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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개정헌법이 공포되었다. 개체교회, 노회, 총회는 새로이 개정된 헌법을 적용해야 한다. 그렇다면, 헌법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개혁정론은 예배, 시편찬송, 미혼자 임직, 명예직, 시찰, 교회직원의 윤리 문제 등 새로운 헌법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차례로 다루려고 한다. - 편집자 주
명예집사와 명예권사, 헌법이 말하는 대로 세워야 할까?
손재익 목사
(한길교회 담임)
개정헌법의 명예직 허용, 과연 그대로 지킬 것인가?
새롭게 개정되어 2023년 7월 반포된 고신교회 헌법을 적용함에 있어서 가장 민감하게 다가올 주제는 명예집사와 명예권사다. “집사와 권사에 대한 명예직은 헌법정신에 의거 세우지 않는 것이 원칙이나 교회의 특별한 사정상 사역을 위하여 만 65세 이상 된 자에게 당회의 2/3이상의 결의로 세울 수도 있다”는 조항에 따라 이전에 없던 직분이 새로운 헌법에 따라 생겨났다. 그러면 이제는 이런 직분을 세워도 될까?
지금까지 헌법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헌법대로 교회를 세운다면 세워도 되는 것일까? 헌법을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그렇게 해도 되겠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헌법을 문자적으로 지킬 수 있는가?
관리표준 위에 교리표준
명예 직분에 대해 언급하는 조항은 ‘정치’ 부분에 있는 내용으로서 ‘정치’는 헌법의 순서상 ‘관리표준’에 해당한다. 우리 헌법은 크게 교리표준과 관리표준으로 되어 있다. 이 둘은 같은 헌법 안에 수록되어 있지만, ‘동등’하지 않다. 관리표준보다 교리표준이 우선한다. 이 사실은 이 둘의 개정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관리표준을 노회가 수의할 때는 노회와 노회원 투표수 과반수 이상이다. 반면 교리표준은 3분의 2이상이다.
이러한 설명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교리표준에 해당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이 더 우선하는 것은 상식이다.
교리표준의 가르침
교리표준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이렇게 말한다. “종교의 모든 논쟁들을 결정하고, 교회회의의 모든 결의, 고대 저자들의 견해, 사람의 교리와 사사로운 영들을 분별하고 우리가 그 판결을 승복할 수밖에 없는 최고의 심판자는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성령뿐이시다.”(1장 10절) “모든 대회나 공의회는 사도시대 이후부터 총회이든 지방회이든 간에 오류를 범할 수 있었고 많은 회의들이 실로 오류를 범하였다. 그러므로 회의를 믿음과 생활의 법칙으로 삼지 말고, 믿음과 생활의 보조 수단으로 사용하여야 한다.”(31장 3절) 이러한 가르침에 의하면 우리의 신앙과 생활에 있어서 최종 권위는 성경에 있다. 성경에 어긋나는 결정을 따를 수 없다.
여기에 근거해서 이전 헌법 전문 3장 4항은 이렇게 말한다. “치리회가 내린 결정은 하나님 말씀에 일치하는 한 구속력이 있으며 그 결정에 순종해야 한다.”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치리회가 내린 결정은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하지 않을 때 구속력이 없고, 그 결정에 순종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관리표준이 성경에 어긋나면 지킬 필요가 없다. 아니 지켜서는 안 된다.
상위법 우선
위의 설명으로 충분하지만, 좀 더 보태면, ‘상위법 우선의 원칙’이라는게 있다. 중학교 시절에 배우는 내용이다. 상위법에 어긋나는 하위법은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이에 따라 헌법에 위배되는 법률은 효력이 없고, 법률에 어긋나는 명령, 조례, 규칙은 효력이 없다.
이와 같은 세상법의 논리를 굳이 적용하지 않더라도, 교회 헌법이 성경 위에 있을 수 없음은 당연하다. 우리는 성경 위에 다른 권위를 둘 수 없다. 종교개혁자들이 강조한 ‘오직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중세 로마가톨릭교회는 성경보다 교황이나 공의회에 권위를 두었으나 종교개혁은 성경에 최종 권위를 두었다. 그러니 교회 헌법이든 총회 규칙이든 총회 결의든 성경을 넘어설 수 없다. 우리가 성경보다 다른 것에 더 권위를 둔다면 우리는 종교개혁의 후예라 할 수 없다.
직분의 근간을 섬김이라고 가르치는 성경
그렇다면 성경은 어떻게 가르치는가? 성경은 직분의 근간을 ‘섬김’이라고 가르친다. 신약교회가 최초로 직분자를 세운 장면인 사도행전 6장 1-7절에 잘 드러난다. 여기에는 구제의 직분과 말씀의 직분이 나오는데, 둘 다 헬라어 원어 상으로 ‘디아코니아’(διακονία)가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개역개정의 난외주에 잘 나와 있듯이 ‘봉사, 섬김’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섬김의 원리는 직분자의 모범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온다.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다(마 20:28; 막 10:45). ‘그리스도’라는 직분자로 사신 예수님은 섬기셨다. 직분자 예수님은 ‘섬기셨으니’ 섬김을 뜻하는 단어 ‘디아코니아’는 여기에 사용된 ‘디아코네오’(διακονέω)의 명사형이다.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직분은 명예가 아닌 섬김을 목적으로 한다(행 6:1, 4; 벧전 4:10). 그래서 이전 헌법(2011년판)은 “집사와 권사에 대한 명예직은 성경과 헌법정신에 의거 세울 수 없다”고 했고, 이 조문이 비성경적이지 않는 한 여전히 유효하다.
‘세워야 한다’가 아닌 ‘세울 수도 있다’
개정 헌법 정치 36조 2항을 자세히 보면 “세워야 한다”라고 하지 않았다. “세울 수도 있다”라고 했다. “세울 수도 있다”라는 말 자체에 대해서도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잘못이지만, 이 문구를 잘 생각해 보면 꼭 세워야 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성경의 가르침은 일단 논외로 하고 헌법 조항에만 근거할 때, 세울 수도 있지만, 안 세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안 세우면 된다. 안 세운다고 해서 위법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성경에 최대한 충실하려는 이들은 명예직을 안 세우면 된다. 세우지 않음으로서 성경에 더 충실한 자세로 나아가면 된다.
재개정 가능성이 있는 조항
73회 총회(2023년)에 부산노회, 부산동부노회, 부산중부노회 등 3개 노회는 이 조항을 비롯한 일부 조항에 대해 재개정을 요구했다. 비록 ‘동일한 사안을 3년 이내에 재발의할 수 없다’는 사실상 총회 결의에 대한 잘못된 해석으로 인해 부결되었지만, 앞으로 이 조항은 계속해서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즉 앞으로 이 조항은 개정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또 다른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당분간은 이 조항을 적용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개체교회의 담임목사와 당회의 지혜가 요구된다.
참고로, 필자는 이미 이 조항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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