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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개종 원문보기 글쓴이: sutani
유대신화의 원본, 메소포타미아.수메르 토판 번역과 해설
'유대신화표절 경로' 한눈에 볼 수 있습니까?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나오는 신들. 유대인들이 아크나톤의 영향으로 강력한 일신교로 탈바꿈 하기 전, 유대인들도 저 모든 신들을 토속민들과 똑같이 섬겼다.
유대인들은 초창기 팔레스타인 토속신 엘(EL)신을, 후에 이집트의 태양신 야훼를 섬겼다.
1.창조 1) 신들과 천지를 창조하다. [메소포타미아의 창세기 설화]
구약 창세기의 근원
- 에누마 엘리쉬(Enuma Elish) 1토판 높은 천상이 아직 이름 지어지지 않았을 때, 태초의 아프수, 그들의 아버지가 되었고, 그들의 물은 하나의 몸으로 섞였고, 어떤 신들도 존재할 수 있도록 되지도 않았고, 운명이 정해지지도 않았 ... . 그래서 천상의 한가운데서 신들이 만들어졌다. 나이가 들어가고, 그들을 지나... 오랜 날들이 흘러, 다음에 네 번째가 태어났으며 ... 이런 식으로 위대한 신들은 자리잡게 되었노라
- 에누마 엘리쉬(Enuma Elish) 4토판 그는 티아마트가 묶여 누운 곳으로 되돌아와 무자비한 곤봉으로 그녀의 해골을 강하게 치고, 북풍은 그것을 알 수 없는 세상의 끝으로 가져갔다. 신들이 모든 것을 보았을 때 크게 소리내어 웃으며 주님은 휴식을 취하셨다.
그는 창공을 가로질러 무한한 거리를 측량하셨다. 그는 심연의 구조를 측량했고,
▲바빌로니아의 지역지도. 바빌론, 아시리아,아르미니아,하싼...등의 위치와 각 섬 사이의 거리가 표기돼 있다.
▲위 지도의 해설도
- 에누마 엘리쉬(Enuma Elish) 5토판 그는 위대한 신들을 위한 장소들을 만들었고, 그는 1년을 정하고 부분으로 나누었다. 양쪽으로 문을 만들어 열고
그녀의 뱃속에서 그는 천정을 만들었다. 14일째에는 그대는 절반의... 반대편에 서도록 하고, (토판 25~44번째 줄 훼손, 연속판독 불가)
그가 사마쉬에게 날들을 정해 준 후에 (45) 안개를 만들고 채워... 그가 이전에 형성해 놓은 산들의 위치에 그녀의 꼬리를 뒤틀어서 그는 두르마(Durmah)에게 그것을 묶었다. ...그녀의 사타구니, 그녀는 하늘에 채워졌다.
▲수메르인들의 천체도. 유대인은 본래 이란.이라크 후손들이다. (이란.이라크인들이 유대인의 서자 이스마엘의 후손이라는 생각은 언어도단) 이란.이라크인들은 수메르, 메소포타미아,아시리아, 페르시아 문명의 후손이다.
인류문명 초기 이란.이라크인들의 문명은 위 천체도를 보지 않아도 귀가 따갑게 그 문명의 수준을 들어왔다. 이란.이라크인들의 인류초기 도시문명이 최고 수준에 달할즈음에도 히브리 부족은 생겨나지도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대인이 그들로 부터 뻗어나간 한 작은 부족에 불과한데도 이란.이라크인들이 유대인의 신화표절경의 한 지류에 따라 자신들은 유대인의 후손 이스마엘의 후손이라고 하는 이슬람을 만들어 유대인의 종교에 맞서고 있다.
지구역사에서 가장 희한한 코미디가 아니고 무엇인가?
[유대인의 창세기 설화]
- 제2창세기(BC6~2C) (첫째날 둘째날 창조...식은 이집트 창조설화를 그대로 모방)
첫째 날에 유대인이 만든신이 하늘과 땅과 물을 창조했다.
둘째 날에 물을 분리했고, 그 사이에 천장을 만들었다. 셋째 날에 그는 지상의 물을 한 군데로 모으고,
넷째 날에 그는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여 하늘에 배치하고, 다섯째 날에 그는 거대한 바다 괴물들을 깊은 물에 살도록 했다.
여섯째 날에 그는 지상의 모든 야생동물과 가축, 그리고
▲마르두크와 티아마트와의 전쟁. 이런 개념 모두가 유대교에 왜곡.변형돼 삽입된다.
▲인안나와 엔키. 이런 신들이 유대인의 종교에서 모두 유일신의 하위(천사)로 변형된다.
-토라, 창세기 1. 1한 처음에 유대신이 하늘과 땅을 지어 내셨다. 2땅은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고 아무 것도 생기지 않았는데, 3유대신이 "빛이 생겨라!" 하자 빛이 생겨났다. 4그 빛이 유대신 보기에 좋았다.
5빛을 낮이라, 어둠을 밤이라 불렀다. 이렇게 첫날이 밤, 낮 하루가 지났다. 6유대신이 "물 한가운데 창공이 생겨 물과 물 사이가 7유대신이 이렇게 창공을 만들어 창공 아래 있는 물과 8유대신이 그 창공을 하늘이라 불렀다. 9유대신이 "하늘 아래 있는 물이 한 곳으로 모여, 10유대신이 마른 땅을 뭍, 물이 모인 곳을 바다라 불렀다. 11유대신이 "땅에서 푸른 움이 돋아나거라! 12이리하여 땅에는 푸른 움이 돋아났다. 13이렇게 사흗날도 밤, 낮 하루가 지났다. 14유대신이 "하늘 창공에 빛나는 것들이 생겨 밤과 낮을 갈라 15또 하늘 창공에서 땅을 환히 비추어라!" 하자 그대로 되었다. 16유대신이 이렇게 만든 두 큰 빛 가운데서 더 큰 빛은 17유대신이 이 빛나는 것들을 하늘 창공에 걸어 놓고 18이리하여 밝음과 어둠을 갈라 놓고 19이렇게 나흗날도 밤, 낮 하루가 지났다. 20유대신이 "바다에는 고기가 생겨 우글거리고 21이리하여 유대신이 큰 물고기와 물 속에서 우글거리는 22유대신이 이것들에게 복을 내려 주시며 말했다. 23이렇게 닷샛날도 밤, 낮 하루가 지났다. 24유대신이 "땅은 온갖 동물을 내어라! 25유대신이 이렇게 온갖 들짐승과 집짐승과 26유대신이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27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 내셨다. 28유대신이 그들에게 복을 내려 주시며 말씀하셨다. 29유대신이 다시, "이제 내가 너희에게 온 땅 위에서 30모든 들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31이렇게 만든 모든 것을 유대신이 보니 좋았다.
2. 1이리하여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다.
메소포타미아 신화와 히브리민족의 신화는 매우 유사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후 유대교가 일신교로 정립되면서 다양한 신들간의 서열구조는 오직 하나의 신 아래 다른 신들은 천사로 바뀌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역시나 천사로 격하된 여러 역할의 신들은 여전히 큰 힘을 발휘했다. 가나안에서 발굴된 우가릿 유적물들은 어떻게 실생활에서 히브리민족이 지속적으로 다신교를 숭배했는지 잘 보여 준다. ▲메소포타미아 지도, 아프리카를 벗어난 인류는 유일하게 물이 풍성한 나일강과 유프라테스, 티그리스강 유역에 자리를 잡고 문명을 형성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나일강은 해마다 반복되는 범람으로 대단히 비옥한 토지를, 유프라테스.티그리스 강변에도 일정한 범람과 비옥한 땅, 그리고 풍성한 밀농사의 영향으로 문명이 크게 발달했다.
