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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교단별 예배와 실제
1. 감리교 예배
감리교의 창시자인 웨슬레는 예배에 있어서 말씀과 성찬의 균형을 강조해서 될 수 있는 대로 자주 성찬식을 거행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웨슬레는 예배를 통해 성서가 읽혀지고 해석되며 그 가치가 계속적으로 인정되도록 예배의 모든 순서와 과정이 성서에 바탕을 두는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예배에 찬송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였는데, 이 찬송은 신도들의 예배, 생활, 교훈 등의 모든 면에 관련되었다.1)
(1) 영국 감리교 예배의 특징
① 예배 : 감리교 예배에 영향을 주었던 요소로는 기도(개인, 가족, 공동체), 금식기도, 애찬식, 야외설교, 주일 아침과 오후에 있었던 주일학교, 철야기도, 감리교 조직인 속회 등이 있다. 이러한 것들은 감리교 예배에서 교제에 대한 독특한 분위기에 영향을 주었다. 최근에는 주일학교에 변화가 생겨 오후 예배는 점차 사라지고 있고, 오전 모임은 어른 예배에 참여하는 경향이다.
② 성찬 : 성찬은 주일 아침 예배나 저녁 예배에 거행되었고, 큰 도시에서는 월 1회, 작은 마을에서는 연 4회가 거행되었다. 성찬시에는 다른 때와 달리 예식서를 사용했다. 이러한 예식에는 찬송을 사용했고 이는 감리교 예전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찰스 웨슬리의 찬송으로 한층 보완되었다.
③ 예배의 순서 : 영국 감리교 대회에서 ‘감리교 예배서’를 인준했는데, 이 예배는 융통성 있는 예배 구조를 제시했으며 고정된 순서와 자유로운 순서, 그리고 성찬 중심의 예전을 담고 있다. 성찬이 없는 예배는 찬송, 순결을 위한 기도, 죄의 고백, 사죄의 선언, 그 날의 기도, 구약성경이나 서신서 또는 둘 다 봉독, 찬송, 복음서 봉독, 설교, 중보기도, 주기도이다. 성찬이 있는 예배 순서는 설교 후에 평화의 인사(때때로 니케아 신조), 찬송, 성찬상 준비, 감사, 떡을 뗌(때때로 겸손을 위한 기도), 떡과 잔을 나눔, 기도, 찬송, 축도 파송등으로 되어 있다.
(2) 미국 감리교 예배의 특징
미국 감리교에서 사용된 예배 형식은 미국 감리교의 사회․문화적인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영국 감리교보다 미국의 다른 교단과 흡사한 것이 많다. 존 웨슬리는 1784년 미국에 있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300페이지 분량의 ‘북미 감리교인을 위한 주일 예배서’를 보냈는데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다만 웨슬리가 떠난 지 1년 후 37페이지 정도의 성례전 예배서로 대체되어 사용되었다. 1844년 감리교가 남북으로 분열된 이후 설교중심의 예배를 드렸다. 프란시스 애즈버리는 개척자로서 예배 때마다 설교와 찬송으로 사람들을 모았는데, 개척민들 가운데 문맹인이 많아 복음송을 반복하여 부름으로써 복음의 확인과 회심 경험을 상기시켰다. 특히 1920년부터 1970년까지는 중산층 감리교인의 활동이 눈에 띄게 늘었고, 예배 음악에서 종전의 회중 찬송보다 높은 수준의 합창 음악을 선호하게 되었다.
2. 개혁교회 예배
개혁주의 예배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주권과 죄로 인해 무능력한 인간과의 만남의 사건에 초점을 두고 있다. 개혁주의 예배는 복음에 근거하여 복음을 선포하고 복음대로 실천하는 예배이다.
개혁주의와 장로교 예배의 역사적 흐름은 언제나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 그리고 이에 반해 하나님께 나아오는 연약한 인간과의 만남이다.
(1) 말씀의 영향
칼뱅과 그 후예들은 ‘말씀의 선표’를 예배의 중심적인 자리에 두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을 통해 선포되어야 하며, 이러한 강조는 예배의 중심적인 자리라는 견지에서 볼 때 루터에게서 더욱 강조된 점이다. 이러한 점은 이사야서와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해서 강조되어졌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경외심을 보임과 동시에 지체함 없이 그의 범죄한 입술을 제하여 줄 것을 간구했으며,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하심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자신을 헌신하게 된다.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듯이 말씀은 곧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다. 그러나 다분히 환상적이고 구경거리로 전락해 버린 중세 가톨릭 미사에 대항한 개혁 교회는 요한 계시록에 등장하는 화려한 예배의 장면들을 거부했다. 그러면서도 개혁 교회에서는 여전히 그리스도를 말씀의 중심이며 근원으로 삼았다.
