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세의 노령으로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와 칼라파타르를 트렉킹한 존경하는 선배님의 이야기를 올립니다.
네팔,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베이스켐프,칼라파타르 트레킹.
히말라야는 동서길이 2,500km,남북 200~300km,주변국가 중국 인도를 포함하여 10여개국이있다.동쪽에서부터 아셈히말,시킴-부탄히말,네팔히말,가르왈히말,펀잡히말,로구분하고있다.지금도 계속 에베레스트는 조금씩 높이가 자라고 있다.
네팔은 한반도의 2/3면적(147.18평방km),인구2,800만명(2007년),네팔인80%,티베트인20%,언어는 네팔어54%,그외 10여개 소수부족어,지식층은 영어사용,종교는 힌두교87%,불교8%,이슬람교4%,화페단위 루피.수도는 해발1,300m에위치한 카투만두.
트레킹이란,산을 오르면서 여행하는 것을 의미하며 정상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하는 등산과는 구별되며 산을 오른 다고 해도 등산처럼 고통을 동반하는 것이아니라 산기슬기를 즐겁게 오르는 것을 뜻한다.오르는 지역은 산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권이므로 걷는 길도 마을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다.대자연의 한가운데를 걷는 일도 있지만 비교적 사람냄새가 나는인간적인 여행일때가 많다.특히 네팔은 히말라야 8000m넘는 고봉 14중 9개를 가지고있고 국토의 80%가 산악지대로 소수민족이 여기저기 산기슬과 산정에 자리하고 있어 트레킹하기에 적합한 요소를 모두가추고있는셈이다.
사실 카투만두에는 전세계 트레커들이 모이는 곳이다.미국을 위시하여 영국 독일 소련 인도 중국등 다양하다 특히 한국도 롯지마다 흔적을 많이 남기고 있었다.누가말했던가?“단한번이라도 히말라야를 걸어본 사람은 다시는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수 없다”고했고 또 “히말라야는 지구상에서 가장 강열하게 삶이란 드라마를 체험할수 있는 지역이다.”라고 했으며.“히말라라야에 가면 삶은 티끌이다”라고도 했다..처염상정(處染常淨)의 히말라야를 한번쭘 걸어보는 것이다.
10월10일 오전 6시30분,인천공항 출국장에서 모두가초면인 다섯사람이 모여 가이드의 소개로 인사를 나우었다.75세인 필자내가 최고참,다음이 롬메이트인 김할아버지,63세 30대후반쭘되는 남자한명 30대중반 처녀한명,50대초반인주부한명, 짝이없는미스타 김은 싱글차지,40만원을 더부담해야했다.일지감치 탑승수속을 마치고 면세점에서 여기저기웃거리다.까페에서 커피와 센드위치로 간단히 아침을 떼우고 8:30발 대한항공 카투만두로 향했다.
비행시간은 7시간 시차는 3시간10분(시계바눌을 뒤로돌려야함).점심은 기내식으로 때우고 카투만두에 거의 다가서 멀리 꿈에그리던 히말라야가 눈에 들어오기시잣했다.하늘에서 보는 카투만두는 삭막하고 어딘가 쓸한 모습이었다.현지가이드를 만나 목에걸어주는 생화 목걸이를 걸고 승합차에 올라 40여분 달려서 5성급호텔인 상글리라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저녁시간까지 시간이있어 카투만두시내 관광을 나섰다.포장도 제대로 안된 도로에 중앙선도없고 차들과 오토바이,자전거,사람,동물들까지 엉켜서 교통지옥이 따로 없었다.공기가 너무탁해서 숨쉬기가 거북했다.
저녁은 네팔식 식사로 입구에서 이마에 빨간 연지를 찍고 식당안으로 들어가 밥과 야체 고기로 석어먹는 네팔식 정식과 한쪽에선 몇사람의 무희와 악기로 연주하는 노래를 들으며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돌아왔다,침대엔 장미꽃 한송이가 놓여있었다.오래된 건물로 사우나가있어 찾았으나 문이 벌써 닫쳐있었다.이튼날은 국내선 비행기의 시간에마추어 7시까지공항에 나가 짐을 부치고 로비에서 호텔에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아침을 먹었다.16인승 날근경비행기로 트레킹 기점인 루크라로 비행하면서 하늘에서 내려다본 네팔은 과연 산밖에 볼수가 없었고 여기저기 군데군데 집들이 산제하고 층층으로 밭들이 잘 가꾸오져있었다.
