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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후의 혁명이 놓친 것
열왕기하 9:6-10
6. 예후가 일어나서 안으로 들어갔다. 예언자는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 말씀을 전하였다.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서 선언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기름을 부어 야훼의 백성을 다스릴 이스라엘 왕으로 세운다.
7. 내가 이세벨의 손에 죽은 예언자들뿐 아니라 나의 모든 종들의 원수를 갚으리라. 그러니 너는 네가 섬기던 아합의 가문을 쳐부수어라.
8. 내가 아합 가문에 속한 사내 녀석들은 종이든 자유인이든 씨도 남기지 않고 쓸어버리리라. 그리하면 아합의 온 가문이 망하리라.
9. 나는 아합의 가문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가문이나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가문처럼 만들리라.
10. 이세벨의 시체는 묻어주는 사람이 없어, 이즈르엘에 있는 제 땅에 버려져 개들이 뜯어먹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젊은이는 문을 열고 도망하였다.
을사(乙巳)년 새해도 벌써 한 달이 훅 지나갔습니다. 지난주 26일에 드디어 검찰이 윤석열을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기소 했습니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54일 만이었습니다. 검찰이 요구한 구속기간 연장을 법원이 2번이나 기각하였고 이에 전국 검사장 회의 끝에 결정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며 혹시 검찰이 윤석열을 풀어주면 어떻하나? 하는 염려로 밤잠을 설친 우리 국민들에게는 정말 좋은 설 선물이 되었죠. 하지만 아직도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과 대선을 통한 정권교체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혹 우리 국민들의 감시와 투쟁력이 약해진다면 외세를 등에 업고 이 나라를 주물러 왔던 기득권 적폐 세력이 어떤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말 나온 김에 지난 54일의 주요 시건들을 살펴 볼까요?
24년 12월 3일 밤 뜬금없는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가 있었습니다. 모두가 어리둥절한 상황에서도 애국 시민들과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발빠르게 국회로 모여들었고, 4일 01시 1분에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하였습니다. 윤 일당이 2차 계엄을 시도하였으나 무위로 그치고 6시간 만에 비상계엄은 해제되었죠.
국회는 14일, 윤석열 탄핵소추안 2차 투표에서 204표로 가결하였고 대통령 권한은 정지되었습니다. 18일 검찰은 내란혐의 사건을 공수처로 이관하였고 공수처는 윤석열이 출석요구를 3번 불응하자 12월 31일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체포에 나섰습니다.
해가 바뀌어 1월 3일 체포영장 집행을 시도하였지만 경호처의 완강한 저항에 막혀 5시간 30분 만에 무산되었습니다. 1월 7일 체포영장을 재발부 받은 공수처는 15일 경호처 직원들의 협조로 윤석열을 체포 서울구치소에 구금하였죠. 16일 윤측은 체포 적부심을 신청하였으나 기각 당했고, 공수처는 17일 서부지법에 윤석열 구속영장을 신청합니다. 18일 법원은 윤석열이 출석한 가운데 영장실질심사를 하였고 19일 새벽 구속영장을 발부하죠. 이로서 헌정사상 현직 대통령이 처음 구속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법원 밖에서 시위하던 윤의 극렬 지지자들은 서부지방법원을 부수고 담당판사를 잡겠다고 폭동을 벌였습니다. 법원은 폭도들의 난동으로 초토화 되었고 아침이 되어서야 진압됩니다. 이 폭동으로 경찰 51명, 민간인 41명이 다쳤고, 공수처 차량 2대와 언론사 취재 장비 등이 파손되었습니다. 경찰은 95명의 가담자들을 체포하였고 이중 63명을 구속하였죠. 이 사건은 국민의힘 국회의원, 전광훈 목사 일파, 극우 유튜버들의 선동으로 시작된 계획된 범죄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법원은 대법관 회의를 열고 “재판을 이유로 법원을 집단적, 폭력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사법부의 기능을 침해하고 헌법 질서의 근간을 훼손하는 행위로 결코 용인될 수 없다”고 천명하였죠.