(2) 개혁교회 예배의 특징
개혁주의 예배의 기본틀은 ‘아래서 위로 향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위로 향하는 예배는 예배의 초점을 예배드리는 예배자나 혹은 그의 감정에 두는 것이 아니라 예배 받으시는 분께, 또한 예배자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둔다.
① 성찬 : 개혁자들은 성례전이 신비한 사건의 발생만 거듭되는 형장으로 오도되는 기존의 성만찬 미사에 반대하고, 성만찬에서 그 성물이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하는 성체가 되며 그리스도께서 거기 자동적으로 임재하신다는 것에 대해 반박하였다.2)갈뱅은 성만찬이 초기 단순성과 조화를 되찾으며 각 시의 교회들이 성찬 일자를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도록 완화시킴과 이웃 교회의 성찬에 참석도 가능케 했다.3)
칼빈, 부쳐, 오이코람파디우스, 베자, 파렐, 쯔빙글리 그리고 낙스와 같은 개혁가들은 매주 1회마다 성찬이 집례되기를 갈망했다. 이러한 그들의 주장은 사도들의 전승에 따른 것이었으며, 이 성찬은 주일 아침 예배의 정규적인 순서였기 때문이었다. 성찬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회중들은 성찬에 즈음하여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성찬을 받도록 요구되었다. 이러한 회중 각인이 성찬에 참여 할 수 있도록 한 개혁자들의 주장은 과거 종교개혁 이전의 1년에 1회 내지는 그보다 더 적게 성찬에 참여케 한 관습보다 더 주위의 급속적인 호응을 얻게 되었다.
개혁교회에서 성찬의 의미는 주님의 희생을 회상하기보다는 우리와 맺으신 주님의 언약의 확인하는데 있었다. 또한 개혁자들은 성찬 시 일반적으로 미리 정해진 축성기도를 드렸으며 그 기도는 주님께서 성례에 친히 임재하시기를 기원하는 형식이었다. 이 점에 있어서 칼빈은 말씀을 통해 친히 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강조했는데, 주님은 다음과 같은 명확한 제정의 말씀을 하셨다. "이것은 내 몸이니... 또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니..." 한편 쯔빙글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임재가 모인 회중들의 기억 속에서 기념되는 것으로 보았다.
② 세례 : 개혁교회의 세례의 이해는 성경과 어거스틴의 입장인 '언약의 확인'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한다. 세례는 구원을 이루어 가는 회중의 거룩한 삶으로 이끄는 의식이 아니다. 즉 회중의 훈련과 성화의 삶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는 의식이라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인 새로운 언약을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에 그 강조점을 두고 있는 예전인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하나님의 언약의 공동체인 교회로의 입교식인 것이며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은 세례 뒤에 따라오는 열매로서 기대되는 것이다. 유아세례를 받은 자는 훗날 12세에 이르러 교리문답 과정을 받아야 하며 회중 앞에서 자신의 믿음을 고백해야만 한다. 그런 다음에야 주님의 만찬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개혁자들은 이러한 목적을 위해 사전에 철저하고 강도 높은 교리문답 교육을 중요시했던 것이다. 그리스도 공동체의 언약인 세례는 언제나 공중 예배 시에 집례 되었다. 개혁가들은 세례를 구약의 언약이었던 모세의 할례와 연속선상에 두었으며 세례 시에 성령님께서 세례 받는 자에게 충만히 임하심을 보여주는 실제적인 표식이요 상징으로 여겼다.
③ 기도 : 개혁가들의 기도서에 대한 사용은 복잡하리 만큼 다양한 차이를 보였다. 예배의 시작부분에 있는 시작을 위한 기원의 기도(The Prayers of the invocation)와 대 중보의 기도는 기도서를 따랐다. 그러나 때때로 설교 후의 기도는 목회자의 자율에 따른 즉흥기도가 행해지기도 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인을 위한 존 낙스의 '공동예배서'(Book of Common Order)는 대개 칼빈의 '제네바 예식서'(Form of Prayer)를 따르고 있으나 또한 다소 성공회의 '공동기도서'(Book of Common Prayer)를 의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3) 17세기 이후의 변화
17세기에 이르러 영어 사용권의 개혁주의 국가와 대륙의 개혁 교회는 서로 큰 차이를 보이게 된다. 1643년 웨스터민스터 성 총회를 통해 절정에 달한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청교도 혁명은 국교회 내의 성공회 퓨리턴과 심지어 몇몇 분리주의자들과의 합의를 통하여 보다 더 예전 중심적인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러한 타협으로 말미암아 스코틀랜드 장로교와 후대 미국 장로교, 뿐만 아니라 미국 이민 청교도 예배에서 예전 신학과 예전적 형태가 감소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그 동안 여러 개혁 교회에서는 비공식적으로나마 지키던 5가지 성서적인 절기, 즉 성탄절, 성금요일, 부활절, 승천일, 오순절 등이 영국, 스코틀랜드, 미국의 청교도 시대에는 무시되거나 금지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반대로 북미 대륙 계열의 개혁 교회 후예들은 비록 그들로부터 갈라져 나온 다른 분파들이 비예전적 청교도주의를 택했다 하더라도 칼뱅의 개혁주의 신학을 고수하고 있었다.