멀리 히말라야도 보였다. 30분가량 비행후 도착했으나 조금은 불안을 떨칠 수가 없었다.비행장도 지형을 이용만들어져, 30~40도 경사면에 내릴때는 밑에서 올라가서 서고 뜰때는 위에서 아래로 달리다 뜨는 식이었다.경사면을 이용하다보니 활주로는 짧아도되고 산간지대에 그만한 산중 비행장도 가능했던것이다.주변엔 철조망 밖으로 까무잡잡한얼굴이 2~3백명의 포터 가이드들이 초조한 눈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우리는 인근 롯지에들어가 우리와동행할 가이드와 포터들에게 짐을 넘기고 떠날준비를 했다.
야크4마리 가이드1명,퍼터3명 야크모는 인부2명등 네팔사람만 6명 우리5명 11명이 루크라(해발2,800m)를 출발 숙박할곳인 팍딩으로 트레킹이 시작되었다.야크4마리에는 우리짐 5개, 12일간 먹을 식량과 부식 취사도구 트레킹동안 식사는 모두 쿠커,포터들이 한식으로 밥,된장국,김치 라면,국수,반찬도 매일 매뉴가달라지고 식사에는 전혀 불편을 느끼지못햇다.다만 롯지가 올라갈수록 열악하고 계곡엔 물이 넘쳐나도 롯지에는 물이귀하고 전기불이 촛불같고 자주 나가고 거의가 태양열로 충전한 태양열전기었습니다.
저녁식사중에 자주 전기가 꺼졌다.카메라,핸드폰 바테리충전도 시간당 250루피씩 주고 충전해야하고 침실이레야 합판으로 겨우 바람만 막은 상태라 매일밤 체온으로 밤을 새워야했습니다.시설이 좀낳은 곳은 자가발전이나 간혹 소수력 발전도 있으나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요번 트레킹에서 가장 신경쓴것은 고소증이었다.고소증은 나이에 관계없이 해발3~4천사이에서 잘발생되는데 특별한 약은 없고 여행사에서 준 이뇨제가 전부였다.
아침,저녁에한알씩,중요한것은 절대 무리하게 고도를 높이지말것 천천히 걸어라,물을 자주 많이마셔라 다.고소증 예망의 최선의 방법이다.고소증이 왔을때 현지의사들의 처방은 36시간 침대에 누어 있어라,그래도 증상이 개선 되지않으면 즉시 하산하는것이다.자력으로 하산이 불가능하면 지게에 엎혀 내려가야하고 그것도 여의치않으면 헬리곱터를 불러야하는데 한번 부르면 250만원이라니....다행이 가이드가 최고령자를 만나 배려했던탔인지 고소증은 없이 완주할 수 있었다.룸매이트인 김할아버지만이 에베레스트 베이스켐프 다가서 어지러움을 느겨 더갈수 없어 롯지로 돌아오고 카라파트라에서 일출을 보기위해서 올라가다 추위와 고소증세로 두아가씨가 하산. 결국 젊은이와 필자만이 두곳을 모두 완주한 셈이다.
오를수록 길도 험해지는데 어떤곳은 길을 닦아놓고 노인이 앉아서 돈을 받는곳도 있었다.그렇다고 강제로 받는것은 아니고 주는데로 받고 있었다.어떤곳은 산사태가나서 위험을 무릅쓰고 겨우 걸을수 있는 곳도있었다. 옆에 큰간판에 영어로 ‘도로복구 후원자를 구합니다’.라는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습니다.네팔은 트레커들로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듯 한데,국립공원 입자료와 환경 보전금등 두 번의 입장료를 지불하고,등산 객들에게는 트레커들보다 10배나더 비싼 등산료금을 징수 하면서도 도로보수는 엄두도 못내는 모양이다. 트레킹도중에 에베레스트가 잘보이는 곳에 일본사람이 지은 ‘호텔 에베레스트 비유‘라는 호텔이 있는데 해발3,800m 가장 높은 호텔로 기네스북에 등제된 곳이 있어 일행을 불러모아 에베레스트맥주와 커피로 잠시휴식을 취했다.
전망좋은 야외 데크에서 쉬면서 다음엔 걸음못걷는 집사람을 구경시켜야하겠다고 생각했다.헬리곱터로 카투만두나 루크라에서 호텔마당에 올수있도록 되어 있었다.비성수 기에는 30% 싼값이라지만 요금은 비싼 편이였다.돌아오는 길에 포터한사람의 집이 우리가 가는 길가에 있어서 잠시쉬어갈수 있었다.집에는 노모와 어린딸아이가 있었고 이목이 뚜렸한 예뿐 새색시가 우리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집안은 컴컴하고 한쪽에 마마솣이걸려있고 감자를 삼는 중이었다.네팔 막걸와 이름 모를 안주와 감자를 내어놓고 권했다.집안을 둘러보니 이렇할 새간하나없고 옷가지하나 없어도 그들은 얼굴에 늘 웃음으로 가득했다.
