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하면 여러분들이 좀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항해사시험문제집이란 책 잘 봐요, 항해사.
항해사가 되려면 시험봐야 되잖아요. 그 국가고시문제가 있어요. 교보문고 기술코너에 가면 그 책이 있어요. 아니면 비행기조종사, 조종사가 되는 책. 아니면, 소방관. 소방관들이 실제로 불을 끌 때 어떻게 꺼야 되는가 하는 소방관 실무교범, 이런 책들을 좋아하죠. 아니면 연판공, 배관공.
항해사실무지침, 실무교범 같은 책을 보면 나는 너무나 감동을 받아요. 이 깜깜한 밤바다에 인간이 배를 끌고 나갔는데 갑자기 파도가 칠 때, 태풍이 불어오고, 파도가, 산더미 같은 파도가 들어올 때 인간은 그 밤바다를 어떻게 통과해야 되는지 거기 써 놨어요. 그건 참 놀라운 거죠.
나는 그런 책을 보면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건 한 5분의 1 밖에 안 되요. 기술적으로 디테일한 건 몰라요. 엔진이나 기관 어떻게 해라 이건 모르는데 그 방향은 알 수가 있겠어요.
파도가 막 들어오면은 배가 밑으로 가라 앉아요. 안 보여. 그리고 파도 위로 다시 올라 가죠. 그러니까 파도 속에서 배는 정말 가랑잎 같은 거죠. 파도의 골을 따라서 내려갔다 또 올라갔다 이걸 밤새 반복해야 되는데, 그때 선장은 반드시 이 뱃머리를 직각으로 들이받으라고 써놨어요. 파도가 닥치면, 큰 파도가 닥치는데 배를 옆으로 대놓으면, 옆으로 맞으면 배가 바로 갈거 아니예요. 바로 엎어져 버릴거니까. 그러니까 파도가 들어오면 배의 대가리를 90도로 거기다 대고 타 넘어가야 되요. 타 넘어가야. 하나씩. 피할 생각을 말고. 피할 생각을 말고 정면으로 대가리를 박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왜냐면 배 옆구리를 맞으면 바로 뒤집혀, 엎어지니까.
그런 걸 보니까, 야, 참, 그 밤바다를, 그 사나운 밤바다를 헤치고 나가는 인간의 그 몸의 동작이 보이잖아요? 나는 그런 것들이 참 아름답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김훈, 2013, 『세상에서 글쓰기』, 경기문화재단 예술로가로지르기 썸머아카데미. 강연 중에서.
첫댓글 선수 또는 선미 30도로 받아야 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