2) 인간을 창조하다. [메소포타미아의 창세기 설화]
-아트라하시스(Atrahasis) 단편 토판 신들이 사람 대신에 위대한 아누나키는 이기기로 하여금 그들의 아버지 아누는 왕이었고,
그들은 제비뽑기 상자로, 아누가 하늘로 올라 갔고, 바다를 가두는 빗장은
하늘의 아누나키가 하늘로 갔었을 때 신들은 운하를 팠으며 신들은 티그리스 강을 팠으며 그리고 나서 유프라테스를 팠다. ... 깊게 그들은 노역한 햇수를 세었다.
▲마르두크 야웨신 보다 강력한 신으로 더욱 오랫동안 숭배되었다.
- 에누마 엘리쉬(Enuma Elish) 6토판 마르두크가 신들의 말을 들었을때, 입을 열어 에아에게 말하였다. 나는 지구에서 살아 갈 사람을 창조할 것이다. 신들을 섬김이 확립되고 그들의 신전이 세워 질 것이다.
▲수메르인들
-아트라하시스(Atrahasis) 단편 토판 닌투는 소리를 들어보기 위해 달의 첫번째, 일곱번째, 그리고 열다섯번째 날에 (혹은 지혜를 지닌 게쉬투Geshtu-E신)
닌투는 그의 살과 피를 흙과 섞었다. 영혼이 계속 존재함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마미는 말을 들어보기 위해 너희들이 하도록 주문한대로 끝마쳤다.
나는 너희들이 힘든 노역에서 벗어나도록
예지력 있는 엔키와 지혜로운 마미(닌투)는 그녀가 주문을 끝마쳤을 때 그녀는 갈대로 그것을 열어 탯줄을 잘랐으며, 그는... 그들을 두 배로, 마미는 사람들을 위해 이러한 규칙들을 정했다. 산파는 출산하는 여인의 집에서 기뻐할 것이다. 젊은 남자의 뺨에서. 자궁의 여신들은 모임을 가졌다. 그녀는 (신들의) 모임 속으로 미끌어져 들어가 자궁을 열었다. 그녀의 얼굴은 기쁘고 즐거웠다. 내 스스로 그것을 창조했으며, 내 손으로 만들었다. 여인이 출산 때와 그녀는 ... 자궁의 여신...,
▲다산의 상징, 인안나
[유대인의 창세기 설화]
- 제2창세기(BC6~2C) 아담이 여섯째 날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창조 첫째 주에 아담과 그의 뼈가 창조되었고, 아담이 자기가 창조된 땅에서 40일을 지낸 뒤에,
-토라, 창세기 2. 6마침 땅에서 물이 솟아 온 땅을 적시자
▲수메르인
창조후 1177년경에 하느님의 많은 천사들이
▲수메르인 사회의 신분구조를 알 수 있는 나무공예품 상자에 그려진 그림 특이하게 우리민족이 사용하던 지게와 같은 이동기구도 보인다.
인간을 창조한 목적은 모두 신 자신들을 위해서다. 토라 창세기에는 언급되지 않지만 토라의 다른 문서들에서는 신을 섬기도록해서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임을 알 수 있다(신의 원초적인 욕망). 인간의 창조방식은 모두 진흙을 사용하여 진흙에 신의 속성(영적인 요소)을 부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창세기의 인간창조 역시 메소포타미아의 신화를 차용했음을 보여 준다.
여기에서 거인족에 얽힌 이야기는 흥미를 더해 준다. 하나의 최고신 아래 서열대로 신들이 존재하다가 히브리민족이 일신교로 전환되면서 천사로 격하되었던 신들이 인간의 여자를 취했다는 것이다.
거인들은 네피림으로 소개되고 있는데, 그 네피림은 메소포타미아의 아누나키 신들의 아들들이었다는 점이다. 즉, 아누나키(하늘의 신)들은 히브리민족의 신화에서는 천사로 격하된 상태에서 인간의 딸들과 결혼하여 네피림이라는 거인들을 자식으로 낳았다.
이 의미는 가나안 정착생활에서도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화구조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생명나무와 날개상징; 에덴동산이니 생명나무니 뱀이니 하는 설화의 모든 짜임새는 메소포타미아 창조설화의 극히 일부분을 차용했을 뿐이다.
2. 생명나무, 인간의 지혜에 대한 기원 1) 생명나무
[메소포타미아의 창세기 설화]
-길가메쉬(Gilgamesh) 점토판(앗수르판) 11토판(중간부터 후반까지) (홍수후 벨레틸리(Beletili)와 엔릴이 방주를 찾아와 말한 짧은 대목의 영문번역은 생략
약간 길더라도 필독을 권한다. 사막 모래에 묻혔던 인류초기인들이 기록한 토판을 발굴해 이를 해독하는데 수십년이 걸린 놀라운 사실과 이를 얍싸하게 유대인들이 변형.왜곡한 후 원조를 주장하는 기막힌 사실을 기억하면서...)
엔릴은 방주 안으로 들어와 우리를 축원했지. '본래 우타나피쉬팀은 인간이었다. 보게나, 누가 그대의 편에 서서 신들을 모으겠는가, 기다리게!
여섯 낮과 일곱 밤 동안 누워서는 안되네. 그가 다리 사이로 (머리를) 숙여 잠들자 마자, 안개처럼, 우타나피쉬팀은 아내에게 말했다. 저기 보오! 그 사람, 생명을 원했던 젊은이를 보시오! 우타나피쉬팀은 아내에게 말했다. 그녀는 그를 위해 빵을 구워 날마다 머리맡에 놓아 두었고,
첫번째 빵 덩어리가 딱딱해졌고, 세번째는 눅눅해졌고, 여섯번째는 아직 신선했다.
길가메쉬는 우타나피쉬팀에게 말했다.
첫번째 빵 덩어리가 딱딱해졌고, 여섯번째는 아직 신선했네.
길가메쉬는 우타나피쉬팀에게 말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오, 우타나피쉬팀,
날치기는 내 살을 움켜 쥐었고, 집안은 비었다. 우타나피쉬팀은 우르사나비, 사공에게 말했다. 아름다운 피부에 닳은 가죽을 입고 있는 그를,
그가 헝크러진 머리카락을 엘루같은 물로 씻도록 해주시오. 우르사나비는 그를 멀리 씻는 곳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의 멋진 의복은 흠없이 남았고, 더 할 나위 없이 깨끗했다. 길가메쉬와 우르사나비는 배에 올랐다. 우타나피쉬팀의 아내는 멀리서 그에게 말했다.
나는 당신에게 숨겨진 것을 알려줄거에요, 길가메쉬,
이 말을 듣자, 길가메쉬는 관을 열었고, 길가메쉬는 우르사나비에게 말했다.
우르사나비, 이 나무는 늙는 것을 막아주는 나무요,
20리그(80Km) 지점에서 그들은 음식을 찾아 내달았고,
되돌아 오는 동안 뱀은 덮고 있던 허물을 벗었다. 내게 조언해 주시오, 오, 사공 우르사나비여!
나는 되돌아가서 그 물가에서 배에서 내릴 것이오! 20리그(80Km) 지점에서 그들은 음식을 찾아 내달았고, 길가메쉬는 우르사나비에게 말했다. 올라 가시오, 우리사비, 우루크 성벽 위에서 주변을 걸어 보시오.
▲대홍수와, 방주, 동물, 선택된 자의 구원, 그리고 새 이야기... 구약의 홍수설화에 90% 그대로 차용되었다.
[유대인의 창세기 설화]
-제2창세기(BC6~2C) (에덴 동산에 들어간지)
-아담과 하와의 책 제1서 아담과 하와가 보물의 동굴에서 나와 낙원의 정문 근처로 가서 그 물은 지상에서 네개의 강으로 갈라져 나갔다.
