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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10월 28일 월요일
[(홍)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시몬 성인과 유다 성인은 열두 사도의 일원이다. 시몬 사도는 카나 출신으로 열혈당원이었다가 제자로 부름받았으며, 주로 페르시아 지역에서 선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유다 사도는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과 구별하여 ‘타대오’라고 불리며, 유다 지역에서 선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도는 예수님의 친척일 수도 있다. 예수님의 형제로 언급되는 복음 구절에 같은 이름이 나오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마태 13,55)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모퉁잇돌이시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시며 하느님께 기도하시고는, 제자들을 부르시어 열둘을 뽑으시고 사도라고 부르신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은 사도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2,19-22
형제 여러분, 19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21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22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아 사도라고 부르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2-19
12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13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14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15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17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18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19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언젠가 성공회에서 옮겨 온 분의 세례와 견진 문제로 이리저리 알아본 적이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세례와 견진에 대한 증명이었습니다. 세례는 간단하였습니다. 누가 세례를 주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성공회에서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다는 양식을 사용하고 있으니 문제가 없었습니다. 가톨릭 교회로 일치되는 예식도 이미 거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견진은 어떻게 될까요? 의문스럽기는 한데 이유를 분명하게 제시할 수는 없어서 교회법, 교리, 전례 전공자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 가운데 교회법을 전공한 분이, 교황청에 있는 친구에게까지 물어 답을 주었습니다. 견진을 준 주교의 성품이 사도 계승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 견진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이천 년 전에 살았지만 우리와 동떨어져 있는 이들이 아닙니다. 사도 계승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집니다.
우리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오래전에 살았던 조상이 있고 우리가 그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듯이, 그렇게 우리는 사도들에게 이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에페소서는 우리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2,20)이라고 말합니다. 족보에서 첫 조상이 다르면 다른 집안이 되듯이, 하나의 집안인 교회는 모두 사도들을 기초로 하고, 그 기초는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습니다. 사도들에게서 전하여 오는 신앙을 잘 간직하면서, 모퉁잇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기초인 사도들과 결합하여 “하느님의 한 가족”(에페 2,19)인 교회의 일치를 지켜 갑시다.(안소근 실비아 수녀)
삶 전체를 송두리째 흔들어놓는 은혜로운 만남!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제 지난 세월을 돌아볼 때마다 정말이지 놀라운 주님의 은총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때 저는 그야말로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은 존재였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언제나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토록 부족한 저를 부르신 주님께서는 이런저런 단련과 정화의 과정을 겪게 하신 후, 남 앞에 서게도 하시고, 크게 영양가는 없지만, 당신 말씀의 선포자로 거듭나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인류 구원 사업의 최측근 협조자로 부르신 12사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명 한명 면면을 살펴보면 대체로 존재감이 없던 사람들, 가방끈도 길지 않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시몬과 유다(타대오) 사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두분은 사도단 안에서도 10번째, 11번째로 소개되고 있는 분들입니다.
시몬 사도에 대해서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은, 그가 갈릴래아 카나 출신이며 전직 열혈당원이었다는 것뿐입니다. 그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유추할 뿐입니다.
“유다 민족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서 폭력과 살상도 마다하지 않던 독립군 유다가 예수님을 만나 주님의 군사로 변화되었다.”
유다 사도의 이름은 신약성서 전체를 통틀어 딱 세 차례에 걸쳐 아주 간략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두 번에 걸쳐 등장하는 사도들의 명단에는 유다라는 이름이 빠져있습니다. 대신 타대오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마르코 복음에서는 유다 사도를 예수님의 형제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유다 사도는 메소포타미아 지방 선교사로 활동했으며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수호자’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통 성경 학자들은 그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이 모호한 인물에 대해서는 신뢰할만한 정보가 없다.”
두 사도들에 대한 관련 자료나 문헌이 적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생각해봅니다. 베드로 사도나 요한 사도처럼 적극적인 성격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도단 내에서도 크게 주목받지 못해서 그 영향력이 미미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반대쪽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말보다 행동으로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과묵하면서도 충직했습니다. 고민하고 따지기보다는 묵묵히 실천했습니다. ‘스승님의 모든 말씀은 내게 있어 단순한 권고가 아니라, 목숨걸고 준수해야 할 명령입니다!’라고 여기며 목숨걸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명했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직무에 충실했습니다. 사도로서 자신의 신원에 걸맞게 살려고 애를 쓰다보니 따로 말이 필요가 없었습니다. 당시 추수할 일꾼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 앞에서 말하기 보다는, 하루 온종일 죽기살기로 헌신하고 뛰어다닐 일꾼이 필요했었는데, 그들이 바로 시몬과 유다 사도였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무장 투쟁까지 불사하던 시몬 사도가 사랑과 자비의 열혈당원으로 탈바꿈한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매국노를 향해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던 그가 이제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 선포자로서의 열정으로 끓어오르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지니고 있던 강렬한 애국심과 저항정신은 이제 스승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변환되었습니다.
