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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의 첫 머리에 오승환실장(한강문화재연구원 연구기획실장)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 백제 사람들이 왜 시루를 많이 사용했을까요 ? " 녀느 때와 마찬가지로 대답이 선뜻 나오지 않자, 질문의 화살은 맨 앞 쪽에 앉아 있던 나에게 날아왔습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오래 전부터 내가 품어 오던 것이었고, 지난 <아카데미 강좌> 때 백제인의 생활을 강의한 성신여대 교수로부터 대답을 들은 적이 있어서 정답을 맞추기가 쉬운 (?) 질문이었습니다.^^^
" 토기에 물을 붓고 밥을 지으면 흙 냄새가 많이 나니까, 시루를 사용하지 않았을까요 ? "
이 대답은 박물관에서 시루에 대해 해설할 때 관람객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내 유명한 하이라이트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정답은 "흙 냄새"가 아니라 토기 안쪽에 남는 "탄착흔[彈着痕]" , 나를 크게 실망시켰습니다.
* 설거지 한 후 그릇 안에 남아 있는 탄 자국과 밥풀 흔적(탄착흔)
백제인이 많이 살았던 주거지 터에서 우물이 발견된 경우는 없다고 합니다. (풍납토성 동벽 밖의 동네에서 목조 우물이 나온 것은 예외겠지요.) 그러니 먼 곳에 있는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 오는 것이 큰 고역이었겠지요. 토기에 밥을 해 보면 설거지가 힘들다고 합니다. 밥 탄 흔적이 그대로 남고(왼쪽 그림), 물을 부어 씻어도 밥알 자국이 남고 심지어 밥알 자리가 떨어져 나가 토기가 부스러져 파인다는 것입니다(오른쪽 그림.)
시루를 사용하면 뜨거운 김으로 밥을 찌니까 밥이 타지 않게 되고, 또 삼베로 밥을 쌌으니까 먼 우물에서 애써 길어온 물을 써서 설거지할 필요가 없으니 더 좋고, 오랜 세월에 걸친 시행착오 끝에 시루가 발명된 것입니다.
* 한 · 중 · 일 중 어느 나라 젓가락일까요 ?
강의가 한창 무르익어갈 무렵, 오실장이 다시 나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마 아까 정답을 맞추지 못한 나에게 만회할 기회를 주지 않았을까, 나의 긍정적인 추측입니다. ^^^
" 자, 여기 있는 세 개의 젓가락은 한국 일본 중국의 젓가락입니다. 위에서부터 어느 나라 젓가락인지 한 번 맞춰 보세요. "
일본이나 중국 여러 차레 다녀온 나라인데도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작은 나무젓가락, 중국은 쇠젓가락, 일본은 빨간 나무젓가락을 쓰는 것 같아 그렇게 대답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또 오답,
아무래도 오실장과 나는 궁합이 잘 안 맞는 것 같고, 오늘 따라 맨 앞 자리에 혼자 앉은 내 죄가 몹시 큰가 봅니다. ^^^
*중국인의 큰 밥상과, 일본인의 1인용 작은 밥상
중국인들의 밥상은 음식 가짓수도 많고, 여러 사람이 덜어 먹을 수 있도록 그릇 하나에 한꺼번에 가져오기 때문에 매우 큽니다. 그러니까 긴 젓가락은 중국, (빨간 색 좋아하는 나라답지요?). 일본 사람들의 밥상은 1인용이고, 생선구이를 많이 먹기 때문에 끝이 뾰죽해야 하고, 그러면 맨 위에 있는 작고 끝이 뾰죽한 나무 젓가락, 가운데 쇠젓가락은 당연히 한국. 날마다 세 끼 밥 꼬박 챙겨 먹을 때 쇠젓가락 쓰면서 쇠젓가락을 중국이라고 대답하는 내가 참 한심합니다. ^^^
심성이 착한 오실장, 미안했던지 내 시력이 좋지 않아 그런가 보다고 위로의 말 건네주니 조금 위안이 됩니다.^^^
백제인이 무엇을 어떨게 해 먹고 살았을까, 오래 전부터 궁금해 오던 의문이었습니다. 여기저기 뒤져보고 강의도 듣고 생각도 많이 해 오던 차, 22일 내일부터 <한성백제 박물관>에서 <백제의 맛>이라는 주제로 특별전시를 하게 되고, 21일 오늘 특별강연으로 오승환실장의 <동아시아 속의 백제 음식이야기>를 듣게 되니 오래 기다리던 강의입니다.