창조 후 930년에 아담이 죽었다.
▲쐐기문자로 쓰여진 '생명+식물' 단어, 히브리 창조신화에 영원한 생명나무라는 개념으로 삽입되었다.
▲생명나무와 생명나무를 지키는 신과 천사들. 유대경에는 아담과 이브를 내쫒은 후 생명나무를 신들이 지키게 했다는 내용으로 그대로 차용하였다.
메소포타미 신화 전체에 흐르고 있는 생명의식은 모두 생명나무로 표현되고 있다. 생명나무와 뱀 역시 문서로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인장(흙으로 만든 원통형 인장)을 통해서 생명나무와 뱀은 동시에 표현되고 있다. 여기에다 생명나무와 날개(날개는 천사를 의미, 유대교와 서양문명에서는 현재까지 통용)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여러 유물들을 통해서 보여지고 있다.
그렇기에 히브리민족도 역시 초창기에는 뱀에 대해서 특별하게 적대감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생명나무 사상을 도입하면서 생명나무와 날개 (생명나무를 지키는 신 이후에는 천사들의 날개)는 그대로 차용했지만 유독 뱀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즉 동일한 의미의 생명나무를 두고 기존의 구도와 다르게 뱀만은 악한 존재인 사탄으로 묘사돼 버렸다. 뱀은 레비아탄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다른 면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가나안 지역의 선한 신으로 주로 실행활에서는 농경의 수확과 관련된 폭풍을 의미하던 바알은 히브리민족이 유일신으로 돌아 서면서 가나안의 신화구조와 결별하면서 바알은 유대인들에게도 매우 선한 존재였다가 결국 뱀과 사탄과 연결되어 갑자기 악한 존재로 몰아세워지고 만 것이다.
▲오안네스, 유대교 뿐 아니라 카톨릭 교황의 의식모에도 현재까지 투영되어 있다. 아래 동영상은 교황이 어떻게 저 의식모를 그대로 전수받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다곤신 사제의 모든것을 그대로 복사한 기독교, 의식에 여러 종교용품, 의복뿐 아니라 종교 자체의 뿌리 고대 아시리아(수메르,바빌론, 오늘날 이라크 남부)의 세례의식에 사용하던 놋대야
-교황이 전수받은 피쉬햇, 기독교는 교황이 없어서 관계가 없다고 피해가려 할 수도 있지만,
2) 인간의 지혜에 대한 기원 [메소포타미아의 창세기 설화]
-바빌로니카(Babylonica) 13 (베로수스Berossus의 역사서) 한 사람이, 더 정확하게는 괴물이, 절반은 사람 절반은 물고기가, 바다(Erythian Sea)로부터 와서 바빌론 근처에 나타났다. 그에 대한 설명은 여전히 보존되고 있다. 그는 사람들에게 기하학의 법칙을 가르쳤다. 요컨데, 무엇이든지 그들의 방식이 세련되고
▲메소포타미아 4안면신. 이 개념은 이후 히브리인들에게도 도입되어 4안면을 가진 야웨와 천사로 표현되어 진 것으로 보인다. 에스겔서 1장을 보라.
[유대인의 창세기 설화] -제2창세기(BC6~2C) 아담과 그 아내가 에덴에 들어가서 7년 동안 땅을 갈고 지켰는데,
창조 후 1311년 노아가 루바르 산에 포도를 처음 심었다.
아르파크샤드가 아들 카이남에게 글을 가르쳤다.
아브라함은 밭의 씨를 쪼아 먹으려고 달려드는
▲수메르인의 부엌. 인류최초의 문명과 현대인의 수준차이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아담과 하와의 책 제 1서 야웨의 말이 아담에게 야웨의 말씀이 다시 와서
- 아담과 하와의 책 제 2서 게군이 어렸을 때부터 사탄이 그의 안으로 들어갔다. 사탄은 또 게군에게 밀을 가지고 독한 술을 담그는 법을 가르쳤다. 그들이 게군에게 복종하고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따르는 것을 본 사탄이 크게 기뻐했다. 그렇게 1년이 끝나갈 무렵, 게군은 세트의 자녀들이 점점 자기 쪽으로
-필로의 이야기(1세기) 요발이 각종 악기를 처음으로 가르쳤다. 그때 지상에서 사람들이
▲아카드 왕 나람 신(Naram_sin)
-토라, 창세기 4. 20아다가 낳은 야발은 장막에서 살며
히브리민족의 토라에서도 역시 최초의 지혜는 뱀의 형상, 즉 수족류에게서 나왔다. 다만 뱀이 전해 준 문명적 지식들을 악하게 평가했다. 언듯보면 문명을 버리고 순수한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구호로 들릴만큼 인간이 성취해 가는 과학과 기술 등을 악마의 도구로 비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유대신이 아닌 제3의 존재, 그러니까 히브리민족은 언제나 다른 민족 혹은 나라의 사람들에게서 지식을 전수 받기만 하는 수혜자였다는 것을 차마 부정하지는 못하겠기에 (지식은 전수받되) 그 지식전달자를 악한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첨단지식을 전달해 주는 집단의 강력한 힘은 약소민족 히브리인들에게는 위협적이었던 것이었다. (과학과 인간 이성의 발전과 깨어남을 대량학살과 화형으로 막아오던 기독교가 요즘에는 과학이 기독교에서 나온양 언어도단을 저지른다. 과학이 기독교의 교리를 파괴한다고 여기고 동시에 과학을 사탄이라며 저주한다. 심지어는 자신들의 교리학에 과학이란 명칭을 살짝 갖다 붙여 XX과학이라고 하기도 한다.)
▲길가메쉬 설화가 기록된 토판
3. 홍수
-아트라하시스(Atrahasis) 단편 토판 ... 그들은 앉고 나서...
육백년, 육백년보다 적게, 지나갔으며, 인류의 소란스러움은 더욱 심해졌고, ...
지금 한 아트라하시스가 있었으며,
아트라하시스는 명령에 따랐다. 당신들의 집이 들썩거리기 시작했고, 수루푸(suruppu)병은 그들에게서 떠났다. 엔릴은 사람에게 불행한 행위에 전념했다. [i.b35]
배의 지붕을 깊게 하여, [i.c25] 나는 나중에 너에게 나타날 것이다. [i.c30] 새들의 추락, 물고기 떼... 아트라하시스는 명령을 받았다.
아트라하시스는 원로들에게 말했다. 내가 엔키 신을 언제나 숭배해 온 때로부터 이것은 그가 내게 말한... [i.c50]
원로들...
가져옴...
하늘을 나는 새들, 그는 오르내리면서 앉거나 무릎을 굽히지 못한채
신을 그들은 들었다, 그의 외침을. 바람은 그가 정한 전방으로 거세게 불었으며, [ii.50] 그는 정박용 줄을 잘라 배가 풀려나게 했다. ... 폭풍 그들은 파멸 가운데 서로를 알아 볼 수 없었다. [iii.10] 대홍수는 황소처럼 날려 버렸고, ... 날아가 버린 것처럼 ... [iii.15] 대홍수의 높은 소리. [iii.20]
엔키는 출산의 여신 닌투에게 말했다. 어머니의 무릎에서 밀쳐내거든 그 아이를 구해 내도록 하라.
▲바빌론의 문명과 강, 저강이 자주 범람해 하류지역의 밀농사가 대대적으로 경작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최고의 고대문명이 꽃을 피웠다.
-길가메쉬(Gilgamesh) 점토판(앗수르판) 11토판 (처음부터 중반부까지, 방주이야기의 원본 중 일부)
길가메쉬는 떨어져서 우타나피쉬팀에게 말했다.