점점 교회의 절기와 축일이 감소되는 대신 매주 부활 잔치로 주일 성수를 중요시했다. 이와 같이 주일 성수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다른 주요한 기독교 전통을 이어받아 온 개혁 교회의 특징 중에서도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다. 그래서 장로교와 청교도 전통은 안식일에 쇼핑을 한다든지 세상일에 몰두한다든지 그리고 주말에 휴가 가는 것을 금기시했다.
(4) 20세기 이후의 변화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미국 장로교 예배에서 나타나는 한 가지 현상은 무미건조한 예배 의식을 탈피해 예배에서의 새로운 미적인 감각과 신비함, 그리고 드라마적인 예배의 연출을 추구하려는 욕구로 인해 또다시 종교 개혁 이전의 예배로 회귀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1989년 신학적이면서도 실제적인 검증을 토대로 한 활용 가능한 에배모범을 교회의 규정서로 지정하게 되었다. 이 예배 모범에는 즉흥적인 예배를 제외한 6가지 공식적 예배 형태가 있는데, 성만찬이 있는 주일 예배에서의 세례식, 결혼식, 장례식, 매일 기도문, 특별예배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외에도 더 큰 변화를 위해 예배에서 사용하는 언어, 시편송집, 찬송가집, 심지어 성경도 합당한 목적을 위해서 적절한 변화를 가져와야 했다. 이러한 변화는 인간의 욕구만을 채우기 위한 인간적인 도구로 예배를 전락시키는 우를 범하며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온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자리로서의 초기 개혁 교회 예배의 이해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는 소지를 낳고 있다.
3. 루터교 예배
루터교에 있어서 예배는 하나님의 성전에 모이는 회중의 모임으로서 설교와 성찬을 통해 선포되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회중의 믿음이 반복적으로 견고케 되는 자리이다. 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시며, 회중은 그에 응답한다. 형식에 있어서 루터교 예배는 복음주의적이면서도 가톨릭적인 성격을 띤다.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서4)(1530)는 루터 교회의 개혁의 성격을 결정짓고, 그 개혁이 신학적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비록 권위주의 요소 때문에 빗나갔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이 교회의 구조와 전통은 여러 모로 가치가 있다.
(1) 루터교 예배의 특징
① 예배의식의 변화 : 17세기경에 중요하지 않은 예배의식들은 사라졌다. 예전 개혁에 있어서 루터의 견해는 그 기초가 되었는데, 그는 기존의 예전을 비성경적 신학에 기초한 것으로 보고 과감하게 수정했으나 예식에 있어서는 아주 보수적이었다. 루터교의 예배는 루터가 1523년에 시작했던 라틴어 예배 의식을 변경하여 1526년의 독일어 미사를 만들었는데, 이 예식서에 큰 영향을 받았다. 루터는 이 예식에서 제사 대신 감사로 바꾸었고, ‘성찬 제정사’를 종전의 성찬 기도의 구조 틀에서 빼내어 복음의선포로 사용했다. 최근에는 이 제정사를 다시 성찬기도의 구조 속으로 복귀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② 설교의 회복 : 미사에 성경적 설교를 회복시켰고, 아침기도와 저녁기도도 포함시켰다. 설교에 대한 보수성의 강조는 논쟁적이고 교훈적인 관심을 확대시켰다. 즉 가톨릭의 교권적 구속에서 교인들을 자유하게 하고 믿음의 기본적 교리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이러한 목회적 관심은 결국 자국어로 드리는 예배를 낳게 했다.
③ 예배 순서 : 대다수 루터 교회들의 기본적인 예배 순서는 크게 설교와 성례전으로 구성되는데, 키리에(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입당송, 영광송, 크레도, 아그누스데이 등이 포함되어 있다.
④ 성례전 : 루터교는 다른 개신교처럼 두 가지 성례전을 집례한다. 유아 세례를 인정하고, 성찬을 월 1회 이하 집례하는 교회들이 있으나 점점 성찬 횟수가 늘고 있다. 견진례(10세에서 15세 사이의 유아 세례자들이 공중 앞에서 세례시 부모들이 했던 신앙 고백을 하는 의식을 말한다.)를 치른 자들만 성찬에 참여할 수 있으나, 10세 이상의 유아 세례 받은 어린이들도 성찬에 참여할 수 있다.
