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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주일을 준비하는 토요일 주님은 오늘 이 말씀을 가지고 고민을 하게 하신다. 창세기 22장은 12장 만큼 이나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말씀, 피하고 싶지만 그것이 오늘 나에게 주는 또 하나의 시험이다.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 계속 머물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큰 시험을 허락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내 쫓게 하시고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게 하신 후 아브라함에게 더 큰 시험을 하고 계신다.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살면 살수록 시험은 더 큰 것이 오는 것일까? 믿음을 가지고 살면 살수록 주님은 더 큰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일까?
하나님은 20여 년 동안 부모님을 모시고 살게 하셨다. 아니 부모님과 함께 살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사업 실패로 부모님 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지만 이 못 난 자식을 위해서 집 담보로 보증을 서주셨던 것이 올무가 돼서 그만 어머니는 어머니 명의로 된 집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주님의 은혜로 무상거주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심으로 부모님과 함께 살아 올 수 있었다. 오랜 세월 분가의 문제를 놓고 기도해 왔었는데 드디어 주님의 은혜로 교회 근처로 사택을 얻어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막상 이사를 하려고 하다 보니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부모님을 위해서 살림살이들을 놔두고 와야 할 것들이 있는데 가지고 나올 수는 없고 다시 사기에는 부담스럽고.. 이런 저런 생각에 다시 마음이 복잡해 지기 시작했다. 또한 올 해 주님은 선교회를 통해서 목회사관학교를 담당하는 직분을 주셨다. 하지만 막상 직분을 맡고 나니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라 고민이 많아지게 되었다. 그런 나에게 주님은 오늘 부담스런 말씀을 묵상하게 하신다. 이전에 묵상했던 것들을 다 지워버려야 새로운 묵상을 할 수 있는데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늘 겸손하게 이 말씀을 가지고 다시 이런 질문을 해 본다.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에게 이런 시험을 하고 계실까?” “12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제야.. 아노라?’그렇다면 하나님이 지금까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경외함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오늘 이런 시험을 하고 있다는 말씀인가? ‘네 독자까지 내게 아끼지 아니 하였으니’이삭까지 아끼지 않고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믿음의 마음을 하나님은 원하셨다는 것인가? 하나님은 여기서 아예 ‘이삭’을 독자라고 표현하신다. 그렇다면‘이스마엘’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은 무엇이라는 말씀인가? ...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험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브엘세바에서 모리아산까지 삼일 길을 가면서 하나님께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간다.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주님이 허락하신 이 길을 어떻게 가야할까? 아브라함은 미적미적, 꾸무럭거리지 않았다. 내일로 미루지도 않았다. 일찍 서둘러 준비해서 출발했다. 여기서 준비했다는 것은 드리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저 그 모습만으로 이 시험에 임했을 뿐이다.
아브라함은 산에 이르자 종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어떻게 아브라함은 이런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 분명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서 준비하고 이곳까지 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번제를 드리기 위해서 올라가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종들에게 기다리라고 말하고 있다.“내가 내 사랑하는 아들 이삭과 함께 하나님이 지시한 곳에 가서 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우리가’다시 너희에게로 돌아올 것이다.”이삭이 진실을 알면 두려워서 올라가지 않을까봐 두려워서 이런 말을 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이것은 분명 아브라함의 믿음의 고백이었다.
아브라함은 번제 나무를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들고 산으로 올라간다. 그런데 여기서 아브라함이‘믿음’을 가지고 이삭과 함께 올라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말을 이삭에게 한다. 이삭이“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이것 역시 이삭이 두려워 할까봐 둘러대는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일러 주신 곳에서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이삭을 붙잡아 결박한 후에 제단 나무 위에 올려놓는 행동을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칼을 잡고 정말로 이삭을 잡으려 칼을 든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때 하나님의 사자가 다급한 목소리로“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히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을 브엘세바에서 삼일길이나 떨어진 모리아 산까지 오게 하셨을까? 물론 후에 그곳이 예루살렘성전의 자리가 되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오늘은 이런 생각이 든다. 3일 이란 시간과 그 먼 거리는 충분히 하나님의 시험에 불합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숨어 있는 시간과 거리라고 볼 수 있다. 순간순간 아브라함의 머릿속에 이삭을 드리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이 얼마나 혼란스럽게 했을까? 이삭이 아버지를 부를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조렸을까? 이삭을 붙들고 번제 나무 위에 올릴 때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오늘 이 말씀은 마음에 와 닿는다.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
하나님이 오늘 아브라함에게‘이제야!’하시는 그 마음은 바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마음을 이제야 알았다는 말씀이다. 그것은 곧 아브라함이 아버지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 것이다. 이제야 비로써 아브라함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바로 사랑하는 아들 독자까지 아끼지 않는 마음이셨던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 아버지의 마음을 믿기에 믿음으로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시험을 통과하지 이런 축복을 주신다. ‘19 이에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주하였더라’ 오늘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언약보다 종들에게 믿음으로 고백했던 것처럼 번제로 드렸던 독자 이삭과 함께 브엘세바에 있는 집을 향해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 이삭과 함께 말이다.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마음이 복잡해져 있는 나에게 주님은 나의 시선을 아들과 함께 행복한 마음으로 다시 집으로 향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게 하신다.‘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다시 바라보게 하신다. 새로운 환경에서 무엇이 채워져야 할지 고민하는 것 보다. 새로운 직분에 어떻게 하면 잘 할까 고민하는 것 대신에 사랑하는 아버지와 함께 고민하고 동행하길 원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보게 하신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저에게 자식을 향한 애 뜻한 아버지의 사랑을 보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자식들에게 좋은 환경을 허락해 주지 못하는 미안한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힘들어 할 때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어 하시는 육신의 아버지의 마음을 보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나에게 모든 것을 다 채워주기를 원하시지만 그 보다 십자가에서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의 생명을 나에게 대신 주시기 위해서 번제로 드리신 아버지의 사랑을 보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그 사랑으로 다시 출발하게 하시고 이 길에 저와 함께 동행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저에게도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이해하므로 묵묵히 주님과 함께 이 길을 걸어 갈 수 있도록 주의 사랑으로 채워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