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신밟기는 풍물이 가지는 연행의 요소들과 풍물굿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풍물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지신밟기는 풍물이 가지는 제의적(祭儀的)인 요소와 생산적인 요소, 그리고 유희적인 요소를 모두 빠짐없이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삶을 영위하고 마을 구성원들이 함께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우리들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지신밟기는 풍물을 통하여 자연을 만나고 부락 공동체 구성원들의 신명을 돋우어 건강한 삶의 관계를 회복하여 보다 더 신명나는 생산활동에 힘을 모으기 위해서 연행된다. 지신밟기가 비록 지나간 농경시대의 연행 형식이라고는 하나 우리가 자연과 더불어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조화로운 삶의 정신을 깊이 체득할 수 있도록 지신밟기를 오늘의 시대에 되돌려 놓아야 한다.
모든 왜곡되고 잘못된 삶의 관계들을 풍물굿을 통하여 바로 잡고 건강한 공동체 생활을 회복하여 그야말로 신명나는 삶을 지향하는 것이 바로 지신밟기 본연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막힌 것을 뚫고 비틀린 것을 바로 펴서 우리의 생활을 건강하고 신나는 모습으로 되돌려 놓는 이 지신밟기의 한판 풍물굿이야 말로 우리 민중들이 스스로가 삶의 질병들을 치유하여 가는 기막힌 생명력의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왜곡되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매말라 가는 세태속에서 지신밟기는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건강하고 바람직한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지신밟기는 대개 주산풀이, 당산굿, 우물굿, 문굿, 마당밟기, 성주풀이, 조왕풀이, 철륭굿, 마굿간풀이, 곳간풀이, 대문굿, 술굿 등의 순서로 전개된다.
주산풀이의 내용은 대개 천지 창조의 내력을 간략히 이야기를 하고 산과 물의 흐름을 짚어가면서 현재살고 있는 마을의 주산의 내력을 사설로 이야기한다. 주산의 개념은 전통적인 한국의 풍수사상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이 풍수의 내용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기의 운행의 흐름은 한국인에게는 보편적인 세계관하고도 일정부분 연관을 가지고 나아가서는 우리 풍물 장단의 운영과도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풍수의 핵심은 땅의 기운의 움직임을 바로 파악하여 인간의 생활을 보다 이롭게 하자는 것으로 이 기운의 흐름은 우리 신체를 움직이는 근본적인 힘일 뿐 아니라 나아가 이 세계를 움직이는 우너리가 되는 것이다. 땅의 기의 흐름을 기본적으로 이끌어 주는 것은 천체의 운행이고 이 기가 맺히고 흐르는 자용에 의하여 산맥의 흐름이 결절이 되고 이 기를 멈추게 하고 머물게 하는 것은 물의 작용인 것이다. 땅의 기의 흐름이 원활하고 순탄하지 않으면 그 곳에 사는 인간의 몸의 기운도 순행하지 못하고 왜곡되어 결국은 인간의 몸을 해치게 되는 것이다.
이 땅과 물의 흐름을 잘 파악하는 것은 비단 자연을 올바로 이해하는 지름길일 뿐 아니라 자연에 순응하여 사는 인간의 지혜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신 밟기는 이러한 땅의 흐름에 수동적으로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이 적극적으로 대처해 가는 민중의 지혜와 역동성의 표현이기도 하다. 민중들은 이 땅의 기운이 막히고 왜곡된 부분을 풍물의 힘으로 즉 민중의 역동적인 기운으로 뚫어가고자 하였다. 풍물의 기운은 아주 강력하다. 이 풍물의 기운은 능히 사람들의 막힌 기운들을 뚫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들이 살고 있는 땅의 기운들의 왝곡된 부분들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이다. 강증산이 말하는 천지공사가 어쩌면 풍물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일 수도 있다.
주산 풀이는 바로 산과 강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의식인 것이다. 산의 흐름을 백두대간의 조산인 백두산부터 남쪽의 지리산까지를 축을 하고 각 지역의 정맥을 이어주는 것이다. 강은 산을 넘지 못하고 산도 강을 건너지 못한다. 강과 산은 서로 도자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듯하지만 그러나 그 실은 산과 강은 하나로 어울려 있는 것이다.
서로 반대되는 것이 어울려 공존하고 있다는 존재 양식의 파악이 우리 민중들의 세계관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산과 강은 서로 모순되지만 그러나 강이 없이는 산의 경계가 있을 수 없으며 산이 없으면 물길 또한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산과 강이 어우러져 비로소 삶의 터전을 만든다 서로 상반되고 모순되는 것들이 모여 우리들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주산풀이는 우리 삶의 근본적인 터전이 바로 산과 강으로 표현되는 자연에 있으며 이 자연의 순연한 기운이 인간들의 삶의 모습을 결정짓는다는 생각과 어울려 인간의 역동적인 삶의 표현으로 이제는 역으로 삶의 공간들을 정화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들이 결합된 형태이다.
당산은 주산과는 다르다. 주산이 자연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면 당산은 비로소 의식을 통하여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당산은 자연과 인간이 만나는 곳이다. 당산을 통하여 신성을 비로소 몸을 나타낸다. 그래서 당산은 신성한 곳이고 특별한 곳이다.
당산은 주로 큰나무를 매개로 한다. 당산을 통하여 우리는 신화의 세계를 만난다. 당산은 우리 주위에 남아 있는 신화의 공간이다. 단군 신화의 신단수는 바로 당산나무이다. 우리는 나무를 통하여 신과 교감을 한다. 나무는 땅에서 뿌리를 박고 하늘로 뻗어가는 존재이다. 땅의 기운과 하늘의 기운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므로 나무는 신성한 것이다. 인간은 나무를 통하여 신을 받아들이고 나무를 세워서 신성을 표시하였던 것이다.
솟대가 바로 이러한 신화적인 공간의 상징물이 된다. 그러나 마을에 그 마을 덮는 노거수가 있으면 그것이 바로 신화적인 공간의 상징물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단군 신화나 고구려의 건국신화는 바로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의 관계를 보다 더 명확하게 보여 준다.
환웅은 친부인을 가지고 운사, 우사, 풍백은 바로 자연의 기운을 순조롭게 하는 존재들이다. 이 천부인(꽹가리), 운사(장구), 우사(북), 풍백(징)은 이를테면 하늘의 사자로서 인간의 살아갈 자연을 조화롭게 하는 존재일터인데 그렇다면 쇠와 징, 그리고 장구, 북 등 사물은 바로 인간의 생활을 순조롭게 하는 신의 선물인 셈이다.
이 네가지 악기를 기본으로 하여 천지 자연의 조화를 이르고 비로소 인간의 삶의 터전이 닦아지고 이러한 삶의 터전은 생동하는 기운으로 나타나고 이 기운은 힘찬 소고의 춤으로 형상화 되는 것이다. 이 터전위에 인간의 다양한 삶들이 전개되는데 이것은 바로 여러 사람들의 군상 즉 잡색을 의미한다.
우물굿 혹은 용왕굿은 사람들의 생명의 근원인 물에 대한 굿이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특히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땅의 생명인 물이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물은 만물의 근원이다. 산이 멈추고 물이 흐르는 곳에 비로소 인간의 삶이 되는 것이다.
