 사람도 왔다갔습니다.”
“다른 사람은요?”
“없는 것 같아요.”
“협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경찰관은 다녀간 사람들에 대한 내 얘기를 수첩에다 빼곡하게 받아 적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면서 전화번호를 남긴 채 돌아갔다. 나는 바로 지옥 입구까지 갔다가 돌아온 기분이었다. 혹 숨겨놓은 땅문서를 추궁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다가 엉뚱한 것만 물어보는 경찰관이 고맙기까지 했다.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가 땅문서가 들어있는 봉투를 꺼냈다. 아무래도 그걸 방 안에다 놨다가는 언젠가 사단이 날 것만 같았다.
회사에 출근하자 사장은 필호와 상영이 모두 직장을 그만뒀으니 새 사원을 뽑을 때까지 프레스 일을 모두 맡아달라고 했다. 그리고 곧 공장도 옮길 예정이란 소식도 들었다.
“공장은 언제쯤 옮기나요?”
“글쎄 처음엔 잘 될 것 같았는데 조금 문제가 생겨서 늦어질 것 같네? 조장이 그 일에 크게 신경 쓸 것은 없고 프레스 일만 잘 돌아가게 해 주세요. 앞으로 주문이 더 들어올 것 같으니.”
비염 걸린 사람처럼 코맹맹이 소리로 지시를 내린 사장은 공장 내부를 한 바퀴 돌고 나갔다. 아직 전원을 넣지 않은 기계들은 부두에 정박한 폐선들처럼 바닥에 누워 있었다. 주변이 어수선해지면서 한동안 제대로 청소를 하지 않아 선반과 프레스 주위에는 기름찌꺼기들과 쇳가루들이 수북했다. 그래서였을까? 공장 문을 나서면서도 여러 가지 감정들이 뒤섞여 마음이 편안하지가 않았다.
집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와 함께 소주 한 병을 마셨다. 감춰놓은 땅문서를 찾으러 경찰들이 다시 오지는 않을까 가느다란 생선가시가 목에 걸린 듯 불안하고 괴로웠다. 어떤 방법으로든 뒤탈만 없다면 노파에게 땅문서를 다시 돌려주고 싶었다. 다시 한 병을 더 마시고 밖으로 나오자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했다. 손과 발은 각자의 방향으로 움직였으며 취기가 머리끝까지 올라오면서 몸 전체가 하늘에 붕 뜬 것 같았다. 그리고 곧이어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듯 차와 도로가 뒤집어져 내 앞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조심하세요. 젊으신 분 같은데.”
“미안합니다. 차가 내게 달려와서.”
“차는 무슨 차에요. 아저씨가 비틀거리면서 걷다가 쓰러지시고는.”
횡단보도 앞에서 돌진하는 차를 피한다면서 황급하게 우측으로 피하다가 인도와 차도 사이의 턱을 잘못 밟아 그 자리에서 넘어졌다. 넘어지면서 마침 옆에 서 있던 한 중년 여인과 부딪쳤다. 중년여인은 가까스로 넘어지는 건 모면했지만 들고 있던 가방이 땅에 떨어지고 안에 있던 물건들이 보도 위로 쏟아졌다.
정신이 돌아온 나는 계속 머리를 숙이며 여인에게 용서를 구했지만 실상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지나던 사람들이 힐끔거리고 여인은 바닥에 떨어진 물건들을 주어 담으며 계속 내게 무슨 말인가를 퍼부었다. 화물트럭 한 대가 큰 소리를 지르며 지나가는 틈을 이용해 나는 재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니 노파의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부아가 치밀어 오른 나는 노파의 방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욕이라도 한 번 크게 하고 싶었다. 바로 그 순간 방문이 열리며 노파가 나왔다. 나는 깜짝 놀라 뒤로 두어 발자국을 물러났다. 마치 귀신을 보는 것 같았다. 굼벵이가 위험을 알아차리고 몸을 둥글게 말 듯 노파 역시 나를 보더니 허리를 구부린 채 뒷걸음질을 쳤다. 나는 심장이 뛰면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어정쩡한 자세로 노파만 쳐다봤다.
자리에 누웠지만 밤 열한시가 다 되도록 잠이 오질 않았다. 술은 다 깼지만 뒤이어 두통이 찾아왔다. 찬 물 한 그릇을 벌컥벌컥 마신 후 불을 켰다가는 다시 껐다. 이제 공장일도 그만두고 싶었다. 더 있다가는 무슨 일인가 터지고야 말 것 같았다. 결심이 서자 마음은 한결 편안해졌다.
공장을 그만두고 집도 옮기기로 작정하자 어린 새매 새끼가 털갈이를 하면서 눈은 날카로워지고 부리는 더욱 예리해지듯 나는 점차 냉정해지기 시작했다. 노파는 마치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려고 작심한 듯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귀를 세우고 노파의 노래를 따라갔다. 노래에 섞인 가사와 곡조는 마치 이승에서의 마지막 삶을 예고하는 것 같았다.