"촉망되는 소장학자"라는 사회자의 소개대로 오실장의 강의는 활력 넘치고 유우머가 풍부해 웃으며 들었습니다. 강의의 첫 사진은 " 12월 21일 오늘 지구 최후의 날" 이라는 제목의 마야 달력 한 장. 달력에 적힌 온도는 섭씨 999도. 지구종말의 그 날이라는 오늘, 함께 죽으려고 박물관에 모인 우리들에게 감사하다는 유우머, 폭소가 터졌습니다.
* 일본에서 심발형토기를 이용 스튜를 만드는 취사실험 모습
오실장의 역저[力著]『취사실험의 고고학』은, 여러 연구자들이 분류한 삼국시대의 취사용 토기가 실제 취사용기로 사용되었는지, 구체적인 취사방식은 어떠했는지를 밝히고자 실험을 바탕으로 검증된 삼국시대의 취사ㆍ조리 형태에 대해 서술한 책입니다.
오실장은 백제인들과 똑같이 직접 흙을 빚어 토기를 만들고, 노지[爐址]를 만들어 불을 피우고, 부뚜막을 만들어 장란형토기와 심발형토기에 현장에서 생산된 곡물로 밥을 짓고, 푸고, 밥맛을 보고, 설거지까지 하며 모든 과정을 직접 점검했다고 합니다.
밥도 [ 묽은 죽형태, 스튜형태, 밥짓기 ]의 3가지 취사실험을 따로 실시한 후, 시루와 장란형, 심발형 토기에 따른 조리 실험의 분석과 해석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는 등, 현장 중심의 연구를 하는 학자로 이름이 났습니다.
*심발형토기와 장란형토기와 시루
노지에서 주로 심발형토기에 죽이나 잡곡밥(스튜)을 끓여먹던 백제사람들은 그릇도 자꾸 넘어지고, 그릇 안에 누르거나 밥 탄 자국이 그릇 안에 그대로 남아 있거나 그릇 재료인 흙 부스러기와 함께 떨어져 나가 고생깨나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똑똑한 백제사람"이 생각해 낸 것이 부뚜막과 시루.
아궁이 안 가운데 받침돌을 괸 후 불을 지피고, 솥=(장란형토기)에 물을 붓고 받침돌 위에 올려 놓은 후, 시루를 얹으면 밥 짓는 준비는 끝 ! 솥걸이가 있으니 솥이 넘어질 염려가 없고 뜨거운 김으로 밥을 지으니 탈 염려도 없고 더구나 설거지할 필요도 없으니 일석이조, 밥짓기가 즐겁습니다 !!! 그리고 불길이 방바닥 밑을 통과하며 온돌을 데우고 굴뚝으로 빠져나가니 방도 뜨끈뜨끈, 지친 몸이 금세 풀립니다.
솥에 나타나는 검게 탄 자국을 보면 부뚜막의 높이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보통 솥의 ⅔ 정도가 불에 의해 검게 그을린다고 합니다. 또 시루와 솥이 만나는 이음새(시루번)를 지금은 밀가루를 이겨 바르지만, 그 당시는 물에 젖은 천으로 감아두면 천이 마르는 모양을 보고 밥이 어느 정도 익었나 가늠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 가야의 부뚜막과 시루
시루의 등장으로 밥을 비롯한 떡 같은 것은 시루에서 짓고, 물기 많은 국이나 찌개 같은 반찬은 밑바닥이 납작하고 키가 작은 심발형토기에 담아 아궁이 안에 남은 불로 조리했다고 보여집니다.