1월 23일 공수처는 검찰에 기소를 요청하였고 검찰은 구속기간 연장을 2번이나 신청하였지만 법원은 모두 기각하였습니다. 결국 코너에 몰린 검찰은 26일 윤석열을 계엄선포 54일 만에 구속기소 하였습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헌재의 파면 결정, 내란 특검 시행을 통한 내란과 동조세력의 일망타진입니다. 지금 대통령실과 행정부의 내란 동조자들, 뒤에 숨어서 내란을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김건희, 김태효, 노상원 등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필요합니다. 아울러 이번 서부지방법원 폭동을 주도했던 국민의힘 의원들과 극우 유튜버, 특히 전광훈 일당과 같은 사이비 종교세력을 발본색원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후라는 장군을 통한 역성혁명을 다루고 있는 구절입니다. 아합 왕가의 학정과 타락, 우상숭배에 맞서 종교개혁을 내세운 급진적이고 폭력적인 유혈 혁명이 일어난 겁니다.
예후의 혁명은 예언자 엘리사의 신탁으로부터 비롯되죠. 엘리사는 야훼의 명령에 따라 젊은 예언자 수련생을 불러 예후에게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울 것을 명령합니다. 그 청년 예언자는 라못길르앗에 있는 예후를 찾아가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 야훼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서 선언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기름을 부어 야훼의 백성을 다스릴 이스라엘 왕으로 세운다. 내가 이세벨의 손에 죽은 예언자들뿐 아니라 나의 모든 종들의 원수를 갚으리라. 그러니 너는 네가 섬기던 아합의 가문을 쳐부수어라. 내가 아합 가문에 속한 사내 녀석들은 종이든 자유인이든 씨도 남기지 않고 쓸어버리리라. 그리하면 아합의 온 가문이 망하리라. 이세벨의 시체는 묻어주는 사람이 없어, 이즈르엘에 있는 제 땅에 버려져 개들이 뜯어먹을 것이다'"라고 말이죠.
청년 예언자는 엘리사의 당부대로 그 임무를 마치자마자 문을 열고 도망하였다고 성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강고하고 포악한 아합왕과 이세벨에게 대항하여 새 세상을 꿈꾼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모한 일인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아합의 범죄가 얼마나 심각했기에 야훼께서 역성혁명을 명령하셨을까요?
아합(BC. 871~851)은 북이스라엘 왕국의 7대 왕이자 오므리 왕가의 두 번째 왕이었습니다. 그는 사마리아에서 22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는데, 성서는 그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지은 죄를 그대로 따라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합은 페니키아 왕실 여자인 이세벨을 아내로 들이며 사마리아에 바알 신전과 아세라 목상을 세워 백성들이 이방신을 섬기도록 부추겼습니다(열왕기상 16:31-33). 또 아합은 이세벨의 주도로 야훼의 예언자들을 대량 학살하는 것을 방조, 협력했습니다. 이에 맞서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과 갈멜산의 대결을 벌이기도 했죠(열왕기상 18:4, 19-40). 아합은 이세벨과 공모해 나봇을 죽인 뒤, 그의 포도원을 빼앗았습니다. 이는 탐욕과 권력 남용,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정을 보여준 사건으로 아합 부부의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열왕기상 21:1-16). 아합은 야훼의 경고도 무시합니다. 미가야 예언자의 경고를 거부하고 아람과의 전투에 나갔지만, 결국 전사하고 말죠(열왕기상 22:8-38). 아합과 이세벨의 행태는 이스라엘을 영적·도덕적 타락으로 내몬 씻을 수 없는 범죄였습니다. 특히 우상 숭배와 사회적 불의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으로 이끈 핵심 요인으로 강조됩니다.
청년 예언자에게 기름 부음 받은 예후는 라못길르앗에 주둔한 이스라엘 군대의 장교들로부터 지지를 받습니다. 그는 아합의 아들 요람 왕을 타도할 것을 천명하고, 동료 장군들은 그를 왕으로 인정하며 반란에 합류합니다.
예후는 군대를 이끌고 이즈르엘 성으로 돌진합니다. 예후는 이즈르엘 나봇의 땅에서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아합의 사위)와 맞서게 됩니다. 요람이 예후에게 "예후 장군, 잘 되어가오?"하며 묻습니다. 예후는 "네 어미 이세벨이 우상을 섬기며 음란을 피우고 밤낮으로 마술이나 일삼고 있는데 잘 되어가느냐가 다 무슨 소리냐?"하며 적의를 드러내죠. 위기를 느낀 요람은 병거를 돌려 도망치며 아하지야 왕에게 "아하지야 왕, 반역이오" 하고 소리쳤습니다. 예후는 화살을 메겨 요람의 등을 겨누고 쏘았고 화살은 그의 가슴을 뚫었습니다. 유다 왕 아하시야도 도주하다가 므기또에서 부상을 입고 사망합니다(열왕기하 9:16-27).