가이드를 불러 그들이 눈치체지않게 10불을 내어놓으며 할머님께 전하라고 했더니, 자기가 가진돈으로 환전금액보다 훨씬 더많은 돈을 네팔 루피로 바꾸어 주는 것 같았다.아이게게는 배낭에 있던 초코렛한봉지를 주고 나왔다.대자연에 순응하고 주어진 운명에 성실히 그리고 남과 비교하지않고 오직 주어진여건에서 만족하게 살며,아침에 일어나면 ‘옴마니반메훔‘을 암송하는 그들의 삶에서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그들의 웃음을 배워야하겠다.한국을 떠난지9일 만에 에베레스트 베이스켐프(5,400m)에 도착하고,이튼날 칼라파트라(5,550m) 일출을 보기위해서 4시기상 헤드렌턴을 켜고 4시30분부터 걷기시작 두시간쭘 걸으니 손발이 얼어오기 시작하더니 두터운 장갑도 소용이 없었다.가이드의 더운 손으로 몇 번의 맛사지와 더운 물로 몸을 추수리면서 오르는데 두여성분은 더참지못하고 결국 하산하고 말았다 결국 남자3사람만 카라파트라(해발5,550m)에 도착 일출을 감상 했고 사진도 많이 찍었다.
경험에 의하면 일출 직전이 가장 기온이 내려가는데 온도가 얼마인지는 몰라도 추위는 참기어려웠다.하산후 룸매이트는 손이 끊어지는 줄알았다면서 못걸으면 포터에 엎혀서라도 카라파트라는 꼭 가보고십었는데 그래도 자력으로 간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고 만족해했다.칼라파트라는 쿰부 히말의 전망대격인 곳으로 에베레스트(8,848m),로체(8,414m),눕체(7,861m)등의 영봉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볼수 있는 곳이다.이코스의 마지막 롯지인 고랍셉에서 아침을 먹고 하산 준을 했다.내려올때는 많게는 12시간 넘게 걷기도하고, 올라오는 사람들의 부러운 눈총을 받기도했다.내려오는데 야크와 트레커들의 많은 교행이 어려운 곳이 많아 많이기다리기도하고,천길 낭떨어지기에 매단 와이어줄 다리를 야크와 사람이 건너는데 무게재한도 없이 마구넌너가고 있었다.
롱따는 다리에 펄럭이고 다리아래는 급류가 우렁찬 소리를 내며 힘차게흐르고 사방은 영봉들이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주변엔 크고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점심을 먹기도하고 차를 마시기도 하면서 루크라에 도착 이튼날 역시 다낡아빠진 털털거리는 경비행기에 올라 카투만두로 향했다,기내에서는 스추어디스가 사탕과 솜을 나누어주는데 솜은 귀를 막으라고 주는 것인데 나는 막지않았다.비행기는 올때보다 더 흔들림이심한데 기장은 신문을 펼치고 있고 부기장이 조종간을 잡고 있었다.
카투만두에서 저녁에 중국음식점에서 식사후 승합차로 4~50분 달려서 변두리 한적한곳의 호텔다운 호텔(Gokarna Forest Resort)에 여장을 풀고 모처럼 큰 욕조에 더운 물을 받아 모욕후 실내 미니바에서 맥주를 마시고 숙면을 할 수가 있었다.아침에 일찍에 일찍일어나 넓은 정원과 꽃들을 구경하고 주변에 아름드리 보리수나무를 구경하고 사진몇장찍는대 주변에 경비원들이 원숭이를 쫓기위해서 고무총을 쏘고있었다.넓은 정원을 쓸고 물뿌리고 청소가 한창인데 모두가 젊은 여성들인데 가슴에 명찰에 일용직(Casual Worker)이라는 이름도없는 페찰을 달고 있어 조금은 의아스러웠다.
카투만두 시내에있는 몇군데 관광을 하였으나 가는곳 마다 너무많은 걸인들과 어린를 않은여인들,불구자들, 아이들이 손을 내밀고있어 보기가 민망스러워 사진도 찍을수가 없었다.한국식당 비원에서 삼겹살에 소주한잔하면서 점심을 먹고 까딱이라는 목에거는 목도리를 걸어주면서 무사귀한을 빌어주었다.곧바로 공항으로나가 그동안 수고를 아끼지않은 가이드 게상과 해어져 귀국행 비행기에 올라 밤 11넘어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