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1일 – 연중 제6주일
어제 설날을 가족들과 행복하게 지내셨는지요? 그 행복이 올해 갑진년 내내 이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다시 한번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 등장하는 무서운 병이 있습니다. 지금은 한센병이라고 불리지만 과거에는 나병이라고 불린 병입니다. 제가 알기로 나병은 피가 통하지 않아 세포와 살이 점점 문드러져 가기에 문둥병이라는 낮춤말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몸의 모든 곳의 세포까지 피가 흘러야 살이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데, 심장에서 멀리 있는 살에까지 피가 닿지 않아 그곳부터 상하고 썩는 병입니다. 그래서 손과 발, 때에 따라서는 코와 귀 같은 곳이 상합니다. 제가 보았던 나환우들은 많이 실명하셨습니다. 눈꺼풀이 움직이지 않아 수분이 안구에 충분히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율법을 담고 있는 레위기의 규정(레위기 11장~16장)에 따르면 이 무서운 병은 하느님의 저주에 의한 것이고, 그에 따라 그들은 부정한 존재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보듯이 그들 스스로가 부정한 사람이라고 외치면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가까이 오는 것을 경계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깨끗한 사람들이 부정한 사람들과 접촉하면 부정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스스로 죄인이라고 소문을 내면서 열등감을 느끼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경고하면서 다녀야 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던 것이지요. 이들은 죄인이기에 만약 그 병이 낫거나 다른 부정한 이유가 해소되면 성결법(레위기 17장~22장)에 따라 자신이 부정에서 벗어난 것을 인증받고 제사의 제물을 바쳐야 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치유된 나병 환자에게 하신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엄정한 규정이 있어서, 부정한 사람과 접촉을 하면 부정해진다는 규정을 깨고, 그 사람을 치유하실 때 당신의 손을 대십니다. 즉, 당신께서 그의 부정에 참여하시고, 같이 고통을 받으시며, 그 어려움을 이해하시면서 그 사람을 치유합니다. 악과 질병에 대해 피해 다니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대하시면서 악과 질병의 본질을 아예 없애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병자의 인생에 직접 개입하신 것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병은 죄악과 같은 종류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세상이나 선함과는 무관하게 인간의 죄로 인해 죽음과 질병이 이 세상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예수님께서 손을 대셔야만 인간의 죄와 죽음과 질병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죄와 죽음과 질병을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자신들이 만든 어둠에서 스스로 벗어나기에 부족한 존재들입니다. 오로지 예수님의 거룩한 개입만이 사람을 자유롭게 합니다. 우리 가톨릭교회의 가르침도 동일합니다. 죄와 죽음은 질병과 같은 종류의 어둠으로 예수님만이 그곳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인간의 노력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도움 없이 인간의 노력은 무의미합니다. 왜냐하면 다시 인간의 자리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세계 병자의 날입니다. 1858년 2월 11일에 루르드에서 베르나데뜨라고 불리는 작은 소녀에게 나타나신 성모님께서는 그곳을 찾는 이들에게 수 많은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래서 1992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이 성모님께 의지하면서 그날,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을 세계 병자의 날로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병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지금도 루르드에는 이날, 즉 오늘 수 많은 병자들이 세계에서 몰려듭니다. 오늘만이 아니라 1년 내내 몰려옵니다. 그리고 한쪽에는 치유된 병자들이 놓고 간 휠체어와 목발이 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이탈리아에 있을 때 기적을 통해 걷게 된 당시 60세였던 자매의 인터뷰를 국영방송 즉 우리나라고 하면 KBS1 채널에서 뉴스 시간에 방송한 것을 보았습니다. 휠체어에 앉아있던 그분은 일어서서 걸어 돌아왔습니다. 기자는 그 기적의 순간에 무엇을 하였고 또 어떤 것을 느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른 사람을 위해 몸에 손을 대셨습니다. 치유된 자매는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기적을 가져왔습니다. 죄악과 병환과 죽음을 이기는 것도 이런 방법 외에는 없을 것입니다. 무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기도와 구체적인 손길이 그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마르 1,41)
(비전동성당 주임신부 정연혁 베드로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