예언대로 이세벨 역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이세벨은 예후가 오는 것을 창문 아래로 보며 "상전을 죽인 역적 지므리 놈아, 그래 일이 잘 되었느냐?"하고 소리쳤습니다. 예후가 창문을 쳐다보며 말하죠. "거기 내 편을 들 자가 아무도 없느냐?" 그러자 내시 두엇이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내려다보았습니다. 예후가 소리쳤죠. "그 계집을 떨어뜨려라." 내시들이 그 여자를 떨어뜨리자 피가 담벽과 말에 튀었습니다. 예후가 탄 말이 이세벨의 몸을 짓밟았죠. 그녀의 시체는 개들이 먹어치웠고 엘리야의 예언은 성취되었습니다(열왕기하 9:16-27).
예후의 헤렘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예후는 사마리아의 궁내 대신과 장로들에게 편지를 써서 아합의 70명의 자손을 죽이고, 그 머리를 가져오게 합니다. 예후는 그 머리들을 성문 앞마당에 두 무더기로 쌓아 보여줌으로써 반대 세력을 위압합니다. 그리곤 이즈르엘에 남아 있던 아합의 고관, 친구, 제사장들도 모두 죽이죠. 유다왕 아하지야의 동생들 42명도 그 칼끝을 피하지 못하였습니다(열왕기하 10:1-17).
예후는 바알 숭배자들을 처단하기 위해 계략을 꾸밉니다. 바알에게 성대한 제사를 드리겠다는 구실로 바알신전에 모든 숭배자들을 모은 뒤, 군사를 동원해 학살하고 신전을 파괴합니다(열왕기하 10:18-28). 이로써 북이스라엘에서 바알 숭배는 일시적으로 사라집니다.
예후는 아합가문을 쓸어버린 대가로 이스라엘 왕위에 오릅니다. 하지만 그는 이스라엘을 죄에 빠뜨린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계승하죠. 베델과 단에 세운 금송아지를 그대로 섬기는 잘못을 범한 것이죠. 그 결과 야훼의 진노를 사고 이스라엘은 주위 나라에 침탈을 받게 되었습니다(열왕기하 10:28-32).
예후의 혁명은 하느님의 의를 바로 세우기에는 부족한 것이 많았습니다. 예후의 혁명은 종교개혁의 대의를 가지고 있었으나 또 다른 정치적 폭력을 휘두른 정권교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바알 신앙은 폐지했으나 여로보암의 전통인 금송아지 숭배를 없애지 않아 종교개혁도 결국 실패해 버리죠.
예후 왕조의 피의 숙청은 오므리 왕조의 정책에 의거하고 있던 주변 국가와의 동맹 체제를 한꺼번에 파괴시키고 맙니다. 이세벨의 처형으로 두로와의 관계가 단절되었고 아하시야의 처형으로 남유다와의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었죠. 이러한 주변 국가와의 동맹 체제 와해로 북이스라엘은 물질적인 번영의 주요 원천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예후는 혁명을 감행해 놓고도 국가를 정상으로 회복시킬 만한 능력이 없었습니다. 5대까지 이어진 예후왕조는 매우 취약하였고, 마지막 왕인 스가랴는 살룸에게 암살당하며 망하죠, 예후 왕조 이후 다섯 왕들 가운데 4명이 암살당하는 등 북이스라엘의 말기는 매우 불안정하였습니다.
종교와 사회적 혼란이 현실 권력 때문에 발생하였을 때 역성혁명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후의 혁명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허가하고 백성들이 원하였던 혁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예후의 혁명은 하느님의 공의가 살아나게 하고 백성들의 종교적, 사회 경제적으로 제 자리를 찾게 하는데 실패했습니다. 겉으로는 바알 신앙을 척결하는 듯했으나 금송아지 숭배라는 욕망을 버리지 못하였죠. 즉 예후가 종교적 명분으로 혁명을 일으켰지만 성공 후 야훼 하느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정치적 욕망에 치우침으로 이스라엘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일들은 늘 반복되었습니다. 해방 이후 우리 현대사에 있어서 혁명적 상황은 여러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늘 기득권 세력에게 되치기당해 왔습니다.