⑤ 찬양 : 찬양 역시 예배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루터교가 중세 미사와의 분리를 이룬 가장 환영할 만한 개혁 중의 하나는 바로 예배 중 모든 회중이 자국어 가사로 된 곡을 부를 수 있도록 함으로서 예배에 회중들의 참여를 독려했다는 것이다. 루터교 예배의 주요 역설적인 면으로 남아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사제와 회중의 역할이다. 예배의 인도자인 목사는 전체 예배에 있어서 중대하고도 절대적인 역할을 감당한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루터교 예배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모든 회중들이 예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구약 말씀을 교송으로 부르지 않고, 많은 부분에서 평신도의 지도력이 강화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찬양을 통하여 회중들이 예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의도가 명백히 드러난다. 루터교 예배에서 찬양은 단순히 설교를 듣기 전에 하는 그럴듯한 준비 순서가 아니라, 예배의 중심을 이루는 중요한 부분인 것이다.5)
(2) 나라별 특징
① 독일교회 : 독일 교회는 루터교의 공통의 신학이라 할 ‘믿음을 통한 은총에 의한 의인화’를 기본 교리로 하고 있다.
② 스칸디나비아 루터교회 : 스칸디나비아 루터교는 독일 교회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데, 특히 덴마크 교회가 그렇다. 노르웨이는 덴마크의 오랜 통치하에 자신의 스타일대로 발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노르웨이 교회 예배는 깊은 경건심을 유지하고 있고, 따라서 분위기가 개인적인 경향이 있다. 스웨덴 교회는 종교 개혁 당시의 예배 순서를 그대로 유지했다. 로마 교황청의 영향도 사라지고 칼뱅의 영향도 크지 않았기 때문에 신학적인 갈등은 비교적 적었다. 예배의 구조는 독일 교회와 유사하지만, 예식과 예전의 의복에 있어서 로마 가톨릭 전통을 따랐다. 그러나 설교 중심의 교회로서 성찬 횟수는 종전과 같다.
③ 북미 루터교회 : 북미 루터교회는 루터교회의 다양한 유럽 전통의 상속자가 되었다. 그 다양한 전통들은 신대륙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로 합쳐졌다. 하나의 공통언어, 앵글로 색슨 계통의 개신교 신학과 대면하게 되었고, 개신교회 중의 소수파로 위치하게 되었다. 예전은 종교 개혁의 모델을 따랐는데, 성공회의 공동 기도서의 문장들을 전용했다. 루터 교회의 찬송은 영미 전통의 찬송 전통이나 미국 개신교의 전형적인 찬송가들을 자연스럽게 흡수했다. 예식이나 예복은 성공회나 스웨덴 교회의 유산, 예전 운동의 가톨릭 경향을 점점 크게 드러내 왔다.
4. 성공회 예배
성공회 예배는 450여 년을 내려오면서도 예전에 있어서 거의 변하지 않고 있는데, 그만큼 예전의 내적 가치를 잘 보존해 오고 있음을 말해 준다.
(1) 성공회 예배의 특징
성공회 예배는 기독교 신앙의 주제인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성례전에 중점을 둔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나타나셨다. 그러므로 예배를 통하여 교회는 가시적이며 세밀한 형태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구체화하는 것이다.6)
(2) 성공회 예전의 특징
성공회 예전은 지역마다 다양한 형태를 지녔던 중세 로마 예전과는 달리 하나의 예전으로 통일시켰다. 라틴어 대신 영어를 사용했고, 지적인 요소와 평신도 참여를 강조했고, 성경을 통해 덕을 쌓는 것에 대해 강조한 결과, 성공회 예배의 특징인 아침과 저녁 기도, 시편집의 규칙적인 암송, 축약된 교회력에 따른 성경의 독서가 포함되어 있다.
(3) 성공회 예배서의 특징
성공회의 예배서는 1662년 영어로 된 예배서가 관련성이나 지적인 면에서 보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이 예배서의 특징은 예배에서 평신도들의 역할을 더욱 장려하는데, 기도와 성경 봉독, 즉석 중보기도, 평화의 인사 교환 등은 일반화되어 있다. 매주 성찬, 세례와 견진례를 거행하는 것도 이 예배서들의 특징이다.
5.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교회 예배
(1) 예배의 정신과 특징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교회는 일반적으로 흑인 교회라고 불리고 있다. 이들의 예배는 깊은 억압과 자유를 향한 애타는 갈망을 대변한다. 이들은 예배를 통하여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경험하며 나아가 죄의 권세와 사탄의 권세로부터 놓임을 얻게 된다. 또한 이들은 예배의 자리에서 교단을 초월해 한마음으로 모여 하나님을 예배한다. 그리도 비록 소외되고 억압된 사회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하더라도 이들은 자신들의 삶 속에서 겪게 되는 공통된 욕구와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억압된 사회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기 위해 예배의 자리로 나아오며, 사회적 억압과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가지기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고 찬양드리는 예배의 모습을 보여주는 특징이 있다.