결국 유다 독립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려던 그는 이제 방향을 바꾸어 스승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한 인간의 만남은 그의 삶 전체를 송두리째 흔들어놓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혼동으로 우리를 몰아넣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 안에 무엇이 더 중요한지? 어떤 것이 더 큰 것인지? 삶의 질서를 잡게 도와주십니다.
마침내 이승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던 삶의 전환을 가능하게 만드십니다. 예수님과 한 인간의 참 만남은 이렇게 큰 은총과 선물로 다가옵니다.
왜 위대한 성인들은 책이 아니라 제자를 남기려 했을까?
전삼용 요셉 신부님
오늘은 성 유다 타대오와 성 시몬 사도 축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12명의 사도를 뽑으시고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시는 내용입니다. 중요한 점은 사도를 뽑으시고 복음 전파를 시작하셨다는 점입니다. 제자들이 살다 보니 생긴 게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제자들을 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셨던 것입니다. 복음을 더 많이 전파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예수님께서는 유럽이나 아시아처럼 더 넓은 곳으로 가셨어야 할 것입니다.
공동체가 중요한 이유를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마리나 채프먼은 딸 바네사 제임스(Vanessa James)와 ‘이름 없는 소녀’(The Girl with No Name)라는 책을 공동 집필하였습니다. 그녀는 어렸을 때 유괴범들에게 버림받은 후 콜롬비아 정글에서 꼬리감는원숭이 무리에서 살았습니다. 그녀는 원숭이 그 자체였습니다. 사냥꾼들에게 발견되고는 사창가에서 살았습니다. 나중엔 탈출하여 결혼하고 정상적인 가정을 꾸렸습니다.
누구나 성장은 공동체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 공동체가 어떤 공동체냐에 따라 그 사람의 미래가 결정됩니다.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가 하느님 자녀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가톨릭교회 공동체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통해 우리가 구원에 이르도록 처음부터 교회를 만들 생각으로 열두 사도를 뽑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아니라 소크라테스, 공자, 부처가 된 싯다르타도 모두 책을 한 권도 쓰지 않고 제자 공동체를 만드는 데 생을 바쳤습니다. 위대한 인물들이 알았던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깨달음을 책으로 전달하는 것보다 제자 공동체를 통해 전달하는 게 더 유익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제자 공동체를 세우려 했던 더 큰 이유는 그들 자신의 이익 때문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2015년에 방송된 KBS 인생극장 ‘뇌 병변 장애 부모가 삼 형제를 키우는 방법: 그렇게 부모가 된다’라는 내용은 많은 시청자에게 큰 감동을 안겼습니다. 자기 한 몸조차 가누기 힘든 두 장애인이 결혼하고 아기를 낳겠다는 꿈을 가졌을 때 가족들도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삼 형제를 낳았고 누구보다 자녀들을 잘 키우고 있습니다.
이들은 나라에서 나오는 돈으로 살아도 어느 정도는 살림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부는 함께 일합니다. 아버지는 말합니다.
“나중에 아이들이 ‘우리 아버지는 백수였어!’라는 소리를 하지 않기를 바라요. ‘아버지는 우리를 위해 열심히 일하시는 훌륭한 분이셨어.’라는 소리를 듣기를 원해요.”
어머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내가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키우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천덕꾸러기로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아이들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어요.”
공동체를 낳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나 여자로 태어나면 둘이 사랑을 해봐야 그렇게 남자와 여자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성장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녀를 낳아도 그렇습니다. 자녀를 낳지 않으면 사람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꼭 결혼해야만 자녀를 낳는 게 아닙니다. 제자들도 자녀입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을 “아이들아!”라고 부르기도 하셨습니다. 자녀를 낳음, 곧 제자들의 공동체를 세움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의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성 베네딕토는 세상에 사는 의미가 ‘기도하라, 그리고 일하라!’라는 것을 3년 동안 굴에서 기도한 끝에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그는 그 이전부터 그러한 공동체를 낳으려는 이유로 자신을 갈고닦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첫 정식적인 수도회가 탄생합니다. 마찬가지로 부모는 결혼하기 전부터 자녀를 정신적으로 잉태하고 자녀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려고 준비합니다. 그런 부모와 그냥 살다가 우연히 결혼해서 아기를 낳아 어찌할 바를 모르는 부모는 다릅니다.