물을 의인화 혹은 신격화한 것이 용왕이다. 만물이 생존하기 위하여 물이 필요하듯이 하나의 마을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우물이 필요하다. 우물은 마을 생명의 근원적인 장소가 된다. 우물을 통하여 사람들은 비로소 생기를 지닌다. 우물의 신성함은 당산의 신성함과는 그 성질이 다르다.
당산은 범하지 못하는 금지된 장소로서 신성함이지만 우물의 신성함은 일상의 한가운데 있다. 당산은 특별한 경우에만 공개되고 공개되는 시간이라도 특별한 사람들에 의해서만 그 출입이 허락되는 반면에 우물의 경우는 항시 열려있는 공동 생활 공간인 것이다. 항시 열려있는 일상의 생활공간으로서 우물의 신성함은 바로 생명을 잉태하고 생산하는 사회의 생존력과 깊은 관계가 있다.
주산과 당산 그리고 용왕굿은 마을 공동체의 생존 양식을 풍물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굿들이 끝이 나면 이제는 각 집으로 들어 개개의 삶의 현장에서 축원을 한다. 각 가정은 우리들의 전통적인 사고 방식으로서는 사람만이 살고 있는 곳이 아니다. 우리들 가정은 사람과 신들과 자연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다. 그 곳에는 성주가 터주가 있고 철륭이 있고 조왕이 있고 주당이 있는 곳이다.
온갖 잡신이 들끓고 있는 듯 하지만 그곳에는 엄연한 질서가 있어 각기의 공간을 차지하고 서로가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인간의 삶의 터전은 인간만의 공간이 아니라 모든 자연적인 또는 신적인 존재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삶의 현장에서 이를 주관하는 것은 역시 인간이다. 인간이 삶을 꾸려 가면서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하여 자연과 신과의 관계에 갈등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 갈등을 풀어주는 의식이 성주굿이 되고 조왕굿이 되는 것이다.
지신밟기 풍물을 매개로 하여 신과의 화해를 시도하는 굿의 하나인 셈이다. 굿이 끝이 나면 당연히 놀이판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를 우리는 판굿이라고 한다. 이 판굿은 동네 마당에서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과 함께 밤을 세워 벌어진다. 제의와 놀이가 지신밟기에서 이렇듯 결합되는 것이다.
바람직한 놀이문화를 위하여
축제라는 말은 근래에 많이 쓰이는 말이다. 1960년대 개발의 바람이 불면서 사라진 전통적인 놀이와 굿이 이제 축제라는 이름으로 부활되고 있는 듯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놀이와 굿이 이제 축제라는 이름으로 부활되고 있는 듯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놀이와 굿 그리고 축제는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축제라는 말의 정체성이 제기되면서 잔치라는 말로 대체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아직도 축제는 절대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는 말이다. 각급 학교에서도 축제가 연례적으로 열리고 있으며 지역사회에서도 축제가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고 있다. 축제는 산업사회에 오면서 개인화와 세분화가 가속화되면서 점차 소멸되어 가는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기 위한 하나의 계기로 필요성이 제기된 듯하다.
축제의 필요성에서 보듯이 축제의 본질은 일체감의 형성에 있다. 일체감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자율성과 자발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축제는 현실의 공간과는 유리된 공간이며 여기서는 현실적인 여러 가지 사회적인 제약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일탈성과 집단성이 모여 축제에는 항상 난장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러한 난장을 서양의 학자들의 일부는 광기라고 표현하고 이러한 광기의 표출이야말로 축제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흔히 말하는 디오니소스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굿과 놀이 혹은 잔치에도이러한 난장은 반드시 존재하였다. 그리고 일견 광기의 표출과도 같은 허튼굿이 있지만 이것을 우리는 광기라고 부르지 않고 신명이라고 부른다.
신명과 광기를 같은 현상의 서로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이렇게 이름을 붙인 데에는 사고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광기 즉 인간의 디오니소스적인 측면은 분명히 이성 즉 플라톤적인 측면에 의하여 억압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억압을 분출하는 곳이 축제의 공간이고 이러한 억압의 해소야말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오늘의 심리학은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신명은 근본적으로 이 광기와는 구별되는 것이다. 광기의 표출은 억압의 발산이다. 그리고 모든 축제에 이러한 억압의 발산이 반드시 동반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신명의 표출은 이 광기의 발산과는 분명히 다르다. 신명은 인간의 생명력이 오롯이 표출될 때 일어나는 것으로서 우리의 놀이와 굿은 이 신명이 일어남을 목적으로 한다. 신명은 우리의 생명력이 억압을 받아 왜곡받은 상태에서 생명력이 온전히 표출되는 상태로 바뀔때 비로소 일어나는 것이다. 신명은 우리의 생명력이 고양되어 막힘이 없고 이그러지고 굽힘이 없을 때 일어나며 이러한 개개의 생명력이 온 누리에 흘러 넘쳐 세상을 그득 채울 때 비로소 극치에 도달하게 된다.
개개의 신명이 자신을 밝히고 고루 세상을 밝힐 때 대동세상은 가능한 것이고 이렇게 집단적인 신명이 표출되는 공간이 바로 굿과 놀이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축제는 단순히 자신의 억압을 표출하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생명력을 고양시키는 집단적인 신명이 펼쳐지는 판이 축제판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축제판을 통하여 우리 모두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신의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축제는 개인의 억압된 광기를 표출하는 장소로서만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참여자들의 공통의 소망 즉 건강한 미래에 대한 전망(비전)을 공유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자면 축제는 곧 ‘신명나는 살판’ 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 놀이판은 분명히 살판나는 시간이며 공간이어야 한다. 놀이판은 개인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자발적인 참여의 의지가 극대화되는 곳이어야 한다. 축제라는 이름도 좋고 굿이라는 이름도 좋다. 다만 그것이 놀이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
까이와는 사기꾼이나 직업적 놀이꾼에 의하여 놀이가 타락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의 정신이 현실에 의하여 감염이 될 때 놀이는 타락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놀이가 그 자유로운 상상력이 현실에 의하여 억압을 받고 놀이의 역동적인 신명이 현실의 제약으로 그 힘을 분출하지 못한다면 놀이의 창조적인 기능은 이미 그 생명을 다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순수하게 놀이 정신이 살아있을 때 놀이는 문화가 될 수 있으며 문화라는 형태로 존재할 때 비로소 놀이는 그 사회적인 기능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상업주의는 굿이거나 축제거나 그것을 이윤의 창출로 연결시키려 할 것이다. 그곳에는 소비의 자유밖에 없다. 단지 돈을 씀으로써 신명을 얻을 수 있다면 이미 그 사람은 물질의 노예가 된 사람일 것이며 더 이상 우리의 삶을 고양시킬 창조적인 에너지를 상실한 사람일 것이다.
놀이의 문화 창조적인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기 위하여 놀이 정신이 보전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 정신이 온전이 보전될 때 놀이의 기능화 역할이 제대로 작동되는 것이다. 살판나는 놀이판이 놀이판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리나 그 역동적인 생명력이 현실로 넘쳐날 때 비로소 놀이판은 그 생명력을 획득할 것이다.