우타나피쉬팀은 길가메쉬에게 말했다. 그대에게 말하겠다. 수루팍! 그대가 분명히 알고 있는 도시지, 담, 담벽!
수르팍의 남자, 우바르투투의 아들이여,
나는 알아듣고서 내 주 에아에게 말했지. 하지만 도시와 주민과 원로들에게 무엇을 대답합니까! 너는, 그러면, 이것이 내가 반드시 그들에게 말해야 할 것이다. 당신들 위로 그는 많은 비를 내릴 것이고, 바로 새벽이 빛나기 시작했지. ... 사람들은 ...
아이들은 역청을 날라 왔으며, 외벽은 각각 12큐빗의 열배 높이로 하고, (칸, 구획)
배의 중간 부분은 물이 ... 틀어 막았지. 세번씩 기름통을 진 3,600명의 수송인들이 있었지. 나는 일꾼들에게 약한 맥주(ale)와 맥주, 기름, 포도주를 그래서 그들은 신년축제 연회를 열 수 있었지. 방주는 해질 무렵에 완성됐지.
사마쉬는 시작 시간을 맞췄지. '아침에 나는 빵 덩어리들이 쏟아지게 하고. 배의 틈새를 메꾸기 위해, 푸주라무리(Puzuramurri)에게, 선원과, 나는 용품들과 함께 서로 같이 머물 장소를 제공했지. 막 새벽 동이 틀 무렵 ... 땅은 항아리처럼 산산히 부서졌지. 하루종일 남쪽에서는 바람이 불어 ..., 급속하게 불어 오고, 산은 물 속으로 잠기고, 신들은 홍수를 두려워 했으며,
내가 신들의 모임에서 불행한 것들에 대해 말했기 때문에! 여섯 번의 낮과 일곱 번의 밤. 일곱번째 날이 이르렀을 때, 폭풍은 쿵쾅거렸고, 바다는 잠잠해지고, 고요해 지고, 회오리 바람(과) 홍수는 멈췄지. 나는 구멍을 냈고 신선한 공기가 내 코끝 위로 찾아 왔지. 12리그(league:48Km) 떨어진 곳에서 지역(땅)이 드러났지. 네번째 날, 나무쉬 산이 방주를 받쳐 주었으며, 다섯번째 날, 여섯번째 날, 나무쉬 산이 방주를 받쳐 주었으며, 횟대가 보이지 않았기에 그래서 선회하다 내게 돌아 온 것이었지.
▲아카드 왕과 포로들, 피정복 문명은 정복문명의 신화와 종교에 동화되었다.
-엔리두 창세기(The Eridu Genesis) 단편 토판 닌투르는 주목했다. 그들은 와서 도시와 숭배의 장소들을 건설할 지어다. 그녀는 정화할 것을 명령했고 자비를 호소했다. 그것들은, 냉정하고 거룩한 신의 분노는, 안과 엔릴과 엔키 그리고 닌후르사그가 ... 그(지우수드라)가 충고하게 하라. 왕권이 천상으로부터 내려왔을 때 그들은 이름이 지어졌고, 1/2부셀 바구니(약13L)를 할당 받았다. 이 도시들은 이름이 붙혀져 왔었으며,
그 날 닌투르는 그녀의 피조물들을 슬퍼하며 울었고 그 때 지우수드라는 왕이자
대화, 내 왼쪽으로 벽 위로 올라와 들어라!
[훼손됨]
모든 사악한 바람, 모든 난폭한 바람이 하나로 모이고 지우수드라는 방주에서 구멍을 뚫었다.
[훼손됨]
너는 여기 맹세했다, 지우수드라, 왕,
▲님루드의 왕 강력한 왕권식 중앙통치 정치형태를 엿볼 수 있다.
[유대인의 창세기 설화]
-제2창세기(BC6~2C) 창조 후 1324년에 노아가 손자들에게 계명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노아는 주님의 지시대로 창조 후 1307년에 방주를 만들었다.
-아담과 하와의 책 제 1서 아담아, 왜냐하면 이 서쪽 경계선 지방에는 너의 자손이 와서 번식하고
-아담과 하와의 책 제 2서 아들들아! 너희 가운데 살아 남는 이에게 야웨의 말이 올 것이고,
-필로의 이야기(1세기) 대홍수가 일어난 것은 야웨신이 하늘과 땅을 만들고나서
- 토라, 창세기 6. 5야훼가 세상이 사람의 죄악으로 가득 차고 "내가 지어 낸 사람이지만, 땅 위에서 쓸어 버리리라. 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땅 위를 기는 것과 13바로 그 날 노아는 자기 아내와 세 아들 셈, 함, 야벳과 14그들과 함께 각종 들짐승과 집짐승, 땅 위를 기는 각종 파충류와
8. 6사십 일 뒤에 노아는 자기가 만든 배의 창을 열고
현재의 고고학적 탐구만으로도 당시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에 대규모 홍수가 있었다는 퇴적층이 발견됐다 (한강에도 고래로 수차례 대홍수가 있었듯이...). 그외 전세계적으로 공통된 같은 시기의 대홍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즉 대홍수라는 것은 당시 인간의 치수가 미약하기만 했던 때에 중동지역에서 발생한 지역적 대규모 재앙이었음은 틀림없다.
유대인의 대홍수 설화에서는 철저하게 메소포타미아의 홍수 설화를 차용한 것이 두드러진다. ▲바빌론에 있는 지구라트, 제사를 지내는 성전탑이다.
4.바벨탑 1) 지구라트-갈대아 우르에서 엄청난 홍수로 인한 침적토 발견
[유대인의 창세기 설화]
-제2창세기(BC6~2C)
창조 후 1590~1596년경에 사나르 땅의 사람들이 오로지 벽돌만 사용해서 43년 동안 탑을 건설했다. 주님이 우리에게 "보라! 단일 민족인 그들이 일을 시작해서 시나르 땅 일대를 바벨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창조 후 1682년경에 노아의 자손들이 전쟁을 일으켜 서로 죽이고,
그들이 강한 도시와 탑들을 세우고 그리고 다른 우상들도 만들었다.
▲하늘정원(공중정원)과 지구라트 상상화. 이라크 대통령 후세인이 대대적 복원작업을 한 바 있다.
당시 히브리민족은 아카드 왕국이 이전에 존재했었다는 사실은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아카드 왕국의 신전에 대해서도 역시 알지 못했기에 언급이 없다. 토라가 지칭하는 바벨탑, 더 정확하게는 바빌로니아의 탑들이 존재하던 때를 우르왕국과 바빌론왕국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역사무지의 상태에서 구약의 메소포타미아 신화 유대차용 버전을 쓰고 있었다).
바빌로니아 지역의 형성은 훨씬 이전이었지만, 그 지역에 통일도시왕국이 건립된 시기는 아카드족의 사르곤 1세가 통일국가를 세운 기원전 2350년경이다. 300여년 후 수메르족 우르나무가 우르3왕조를 세우면서 권력이 교체된다.
기원전 1830년경에 이신.라르사와 아모리인 수무아붐이 세운 왕조를 후세에서는 바빌론 1왕조로 명명했다. 이 왕조는 중앙집권제 아래서 수도 바빌론을 건설하고 성벽과 신전 건축에 주력했는데, 이 때 더욱 많은 신전들이 세워졌다.
바빌론의 탑(바벨탑)은 바빌론이라는 도시에 있었던 바빌론 지구라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연이어 들어선 아카드, 우르, 바빌론 왕조국가의 중복된 영토 모두를 아우른다고 할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가 도시국가 형식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각각의 왕조들은 문화적 혹은 경제적 동일성은 유지했지만 생활권은 거의 독립적이었다.