(2) 예배 계열과 일치성
아프리카계 미국인 교회 예배는 크게 세 종류로 분류된다. 먼저는 아메리카 흑인 개신교 계열이고, 다른 하나는 유럽 계통의 아메리카 흑인 회중 교회이며, 단일 교단으로서 로마 가톨릭과 수많은 크고 작은 분파들이 있다. 그렇기에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교회는 다양한 신앙 색깔을 지니면서도 일치하는 통일성을 지닌 예배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예배 형태는 크게 세 가지 전통이 혼합되어 있다. 아프리카계에서 온 사람들, 미국계 사람들, 그리고 유대 기독교 신앙 전통을 이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과거 아프리카 노예 시장에서 북미로 강제 이주된 미국 흑인 노예들의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성경을 자신들의 삶 속에서 경험되는 다양한 삶의 시각을 통해 이해했다. 그러므로 그들의 예배는 자신들의 계열에 관계없이 예배에서 서로 일치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함께 공유하는 공통된 삶의 욕구와 기쁨, 갈등, 그리고 희망 등 그들이 삶의 현장과 관계된 삶의 욕구들이 함께 표현되고 발산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주일 공중 예배에서 개인이나 공동체의 내적인 변화와 회심 사건을 북돋을 수 있는 순서와 자리를 마련하고 개인의 삶에서 일어난 회심의 체험을 간증할 수 있도록 하는 예배 분위기를 마련하고 있다.
(3) 예배 신학 사상
이들의 기본적인 예배 신학은 동일한 이해를 가지고 매우 단순하게 이어지고 있다. 과거 노예 시대를 살았던 미국 흑인 노예들에게 있어서 자유란 자신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노예의 신분으로부터 해방을 뜻한다. 이들은 자신들을 속박하는 노예 제도하에서도 그들을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그리고 성삼위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었다. 이러한 특수한 삶의 상황에서 형성되고 구전을 통해 전해 온 그들의 영가(spiritual songs)는 미국 흑인 노예들만의 독특한 신학 교리를 형성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이들의 예배에는 아프리카 기본적인 종교적 전통들이 자리잡고 있어 단일적이거나 획일적이지 않다.
한편, 북아프리카 기독교 전통은 유대 기독교 신학의 형성에 직접적이면서도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아프리카인들은 아브라함이 애굽에 정착했을 때부터 초기 기독교 교회가 기독론과 신앙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시작된 때까지 기독교 신학의 발전에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해 왔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신학의 체계적인 조직과 신조의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주역들을 배출했다. 클레맨튼, 오리겐, 터툴리안, 키르리안, 디오니시우스, 아타나시우스, 디디뭇, 아우구스티누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의 시릴 등이 바로 그들이다.
(4) 제의적 행위와 예배
이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피조 세계는 성스러운 것으로 이해되었다. 따라서 제의 의식속에 상징과 기호를 포함하였다.
또한 제의적 행위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응답으로 여겨져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인간의 응답의 형태는 의식적일 수 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또 즉흥적일 수도 있고 예전적일 수도 있다. 그리고 개인적일 수도 있으며 공동체적일 수도 있다.
예배는 기본적으로 신성에 대한 상황적, 경험적 응답이기 때문에 공동체에게는 평범한 상징과 상징적 형식이 상호 의사 소통에 있어서는 가장 표현력 있는 수단들로 제공됐다. 음악, 육체의 움직임(춤), 몸짓, 동족의 하나됨 같은 다양한 형식과 모양은 아프리카 민족들에게는 평범한 상징들이었기에 이러한 문화적 사고는 예배의 현장에서 어느 민족보다 적나라하게 표출되고 있다.
(5) 기독교와의 만남과 논쟁들
식민지 땅 북미에서는 수많은 아프리카 흑인들이 유럽계 미국인들에 의하여 제정된 일련의 법에 따라 노예가 되도록 강요받았다. 당시 북미 대륙의 백인들은 아프리카 흑인들의 영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하여 당시 노예들을 전도하는 것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일어났고 인간본연에 대한 의문과 논쟁이 많이 생겨났다. 그럼에도 당시의 노예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비록 세례는 주되 노예제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도록 법제화함으로써 비인륜적 차별대우를 계속하였다.
당시의 상황속에서 흑인들은 비밀스런 종교 모임을 만들게 되었고 농장주의 감시를 벗어나서 그들만의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들만의 예배를 통하여 모든 믿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자유케 하시는 사역을 그들의 삶의 정황에 맞추어 재현하며 신학적 토착화 방법이 발견되어졌고, 이러한 배경속에 온몸과 마음을 바쳐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6) 성경에 대한 재인식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북미 흑인 노예들에게 있어 새로운 신학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한 가장 중요한 자료였다. 성경을 통하여 이들은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7) 예배 지향의 공동체 흑인 교회는 처음부터 자유 예배를 지향하는 공동체로 형성되었다. 억압된 삶속에서 예배를 통하여 그들의 공동체 전체가 드러나고 발견되는 유기체적 역할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예배는 묵상적이든 황홀경이든 간에 성령님이 이끄시는 장이고, 사회의 한계선상을 뛰어넘어 하나님을 만나고 알고자 하는 제한된 경험이었다. 이 순간만은 세상의 빈부귀천의 개념을 초월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예배의 참여를 통하여 하나님의 주권하시는 능력 아래 영적 감화를 주고, 변형시키고, 전체를 하나로 만드는 전능자의 통찰력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6. 오순절 교회 예배
이 교회의 예배에서의 중요한 요소는 찬양이다. 찬양이란 노래일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한 경배요 증거이다. 예배의 현장에 나아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그리스도인은 예배자의 삶 가운데 개입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구원과 치유의 사역에 대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에 대하여 찬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보았다.