풍물은 놀이의 전형이다. 그 속에는 굿이 있고 예술이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넘치는 신명이 있다. 자유로운 장단의 흐름이 있고 억압되지 않는 건강한 몸짓이 있다. 학교 현장에서 풍물이 학생 축제의 중심에 선다면 무엇보다도 교육적인 효과가 크리라 생각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신밟기 진행순서 ⑴집에 도착하여 그 대문앞에서 문굿 ⑵문굿이 끝나면 풍물을 치며 집안을 한바퀴 돎으로써 액을 쫒아주고 맑게 해주는 청을 한다 ⑶청을 하는 동안 주인장은 상을 차린다 상에는 소금한종지 쌀 한종지 물 한대접 초 등이 갖춰지면 되고 그외 과일등이 곁들여 지 면 좋으며, 과일은 홀수로 한다. ⑷청을 한후에 상이 차려진 앞에서 주인장을 모셔놓고 사설을 하면 주인장은 그 옆에서 계 속 빈다. ⑸사설이 끝난후에 상쇠는 촛불을 끄며(불어서 끄지말고 심지를 손가락으로 잡아서 끈다) 액이 모아진 물그릇을 집어 대문밖에 버린다. ⑹주인장에게 축원을 해주고 다음집으로 이동한다. 이때 주인장이 준비한 돈이나 쌀등의 재 물을 챙겨와야 하므로 뒷패가 많이 필요하다.
요령 ⑴문굿은 위에 제시된것 중 골라서 하면되며 ⑵본격적인 사설을 할때는 성주풀이를 끝까지 하면 좋으나 바쁘고 여건이 허락되지 않는 곳에선 달풀이로 짧게 끝낸다. 그외 유도리 있게 식당에선 조왕풀이를 하거나 가게풀이등을 함으로써 유연하게 진행해야 한다. ⑶사설을 하는동안에나 그외의 악을 칠때 치배들은 신나게 쳐야 한다. 지신밟기는 첫째도 흥이고 둘째도 흥이기 때문이다. ⑷사설은 위의 것도 많이 축소된 것이므로 이정도는 반드시 외도록 하자
천왕님 천왕님 천왕천왕 천왕님 (그랑땅/그랑땅/그랑그랑/그랑땅) 장단을 상쇠가 낸다. 치배들도 따라치는데 가락을 점점 빨리 하다가 다르르르 털면서 인사를 2번 한다. 이러한 과정을 3번 반복하는데, 상쇠는 가락을 낼 때 조금씩 빠르게 내어준다. 총 6번의 인사가 끝나면 모든 치배들은 제자리에 머리를 푹 숙이고 그대로 팍 앉는다. 고사를 지내며 축문을 다 읽고 ‘상향’ 할 때 굿거리를 치면서 일어난다.
여봐라 북쇠(수)야. 우리가 밤낮 풍악만 칠 것이 아니라 성주지신풀이 한번 해 보세. 천개에 자하고 지백은(지개는) 축하니 땅은 지시에 생긴 법이요. 인생은 묘하야 사람은 인시에 생겼고 그중에 성주부친이 생기고 그중에 성주모친이 생겼던 것이었다. 성주부친이 누구시면 천공황제가 분명하고 성주모친이 누구시면 옥질(진)부인이 분명하다. 슬하에 일점혈육 없어 무주남산 지치달라(아) 칠성단 모아놓고 백일정성 기도하니 지성이면 감천이라 옥황상제가 알읍시고(아시고) 자식을 주라고 분부한다.
상쇠: 어이 치배들 치배: 예이 상쇠: 안방차지는 아줌마 차지요 바깥차지는 아저씨 차진데 오늘 쥔네가 우리 풍물패를 위해 많은 음식과 술을 내놓으셨으니 우리 덕담이나하고 먹세 치배: 아 그 좋지. 상쇠: 우리가 이 집을 들어올 때는 만복이 따라 들어오고 우리가 이 집을 나 갈 때는 만액이 따라나가는데 일년이면 열두달 시시때대 드는 온갖 질병근심을 저 동해바다에 풍덩 쳐넣어 버리고 이집 재수가 물묻은 바가지에 치배: 깨달라 붙듯이 상쇠: 처녀에 치배: 총각붙듯이 함께: 다갈다갈 붙으소서
쇠를 치면서 흥이 나게 부르는 소리. 비나리는 빌어서 소원 성취를 바라는 소리다. 복이 내리기를 비는 소리니 이보다 더 좋은 소리가 어디 있겠는가.
축원하는 소리 모두를 ‘비나리’라 불러
정월이 되면 마을의 두레 풍장패들이 집집마다 다니면서 지신밟기를 하는 중에 축원 덕담을 하게 되는데 그 소리를 고사덕담 혹은 고사소리, 비나리 등으로 부른다. 물론 비나리란 고사소리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축원을 하는 소리 모두를 비나리라고 부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 전통의 소리에서는 많은 소리들이 구전되지만 고사소리만큼 다양한 소리가 나타나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에 소리를 하는 소리꾼마다 특징이 있는 소리를 하기도 하거니와 많은 사설로 인해서 부르는 사람들도 많지가 않다.
경기도 지방의 고사소리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나타나는 소리로 보면 거의가 동일하지만 소리꾼에 의해서 그 소리 나름의 특징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소리만 들어보아도 누구의 소리인지를 알 수가 있다. 첫째는 걸립패들이 부르는 전문적인 소리다. 이 소리를 가장 잘한 분이 바로 중요무형문화재 평택농악의 상쇠를 맡았던 최은창 선생이다.
또 한 분은 최은창 선생과 함께 걸립을 하던 김복섭 선생이다. 오죽했으면 두 분을 빗대어 ‘소리 잘하기는 최은창이요. 돈 잘 뺏기는 김복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또 한 유형은 바로 마을 소리꾼들에 의해서 불려지는 고사소리다. 하지만 두 가지가 다 같은 맥락을 갖고 있다.
道무형문화재 ‘광명농악’ 상쇠 임웅수씨
김복섭 선생이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소리를 물려준 사람이 있다. 현재 경기도지정 무형문화재 제20호 광명농악의 상쇠를 맡고있는 임웅수씨(남·41세·광명농악 전수조교). 김복섭 선생의 고사소리 사설을 정리해 전승시키고 있는 임웅수씨는 충남 연기군 남면이 고향이다. 11세 때부터 김태산 선생 문하에서 풍물을 습학하기 시작하여 고등학교 때는 현 민속촌 농악단장인 정인삼 선생 문하로 들어갔다. 학교를 마친 후 민속촌 농악단에서 생활을 하다가 1990년 초에 광명으로 이주를 해와 시민국악단을 조직하기도 했다.
“비나리를 본격적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1985년도에 최익환, 김광수, 정철기, 임재곤 등과 함께 마당풍물놀이 패를 시작하면서 였습니다.” 물론 그 이전부터 소리를 했지만 이 때부터 이곳저곳 다니다 보니 자연 소리를 할 기회가 많아지고 전문적인 소리가 하고 싶어서 김복섭 선생 문하에 들어가 고사소리를 배웠다고 한다. “1986년부터 김복섭 선생님 밑에 들어가 한 3년 정도 소리를 배웠습니다. 최은창 선생님의 소리는 많은 분들이 하고 계시는데 김복섭 선생님의 소리는 부르는 사람들이 적어 제가 정리를 해서 전승을 시키고 있죠.” 소리 뿐이 아니고 호적을 사사받아 경기제 소리를 부를 수도 있단다.