낳으려는 목적으로 살아야 나도 성장하고 완성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어떤 공동체를 낳고 기르고 파견해야 할지를 생각하며 살아갑시다. 나의 성장과 완성이 굉장히 빠르게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1991년 8월 23일에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9월 5일에 첫 본당인 중곡동 성당의 보좌신부로 발령받았습니다. 약간의 두려움과 설렘이 있었습니다. 처음 만난 본당 신부님이 앞으로의 사제 생활에 큰 영향을 준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처음 만난 본당 신부님의 세례명은 오늘 축일로 지내는 ‘타대오’였습니다. 타대오의 이름은 ‘유다’였는데 예수님을 배반했던 이스카리웃 유다와 구별해서 ‘타대오’라고 부릅니다. 저는 본당 신부님에게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신부님에게서 ‘자유’를 배웠습니다. 신부님의 자유는 두 개의 날개를 타고 날았습니다. 하나는 ‘기도’였습니다. 신부님은 하루에 3시간 이상씩 기도하였습니다. 신부님 방의 기도 초는 신부님의 기도와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성당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순수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어린이처럼 순수해야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신부님은 이제 막 새 사제가 된 저를 따뜻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매일 동네 산책을 같이하였습니다. 보좌신부가 더 필요하다면서 용돈도 넉넉하게 주었습니다. 33년 저의 사제 생활에 큰 힘이 되어주셨던 타대오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게 영적으로 큰 도움을 주는 동창 신부님이 있습니다. 그 친구의 이름은 오늘 축일로 지내는 ‘시몬’입니다. 제가 예수님 시중을 들며 분주했던 마르타와 같았다면 그 친구는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들었던 마리아 같았습니다. 제가 눈에 띄는 ‘꽃’을 지향했다면 그 친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양분을 찾는 ‘뿌리’와 같았습니다. 제가 소리만 요란한 ‘빈 그릇’ 같았다면 그 친구는 속이 꽉 찬 ‘그릇’이었습니다. 저는 활동과 만남을 통해서 힘을 얻는다면 그 친구는 홀로 있음에서 힘을 얻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뭔가 한 것 같은데 내세울 것이 별로 없었는데, 그 친구는 침묵 중에 뭔가를 만들었습니다. 2년 전입니다. 저는 북미주 파견 수도자들을 위한 ‘피정’ 지도를 제안받았습니다. 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난감했습니다. 그때 제게 제일 먼저 떠오른 건 동창 신부였습니다. 동창 신부님은 매년 수도원 피정 지도를 하였습니다. 저는 피정 자료를 보내 줄 수 있는지 부탁했습니다. 친구는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귀한 자료를 보내 주었습니다. 저는 친구의 도움으로 북미주 파견 수도자 피정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그 친구를 보면 산해숭심(山海崇深)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산과 같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와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부족한 저를 위해서 그런 친구를 보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축일로 지내는 타대오와 시몬 사도는 기도와 겸손으로 악의 유혹을 이겨냈고, 천국에서 빛나는 신앙의 별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와 겸손으로 살아가면 오늘 바오로 사도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우리는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입니다.” 타산지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하루 내 주변에 있는 분, 나와 함께 일하는 분, 내 가족들의 강점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오늘의 성인
성 유다 타대오(Jude Thaddaeus)
신분 : 사도, 순교자
활동연도 : +1세기경
같은이름 : 다대오, 다두, 유다스, 주다스, 주드, 타대우스, 타데오, 타데우스
성 시몬 (Simon)
활동년도 : +1세기경
신분 : 사도, 순교자
지역 :
같은 이름 : 사이먼
루가 복음 6장 16절과 사도행전 1장 13절의 12사도 명단을 보면 그의 이름은 유다(Judas)이고, 마태오 복음과 마르코 복음에서는 타대오라 부르나 분명한 것은 그가 가리옷 사람 유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유다의 편지에서 저자는 자신을 야고보(Jacobus)의 동생이라 하고, 마태오 복음 13장 55절과 마르코 복음 6장 3절에는 주님의 형제라는 언급이 나온다.
그러나 오늘날 학자들은 유다가 12제자의 유다이지만 유다의 편지의 저자는 아니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성 유다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설교하였고, 위경인 시몬과 유다의 수난기에는 페르시아에서 이들 두 사도가 설교하다가 순교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 호노라토 (Honoratus)
활동년도 : +410년경
신분 : 주교
지역 : 베르첼리(Vercelli)
같은 이름 : 호노라또, 호노라뚜스, 호노라투스
이탈리아의 베르첼리에서 태어난 성 호노라투스(또는 호노라토)는 성 에우세비우스(Eusebius, 8월 2일)의 지도로 수도생활과 교회생활을 훈련하였다. 그는 355년 자신의 스승이 아리우스파(Arianism)를 반대한 이유로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스키토폴리스(Scythopolis)로 유배를 갈 때 함께 동행하였고, 계속해서 카파도키아(Cappadocia), 이집트, 일리리쿰(Illiricum), 달마티아(Dalmatia) 지방을 함께 순회하였다. 그는 396년 임종을 앞둔 밀라노(Milano)의 주교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12월 7일)에 의해 주교로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