아브라함의 선조들은 우르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활터전이었던 우르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바빌론과 아카드의 지구라트에 대해 저주할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바빌론의 탑에 대한 저주 이야기는 신바빌로니아 제국이 들어서서 유다왕국이 멸망 당한 후 모세5경에 실렸다고 할 수 있다. 이후 히브리인들의 바빌론에 대한 호칭부터 달라진다. 유독 히브리민족만 바빌론을 '신들의 문(바빌론)'이라고 부르지 않고 '시끄러움(Bavel바벨)'이라고 폄하해서 기록했다. (우리민족도 일본에게 당한 후에는 일본 대신 '왜국'이라고 깎아내려 호칭했다.)
바빌로니아의 탑 설화는 바벨탑의 붕괴라기 보다는 바빌로니아 지역의 왕조별 흥망성쇠와 운하 등 치수사업이 고급화 되기 이전의 취약함에 따른 당시 상황을 왜곡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특히 치수사업이 정교해지기 전에는 유테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의 중앙 지점에 수해가 집중되었다. (과거에는 이 두 강 사이에 큰 강이 남북으로 흐르고 있었다는 것이 발견됐다. 지금은 사막화되어 강의 흔적만 있다.)
이러한 취약한 자연조건에도 불구하고 야생 밀이 재배하는 밀처럼 빼곡하게 들판을 채우고 있던 이 두 강역은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살기 좋은 매력적인 곳임에는 틀림없다. (고고학적 발굴로 이 지역 상류에서 인류최초의 야생밀이 재배되기 시작했음을 알게되었다.)
따라서 어느 한 족속도 이 지역을 독점할 수 없었다. 점차 다양한 언어의 족속들이 유입해 들어 왔으며, 이 가운데 상호 충돌과 전쟁 등 물리적 경쟁도 있었지만 총체적으로는 인구 증가로 이어지고, 인구의 증가와 함께 같이 도입되어진 여러 기술들은 융합되면서 문화 혹은 문명의 성과를 크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지역의 발전속도와 규모는 당연히 이 지역의 생존경쟁에서 패배한채 미개척지 가나안으로 떠나야만 했던 히브리민족에게는 대단한 위협이 됐고, 실제 수 없이 침략당해야 했다.
약소민족 히브리민족에게 있어서 지구라트들, 바빌로니아 지역 곳곳에 세워져 있던 거대한 신전들이 가하는 압도감에 질식됐을 것이다.
▲인류최초의 쐐기문자 인류초기 문명의 문자임에도 대단히 정교한 어휘.문법률을 갖고 있다.
▲수메르 쐐기문자
2) 언어
-토라, 창세기
11. 1온 세상이 한 가지 말을 쓰고 있었다. 물론 낱말도 같았다. (이 표현은 전적으로 유대인들의 무지에서 온, 또는 알면서도 발벨탑을 깎아내리기 위한 일환으로 지어낸 억측이다. 언어는 당시 세계 수천 수만 수억 수백억 부족들만다 각기 달랐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제2창세기(BC6~2C) 나는 아브람의 입과 입술과 귀를 열어 주었고,
아주 소수의 인구가 살던 메소포타미에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언어도 다원화 됐다. 초기 추정되는 셈어를 쓰던 상황에서 수메르어를 쓰는 사람들이 들어와 자리 잡은 것을 필두로 아카드어도 들어와서 삼분하게 된다.
수메르어를 쓰던 사람들은 많은 문명을 전달해 주었고, 문자를 처음으로 알려주었다. 언어의 혼란은 인간에게 피해를 끼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류를 통해 인간의 문명과 문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문서들로 한정한다면 인류 최초의 문자기록은 기원전 2600년경 수메르인들이 들어와 쐐기문자를 소개하면서부터다. 비록 충분하게 모든 표현을 할 수 없었지만 지금 보아도 상당한 문자구조였다.
뒤이어 들어선 우르왕조는 특히 우슐기 왕(Shulgi: 2094-2047) 때에 활발하게 우르와 니푸르 등에 학교를 세우고 서기관(Edubba)을 전문적으로 둘 정도로 고전 문학을 수집 편찬하면서 다양한 언어문화를 발전시켰다.
바빌론왕국에서는 함무라비왕(BC1792-1750년) 때에도 법을 제정하고, 학교에서는 바빌로니아어와 수메르어를 동시에 배워야 했다.
이렇듯 다양한 언어를 가진 종족들이 모여 듦으로써 결과적으로 나중에야 셈어에서 파생된 독자적인 언어를 갖게 된 히브리민족도 이에 자극돼 자신들의 언어를 문자로 기록할 수 있는 수단과 기회를 훗날에 얻게 됐다.
▲당시 무역로, 아브라함 역시 무역로를 따라 아버지 데라가 이끄는대로 우르에서 우루크, 니푸르, 바빌론, 아수르, 니네베, 고산을 지나 하란에 정착했을 것이다. 이후 아버지 데라를 남겨두고 카르체미쉬, 시돈, 티레를 거쳐 세겜에 도착했다. 그 뒤 배고픔 때문에 풍요로운 이집트로 들어가게 된다.
5. 히브리 일신교의 탄생 중동의 이슬람교와 유대교는 다신교(Polytheism)에서 단일신교(henotheism)로, 단일신교(henotheism)에서 일신교(monolatry)로 변화했다. 기독교의 경우에는 교체신교(kathenotheism)로 변천했다.
1> 다신교에서 단일신교로, 단일신교에서 일신교로 각각에 대한 정의를 매우 단순화 한다면, *다신교(Polytheism)는 여러 신들을 인정함과 동시에 취향에 따라 하나의 신 혹은 여러 신들을 섬기는 다원화된 종교적 숭배형태다. *단일신교(henotheism)는 여러 신들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그 중에 하나의 신만을 종교적으로 숭배하는 형식이다. *일신교(monolatry)는 여러 신 중에서 하나의 신만을 택한 후 인정하여 그 신만 숭배한다.
아브라함이 아버지 데라와 생존하던 당시에는 히브리 민족은 메소포타미아 신들을 숭배했다. 특히 아버지 데라는 신들의 형상을 조각해서 생계를 유지했을 정도였다(아브라함 계시록). 이슬람교는 7세기경에 창시되었기에 유대교와 기독교에 비해서 한참이나 뒤늦게 만들어진 종교다. 따라서 짧은 성립과정에서 보여 준 유대교와 기독교가 혼재됐던 혼란을 뺀다면, 마호메트에 의해 이슬람교가 인위적으로 창시됨으로써 처음부터 일신교의 형태를 띠었다.
반면에 유대교의 유일신 교리는 수천년 동안이나 시도되어 마침내 뒤늦게 이뤄졌다. 즉 토라라고 부르는 모세5경이 권위를 인정 받은 시기가 비로소 기원전 3세기 전후였기 때문이다.
유대교의 정경 목록을 결정하는 과정이 기원후 2~3세기경까지 논쟁거리였다는 측면에서 단일신교에서 일신교로 변화하는 것이 쉽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의도적으로 오역한 영문 구약성경이나 한글 구약성경이 아닌 원본 모세5경인 토라에서는, 비록 수 없이 의도한바대로 고치고 고쳤음에도 불구하고 넓게는 중동지역 전체에서 좁게는 가나안 지역에서 유입한 다신교의 영향을 결코 지울 수 없었다.
약소민족인 히브리족은 자신들의 민족정체성 확립을 위해 다른 중동지역의 신화와 역사적 사실들을 모조리 끌어다가 전부 자신들의 이야기 구조에 집어 넣어 자신들의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왜곡.변조했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고대 중동의 신화를 차용한 유대교+기독교 신화에 우리 역사를 변조 왜곡해 공정하려는 행위도 서슴치 않는다.