소리를 하면 마음이 밝아지고 남들에게 축원을 해준다는 기쁨이 있다는 임웅수씨. 2002년은 누구보다도 많은 활동을 하면서 바쁘게 일년을 보냈다. “미국에 가서 박찬호씨 등판경기 전에 축하 연주를 하고 경기때는 스텐드에서 응원도 했습니다.” 농악단을 이끌고 다니면서 광명농악을 소개하고 있는 일에 열심을 내는 임웅수씨는 농악과 소리에 온 힘을 쏟고 있다.
광명농악… 옛 시흥군 두레농악이 뿌리
광명시는 예전에 시흥군이었다. 오늘날 광명농악이라 불리는 농악은 이곳이 도시화되기 이전 농촌 마을이었던 철산동, 소하동, 하안동 등 지역의 두레농악을 합하여 농악단을 조직하여 옛 농악을 부흥시키고, 근대적인 판굿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이곳에서는 봄철에 마당밟이, 여름철에 두레농악을 크게 쳤고, 호미걸이에서는 마을 판굿을 쳤다고 한다. 그렇게 본다면 오늘날 광명농악의 뿌리는 옛 시흥군 농촌 마을의 두레 농악인 셈이다.
놀이의 순서는 내돌림벅구, 당산벌림, 당산돌림 벅구, 고사리 꺽기, 피조리 놀이, 쌍줄백이, 절구댕이 벅구, 외돌림 벅구, 길군악 칠채, 외돌림 벅구, 가세벌림, 사통백이, 원 좌우치기, 네줄 좌우치기, 쩍쩍이, 굿거리, 상공운 놀이, 벅구놀이, 무동놀이, 열두발 상모 등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풍물은 여러 사람이 모두 모여서 한바탕 어우러지면서 공동체의 힘을 만들어 내는 모체가 된 것이죠. 거기다가 정월이나 각종 행사 때 비나리를 부르면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축원을 해 주는 것이니 이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선생님에게 소리를 배운 것을 조금이나마 은혜를 갚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메나리 토리로) 상봉일경에 불경만세로구려 만재수야~ 아~헤~에헤라 저거라 에헤~ 사랑하십소사 아~하~ 어험이로다 어허엄이요 나무야~ 시방정토 극락세계 삼십육만 칠십일만 구천구백동명 부모 자비대비 아동 도산 금상에도 여래신대 무령서기 불명 불에 만보살이로구나 여래라~ 아~ 헤~ 에헤라 에헤~ 사랑하십소사 아~ 하~ 어험이 어험이로다 어허엄이요 복만 많고요 명이 짧아도 못사노니 명만 길어도 복이 없으면 못사느니 짜른명 잇어주고 긴명은 서려담아 무쇠 목숨에 돌끈달아 백세 삼대를 누려살 제 명도 주고 복도 주고 인간의 오복 만복을 점지하니 이 일에 만사가 소원만 성취구려
날마다 소리를 하고, 풍장을 치면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한 세상을 살아가겠다고 하는 임웅수씨. 비나리의 사설처럼 온갖 세상 사람들에게 복과 명을 주는 일이 언제까지나 계속되기를 바란다. 글/하주성(민속연구가)
어루 지신이야 성주지신을 돌리보세 / 사바세계 개벽 후에 태고천지 돌아올 때 / 유유피창 하늘천자 자방자시 열려있고 / 천지오행 따지자는 축방축시로 벌어져서 / 태고라 천황씨는 목덕으로 왕을할 때 / 우리 인간 나타날 때 임방임씨로 나타나고 / 우리 중생 집이 없어 방구틈을 집을 삼고 / 나무열매 밥을 삼고 나뭇잎을 옷을 삼아 / 엄동설한 설한풍에 눈비 맞고 살아갈 때 / 신농씨는 나타나서 남산 밑에다 밭을 갈고 / 농사짓는 법을 내어 농사짓게도 힘을 쓰고 / 여화씨는 나타나서 길삼질을 가르쳐서 / 좋은 본목 많이 짜서 옷을 지어 입게 하고 / 수찬씨는 나타나서 불을 빌려 화식할 때 / 삼시세때 밥을 지어 처음으로 먹게 하고 / 헌원씨는 나타나서 억조창생을 구제할 때 / 모진병이 몸에들어 주야육시 앓는 사람 / 대상맥초 풀을 모아 백가지풀을 맛을 보고 / 만병통치 약을 지어 모진 병도 낫게하고 / 성주님은 나타나서 하두낙서를 둘러보고 / 무주공산 터를 닦아 초옥삼칸의 집을 짓고 / 남혼여치 법을 내어 장가들고 시집가서 / 아들낳고 딸을낳아 모진눈비로 아니맞고 / 분벽사창 좋은 방에 아들 딸이 장성하니 / 장하도다 장하도다 성주공덕이 장하도다 / 억조창생 만민들아 성주님을 잘 모시소
천년 성주 만년 성주 수수만대 내려온 성주/ 초가 성주 와가 성주 성주 근본이 어디메뇨 / 경상도 안동땅의 제비중천이 본일런가 / 제비원도 본 아니요 강남원이 본이로세 / 강남에서 날아온 제비 솔씨 한쌍을 물어다가 / 뒷동산 높이 떠서 삼천리 강산에 흩였더니 / 밤이 되면 이슬맞고 낮이 되면 태양을 받아 / 그 솔이 점점 자라나서 타박솔이 되었구나 / 타박솔도 자라나서 황장목이 되었구나 / 황장목이 자라나서 도리기둥 되었구나 / 둥글박자 박대목아 버들유자 유대목아 / 서른 세가지 연장망태 왼어깨 둘러메고 / 뒷동산 치치달라 한등넘고 두등넘어 / 나무한주 잡아보니 동쪽으로 벋은 가지 / 황새득새 똥을싸서 아주야 부정타 못쓰겠다 / 또 한등 넘어서서 나무한주 잡아보니 / 서쪽으로 벋은 가지 까막까치 집을 지어 / 그 나무도 못쓰겠다 삼세등 거듭넘어 / 아름다운 금수강산 강산 근본 들어보소
군자절개 푸른청송 그 나무가 왕목이니 / 성주님 봇기둥 분명하니 대목 역시 거동보소 / 갓은 벗어 솔굉이 걸고 옷은 벗어 등짐하고 / 그 나무에 톱을 걸어 밀어라 땡기라 톱질이야 / 나무한주 넘어간다 그 나무가 넘는소리 / 하늘에서 천둥하고 땅이 울려 진동할 때 / 화살같이 곧은 먹줄 굽은 나무 먹줄 놓고 / 옥왕의 옥토끼와 금옥강 금도끼를 / 용왕님전 분부받고 상제전에 빌리다가 / 굽은나무 등을 치고 곧은 나무 배를 다듬어 / 도리상량 보기둥을 공단같이 다듬어서 / 삽십명 역군들이 이 집나무 운송할 때 / 서방남방 다 가려내고 나무운송 야단이다 / 이집에라 대주양반 이 집터를 잡을랴고 / 삼통천문 하달길에 무학도사를 모시다가 / 이상저산 지리밟아 명산대천에 찾아가니 / 청룡황용 흥국이요 우봉산악이 되었으니 / 천지현황 생긴 후에 이 집터가 대명지라
