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는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 전에 꼭 돼지를 잡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필요한 만큼 나누어서 사고 내장이니 부속물은 순대국 으로 한 솥 끓여서 다들 모여 나누어 먹습니다.
시골은 아직도 명절이 공동체의 명절인 것이지요.
우리도 늘 그랬던 것처럼 이번 추석에도 그 고기를 몇 근 사서 구워도 먹고 찌개도 끓여먹는데 집에서 기른 돼지라 육질이 쫄깃하고 신선한 게 정육점에서 파는 돼지와는 분명 다른 맛이 납니다.
소도 그렇지만 돼지도 버리는 것 하나 없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다 쓸모 있는 짐승입니다.
돼지머리 눌린 건 아직도 잔칫상이나 초상집에서 쓰이고 고기는 각 부위별로 온갖 요리에 이용되며 내장은 순대로 족발은 별미음식으로, 뼈는 뼈대로 음식재료로 이용되고 기름도, 가죽도, 털도 모두 일상용품의 재료가 됩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아닌 아낌없이 주는 동물이 돼지인 셈이죠.
그런데도 이런 돼지를 우리는 경멸하며 싫은 사람을 돼지라 부릅니다.
사실 돼지는 위장의 70퍼센트만 채우는 절제력 있는 동물이고 배가 터지게 먹는 건 우리인데 오히려 돼지를 배터지게 먹는 동물로 오해합니다.
모든 걸 사람에게 바치고도 대접도 못 받는 돼지처럼 남편 밑에서 비굴한 몸종처럼 살다가 온갖 학대를 받던 끝에 쫓겨난 후 먹을 것이 없어서 매일 막걸리 한 병으로 연명하다가 우리 교회에 온 지체가 있습니다.
노숙자 직전까지 갔던 그녀는 복음을 들으며 인생이 해석되어 비로소 살아났고 과거의 상처와 열등감과 피해의식에서 조금씩 회복되어가고 있습니다.
잘난 남편과 자녀들에게 모든 걸 바친 것처럼 살았지만 그게 사랑이 아니라는 걸 이제 알게 된 겁니다.
두려움이 가득한 섬김과 생색이 나는 헌신은 사랑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우리는 말씀을 들으며 비로소 알게 된 사람들입니다.
내 몸을 다 내어줄지라도 십자가의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셨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