예를 들면, 단군조선의 단은 이스라엘의 단지파의 극동 이주파라는 둥, 아리랑이 이스라엘의 민요라는 주장 등등... 최악의 정신병적 난동을 부리다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요즘 중국이 고구려, 발해는 물론 한반도 전체를 중국 문명에 통합하려는 역사침략, 동북공정과 비슷한 면이 있다.).
특히 후기 바빌론에 끌려간 후 모세5경은 비약적으로 내용이 풍부해졌다. 대표적으로 신에 대한 호칭문제에서 가나안 지역의 토속적 다신교를 유대인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것으로 소화 시키면서 자신들의 다신교를 우월적 일신교로 전환해 갔는지 알 수 있다. 이 과정은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유대교 경전 곳곳에서 모순과 비논리 투성이를 끝내 해결하지 못할 정도로 방대해지고 말았다.
가나안에는 여러 민족이 살았기 때문에 비슷하면서도 약간씩 달랐다. 구약 창세기의 엘, 엘로힘신이 바로 팔레스타인인들의 토속신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기독교가 한민족의 토속 창조신 하나님, 하느님을 자기들의 신 이름으로 도용하는 반민족적 현상과 고대 유대인이 고대 중동의 여러 신화를 차용하고 신들을 도용하면서도 그 토속민들을 무시하는 처사와 매우 비슷하다.
유대교 경전에서 230군데 이상 등장하는 엘이라는 단어다. 바로 엘(EL)은 '신'이라는 뜻이다. 엘은 단수형으로 하나의 '신'을 의미하고, 엘로힘(Elohim)은 '신들'을 의미하는 복수이다. 다른 곳에서는 엘림(거룩하게 차려입은 신들)이라고 불렀다.
팔레스타인 토속신 엘(El)=신(God) 엘림(Elim)=거룩한(Holy Gods)
엘이 유대교의 토라만의 고유명사가 아닌 가나안 지역 사람들이 흔하게 쓰던 보통명사였음이 1920년대 발굴된 시리아 북쪽 해안지대인 라스 삼라에 위치한 우가릿 유적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부터 밝혀졌다.
흥성한 청동기 문화를 누리던 다양한 핏줄의 가나안 사람들은 쐐기문자 토판들과 도자기 등 풍요로운 삶의 흔적들을 많이 남겨서 역사적 사실들을 증명해 줬다.
보통명사 엘은 유일신도 다신도 포함하여 일반적으로 신을 뜻했다. 엘(신)은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가면서부터 가나안인들의 언어를 받아 들여서 유대민족 사이에 널리 쓰이기 시작해서 한참 뒤의 솔로몬이 썼다는 시편에서도 마저도 어김없이 유대교 경전의 고유명사인냥 등장한다. 남북왕국(이스라엘국과 유다국)이 망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쓰였다.
팔레스타인, 웨스트 뱅크,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를 아우르던 당시 가나안 땅에는 아람, 암몬, 모압, 에돔, 트랜스 요르단, 패니키아 등에서 몰려 온 많은 사람들이 살았다. 이로인해 이 때 청동기 문화가 융성했다. 히브리민족은 당시로서는 살기 좋았던 가나안에 찾아든 새로운 이주자 집단 가운데 하나였다. 마침내 방문자에서 연약한 부족들을 침탈.약탈.침공.점령하는데 성공하여 가나안 사람들 중 일부가 되었다.
유대교의 신들, 즉 야웨신은 수 없이 많은 신들 가운데 하나였으며 동시에 여러 신이었다. 가장 간명하게 창세기에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했다"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십계명에 "너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고 하면서 다른 신의 존재를 인정했다.
시편 29편은 1절에 나오는 베네-엘림 Bene-Elim (신들의 자식들아! 한글성서에서는 '너희 권능있는 자들아!)에서도 역시 다른 신들을 인정하고 있다.
여호수아 22장 22절에서는 엘 엘로힘 야웨, 엘 엘로힘 야웨! (신들의 신 야웨, 신들의 신 야웨!)라고 하고 있다.
엘-샤다이 El Shadday(산의 신, 쌍둥이 봉우리 신, 유방thad에서 유래), 엘-엘욘 El-Elyon(높은 신, 힘센Aliyan 주님Baal에서 유래, 신을 노예의 주님이라 부르는 습관은 바알신에서 유래), 엘-올람 El-Olam(세상의 신), 엘-벧엘 El-Bethel(집의 신, 신전의 신. 지명인 벧엘에서 유래. 혹은 야곱이 쌓았다는 제단 이름인 벧엘에서 유래), 엘 엘로헤-이스라엘 El Elohay-Israel(이스라엘 신의 신, 야곱이 세겜에서 제단을 쌓고 엘로헤 이스라엘이라고 부른데서 유래), 엘-로이 El-Roi(보고 있는 신, 하갈이 이스마엘을 임신한 상태에서 아브라함의 본처 사라의 폭력을 피해 달아나 신을 만나 도움을 받은데서 유래) 등이 있다.
가나안 특유의 엘이라는 개념은 가나안 지역에서 숭배되던 신들에 대한 인식에서 기원한다. 히브리민족이 가나안에 들어가던 때는 가나안 지역에 우가릿 문명이 꽃을 피우던 시대였다. 거기에는 판테온(Pantheon)이라는 150여 신들을 숭배하는 신전이 존재했다.
가나안에서 보통 명사 신(El)은 최고의 신이자 신들의 아버지였고, 아세라는 신들의 어머니였다. 그들의 아들은 주님(바알)이었으며, 주님의 처는 아트타르트이었다.
바알을 찬양하던 노래가 야웨찬양시에 그대로... 판테온에서 발견된 바알 숭배시들 몇 편은 이사야서(14:12-14)와 솔로몬의 시편(시 29:1-3,10; 82:1; 89:5-7; 65; 68:32-35)에 인용된듯 유사한 문법과 단어의미 구조를 갖는다.
이뿐만 아니라 아브라함과 야곱이 특별한 장소로 선택했던 곳들은 대개가 가나안 사람들의 중요한 신전이 존재하던 곳들이었다. 아브라함이 처음 목적지로 선택한 가나안 지역이자 야곱이 제단을 세웠던 세겜에는 '거룩한 장소'(마콤Maqom)라는 산당(바모트Bamot)이 존재하고 있었다.
역시 벧엘에도 가나안 신들을 위한 산당이 존재했기에 벧엘(신전)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던 것이다. 이 밖에도 맹세의 우물이 있던 브엘세바, 헤로디안의 신전이 있었고 아브라함 부부가 묻혔다는 마므레 등이 있다. 이처럼 가나안 지역에서 히브리민족은 가나안 종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러한 가나안 지역의 핵심종교인 엘의 다신교에서 히브리민족이 야웨의 일신교 개념으로 돌아 선 때가 언제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혹자는 히브리민족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시기를 아멘호테프 4세 (아크나톤, 기원전 1350~1334년 재임)의 통치기간으로 보아, 아멘호테프 4세가 권력투쟁의 수단으로 기존의 다신교에서 태양신 아톤Aton만을 숭배하는 유일신교를 추진했다는 점을 들어서 모세가 이집트의 일신교 교리를 받아 들였다고 하기도 한다.
모세가 이집트 왕이 바뀌기를 기다리며 40년간 미디안에서 숨어 지내도록 만들 정도로 장기간 통치했던 왕은 투트모세 3세(기원전 1504~1450년 재임)와 아멘호테프 3세 (기원전 1386~1349년 재임) 밖에는 없는데, 아멘호테프 3세 때의 역사적 사실에 더 부합한다.