산신령전 기도하고 오토지신을 지만후에 / 초산의 목동들이 용의 머리에 터를 닦아 / 청용황용 뒷주름잡고 남산 봉학이 안을 받아 / 호박주추 유리기둥 산호도리 앞을 엊고 / 초생반달 빌리다가 반달들보 얹어놓고 / 이집에라 대주양반 상량제만 모실라고 / 구룡수라 좋은 물에 삼일정성 기도하니 / 천장지장 장을 보아 만반진수 차려놓고 / 비나이다 비나이다 성주시지준 비나이다 / 부모님전 존체빌고 자공성불 비는 말씀 / 제갈공명 본을 받아 훌륭하게 의시대며 / 하도 용마 높이 타고 한양서울 올라가서 / 유리천상 칠부궁전에 금상님전 용상앞에 / 용연에다 먹을 갈아 산호필반 정을 풀어 / 왕희지의 필법으로 일필휘지 글을 지어 / 일천에다 선장하여 금상님전 올렸드니 / 칠부금상 높이 앉아 천하영웅 얻고 보니 / 황용강 물길이 굽이치고 하도용마 닙굽친다
어루 지신이야 성주지신을 돌리보세 / 사바세계 개벽 후에 태고천지 돌아올 때 / 유유피창 하늘천자 자방자시 열려있고 / 천지오행 따지자는 축방축시로 벌어져서 / 태고라 천황씨는 목덕으로 왕을할 때 / 우리 인간 나타날 때 임방임씨로 나타나고 / 우리 중생 집이 없어 방구틈을 집을 삼고 / 나무열매 밥을 삼고 나뭇잎을 옷을 삼아 / 엄동설한 설한풍에 눈비 맞고 살아갈 때 / 신농씨는 나타나서 남산 밑에다 밭을 갈고 / 농사짓는 법을 내어 농사짓게도 힘을 쓰고 / 여화씨는 나타나서 길삼질을 가르쳐서 / 좋은 본목 많이 짜서 옷을 지어 입게 하고 / 수찬씨는 나타나서 불을 빌려 화식할 때 / 삼시세때 밥을 지어 처음으로 먹게 하고 / 헌원씨는 나타나서 억조창생을 구제할 때 / 모진병이 몸에들어 주야육시 앓는 사람 / 대상맥초 풀을 모아 백가지풀을 맛을 보고 / 만병통치 약을 지어 모진 병도 낫게하고 / 성주님은 나타나서 하두낙서를 둘러보고 / 무주공산 터를 닦아 초옥삼칸의 집을 짓고 / 남혼여치 법을 내어 장가들고 시집가서 / 아들낳고 딸을낳아 모진눈비로 아니맞고 / 분벽사창 좋은 방에 아들 딸이 장성하니 / 장하도다 장하도다 성주공덕이 장하도다 / 억조창생 만민들아 성주님을 잘 모시소
천년 성주 만년 성주 수수만대 내려온 성주/ 초가 성주 와가 성주 성주 근본이 어디메뇨 / 경상도 안동땅의 제비중천이 본일런가 / 제비원도 본 아니요 강남원이 본이로세 / 강남에서 날아온 제비 솔씨 한쌍을 물어다가 / 뒷동산 높이 떠서 삼천리 강산에 흩였더니 / 밤이 되면 이슬맞고 낮이 되면 태양을 받아 / 그 솔이 점점 자라나서 타박솔이 되었구나 / 타박솔도 자라나서 황장목이 되었구나 / 황장목이 자라나서 도리기둥 되었구나 / 둥글박자 박대목아 버들유자 유대목아 / 서른 세가지 연장망태 왼어깨 둘러메고 / 뒷동산 치치달라 한등넘고 두등넘어 / 나무한주 잡아보니 동쪽으로 벋은 가지 / 황새득새 똥을싸서 아주야 부정타 못쓰겠다 / 또 한등 넘어서서 나무한주 잡아보니 / 서쪽으로 벋은 가지 까막까치 집을 지어 / 그 나무도 못쓰겠다 삼세등 거듭넘어 / 아름다운 금수강산 강산 근본 들어보소
군자절개 푸른청송 그 나무가 왕목이니 / 성주님 봇기둥 분명하니 대목 역시 거동보소 / 갓은 벗어 솔굉이 걸고 옷은 벗어 등짐하고 / 그 나무에 톱을 걸어 밀어라 땡기라 톱질이야 / 나무한주 넘어간다 그 나무가 넘는소리 / 하늘에서 천둥하고 땅이 울려 진동할 때 / 화살같이 곧은 먹줄 굽은 나무 먹줄 놓고 / 옥왕의 옥토끼와 금옥강 금도끼를 / 용왕님전 분부받고 상제전에 빌리다가 / 굽은나무 등을 치고 곧은 나무 배를 다듬어 / 도리상량 보기둥을 공단같이 다듬어서 / 삽십명 역군들이 이 집나무 운송할 때 / 서방남방 다 가려내고 나무운송 야단이다 / 이집에라 대주양반 이 집터를 잡을랴고 / 삼통천문 하달길에 무학도사를 모시다가 / 이상저산 지리밟아 명산대천에 찾아가니 / 청룡황용 흥국이요 우봉산악이 되었으니 / 천지현황 생긴 후에 이 집터가 대명지라
산신령전 기도하고 오토지신을 지만후에 / 초산의 목동들이 용의 머리에 터를 닦아 / 청용황용 뒷주름잡고 남산 봉학이 안을 받아 / 호박주추 유리기둥 산호도리 앞을 엊고 / 초생반달 빌리다가 반달들보 얹어놓고 / 이집에라 대주양반 상량제만 모실라고 / 구룡수라 좋은 물에 삼일정성 기도하니 / 천장지장 장을 보아 만반진수 차려놓고 / 비나이다 비나이다 성주시지준 비나이다 / 부모님전 존체빌고 자공성불 비는 말씀 / 제갈공명 본을 받아 훌륭하게 의시대며 / 하도 용마 높이 타고 한양서울 올라가서 / 유리천상 칠부궁전에 금상님전 용상앞에 / 용연에다 먹을 갈아 산호필반 정을 풀어 / 왕희지의 필법으로 일필휘지 글을 지어 / 일천에다 선장하여 금상님전 올렸드니 / 칠부금상 높이 앉아 천하영웅 얻고 보니 / 황용강 물길이 굽이치고 하도용마 닙굽친다
지신밟기는 풍물이 가지는 연행의 요소들과 풍물굿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풍물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지신밟기는 풍물이 가지는 제의적(祭儀的)인 요소와 생산적인 요소, 그리고 유희적인 요소를 모두 빠짐없이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삶을 영위하고 마을 구성원들이 함께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우리들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지신밟기는 풍물을 통하여 자연을 만나고 부락 공동체 구성원들의 신명을 돋우어 건강한 삶의 관계를 회복하여 보다 더 신명나는 생산활동에 힘을 모으기 위해서 연행된다. 지신밟기가 비록 지나간 농경시대의 연행 형식이라고는 하나 우리가 자연과 더불어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조화로운 삶의 정신을 깊이 체득할 수 있도록 지신밟기를 오늘의 시대에 되돌려 놓아야 한다.