지금 또한 우리는 역사 속에서 가장 중대하고도 희망적인 혁명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권력에 의한 친위 쿠데타를 우리 국민의 힘으로 막아내고, 그 뿌리를 캐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는 것이죠. 하지만 80년을 지배해온 기득권 카르텔의 저항도 그만큼 거셉니다. 이를 어떻게 잘 진압하고 정리해야 하는가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는 것이죠.
제대로 된 역성혁명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도 혁명의 원칙과 기준이 분명해야 합니다. 단지 피상적으로 피아(彼我)를 구분하고, 증오에 차 폭력을 휘두르는 것으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더욱 냉철한 이성과 행동으로 불의와 부패를 척결해야 하는 것이죠.
가장 먼저 경계하고 뿌리 뽑아야 할 것은 내란 동조세력을 정확히 분별하고 그 준동을 막는 것입니다. 언론인 오태규씨는 민들레에 <내 주변에 숨어 있는 ‘내란 동조자’ 감별법>이라는 칼럼을 싣고 5가지 유형의 사람을 조심하라고 권고합니다.
첫째는 ‘계엄을 하려면 프로답게 확실하게 했어야지, 아마추어처럼 서투르게 하니 되겠느냐’라며 계획과 실행의 불철저함을 타박하는 사람들이랍니다. 이들의 특성은 절대 위헌·위법의 무도한 내란 행위를 먼저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앞서 내란을 성공시키지 못한 무능을 탓합니다. 논점 이탈의 전형적인 내란 옹호 수법이라는 것이죠.
둘째, 내란을 실행하라는 명령을 완수하지 못한 군인의 무능을 탓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군인의 사명은 상부에서 명령하면 그게 옳든 그르든 따지지 말고 완수하는 것이라 목소리를 높이는 권위주의에 찌든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셋째는 윤석열이 계엄을 실행한 것도 나쁘지만, 그보다 탄핵을 남발하고 예산을 삭감하면서 정부가 일을 하지 못하도록 몰아붙인 야당의 책임이 더 크다고 주장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는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뒤집어 말하는 전형적인 허위 선동술입니다.
넷째, ‘윤석열 패거리나 이재명 패거리나 그놈이 그놈’이라며 정치 불신론 또는 양비론을 펴는 사람들입니다.
다섯째는 모임에서 ‘계엄이나 내란’과 관련한 얘기는 화제에 올리지 말자고 미리 선을 긋고 나서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화제를 원천 봉쇄하려는 사람은 윤석열 비판론이 확산하는 걸 꺼리기 때문일 공산이 큽니다. 비판론을 봉쇄함으로써 소극적으로나마 내란범과 내란 행위를 옹호하려는 속셈이 깔려있다는 의심을 살 만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국민의 여론을 호도하지 않도록 경각심을 가지고 막아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거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남발하고 선동하는 소위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위선을 까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헌법의 가치를 지키며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우리의 의사와 결기를 비폭력 평화집회를 통해 보여주어야 합니다. 100만, 200만 명이 모여도 쓰레기 하나 남기지 않는 평화집회는 서부지법 난동보다 수천 배의 힘이 있습니다.
저는 이번 내란 진압으로 열릴 세상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되길 기도합니다. 국민들이 지킨 민주주의가 또다시 정치인들이나 기득권층에 의해 오염되지 않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기 대선 과정에서 우리 국민들의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어야 합니다. 국민주권을 확고히 할 수 있는 공약들을 요구하고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압도적 지지를 보내야 합니다.
폭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절대 권력으로 세상이 달라지지도 않습니다. 모든 권력이 우리 국민들에게 귀속되는 그런 나라가 되도록 우리의 헌법과 사회 체계를 바꿔야 하는 것이죠. 그 일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예후의 역성혁명이 놓친 게 무언지 우리는 오늘 분명히 배워야 합니다. 진정한 혁명은 군사적 힘과 폭력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예후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국민의 마음을 대변하지 않는 혁명은 쿠데타가 되어 또 다른 고통만 안겨줄 뿐이라는 것입니다.
입춘 한파가 다가온다고 합니다. 이 한파를 뚫고 이번 봄은 우리 민족과 국민에게 정말 따스한 봄이 되길 기도합니다. 80년 치욕의 역사를 걷어내는 복된 날이 속히 오기를 기원하며, 이 긴 겨울을 해체 나가는 모든 이들에게 새날을 여시는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