열왕기상 6장 1절에 나오는 '솔로몬 왕이 이집트를 탈출한지 480년이 되던 재임 4년차에 야웨 신전을 건축하기 시작했다'라는 구절이 부정확한 역사기록이라고 한다면, 고고학적 측면에서도 히브리민족의 이집트 탈출은 아멘호테프 4세 (아크나톤, 기원전 1350~1334년 재임) 때에 발생했다는 것이 훨씬 더 타당하다.
토라는 이집트 안의 히브리인들이 고센 부근에서 살면서 투트모세 3세가 고센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었으나, 투트모세 3세는 멀리 떨어진 테베를 수도로 정하고 그곳에서 치세를 했으며 국가적 토목공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히브리인들은 강제노역에 동원되지 않았다. (모세경을 쓴 유대인 서기관의 의도적 또는 부지불식의 역사오용)
오히려 룩소르 및 카르나크신전 등을 세우며 무역을 통해 쌓은 부를 적극적으로 건축사업에 투입한 아멘호테프 3세 때에 활발하게 토목사업이 전개됐다.
히브리민족의 이집트 탈출이 아멘호테프 4세 때에 발생했을 다른 개연성은 이집트 왕권의 약화에서 찾을 수 있다. 신권이 지나치게 강화되어 아멘호테프 4세는 위기감을 느껴서 수도를 테베에서 텔 엘 아마르나로 옮기고서 사제들과 권력투쟁을 벌였으나 승리하지 못하고 예술활동에 전념해야 했다. 그만큼 이집트 내부는 그 당시 분열되어 있었다.
덧붙혀서 모세는 에돔과 모압이 길을 빌려 주지 않아서 동쪽으로 돌아 갈 수 밖에 없었다고 했지만 요르단 동편의 에돔과 모압에는 아직 왕국이 건설되지 않았던 때였다. 나아가 히브리인들이 기원전 1400년경에 이집트의 피톰(곡식저장창고)과 도성을 정복하여 파괴했다고 하지만 발굴된 유적들은 기원전 1250년경에야 파괴되었음을 알려 주었다.
한편으로 유대교 경전 토라인 모세5경의 적극적인 개작은 애굽 탈출이후 남북왕국이 모조리 멸망해서 히브리민족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던 후기 바빌론 제국시대에 이뤄졌다고 할 수있다. (이때 유대인 90%이상이 완전히 나라를 잃고 끌려갔다.)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에 의해서 북왕국 이스라엘 멸망 당하고, 기원전 586년에는 남왕국 유다도 멸망 당했다. 이로 인해 히브리민족이 모두 멸망 당하고 신바빌로니아에 끌려가 포로생활을 하다가 운이 좋게 국제역학관계로 인한 페르시아에 의해 풀려나 가나안으로 되돌아 왔지만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페르시아의 지배와 그리스의 지배로 이어지는 동안 히브리민족은 나라를 버리고 살 길을 찾아 다른 나라로 도피하는 이민행렬이 줄을 이었다.
국외탈출 열풍 속에서 히브리인들이 외국에 집단 주거지를 형성한 것을 후에 디아스포라라고 불렀다. 통일왕국 이스라엘의 인구수는 유적발굴 결과 기원전 11세기 후반에서 10세기 초반에는 10만명도 되지 않았다. 로마에 의해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 외국에 거주하던 디아스포라 히브리민족의 인구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200만명 정도가 됐다.
메시아운동과 예수 가나안에 남겨진 소수의 히브리민족을 비롯해서 외국으로 빠져나간 자들을 종교적으로 일치시키고 결속하고 희망을 부여하며 유지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한국인들은 재미.재일등 해외 동포와 본국과의 결속을 위해 코리아 타운을 건설하고 전통문화 전승운동을 벌인다.)
그 염원은 메시아 운동으로 나타나서 장차 히브리민족을 강하게 이끌고 발전시켜 줄 신의 아들, 영웅을 기다리게 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모세5경은 기원전 450년 경에도 지속적으로 손질됐다.
이로인해 유대교 경전이 급속하게 곳곳에 메시아를 암시하는 내용으로 개작되었음을 구지 증거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짐작할 수 있다. 갑자기 등장한 메시아 운동 열풍의 최대 수혜자는 말할 것도 없이 세례 요한이 아니라 예수였다.
이런 의미에서 그동안 유지해왔던 신이라는 단어도 대변화를 겪게 된다. 오래도록 쓰여 왔던 가나안 지역의 토속신을 의미하는 엘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야웨가 차지하게 된다. 아브라함까지 거슬러 올라가 야웨라는 단어를 삽입하지만 모세5경의 구조상 히브리민족을 노예에서 해방시켜 구원한 모세에게 야웨의 의미론적 출현이 집중된다. '신(El)-아무개'라는 호칭에서 '야웨'라는 단 하나의 단어로 히브리민족의 신은 정립된다.
토라는 호렙산에서 신과 마주친 모세가 신에게 이름(정체성)을 물었다고 적었다. 그러자 신은 '스스로 존재할 자'(의도적 오역 한글 성경에서는 '스스로 존재할 자'가 아닌 '스스로 있는 자') 라고 하면서 이제부터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야웨라고 불러 달라고 한다.
아직까지도 야웨가 무슨 뜻인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매우 분명하게 가나안 지역의 명칭이었던 '신'(El)은 버려지고 새롭게 '야웨'라는 히브리민족만의 고유명칭을 가지게 됐다. 아니면 기존의 신(El)이 히브리민족 유일신의 고유명칭이 되는 야웨로 변경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El-Yahweh가 아니라 그냥 Yahweh가 되어 야웨신이 된 것이다.
급하게 삽입된 야웨의 이름은 모세5경 등 여러 문서들에서 엘과 뒤죽박죽 혼재되어 있다. 우선 가나안 지역의 신(El)과 결별하면서 바알(주님, 모든것의 소유주)을 바알세불 (악신들의 최고신)로 비하시켰다. 가나안의 지역의 엘과 결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야웨는 여러 곳에서 '신들의 신, 신들 가운데 최고의 신'으로 표현되어 진다. 즉, 먼저 야웨는 신들의 신 엘의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신들의 왕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투쟁했다는 의미가 된다. 이러한 과정 끝에 야웨라는 이름만을 신의 이름으로 인정했다.
야웨신으로의 일신화는 종합적으로 봤을 때, 아시리아제국과 바빌로니아 제국에게 멸망당하면서 민족적 생존을 위한 일체화 과정에서 수립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주님이라고 불리던 바알 신. 신을 노예의 주인, 즉 주님이라고 부르는 습관은 바알신 찬양에서 비롯되었다.
2> 일신교(monolatry)에서 교체신교(kathenotheism)로 (기독교에서만 나타난 현상이므로 여기에서 다루려 했던 주제가 아니기 때문에 깊게 살펴 볼 필요는 없다.) 과거 인도의 종교적 양식에서 발견되었던, 다신 혹은 일신이 다른 여러 신들의 속성을 탈취함으로써 일신화 되는 현상을 교체신교라고 한다 (콘텐츠가 빈약한 자신들의 신에 타민족의 신의 특성을 가져와 풍부하게 한 후 그 신은 악신으로 비하시켜버림).
기독교가 보여 준 교체신교 현상은 과거에 정의 됐던 교체신교 개념의 도식화를 거꾸로 가는 형태를 띠고 있기에 역교체신교라는 정도로 말할 수 있다.
유대교가 일신교로 전환된 이후 일신주의 유대교에 뿌리를 두고 예수를 기반으로 하는 신생종교 기독교는 하나의 아주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됐다. 간단하게 말해서 예수를 신으로 인정하는 과정이 그동안 유대교 혹은 기독교가 자체적으로 추구해 왔던 야웨만을 일신으로 섬기는 부분과 서로 충돌했기 때문이다. 예수의 신성을 인정하면 다신이 되어 야웨 신과 예수 신으로 둘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기존에는 야웨신만 있었기에 일신교가 유지되었지만, 기독교 입장에서는 예수를 신으로 인정하면서 그 매개체로 성령의 역할을 크게 부각시키게 되자 기독신은 이제 야웨신, 예수신, 성령신(pneuma)이 각각 존재하게 되어 3명의 신으로 늘어나고 만 것이다. (고대 우리민족의 샤먼들도 무를 행할 시 성령이 내려야만 길흉을 논한다 하였다.)