모든 왜곡되고 잘못된 삶의 관계들을 풍물굿을 통하여 바로 잡고 건강한 공동체 생활을 회복하여 그야말로 신명나는 삶을 지향하는 것이 바로 지신밟기 본연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막힌 것을 뚫고 비틀린 것을 바로 펴서 우리의 생활을 건강하고 신나는 모습으로 되돌려 놓는 이 지신밟기의 한판 풍물굿이야 말로 우리 민중들이 스스로가 삶의 질병들을 치유하여 가는 기막힌 생명력의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왜곡되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매말라 가는 세태속에서 지신밟기는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건강하고 바람직한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지신밟기는 대개 주산풀이, 당산굿, 우물굿, 문굿, 마당밟기, 성주풀이, 조왕풀이, 철륭굿, 마굿간풀이, 곳간풀이, 대문굿, 술굿 등의 순서로 전개된다.
주산풀이의 내용은 대개 천지 창조의 내력을 간략히 이야기를 하고 산과 물의 흐름을 짚어가면서 현재살고 있는 마을의 주산의 내력을 사설로 이야기한다. 주산의 개념은 전통적인 한국의 풍수사상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이 풍수의 내용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기의 운행의 흐름은 한국인에게는 보편적인 세계관하고도 일정부분 연관을 가지고 나아가서는 우리 풍물 장단의 운영과도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풍수의 핵심은 땅의 기운의 움직임을 바로 파악하여 인간의 생활을 보다 이롭게 하자는 것으로 이 기운의 흐름은 우리 신체를 움직이는 근본적인 힘일 뿐 아니라 나아가 이 세계를 움직이는 우너리가 되는 것이다. 땅의 기의 흐름을 기본적으로 이끌어 주는 것은 천체의 운행이고 이 기가 맺히고 흐르는 자용에 의하여 산맥의 흐름이 결절이 되고 이 기를 멈추게 하고 머물게 하는 것은 물의 작용인 것이다. 땅의 기의 흐름이 원활하고 순탄하지 않으면 그 곳에 사는 인간의 몸의 기운도 순행하지 못하고 왜곡되어 결국은 인간의 몸을 해치게 되는 것이다.
이 땅과 물의 흐름을 잘 파악하는 것은 비단 자연을 올바로 이해하는 지름길일 뿐 아니라 자연에 순응하여 사는 인간의 지혜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신 밟기는 이러한 땅의 흐름에 수동적으로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이 적극적으로 대처해 가는 민중의 지혜와 역동성의 표현이기도 하다. 민중들은 이 땅의 기운이 막히고 왜곡된 부분을 풍물의 힘으로 즉 민중의 역동적인 기운으로 뚫어가고자 하였다. 풍물의 기운은 아주 강력하다. 이 풍물의 기운은 능히 사람들의 막힌 기운들을 뚫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들이 살고 있는 땅의 기운들의 왝곡된 부분들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이다. 강증산이 말하는 천지공사가 어쩌면 풍물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일 수도 있다.
주산 풀이는 바로 산과 강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의식인 것이다. 산의 흐름을 백두대간의 조산인 백두산부터 남쪽의 지리산까지를 축을 하고 각 지역의 정맥을 이어주는 것이다. 강은 산을 넘지 못하고 산도 강을 건너지 못한다. 강과 산은 서로 도자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듯하지만 그러나 그 실은 산과 강은 하나로 어울려 있는 것이다.
서로 반대되는 것이 어울려 공존하고 있다는 존재 양식의 파악이 우리 민중들의 세계관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산과 강은 서로 모순되지만 그러나 강이 없이는 산의 경계가 있을 수 없으며 산이 없으면 물길 또한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산과 강이 어우러져 비로소 삶의 터전을 만든다 서로 상반되고 모순되는 것들이 모여 우리들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주산풀이는 우리 삶의 근본적인 터전이 바로 산과 강으로 표현되는 자연에 있으며 이 자연의 순연한 기운이 인간들의 삶의 모습을 결정짓는다는 생각과 어울려 인간의 역동적인 삶의 표현으로 이제는 역으로 삶의 공간들을 정화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들이 결합된 형태이다.
당산은 주산과는 다르다. 주산이 자연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면 당산은 비로소 의식을 통하여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당산은 자연과 인간이 만나는 곳이다. 당산을 통하여 신성을 비로소 몸을 나타낸다. 그래서 당산은 신성한 곳이고 특별한 곳이다.
당산은 주로 큰나무를 매개로 한다. 당산을 통하여 우리는 신화의 세계를 만난다. 당산은 우리 주위에 남아 있는 신화의 공간이다. 단군 신화의 신단수는 바로 당산나무이다. 우리는 나무를 통하여 신과 교감을 한다. 나무는 땅에서 뿌리를 박고 하늘로 뻗어가는 존재이다. 땅의 기운과 하늘의 기운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므로 나무는 신성한 것이다. 인간은 나무를 통하여 신을 받아들이고 나무를 세워서 신성을 표시하였던 것이다.
솟대가 바로 이러한 신화적인 공간의 상징물이 된다. 그러나 마을에 그 마을 덮는 노거수가 있으면 그것이 바로 신화적인 공간의 상징물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단군 신화나 고구려의 건국신화는 바로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의 관계를 보다 더 명확하게 보여 준다.
환웅은 친부인을 가지고 운사, 우사, 풍백은 바로 자연의 기운을 순조롭게 하는 존재들이다. 이 천부인(꽹가리), 운사(장구), 우사(북), 풍백(징)은 이를테면 하늘의 사자로서 인간의 살아갈 자연을 조화롭게 하는 존재일터인데 그렇다면 쇠와 징, 그리고 장구, 북 등 사물은 바로 인간의 생활을 순조롭게 하는 신의 선물인 셈이다.
이 네가지 악기를 기본으로 하여 천지 자연의 조화를 이르고 비로소 인간의 삶의 터전이 닦아지고 이러한 삶의 터전은 생동하는 기운으로 나타나고 이 기운은 힘찬 소고의 춤으로 형상화 되는 것이다. 이 터전위에 인간의 다양한 삶들이 전개되는데 이것은 바로 여러 사람들의 군상 즉 잡색을 의미한다.
우물굿 혹은 용왕굿은 사람들의 생명의 근원인 물에 대한 굿이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특히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땅의 생명인 물이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물은 만물의 근원이다. 산이 멈추고 물이 흐르는 곳에 비로소 인간의 삶이 되는 것이다.
물을 의인화 혹은 신격화한 것이 용왕이다. 만물이 생존하기 위하여 물이 필요하듯이 하나의 마을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우물이 필요하다. 우물은 마을 생명의 근원적인 장소가 된다. 우물을 통하여 사람들은 비로소 생기를 지닌다. 우물의 신성함은 당산의 신성함과는 그 성질이 다르다.
당산은 범하지 못하는 금지된 장소로서 신성함이지만 우물의 신성함은 일상의 한가운데 있다. 당산은 특별한 경우에만 공개되고 공개되는 시간이라도 특별한 사람들에 의해서만 그 출입이 허락되는 반면에 우물의 경우는 항시 열려있는 공동 생활 공간인 것이다. 항시 열려있는 일상의 생활공간으로서 우물의 신성함은 바로 생명을 잉태하고 생산하는 사회의 생존력과 깊은 관계가 있다.
주산과 당산 그리고 용왕굿은 마을 공동체의 생존 양식을 풍물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굿들이 끝이 나면 이제는 각 집으로 들어 개개의 삶의 현장에서 축원을 한다. 각 가정은 우리들의 전통적인 사고 방식으로서는 사람만이 살고 있는 곳이 아니다. 우리들 가정은 사람과 신들과 자연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다. 그 곳에는 성주가 터주가 있고 철륭이 있고 조왕이 있고 주당이 있는 곳이다.
