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28주일 강론 : 나병환자 10명(루카 17,11-19) >(10.9.일)
1. 제가 여기 부임하던 날인 8/5(금) 11시 장례미사를 바쳤습니다. 그런데 그날 아침 9시, 본리본당 떠날 때 장례미사를 드렸기 때문에, 장례미사를 두 번 드린 겁니다. 정말 특이한 경우입니다.
아무튼 고인뿐만 아니라 유가족에게는 정말 뜻 깊고 고마운 일이라 생각해서, 장례미사를 하루에 두 번 드렸습니다.
누구든지 세상에 태어나면 언젠가 반드시 죽습니다. 그런데 죽기 전에 오랫동안 아픈 분도 있고, 잠깐 아프다가 죽기도 하고, 갑작스런 사고로 죽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병자들이 예수님을 직접 찾아갔던 경우도 있지만, 예수님이 병자들을 찾아가신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병자들을 배려하셨기 때문입니다.
2. 우리 본당의 병자봉성체는 매월 둘째 목요일입니다. 원래 교회는 전통적으로 첫목요일에 성시간, 첫금요일에 봉성체, 첫토요일에 성모신심미사를 봉헌해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본당 상황을 고려해서, 11월부터는 첫목요일인 11월 3일에 봉성체를 가겠습니다.
1) 여기 부임 후 5일째였던 8월 9일(화) 아침 10:40, 천주성삼병원에 입원 중이던 윤종호 세례요한 형제에게 병자성사와 전대사를 드렸습니다. 간암 말기였고, 임종시기가 임박함을 직감했습니다. 결국 8월 20일(토) 10시에 장례미사를 봉헌했습니다.
2) 9월 14일에는 4구역장 안현숙 레지나의 엄마(전화자 마리아)에게 병자성사를 드렸는데, 너무 말라서 20kg 겨우 넘을 것 같아 보였습니다. 숨을 못 쉬던 고인은 결국 16일에 임종하셨습니다. 경상중앙병원에서 연도와 장례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 이후로는 병자성사 대상자가 없어서 다행입니다.
3) 병자봉성체나 병자성사를 하는 이유는,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성당에 오지 못하는 분들을 위한 사목적인 배려입니다. 봉성체 환자들은 한 달에 한 번인 봉성체를 손꼽아 기다리는데, 병원이나 집에서 영성체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고마워합니다. 이처럼 한 달에 한 번 성체를 모셔도 감사해하는데, 성당에 직접 찾아올 수 있는 우리는 미사 참석할 때마다 영성체할 수 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감사드려야겠습니다.
3. 신학교 3학년이었던 1994년 3월말에 들었던 일화입니다.
어느 보육원에 김 데레사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그 할머니는 어릴 때부터 눈이 멀어서 불편한 점도 많았고, 놀림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죽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수녀님의 도움을 받아서 그 보육원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열심히 살았던 할머니의 공로와 삶이 인정되어 기자와 인터뷰를 했는데, 그 중의 중요한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그 할머니는 매일 아침 4시에 일어나 아이들에게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20년간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아이들한테 손만 갖다 대도 아이들의 상태가 어떤지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아이들이 쌕쌕거리며 잘 자면 제일 행복하다고 했던 할머니에게 하느님은 너무나 다정한 친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머니의 눈을 멀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살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도 그 할머니처럼 어떤 처지에서든지 하느님께 늘 감사하며 살아야겠습니다.
4. 아씨시 프란치스코 성인의 일화입니다.
어느 날 저녁, 누가 프란치스코 성인의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한 험상궂은 나병환자가 서 있었고, 날씨가 몹시 추워서 그러니 몸을 녹일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래서 성인은 그의 손을 잡고 방으로 안내해서, 같은 식탁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나병환자는 너무 추워서 그러니, 알몸으로 자기를 녹여달라고 부탁했고, 성인은 입었던 옷을 모두 벗고, 자기 체온으로 그 나병환자를 따뜻하게 녹여줬습니다.
다음날 그 환자는 사라졌고, 왔다간 흔적조차 없었습니다. 그러자 성인은 모든 것을 깨닫고, 비천한 자신을 찾아주신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평화의 기도’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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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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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성인처럼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해야겠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사랑하는 맘으로 하면 능률이 오르고, 꽃도 사랑으로 기르면 더 잘 자랍니다. 봉사도 사랑으로 하면 힘이 하나도 안 듭니다. 우리가 지금 숨 쉬고 있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살아있는 시간 동안, 무슨 일이든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야겠습니다.
5. 예수님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병자들을 많이 고쳐주셨습니다. 그분의 말 한 마디면 어떤 병도 다 나았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병자들을 한꺼번에 치료할 수 있었지만, 한 명씩 치료해주셨습니다. 저도 가끔씩 교우들에게 안수해드리면 정말 고마워하십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안식일에도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의사가 자기 가족을 수술하는 마음으로 수술한다면 수술이 잘 되고, 환자는 치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기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하느님께 늘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