성령의 경우 그 동안에는 유대신 야웨의 종속물 혹은 부속물로 바람이나 대기, 인간을 창조할 때 호흡(생기)의 의미 정도에 불과했기에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선지자 인간 예수가 아닌 신 예수가 되면서부터, 예수에게 신성을 부여하려면 그동안 문제가 되지 않았던 성령도 역시 하나의 신으로 승격시켜야만 했던 것이다. 또한 성령의 역할이 새롭게 부여되어 최후의 심판 전인 마지막 시기의 구원을 감당할 신이 됐던 것이다.
힌두교,불교,이집트 영향으로 삼위일체 작업 시작 이렇듯 신생종교 기독교에 대두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3명의 신을 하나의 신으로 만들어 일신교의 핵심을 유지하는 일이었다.
3명의 신을 1명의 신으로 묶는 작업은 1000년이 넘는 논쟁 속에서 진행됐다. 3명의 신을 하나의 신으로 묶는 방법은 3위1체로 구체화 됐다. 삼위일체(trinitas)의 이론적 근거는 대개 이집트와 힌두교, 불교 등 동양적 종교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기독교보다 500년이나 먼저 창시된 불교의
'화신(창조주), 보신(육신:예수), 법신(성령)은 하나다'라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또한 가나안 지역에도 3위1체와 유사한 개념이 존재했었다. 단수형 엘로 표현될 때는 한 명의 신을 의미했지만, 복수형 엘로힘으로 표현했을 때는 엘이라는 하나의 신 안에 다중화된 신의 속성들이 부여되어 한 명의 신이면서 동시에 여러 명의 신으로 변화했다.
이렇듯 이론적 근거를 찾자,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고 예수를 야웨의 종속적 존재로만 보았던 아리우스 교리파를 비롯해서 영지주의파(Gnosticism)와 모나르키아니파(Monarchianism)를 철저하게 파괴하고 숙청하는데 성공한다.
기독교 교리 이론 제공자들의 노력은 우선 451년 칼케돈공의회에서 야웨가 독생자 예수를 세상에 보낸 다음 성령을 통해 인류를 구원한다는 것으로 가닥을 잡는 것으로 나타났다. 칼케돈공의회는 최후로 네스토리우스파(Nestorianism)를 소멸시키는데도 성공했다. (네리우스파의 로마에서 축출된 후 대원제국(몽골)을 거쳐 발해, 통일신라에까지 알려져 유물이 존재한다.)
하지만 새로운 문제가 대두 되었다. 형식적으로는 3명의 신을 정리한듯 보였지만 칼케돈공의회의 결과는 기독교를 유일신교에서 교체신교로 바꿔 놓고 말았다.
기독신은 한 명이지만 창세시대부터 종말시대까지 시대 순으로 야웨, 예수, 성령으로 연결되는 시대적 역할을 공평하게 분배함으로써, ▲초기기독교 유물에 나타난 연꽃 삼법륜
마치 불교의 과거불(연등불), 현생불(석가모니), 미래불(Maitreya:미륵불)이라는 3생불 교리를 보듯이 시대에 따라 하나의 신이 다른 신을 대체하는 결과를 가져 온 것이다. 지금도 역시 교체신교적인 요소는 이어지고 있다. ▲이집트의 삼위일체(이시스+오시리스+호루스) ▲ 우리전통 무속의 삼지창 ▲홍살문의 삼태극,삼지창 ▲힌두교 시바사원과 삼지창 ▲불교의 삼보 ▲삼족오 ▶그리이스(Oaxos island)의 삼지창과 돌고래문양▲기독교삼위일체 이미지 출처:http://cafe.chosun.com/club.menu.bbs.read.screen?page_num=1&p_club_id=dreamview&p_menu_id=61&message_id=524628
바로 심판의 시대에 핵심적으로 구원하는 역할을 하는 존재는 성령이다. 야웨의 시대에서 예수의 시대로, 예수의 시대에서 성령의 시대로라는 기독교의 핵심교리는 여전히 교체신교론을 유지하고 있다.
정리된듯 보였던 기독교 교리가들 사이에서의 삼위일체론을 둘러 싼 혼란과 투쟁은 끝이 보이지 않게 지속되고 있다. (로마의 절대권력의 힘으로) 예수를 억지로 신으로 정하고 반대파는 모조리 숙청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여기에서 대두된 교체신교의 성격을 없앨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예수를 신으로 인정하면서 생긴 다신교적 약점을 물고 늘어지던 이들의 문제제기와 도전에 맞서 예수를 신으로 인정하면서도 기존의 유일신교의 교리를 훼손하지 않아야만 했다.
즉, 야웨 유일신교를 따르게 되면 예수는 신이 될 수 없기에 기독교가 존재할 기반을 잃게 되고, 예수를 신으로 인정하면 야웨 유일신교의 정통적 교리구조가 붕괴되기 때문이었다.
결국 기독교 교리 이론 제공자들은 다른 방향에서 해법을 찾아 나섰다. 기존에는 신을 육체적 존재로 규정한 경향이 강했으나 이제는 3위1체론을 통해서 신격이 바로 신이라는 것이다. 동아시아 개념으로 본다면 주기론과 주리론 논쟁에서 주리론이 득세하여 세상이 있게 하는 원인이 실체적 기운에서 법칙적 원리로 바뀐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기존의 신은 실체(육체,에너지)였다면, 이제는 이치(원리,법칙)가 됨으로써 기독교는 야웨신을 '신격의 합성체'로 규정하였다. '신격(신의 품격)이야말로 야훼신의 본질이며, 야웨 자체'라는 것이다. 야웨신의 존재론 규정에 대한 신격의 3위1체론 개념은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1215)에서 정식교리로 인정됐다. 피렌체 공의회(1442)에서는 '신과 비신과의 관계를 제외한 신과 신의 관계에서는 모두가 하나다'라고 규정했다.
(특히 과도기의 상황은 요한복음의 경우가 두드러진다. 신이 실체적 존재에서 말씀이라는 원리, 법칙, 이치 등과 같은 개념으로 넘어 가는 과정을 잘 보여 준다. 요한에 의해 나중에 쓰여졌다는 요한계시록에서는 구약성경적 표현구조를 통해 신이 실체적 존재로 다시 복귀하는 등 과도기적 형태를 고스란히 노출했다.)
신으로 격상되어 루아흐(rûah:바람, 대기, 호흡)에서 프뉴마(pneuma:호흡,영)라는 헬라어(그리스어) 명칭으로 교체됐다.
¶.루아흐 ☞→ 프뉴마 ¶.여러신☞ 유일신☞ 3개의 신☞ 연합☞ 하나의 신
따라서 3명의 유대인들의 신은 3개의 품격으로 대체되어 3개의 품격은 연합하여 하나의 신이 되었다. 이 교리적 개념은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시 되어 기독교 입문 과정인 세례의식에서도 핵심적인 항목으로 이 신격이 연합한 3위1체를 인정해야만 세례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즉 기독교는 3위1체론이 아니면 일신교로 생존해 갈 수 없다는 매우 취약한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결론내려 진다. (하지만 종교사업의 성공은 교리의 타당성과는 상관이 없어 보인다. 통일교나 여호와증인교의 경우에는 3위1체를 부정하고 있을지라도 종교사업에서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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