온갖 잡신이 들끓고 있는 듯 하지만 그곳에는 엄연한 질서가 있어 각기의 공간을 차지하고 서로가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인간의 삶의 터전은 인간만의 공간이 아니라 모든 자연적인 또는 신적인 존재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삶의 현장에서 이를 주관하는 것은 역시 인간이다. 인간이 삶을 꾸려 가면서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하여 자연과 신과의 관계에 갈등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 갈등을 풀어주는 의식이 성주굿이 되고 조왕굿이 되는 것이다.
지신밟기 풍물을 매개로 하여 신과의 화해를 시도하는 굿의 하나인 셈이다. 굿이 끝이 나면 당연히 놀이판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를 우리는 판굿이라고 한다. 이 판굿은 동네 마당에서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과 함께 밤을 세워 벌어진다. 제의와 놀이가 지신밟기에서 이렇듯 결합되는 것이다.
바람직한 놀이문화를 위하여
축제라는 말은 근래에 많이 쓰이는 말이다. 1960년대 개발의 바람이 불면서 사라진 전통적인 놀이와 굿이 이제 축제라는 이름으로 부활되고 있는 듯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놀이와 굿이 이제 축제라는 이름으로 부활되고 있는 듯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놀이와 굿 그리고 축제는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축제라는 말의 정체성이 제기되면서 잔치라는 말로 대체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아직도 축제는 절대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는 말이다. 각급 학교에서도 축제가 연례적으로 열리고 있으며 지역사회에서도 축제가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고 있다. 축제는 산업사회에 오면서 개인화와 세분화가 가속화되면서 점차 소멸되어 가는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기 위한 하나의 계기로 필요성이 제기된 듯하다.
축제의 필요성에서 보듯이 축제의 본질은 일체감의 형성에 있다. 일체감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자율성과 자발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축제는 현실의 공간과는 유리된 공간이며 여기서는 현실적인 여러 가지 사회적인 제약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일탈성과 집단성이 모여 축제에는 항상 난장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러한 난장을 서양의 학자들의 일부는 광기라고 표현하고 이러한 광기의 표출이야말로 축제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흔히 말하는 디오니소스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굿과 놀이 혹은 잔치에도이러한 난장은 반드시 존재하였다. 그리고 일견 광기의 표출과도 같은 허튼굿이 있지만 이것을 우리는 광기라고 부르지 않고 신명이라고 부른다.
신명과 광기를 같은 현상의 서로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이렇게 이름을 붙인 데에는 사고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광기 즉 인간의 디오니소스적인 측면은 분명히 이성 즉 플라톤적인 측면에 의하여 억압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억압을 분출하는 곳이 축제의 공간이고 이러한 억압의 해소야말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오늘의 심리학은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신명은 근본적으로 이 광기와는 구별되는 것이다. 광기의 표출은 억압의 발산이다. 그리고 모든 축제에 이러한 억압의 발산이 반드시 동반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신명의 표출은 이 광기의 발산과는 분명히 다르다. 신명은 인간의 생명력이 오롯이 표출될 때 일어나는 것으로서 우리의 놀이와 굿은 이 신명이 일어남을 목적으로 한다. 신명은 우리의 생명력이 억압을 받아 왜곡받은 상태에서 생명력이 온전히 표출되는 상태로 바뀔때 비로소 일어나는 것이다. 신명은 우리의 생명력이 고양되어 막힘이 없고 이그러지고 굽힘이 없을 때 일어나며 이러한 개개의 생명력이 온 누리에 흘러 넘쳐 세상을 그득 채울 때 비로소 극치에 도달하게 된다.
개개의 신명이 자신을 밝히고 고루 세상을 밝힐 때 대동세상은 가능한 것이고 이렇게 집단적인 신명이 표출되는 공간이 바로 굿과 놀이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축제는 단순히 자신의 억압을 표출하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생명력을 고양시키는 집단적인 신명이 펼쳐지는 판이 축제판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축제판을 통하여 우리 모두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신의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축제는 개인의 억압된 광기를 표출하는 장소로서만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참여자들의 공통의 소망 즉 건강한 미래에 대한 전망(비전)을 공유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자면 축제는 곧 ‘신명나는 살판’ 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 놀이판은 분명히 살판나는 시간이며 공간이어야 한다. 놀이판은 개인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자발적인 참여의 의지가 극대화되는 곳이어야 한다. 축제라는 이름도 좋고 굿이라는 이름도 좋다. 다만 그것이 놀이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
까이와는 사기꾼이나 직업적 놀이꾼에 의하여 놀이가 타락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의 정신이 현실에 의하여 감염이 될 때 놀이는 타락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놀이가 그 자유로운 상상력이 현실에 의하여 억압을 받고 놀이의 역동적인 신명이 현실의 제약으로 그 힘을 분출하지 못한다면 놀이의 창조적인 기능은 이미 그 생명을 다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순수하게 놀이 정신이 살아있을 때 놀이는 문화가 될 수 있으며 문화라는 형태로 존재할 때 비로소 놀이는 그 사회적인 기능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상업주의는 굿이거나 축제거나 그것을 이윤의 창출로 연결시키려 할 것이다. 그곳에는 소비의 자유밖에 없다. 단지 돈을 씀으로써 신명을 얻을 수 있다면 이미 그 사람은 물질의 노예가 된 사람일 것이며 더 이상 우리의 삶을 고양시킬 창조적인 에너지를 상실한 사람일 것이다.
놀이의 문화 창조적인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기 위하여 놀이 정신이 보전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 정신이 온전이 보전될 때 놀이의 기능화 역할이 제대로 작동되는 것이다. 살판나는 놀이판이 놀이판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리나 그 역동적인 생명력이 현실로 넘쳐날 때 비로소 놀이판은 그 생명력을 획득할 것이다.
풍물은 놀이의 전형이다. 그 속에는 굿이 있고 예술이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넘치는 신명이 있다. 자유로운 장단의 흐름이 있고 억압되지 않는 건강한 몸짓이 있다. 학교 현장에서 풍물이 학생 축제의 중심에 선다면 무엇보다도 교육적인 효과가 크리라 생각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신밟기 진행순서 ⑴집에 도착하여 그 대문앞에서 문굿 ⑵문굿이 끝나면 풍물을 치며 집안을 한바퀴 돎으로써 액을 쫒아주고 맑게 해주는 청을 한다 ⑶청을 하는 동안 주인장은 상을 차린다 상에는 소금한종지 쌀 한종지 물 한대접 초 등이 갖춰지면 되고 그외 과일등이 곁들여 지 면 좋으며, 과일은 홀수로 한다. ⑷청을 한후에 상이 차려진 앞에서 주인장을 모셔놓고 사설을 하면 주인장은 그 옆에서 계 속 빈다. ⑸사설이 끝난후에 상쇠는 촛불을 끄며(불어서 끄지말고 심지를 손가락으로 잡아서 끈다) 액이 모아진 물그릇을 집어 대문밖에 버린다. ⑹주인장에게 축원을 해주고 다음집으로 이동한다. 이때 주인장이 준비한 돈이나 쌀등의 재 물을 챙겨와야 하므로 뒷패가 많이 필요하다.
