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필하모닉 바순 수석 임성훈·김유미 부부
"아내에게 붙잡혀 사는 건지, 바순에 붙잡힌 건지 모르겠다."이런 불만이 나올 법하다. 부천필하모닉의 임성훈(42) 바순 제1수석과 김유미(42) 제2수석은 부부 바순 단원이다.
악단과 악기만 같은 것이 아니다. 대학 동기(서울대 음대 85학번)에 유학 동기(독일 베를린음대)인 두 사람은 올해로
25년째 바순을 함께 연주하고 있다.
"대학 시절에도 시험이나 중요한 연주를 앞두고는 아침 7시부터 밤늦게까지 학교 연습실에서 함께 연주했어요.
남들은 4년 내내 연애만 한 줄 알지요." 대학 3학년 때 둘은 사랑에 빠졌고, 이듬해 졸업반 때 결혼하고 함께 유학을
떠났다. 오케스트라 입단은 임씨가 1997년, 김씨가 2006년으로 남편이 빨랐다.
목관악기 가운데 음역(音域)이 가장 낮은 바순은 리듬이나 화음 등을 통해 다른 악기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즐겨
맡는다. 남편 임씨가 "훌륭한 조연이 있어야 주연이 살듯, 좋은 저음이 있어야 좋은 선율도 나온다"고 하자, 아내
김씨는 "손가락 10개를 모두 사용해서 소리를 내는 관악기는 바순뿐"이라고 '부창부수(夫唱婦隨)'를 한다.
바순은 목관악기 중에서도 유독 관이 길다. 그렇기에 "오케스트라의 한복판에서 깃발이자 굴뚝 역할을 한다"는 것이
이들 부부의 자긍심이다.
- ▲ 부천 필하모닉의 바순 부부인 임성훈(왼쪽), 김유미씨는“연주회 때는 곁에 있어도 옆모습만 힐끗 쳐다보 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 마주보는 것도 처음”이라고 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디즈니 만화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익살스럽거나 실수하는 장면에서는 어김없이 바순 소리가 나올 정도로 코믹하고 장난기 넘치는 음색이지만, 신비로운 제의(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부터 서글픈 우수(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 2악장)까지 다채로운 표정은 사람과 똑 닮았다. 남편 임씨는 남성 바순 앙상블인 '해피 바순'에서 실내악을 연주하고,
고(古)음악 단체인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에서 바로크 음악을 탐색 중이다. 그는 "연주자에게 고음악은 마치 조상을
찾아가는 과정과 흡사하다"고 말했다.
부부가 같은 악기를 연주해도 스타일은 조금 차이가 난다. 남편은 다소 섬세하고 여성적인 데 비해, 거꾸로 독일의
영향을 많이 받은 아내가 보다 남성적이다.
혹시 바순 때문에 부부 싸움이 일어나진 않을까. "부부라고 해도 성격이나 습관은 다를 수 있어요. 그럴 땐 자기주장만 고집하는 대신, 반드시 두 번 연주해봐요. 한 번은 남편의 주장대로, 다시 한 번은 아내의 바람대로…. 시간은 더 걸리지만, 결과는 좋지요." 이들 부부의 '바순 행복론'이다.
▶'해피 바순' 연주회, 27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02)701-48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