“욕심은 바다처럼 깊어 헤아릴 길 없네. 누군들 이런 아픔을 참을 수 있을까. 자식 낳아 키웠지만 나는 늙어 아무 쓸모없어지니 키운 자식은 오히려 날 배반하는구나. 에야. 죽는 것은 무섭지 않아도 사람들 이간질 시키는 건 더 무섭구나. 믿을 사람이 없다지만 나도 믿지 못하면 어떻게 떳떳이 눈을 감을까.”
예전보다 낮고 차분하며 또렷한 음색으로 노래를 부르면서도 목에 걸리는 보통 때처럼 가래를 삼키거나 다음에 이어질 가사가 생각나지 않아 웅얼거리는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마치 종이에 적어놓은 가사를 그대로 보고 부르는 것 같았다. 밤은 쉬지 않고 앞으로만 달렸으며 흥분으로 벌렁거리던 내 심장도 조금씩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그까짓 땅문서가 뭐 그리 중하더냐. 나 죽어도 너희들은 얼마든지 그 땅을 가지련만 살았을 적 빼앗으려 저리도 날 괴롭히네, 내 너를 친자로 생각하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거늘 너는 나를 친부모라 생각한적 단 한번이나 있었더냐. 오냐! 땅 문서를 달랄 때만 날 어머니라 불렀구나. 믿음은 부서지고 꿈은 깨졌네. 에야.”
침착하던 노파는 끝으로 갈수록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실타래에서 실이 풀어진 듯 늘어진 노파의 손끝과 뜨거운 물에 덴 것 같은 붉어진 눈자위가 내게로 옮겨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노파가 흐느끼기 시작하자 나도 목이 메기 시작했다. 누렇게 뜬 벽지 사이로 노파의 흐느낌이 끈적끈적한 액체처럼 배자 나는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냉기가 허파를 수축시키자 내 몸에 붙어버린 노파의 살아있는 영혼을 떼어내기보다는 차라리 내가 노파로 변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 이 밤이 오래도록 갔으면 차라리 얼마나 편하겠는가. 죽음도 깜깜한 밤 속에 묻혀 고통 없이 눈을 감으련만. 이놈의 땅문서, 차라리 잘도 없어졌다. 제발 다시는 그놈 손에 들어가지 말았으면 좋겠다. 죽어도 물려주지 않으리라. 내 왜 그놈 하자는 대로 도장을 찍었나, 후회가 되었는데 이제는 잘 되었다. 에이야. 모든 걸 결정하니 마음은 편안하네. 다시는 그놈 손에 땅 문서가 넘어가지 않도록 만들리라. 에야!”
다음날 아침에는 눈이 한 뼘 이상이나 내렸는데 마치 우울하고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 고의적으로 연말을 택해서 내린 것 같았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공장에는 두 사람의 선반공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출근하지 않았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붉은 햇빛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은 뽀얀 먼지와 함께 무거운 침묵 속에 여기저기 시체처럼 널려있는 철판과 쇳덩어리들을 비추었다.
장작난로에 화목을 넣고 불을 붙인 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재들을 정리하고 전원을 점검하는 사이에 화기가 공장 전체를 훈훈하게 할 정도로 난로가 달궈졌다. 나는 손을 멈추고 다른 생각에 골몰하다가 지체 없이 가지고 온 서류봉투를 꺼내 난로에 집어넣었다. 몸 안에 기생하고 있는 잠재적 범죄본능으로 굳이 스스로 정한 도덕적 양심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난로 안에서 타들어가는 서류봉투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 하나 둘 직원들이 들어왔다.
일감이 많지 않아 오후 여섯시가 넘자 모든 작업이 끝났다. 오전에 말끔하게 개였던 하늘에 다시 구름이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뼈를 부술 듯 매서운 바람과 함께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직원들을 모두 내보내고 공장 문을 걸어 잠그자 눈발은 더욱 광포하게 퍼붓기 시작했다. 길 위에 차들은 마치 파도에 표류하는 배처럼 흔들거렸으며 상가와 아파트의 불빛은 난파선이 마지막으로 구조신호를 보내듯 눈보라 속에서 아우성치고 있었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동안 내내 지옥을 떠올렸는데 인간의 기준으로 만든 지옥이 과연 얼마나 사악한 자들을 응징할 수 있으며 그 고통은 얼마나 강할까 몇 번씩 상상했다. 바로 이런 환상이 꿈이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꿈에서 바라본 현실이 차라리 꿈이기를 간절하게 원했다면 그건 바로 그날 저녁 내 앞에 벌어진 모든 상황들이었을 것이다.
“들었어요?”
“무슨 얘기를요?”
“저 할머니가 땅을 가지고 있었는데 모두 선덕원인가 뭔가, 그 고아원에 기증했대요. 그리고 집에 돌아와 죽었어요. 자살했다나봐! 오늘 낮에. 아들이 와서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는데. 조금 전까지 있던 그 아들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 뵈질 않네?”