(1) 찬양
오순절 교회의 찬양은 창의적이고 표현력이 풍부한 음악이다. 오순절 교회의 음악은 대중문화의 음악적인 표현 방식을 수용하여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악기는 찬양보다는 덜 중요하긴 했지만 보통 찬양을 위한 반주로서 언제나 중요하게 여겼다. 대중 음악적 표현방식을 위해서 많은 악기들을 사용하였고 예배에 과감히 수용하였다.
젊은 예배자들이 맨 먼저 현대적인 양식을 받아들여 그것을 수정했고, 그리고 점차적으로 그것을 수용 가능한 방식으로 예배에 통합시켰다.
(2) 기도
대중기도는 독특한 형식을 갖고 있지 않으며, 진실성을 가라앉히기 위한 어떠한 억제도 없이 오직 회중에 행하는 개인기도에 불과하다. 열렬함과 자발성은 오순절 기도의 특징들이다. 오순절 교인들에게 있어서 문서화된 기도들은 열등하며 비영적인 것이다.
(3) 설교
오순절 교회의 복음 증거와 설교는 웨슬리 교파의 설교에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설교는 종종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하신 일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당신을 위해서도 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라는 증거의 확장이었다. 다시 말해서 다시 말해서 그 수단이 열렬함과 자발성이었기에, 만약 찬양이나 기도 또는 회중적인 고백이 충분하게 지속되어진다면 설교는 필요하지 않게 되거나, 혹은 예배의 다른 부분들에서 성령님에 의해 성취되었다고 생각하였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예배 모임이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서구의 오순절주의에서도 이런 경향은 증가하는 추세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좀 더 많은 설교들이 추가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순절교의 예배자는 "말보다는 체험", 즉 설교자로부터 하나님의 축복들에 대하여 듣는 것 보다 자신이 직접 그것들을 경험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예배는 강단 중심적이라기보다는 예배자 중심적인 경향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설교자가 성령님 안에서 가장 큰 체험을 한 사람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예배는 적어도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한 최고의 계시로서 설교자에게 초점이 맞춰지는 경향도 있다.
(4) 여성에 대한 인식
하나님의 자녀인 남자와 여자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것과, 일반적인 교회 생활에서뿐만이 아니라 예배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통하여 미국의 오순절 교회들은 비록 가장 높은 직책이 아닐지라도 여성들과 지역 교회의 몇몇 리더들에게, 그리고 환영받지 못하는 낯선 사람들에게도 성직을 수여한다. 그러면서도 영적인 리더쉽이 사람을 통해서 자기의 멋대로 주도되는 것을 단호히 경계한다.
(5) 가톨릭 은사주의의 영향
오순절 교회의 예배는 그 동안 개신교의 예배 형태와 상징들을 모범으로 삼았지만 최근에 이르러 가톨릭적인 은사주의를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먼저 새로운 찬송들과 성가곡들의 도입이 있고, 다음으로 성령님 안에서의 삶의 출발이 위기가 아닌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가톨릭적인 은사주의자들은 모든 오순절 교회 교인들에게 예배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목적을 두고 드려야 함을 상기시켰다.
(6) 개신교의 영향
가톨릭 은사주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오순절 교회는 개신교의 영향을 여전히 많이 받고 있다. 예배당 안에는 거의 장식이 없고, 강단은 회중의 주목을 끌 만한 제단 뒤편 중앙에 위치한다. 침수 침례를 위한 침례반과 성찬대도 위치해 있으며, 여러 색깔, 가운, 조각, 또는 깃발이든지 상징으로 만든 것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십자가는 종종 비둘기 모양과 함께 널리 사용된다.
또한 비록 교회력이 무시된다고 할지라도 부활절, 성령 강림절, 성탄절, 그리도 드물게는 종교 개혁 주일과 같은 기독교의 절기를 지키고 뿐만 아니라 국경일에는 그 의미에 맞는 찬송가를 부르기도 한다.
