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하게 앉으십시오.
사실은 오늘이 왓사 입제일은 아닙니다.
테라와다 스님들이 안거 결제할 때,
쉐우민에서도 보면 오전에 재가자 여러분들이 스님들께 3개월간 안거 동안에 필요한 필수품과 함께 목욕가사를 올려주는 그런 의식을 합니다.
그리고 오후에 스님들끼리 결제하는 의식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도 오전에 여러분들이 그렇게 공양 올려주는 시간을 지금 여기서 하는 거고요, 당일 날 결제식은 안거에 들어갈 스님들끼리 합니다.
佛家에서는 재가자들에게 이런 공덕 짓는 일을 하도록
합니다. 여러분들이 그 공덕 짓는 가치에 대해서 충분히
잘 이해를 하셔야 됩니다.
쉐우민 큰 사야도 법문 중 ‘덕 있는 사람’이라는 법문이 있습니다. 선업공덕을 짓는 행에 대한 법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德이 있는 선한 사람들이 머무는 집이 알아차림으로서 그곳이 가장 안전하고 평화로운 궁전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알아차림이 있시 공덕을 짓는 것이 매우 수승하다는 겁니다. 그 시간이 지금 이 자리고요. 그 자리가 지금 이 시간입니다.
여러분들에게는 매우 기쁜 날이며 그야말로 길상일이
따로 있는 게 아니죠.
특히 수행하는 스님들께 공양 올리고 공덕을 쌓는다는
거는 그 자쳬로서 아주 수승합니다.
그래서 공양을 올리고 공덕을 쌓는 행을 알아차림 있시, 알아차림 안에서 해야 된다는 게 쉐우민 큰 사야도께서
하신 말씀인데요,
그렇게 알아차림으로서 선업공덕을 짓고 쌓을 때에 세간이나 출세간이나 다 행복을 준다, 그래서 길상, 망갈라를 얻는다 이런 얘기거든요.
공덕을 짓고 쌓는 것 조차도 사띠 있시 행하라는 말씀이 지금 행하면 지금 받는다라는 것이 어디 멀리 있는게 아니다, ‘지금 곧 여기-now and here’라는 말입니다.
그게 알아차림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는 원인/결과 법입니다. 거기에 그런 사실, 팩트, 참이 들어있습니다. 알아차림 속에..
지금까지 사사나 스님이 법문을 쭉 해준 것 속에서도 그와 같은 이치들이 다 들어있기 때문에 법문을 설했던 것입니다.
어제도 그런 법문 했었죠?
창문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얼굴에 탁 닿는 감촉, 느낌을 아는 순간, 알아차림-앎이 살아난다고 그랬죠?
그게 깨어나기 때문에, 깨어남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공덕을 짓는 것도 자기 자신의 마음한테 짓는 것인데요, 그게 깨어나기 위해서 짓는 거거든요?
그래서 깨어나는 사띠라고도 말해왔죠?
그런데 그게 한 순간에요. 시간적으로 보자면 그걸 내생이다, 다음 생이다, 뭐 이렇게 생각을 하겠지만, 지금 순간 순간이 모여서 다음 생도 되고 내생도 되고 그런 겁니다.
지금 공덕 짓는 것도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겁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깨어나기 때문에, 지금 여러분들이 공덕 짓는 이 순간에는 번뇌가 없는거죠.
아까 호로병의 물 따르는 동안에 번뇌가 있었습니까?
없다고요. 공덕 짓는 것처럼 재가자 여러분들한테는
좋은 것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자신의 무지, 무명에서 깨어나는 일을 하는 게 이 공덕 짓는 행에 들어있습니다.
알아차림 있시 공덕행을 한다는 것은, 원 플러스 원(one + one)이 되겠습니다. 원 플러스 원이 되기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공덕행이 되겠지요?
그렇게 자꾸자꾸 선업공덕을 지어가면서 수행도 해야
되는 겁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다음 생, 내생 뭐 이런
거에 큰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밑걸음을 지금 장만을 하는 거예요. 확실한 보장 보험을 드는 거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멀리 시간적으로 말할 때는 내생이 되고 다음 생이
되겠지만 그게 지금이거든요.
늘 알아차림과 함께 오늘 이 생각이 일어날 겁니다.
저절로 또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러면 굉장히 마음이
흐뭇하거든요.
회향식 마치고 집에 가거들랑 호리병에다가 물 따르는
것을 떠올려 보십시오. 아마도 저절로 미소가 흘러나올 겁니다. 그러면 그게 행복인 거예요.
그때 거기에는 번뇌가 끼어있지 않기 때문에요.
물 따르는 것에 어떤 욕심이 들어가는 일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공덕 쌓는 일에 절대로 욕심이 들어가는 건
아니잖습니까?
어떤 댓가를 바라는 것은 공덕 짓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런 마음 없이 그저 깨끗하고 청정한 마음으로 지금
여러분들이 공덕을 짓고 쌓고 받고 그렇게 하는 이 자리가 바로 길상의 자리-망갈라, 행복(sukha)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佛家에서 모든 행사가 다 이런 시간이 들어 있습니다.
재가자 여러분들을 위해서 복(공덕)을 짓고 쌓고 받으라고 스님네들이 이렇게 앉아있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복 지음을 하듯이 스님들도 수행을 하기
때문에 선업공덕을 같이 짓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안거, 왓사라는 게 한 자리에서 3개월 동안 어디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결제를 하고 수행을 하라는 그런 의미도 있지만,
재가 여러분들도 그 3개월 동안 스님들과 함께 늘 복 짓고 수행을 같이 하는 결제 시간으로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더욱 보람되고 더 가치가 있죠. 결제는 스님들만 하는 게 아니라 사부대중 함께 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3개월 동안 스님들께 수행 열심히
잘하시라고 목욕 가사도 올려주고 생활용품 네 가지도
올려주고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올려주는 것은 같이 결제를 하겠다는 뜻도
들어있습니다.
3개월 동안은 여러분들이 특별히 더 마하보디 선원에서 한달에 두 번 치루는 토요법회와 정기집중수행에 더 치중해서 빠지는 일이 없도록 몸과 마음을 안거 기간에
두어야 합니다.
수행도 하고 공덕도 짓고, 법과 함께 하는 것처럼
길상(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바로 법당문 열고 버스 타고 시내로 나갈 때 한번 보십시오. 벌써 힘들걸요? 그러나 여기 법이 있는 곳은 그렇지 않다는 거죠.
늘 불법승 삼보 안에서 身/口/意 3행을 바르게 하는
법을 배우는 그런 시간이 쭉 이어지도록 하십시오.
하다말다 하다말다 그렇게 하지 말고 꾸준히 죽
이어지도록 하십시오.
끝까지 꾸준히 해줄 것 같으면 틀림없이 좋은 결과가
올 것이라 의심치 않습니다.
이상으로 오늘 공덕 짓는 날 법문,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