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넥타이와 제자 명숙이
* 이글은 지난해(2008.10.5) <大師同門 文藝誌>에 실렸던 수필입니다.
류 진국
군대 제대 후 겨우 한 학기를 근무하고, 1964년 봄 대학에 진학하기 위하여 초등학교
3학년 여자 어린이들과 이별을 해야 했던 가슴 아팠던 추억을 되돌아 본다.
그 후 30년이 지난 어느 날, 목소리가 아름다운 여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류 진국 선생님이시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대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으므로
나에게 전화를 거는 여자 제자들은 대부분 교수라는 호칭을 붙여주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어떤 여인인지 도무지 상상 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 선생님이 x x 초등학교에서 담임했던 3학년 3반의 명숙이예요.
내가 초등학교 교사로서 가르쳤던 학생이 겨우 60명이었으므로
그 때 제자들의 이름을 거의 기억하고 있었다. 명숙이, 현 희, 혜숙이 ,정 례....
이미 오래전에 xx초등학교를 그만두고 대학에 진학 하였고,또 회사에 들어와서도
상당한 세월이 흘렀는데 ,어렸던 어린이(?)가 나를 어떻게 찾았을까?
그리고 왜 찾았을까?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명숙이로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충무로에서 당시 3학년 3반 어린이들(?)이 모여 선생님을 대접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충무로에 있는 식당에 갔더니 그때 그 어린이들(?)이 아줌마가 되고 숙녀가 되어
옛날의 스승인 나를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그리고 선물을 한 아름 듬뿍 받아가지고 왔다.
나는 그때까지 궁금증이 풀리지 않아 “ 너희들이 어떻게 나를 찾았느냐”고 물어 봤다.
그해가 마침 “스승 찾기 운동을 하는 해”라서 전국의 교육청과 경찰서들이 도와주기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나를 지명수배라도 했단 말인가?
그 후 명숙이는 스승의 날이면 한해도 거르지 않고 스승인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어느 해는 자기 남편(사진작가)이 찍은 작품사진을 가져오기도 하고 ,또 어느 해는 식당으로 초대하기도 하였다.
작년 스승의 날에는 식당으로 초대하여 맛있는 음식과 빨간 넥타이를 선물로 주었다.
요즈음도 대학원에서 강의를 할 때 가끔 이 선물로 받은 빨간 넥타이를 즐겨 매곤 한다.
여자 대학원생들이 묻는다. 교수님은 어디서 그렇게 멋진 넥타이를 사셨냐고 ?
내가 초등학교선생을 한 학기동안 했었는데, 그 때 가르친 여자 제자가 선물 했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하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디자인회사를 직접 경영하는 여자 제자가 사준 넥타이인데
얼마나 멋이 있겠는지 상상에 맡기고 싶다.
또 어느 날인가 명숙이가 큰딸을 시집보낸다고 청첩장이 왔다.
매일 바쁜 일정이었지만 자랑스러운 제자 명숙이와의 인연을 생각해서 참석하였다.
그런데 역시 현 희, 정례 ,연희 등 그때 가르쳤던 많은 제자 여인들이 참석하였다.
선생님에게 술을 권하면서 저희들도 그때 선생님께 배웠던 시절이 그립다고 하였다.
아니 선생님께서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이별인사를 하던 날 저희들이 얼마나 울었는지
지금까지도 그 눈물이 남아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이제 그 어린것들이 어른이 되어 사위를 보고 며느리를 보고 있으니
너희들과 내가 같이 늙어가는 것 같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중에 한명이 선생님이 저희들보다 더 젊어지는 것 같다고 농담을 하였다.
솔직히 듣기가 나쁘지는 않았다.
참으로 가르치는 것이 인생삼락중 하나라 했거늘 이렇게 보람이 있을 줄 이야.
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초등학교 교사시절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늘 영원한 추억으로 간직하면서 살아가려고 한다.
첫댓글 와~ 감동일세. 나에겐 그런 추억이 전무라서 정독 해 보았네요.감사
감동! 6개월 교사생활에 이런 큰 감동. 40년 한 사람은 80은 되야 하잖나? 반성.
멋진 인생 축하....
이런 스승과 제자 만남이 진짜 만남이라오 난 부럽습니다. 40년여년했지만 난 그런 참교육을 못하고 헐렁한 교육만해서 걸릴 것 없이 自由分忘한 삶 정말 살맛이 나는것...참 고맙수. 靑川 池古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