백제에서 본격적인 쌀농사(논농사)가 시작된 것은 다루왕 6년인 33년, 그 때까지 주식이 좁쌀이고 밭에서 재배된 육도(밭벼)가 잡곡이었던 청동기 시대와는 달리 논농사를 통해서 수확량이 많아진 쌀이 주식이 되는 시대가 찾아온 것입니다.
쌀농사가 시작되면서 수확된 쌀과 논에서 잡은 다양한 민물고기와 결합하여 식해와 젓갈을 담가 즐겨 먹었습니다. 한나라의 무제가 동쪽의 오랑캐를 쫒다가 해안가에서 동이족이 만들어 먹었던 젓갈을 먹고 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기록은 바로 서해안에서 잡히는 어종으로 백제 사람들이 즐겨 먹었던 젓갈인 ·상어· 숭어젓갈이었습니다. 또 된장과 포와 회와 김치 같은 찬 음식도 먹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풍납토성 경당지구 구덩이에서 확인된 음식 재료만 하더라도 소·말·돼지·사슴 등의 포유류와, 담수어인 붕어와 잉어, 해수어인 참돔· 복어 ·상어· 준치· 조기, 패류로는 다슬기· 고둥· 백합, 조류로는 닭, 파충류로는 자라· 뱀의 등입니다. 백제 사람들은 자지 않고 먹고만 살았나, 의문이 갈 정도로 진수성찬, 상 다리가 휘어졌습니다. ^^^ 특히, 치명적인 신경독이 있어 오늘날에도 전문요리사만이 손댈 수 있는 복어를 식용했다는 점에서 백제 사람들은 미식가들입니다.
수수허리에 의하여 일본에 전해진 김치는 수수보리지로서 김치감에 쌀죽을 넣어 담그는 형태의 김치였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김치는 초기 백제 시대에서 만들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수수허리는 누룩을 이용하여 만든 발효주도 일본에 전해줌으로써 백제의 앞선 음식문화가 일본에 전래하게 되었습니다.
무령왕릉에서 나온 숟가락 세트는 가장 오래된 유물입니다. 숟가락은 뜨거운 국물을 먹지 않는 일본에서는 볶음밥 먹을 때만 쓰고, 중국에서는 명나라가 남경에서 북경으로 서울을 옮기면서 주식이 국수로 변했고, 큰 그릇에 담은 음식을 국자로 떠서 앞 접시같은 그릇에 담아 젓가락으로 먹게 되니 차츰 숟가락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라면에다가 밥 말아 먹는 우리나라만 일편단심 계속 숟가락을 쓰고 있다는 설명이 흥미로웠습니다.
중국에서는 젓가락에 구멍을 내서 짝이 없어지지 않도록 묶어 놓기도 했는데, 강서성에서 처음으로 나무 젓가락을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음식문화의 변화에 따라 처음에 쓰던 숟가락을 안 쓰게 되는가 하면, 우리나라도 점차 숟가락을 쓰는 빈도가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에 얼핏 생각해도 맞는 이야기 같습니다.
오실장의 강의는 풍부한 자료와 유우머, 현장감 넘치는 생생한 내용, 무엇보다 '신나게' 강의하는 모습에서 역사를 사랑 하고, 고고학을 사랑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즐거움과 활력이 넘쳐 강의를 듣는 나도 덩달아 신이 나고 즐거웠습니다. 특별전 <백제의 맛> 개막식이 있어 흥미진진한 강의, 끝날 수 밖에 없는 게 무척 안타까워서 대신 모두들 힘찬 박수로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 개막식 인사를 하는 이인숙 관장
개막식이 열리기 전 박물관에서 마련한 시루떡을 맛나게 먹었습니다. 팥고물도 잘 익었고, 떡도 차져서 맛 있게 먹는데, 가야금 연주로 개막식 분위기까지 돋우니 옆에 함께 앉아 있던 선생님 한 분, " 술도 맛 있는 음식인데 이렇게 좋은 잔치에 어찌 술이 빠졌느냐" 투정(?)을 부리는 말씀, 참 듣기 좋았습니다. ^^^ *** |
첫댓글 감사합니다. 참석하지 못하여 안타까웠는데, 선생님 글과 자료로 많은 도움 얻습니다. 메리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