주인은 마치 신이라도 난 듯 내게 말을 쏟아냈다. 마당에는 흰 꽃잎처럼 흩어진 발자국들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눈에 묻혀 점점 지워지고 있었다. 흰 광목으로 덮여진 노파의 시신 앞에서 통곡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노파의 방문은 노란 띠로 둘러쳐져 있었으며 여러 명의 경찰이 주위에서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노파의 시신 옆에는 노파가 키우던 개가 앉아 있었는데 얼마나 굶었는지 가슴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으며 한 경찰관이 시신을 덮은 광목을 들어 올리자 그 경찰관에게 달려들며 미친 듯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도시를 떠나면 다시 도시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것은 도시에서 태어난 철새가 도시를 떠나서는 영혼의 평화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설사 그 영혼이 짓이겨지고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병들었다 할지라도 마치 철새의 회귀 본능처럼 부서진 몸을 이끌고 다시 도시 속으로 들어간다. 폐쇄된 공장도, 노파의 시체가 놓여있던 자리를 덮었던 눈도, 도시는 이 모든 고통을 한입에 삼키듯 거대한 콘크리트 위장 속으로 집어넣고 서서히 소화시켜버렸다.
“이 몸이 죽어도 살아있을 때처럼 고통이 있으랴. 가진 것 모두 소용없네. 차라리 빈손이었더라면 더 행복했을 텐데. 늙고 병든 뒤에도 가진 것 버리지 않는다면 그건 차라리 독약이라네. 버리면 되는 것을 어찌 나는 이리 욕심도 많았을까. 아! 가시처럼 심장을 찌르는 이 고통이여! 단 한번만이라도 깊은 잠에 들어 행복한 꿈을 꾸어본다면 그것으로도 만족하리라. 아픈 가슴이여! 살아서 지은 죄, 죽어도 속죄할 수 없다면 지금껏 살아온 인생 서럽고 원망스러워라. 에이야!”
늙은 생쥐가 되어 밤늦도록 듣던 노파의 노래는 오래도록 내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사를 결심하자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붉은 피가 아직도 식지 않고 떠다니는 듯 노파의 영혼이 머물러 있는 방을 뒤로 하고 떠나던 날, 어디서 나타났는지 노파가 키우던 개가 다가와 내 바지를 입으로 물고 놔주지를 않았다. 나는 머리털이 곤두서면서 섬뜩했다. 발을 뿌리치면서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아직도 녹지 않은 눈이 상처를 덮은 거즈처럼 여기저기 싸여 있었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걸을 만 했다. 뒤에서는 그놈의 개가 끙끙거리면서 계속 앓는 소리를 냈다. 끝.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
긴 글을 보아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숨 쉴 틈도 없이 읽었네요. 삶에 대한 가슴 아파지는 이야기... 산다는게 무엇인지요. 고통 모르고 죽는다는것이 제일 좋은 행복일것이라는 생각이..... 슬픔니다. 고생하려고 태어난 것은 아닌것 같은데 삶은 고생이네요. 그러나 작가님은 행복하시기를요. ^*^
긴 글을 읽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2020 하시는 일 두루 잘 되고 행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단숨에 정말 단숨에 읽었네요.
노파의 노래 소리와 끙끙거리며 앓는 그놈의 개 소리가 여운으로 남습니다.
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코로나가 극성입니다.
건강관리 잘하세요
감사합니다 삶의 의미있는글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코로나 조심하시고
편안한 날 되세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긴 글을 읽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고 행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인생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처 지네
잘 읽었습니다...태어나 흙으로 돌아 가거늘
아옹다옹 한들 무엇을 얻으며 무엇을 잡으리
차라리 모늗걸 내려 놓고 살아보다가
하늘 한번 처다보고 저 세상 가지뭐
네 마음 비우고 살아야 합니다
감동입니다
긴글 읽어 주서서
고마워요
전엔 벽 하나를두고 이쪽 저쪽방 사이를 벽하나로 막고 세들어사는사람이 많았읍니다 그래서 보이지는 않아도 그쪽에서 하는 얘기는 이쪽방에서 거의 상세하게 들을수있지요 순박한 사람들이기에 꺼리낌없이 말들을하니 비빌스러운말도 챙피한말도 서로다압니다 옛날일이지요
네 옛날에는 그랬지요.
방이 허술해서ㅡ
부부끼리 나누는 은밀한 대화도
그때는 모두 그랬으니 허물도 아니지요
코로나 조심하시고 늘 행복하세요. 아줌님
잘 읽었습니다,
나 역시 부모에게 잘 하고있는지 또 자식에겐 부끄럽지 않은 부모지...
감사합니다
좋아요
감사합니다
굳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되세요 ^*^
늘 건강하세요
글이 너무 기네요
소설은 깁니다 ㅎ
바람은 차가웠지만 걸을 만 했다. 뒤에서는 그놈의 개가 끙끙거리면서 계속 앓는 소리를 냈다.
우울하고 불행한 여생을 보내는 노파의 삶과 푸념을 받아 주고 자기 삶을
대비 시키는 아름다운 모습은 정말로 우리들의 현실이 아닌가 생각 됩니다
단숨에 오랫만에 읽은 작품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