(7) 예전
예배 예전으로는 주님의 만찬으로 불리는 성찬식이 한 달에 한 번씩 보통 예배에서 설교 후에 연장하여 거행된다. 성찬의 형태는 공개 성찬이 일반적이고, 신학은 쯔빙글리의 기념설을 따른다. 물세례는 과거보다 현대에 이르러서 덜 중요하게 여겨지고 그 횟수도 드물게 거행되지만, 그러나 이것은 미국을 제외한 세계 다른 곳에서는 중요하고 자주 거행되기도 한다. 십일조와 헌금은 오순절주의의 예배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이다. 교회에서의 결혼식들은 장례식과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행사이다. 유아 세례는 없지만 대부모 없이 하나님께 바치는 헌아식이 있다.
미국 오순절교의 예배는 19세기 말에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미국 오순절교는 성결교와 그 외 다른 복음주의적 교단들이 강조하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 '기도를 통한 질병의 치유', '성령의 은사 체험', '구원 이후에 있게 되는 성도의 성화와 봉사에로의 헌신',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와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 사상' 등에 동일한 신학적 강조점을 두고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신학적 강조점들에 부합되는 예배 형태를 지니기 위해 이들은 복음주의적인 교회들의 예배와 예전을 필요한 부분만큼 모델로 삼게 되었다. 그리고 영적인 활력을 체험한 회중들이 성령님과 연합될 때 새로운 형태의 예배가 발전되기도 했다.
7. 웨슬리안 예배
웨슬리의 예전 신학에서는 예배를 시간과 공간에 제한된 공동체의 공적인 행위 이상으로 정의하려 한다. 예배는 삶 전체, 타인과의 관계성, 그리고 소명과 관계해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고 예배자들은 지속적으로 그들의 삶과 사고 속에서 그리스도와의 온전한 관계를 현실화시켜 나아가야 한다고 보았다.
(1) 특징
웨슬리안 예배는 단순히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 그 이상으로 가장 일반적인 의미에서 예배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사랑하는 묵상이며 경배이다. 웨슬리가 말했듯이 예배는 우리를 하나님의 면전으로 인도하며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표현될 수 없는 하나님에게로 가까이 접근하는 방법을 찾게 된다. 한 마디로 우리는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하나님을 보게 된다.” 이 하나님과의 대면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온 마음과 정신과 영혼과 힘을 하여 그를 사랑하는 법, 그를 기뻐하는 법, 그를 바라는 법을 배우며, 우리 자신을 정화시킴으로써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을 모방하는 법을 배우고, 생각과 말과 행위 모두에 있어서 우리가 사랑하는 그분에게 순종하는 법을 배운다”고 표현하였다.
웨슬리안 예배는 예배자들로 하여금 회개에로의 부름을 포함하는 구원의 전 드라마를 일으키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아는 즐거움을 일으키고, 거룩한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모방하려는 도전을 일으켜 준다.
(2) 웨슬리의 영향
웨슬리는 예배의 외적 형식과 내적 힘을 구별했다. 그는 예배자들 속에서 활동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힘을 소홀히 취급하면서, 예배의 외적 형식을 지키는 명목상의 기독교인들을 비판했다.
동시에 그는 예배 예전을 별로 중요시하지 않은 ‘영적 예배’를 주장하는 탈예전적 예배자들을 비판했다. 그러므로 예배란 소그룹의 양육, 금식, 성경읽기, 성찬세례, 공적이고 개인적인 기도를 포함하는 ‘은총의 수단’이라는 훈련 용어를 포함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비록 여러 의식들과 예전들이 남용될 수 있지만, 그는 “남용이 제거되도록 하고 그 용도는 남게 하라. 이제 모든 외적인 수단들을 사용하라. 그러나 그것들을 끊임없이 너의 영혼을 의로움과 참된 거룩함 속으로 갱신시키는데 사용하라.”고 주장했다.
웨슬리의 이 외적형식과 내적힘의 연합은 예전적 형식주의와 형식 없는 주관주의 사이를 분리하여 유기적인 예배 신학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그리하여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의 객관적 실재에 중심을 두고 있으며, 동시에 회중들의 관계를 변화시키는데 나아가도록 하였다.
(3) 세례
웨슬리는 “세례에 의해서 우리는 교회로 받아들여지고,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의 구성원이 된다. 그 물, 세례의 물에 의해서 우리는 중생되거나 다시 태어난다.”라는 성공회적인 견해를 복음주의적 입장에서 재해석하여 받아들였다. 그는 세례가 비록 그리스도의 삶으로 들어가는 최초의 평범한 수단이지만, 그것이 구원에는 필수적이지 않다고 결론을 내린다.
웨슬리는 유아세례와 성인세례를 구분하였는데, 유아들에게 있어서는 세례를 통한 중생이 가능하지만 성인들에게 있어서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는 유아들이 세례를 받아야 하는 이유가 원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유아 시절에 세례를 받은 어린이들은 그 당시에 이미 중생한 것이며, 이는 ‘일반기도서’에 전제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성인들의 경우에는 물로 세례를 받더라도 반드시 성령으로 거듭나게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7)
(4) 성찬
성찬에 대한 웨슬리의 가르침은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임재를 강하게 강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가 거기서 나를 만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그의 말씀을 성취하실 것을 기대하며, 그가 이런 방법으로 나를 만나고 나에게 축복해주실 것을 기대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거기에서 우리와 만나실거라는 확신 속에서 주님의 만찬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웨슬리는 성찬에 그리스도의 임재를 분명히 확신했기 때문에 성찬의 회심시키는 능력에 대해 깊은 관심을 두었다. 웨슬리는 주님의 만찬은 그리스도의 은총을 받는 주요한 수단으로서 존재하고, 그것은 기독교인들의 삶 속에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임을 제시했다.
(4) 언약예배, 자유교회 예배
웨슬리는 개혁 교회의 예배 전통 중에서 「언약 예배」(the covenant service)를 채택하여 신도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언약을 다시 이루게 하는 동시에 기독자로서 재 결단하도록 하였다.
특히 웨슬리의 부흥 운동과 병행하여 자연스럽게 출현한 것은 자유 교회의 예배 형태였다. 이 부흥 운동은 자주 옥외에서 개최되었으므로 그들은 비형식적인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주일 오후 5시에 모이는 예배는 점점 성황을 이루기 시작했다. 얼마 후 감리교도의 부속 예배당(Chapel)이 생기면서 그들은 거기서 예배를 드리고 친교를 나누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전보다 더 생생하게 경험하기 시작하여 성도들 사이의 영적 결합과 복음적 각성 운동에 적합한 형의 예배가 요청되었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자유롭게 표현하며 가담하는 예배 순서를 설정하여 찬송, 성서봉독, 즉흥기도, 말씀증언, 간증의 내용을 지닌 청교도 형식의 간단한 예배를 드렸다.8)
웨슬리의 성례전적 이면서도 복음주의적인, 한마디로 긴밀한 긴장관계에 있는 그의 예배 신학은 다소 탈 예전적인 예배를 더욱 선호하는 경향을 갖게 되었고, 이러한 경향들은 특히 북아메리카 개척자들의 독자적인 문화에 의해서 보다 더 강화되었다. 그리고 이 18세기에 일어난 학생 운동과 예전적 갱신 운동의 영향으로 감리교는 예전 중심의 예배와 성례전적 예배 실천의 회복을 맞이하게 되었다.
8. 침례교 예배
침례교 신학에서 교회란 모인 회중을 뜻하는데, 이들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과 교회에 헌신하고 믿음의 고백으로 세례받고 교회의 회원이 된 자들이다. 이들에게 예배는 곧 복음의 축하 행사이다. 따라서 이들의 예배는 대부분 감사와 찬양의 시간이 있고, 거기에 개인적인 신앙 고백과 공동체적인 신앙고백, 그리고 간절한 간구와 중보기도 등이 포함되어 있다.
(1) 예배9)
모든 침례교의 신학은 성경 자체에 근거한 성경 중심적 신학이다. 이것은 그들의 예배에서도 동일하게 보여지는 특징으로써 그들의 예배의 신학과 형태를 발전시킴에 있어 예배와 연관된 성경 본문들을 중요한 자료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모세(출 33-34장), 이사야의 부르심(사 6장), 나사렛의 회당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눅 4:16-30),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요 4:19-24), 최후의 만찬에 관한 여러 가지 언급들(특히 고전 11:23-26), 그 밖에도 초대교회의 수많은 예배의 모습과 심지어 계시록에 묘사된 천상 예배의 모습(계 4-5장)까지를 이야기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성경에 바탕을 두고 있는 그들은 또한 참된 예배란 삶 속에서 드려지는 온전한 예배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개인이나 공동체가 아무리 잘 갖추어진 예배를 드린다 할지라도 그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의 삶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믿음의 교제와 성결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지 못한다면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밖에도 침례교의 예배는 회중예배를 의미하고, 하나님과의 만남을 말한다. 또한 예배시 언제나 성령님의 자유로운 역사를 인정한다.
(2) 성찬10)
침례교는 주님의 만찬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초점을 둔다. 19세기의 영적 대각성 당시 침례교는 이 주님의 만찬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으나, 그들의 침레교 전 역사를 통해 볼 때 그들에게 있어 주님의 만찬은 예배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도 예배에서의 그 중요성을 다시 회복하려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참고문헌
정장복, 「예배의 신학」, 정장복,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1999
Hovard A. Snyder, 명성훈(역),, 「성령의 표적」, 도서출판 나단, 1994
백태광, “예배형식의 고찰과 새로운 예배형식의 전망”, 목원대학교, 2006
박은규, “웨슬리의 예배와 성례전”, 목원대학교출판부,
송맹섭, “존 칼빈의 교회개혁에 관한 연구” 갈빈대학교대학원, 2006
첫댓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신학적인 용어에 대한 이해부족이 조금 생기네요.^^
자료를 찾아 올리지만 읽을 여유가 없습니다. 우짜노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