요령 ⑴문굿은 위에 제시된것 중 골라서 하면되며 ⑵본격적인 사설을 할때는 성주풀이를 끝까지 하면 좋으나 바쁘고 여건이 허락되지 않는 곳에선 달풀이로 짧게 끝낸다. 그외 유도리 있게 식당에선 조왕풀이를 하거나 가게풀이등을 함으로써 유연하게 진행해야 한다. ⑶사설을 하는동안에나 그외의 악을 칠때 치배들은 신나게 쳐야 한다. 지신밟기는 첫째도 흥이고 둘째도 흥이기 때문이다. ⑷사설은 위의 것도 많이 축소된 것이므로 이정도는 반드시 외도록 하자
천왕님 천왕님 천왕천왕 천왕님 (그랑땅/그랑땅/그랑그랑/그랑땅) 장단을 상쇠가 낸다. 치배들도 따라치는데 가락을 점점 빨리 하다가 다르르르 털면서 인사를 2번 한다. 이러한 과정을 3번 반복하는데, 상쇠는 가락을 낼 때 조금씩 빠르게 내어준다. 총 6번의 인사가 끝나면 모든 치배들은 제자리에 머리를 푹 숙이고 그대로 팍 앉는다. 고사를 지내며 축문을 다 읽고 ‘상향’ 할 때 굿거리를 치면서 일어난다.
여봐라 북쇠(수)야. 우리가 밤낮 풍악만 칠 것이 아니라 성주지신풀이 한번 해 보세. 천개에 자하고 지백은(지개는) 축하니 땅은 지시에 생긴 법이요. 인생은 묘하야 사람은 인시에 생겼고 그중에 성주부친이 생기고 그중에 성주모친이 생겼던 것이었다. 성주부친이 누구시면 천공황제가 분명하고 성주모친이 누구시면 옥질(진)부인이 분명하다. 슬하에 일점혈육 없어 무주남산 지치달라(아) 칠성단 모아놓고 백일정성 기도하니 지성이면 감천이라 옥황상제가 알읍시고(아시고) 자식을 주라고 분부한다.
상쇠: 어이 치배들 치배: 예이 상쇠: 안방차지는 아줌마 차지요 바깥차지는 아저씨 차진데 오늘 쥔네가 우리 풍물패를 위해 많은 음식과 술을 내놓으셨으니 우리 덕담이나하고 먹세 치배: 아 그 좋지. 상쇠: 우리가 이 집을 들어올 때는 만복이 따라 들어오고 우리가 이 집을 나 갈 때는 만액이 따라나가는데 일년이면 열두달 시시때대 드는 온갖 질병근심을 저 동해바다에 풍덩 쳐넣어 버리고 이집 재수가 물묻은 바가지에 치배: 깨달라 붙듯이 상쇠: 처녀에 치배: 총각붙듯이 함께: 다갈다갈 붙으소서
쇠를 치면서 흥이 나게 부르는 소리. 비나리는 빌어서 소원 성취를 바라는 소리다. 복이 내리기를 비는 소리니 이보다 더 좋은 소리가 어디 있겠는가.
축원하는 소리 모두를 ‘비나리’라 불러
정월이 되면 마을의 두레 풍장패들이 집집마다 다니면서 지신밟기를 하는 중에 축원 덕담을 하게 되는데 그 소리를 고사덕담 혹은 고사소리, 비나리 등으로 부른다. 물론 비나리란 고사소리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축원을 하는 소리 모두를 비나리라고 부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 전통의 소리에서는 많은 소리들이 구전되지만 고사소리만큼 다양한 소리가 나타나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에 소리를 하는 소리꾼마다 특징이 있는 소리를 하기도 하거니와 많은 사설로 인해서 부르는 사람들도 많지가 않다.
경기도 지방의 고사소리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나타나는 소리로 보면 거의가 동일하지만 소리꾼에 의해서 그 소리 나름의 특징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소리만 들어보아도 누구의 소리인지를 알 수가 있다. 첫째는 걸립패들이 부르는 전문적인 소리다. 이 소리를 가장 잘한 분이 바로 중요무형문화재 평택농악의 상쇠를 맡았던 최은창 선생이다.
또 한 분은 최은창 선생과 함께 걸립을 하던 김복섭 선생이다. 오죽했으면 두 분을 빗대어 ‘소리 잘하기는 최은창이요. 돈 잘 뺏기는 김복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또 한 유형은 바로 마을 소리꾼들에 의해서 불려지는 고사소리다. 하지만 두 가지가 다 같은 맥락을 갖고 있다.
道무형문화재 ‘광명농악’ 상쇠 임웅수씨
김복섭 선생이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소리를 물려준 사람이 있다. 현재 경기도지정 무형문화재 제20호 광명농악의 상쇠를 맡고있는 임웅수씨(남·41세·광명농악 전수조교). 김복섭 선생의 고사소리 사설을 정리해 전승시키고 있는 임웅수씨는 충남 연기군 남면이 고향이다. 11세 때부터 김태산 선생 문하에서 풍물을 습학하기 시작하여 고등학교 때는 현 민속촌 농악단장인 정인삼 선생 문하로 들어갔다. 학교를 마친 후 민속촌 농악단에서 생활을 하다가 1990년 초에 광명으로 이주를 해와 시민국악단을 조직하기도 했다.
“비나리를 본격적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1985년도에 최익환, 김광수, 정철기, 임재곤 등과 함께 마당풍물놀이 패를 시작하면서 였습니다.” 물론 그 이전부터 소리를 했지만 이 때부터 이곳저곳 다니다 보니 자연 소리를 할 기회가 많아지고 전문적인 소리가 하고 싶어서 김복섭 선생 문하에 들어가 고사소리를 배웠다고 한다. “1986년부터 김복섭 선생님 밑에 들어가 한 3년 정도 소리를 배웠습니다. 최은창 선생님의 소리는 많은 분들이 하고 계시는데 김복섭 선생님의 소리는 부르는 사람들이 적어 제가 정리를 해서 전승을 시키고 있죠.” 소리 뿐이 아니고 호적을 사사받아 경기제 소리를 부를 수도 있단다.
소리를 하면 마음이 밝아지고 남들에게 축원을 해준다는 기쁨이 있다는 임웅수씨. 2002년은 누구보다도 많은 활동을 하면서 바쁘게 일년을 보냈다. “미국에 가서 박찬호씨 등판경기 전에 축하 연주를 하고 경기때는 스텐드에서 응원도 했습니다.” 농악단을 이끌고 다니면서 광명농악을 소개하고 있는 일에 열심을 내는 임웅수씨는 농악과 소리에 온 힘을 쏟고 있다.
광명농악… 옛 시흥군 두레농악이 뿌리
광명시는 예전에 시흥군이었다. 오늘날 광명농악이라 불리는 농악은 이곳이 도시화되기 이전 농촌 마을이었던 철산동, 소하동, 하안동 등 지역의 두레농악을 합하여 농악단을 조직하여 옛 농악을 부흥시키고, 근대적인 판굿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이곳에서는 봄철에 마당밟이, 여름철에 두레농악을 크게 쳤고, 호미걸이에서는 마을 판굿을 쳤다고 한다. 그렇게 본다면 오늘날 광명농악의 뿌리는 옛 시흥군 농촌 마을의 두레 농악인 셈이다.
놀이의 순서는 내돌림벅구, 당산벌림, 당산돌림 벅구, 고사리 꺽기, 피조리 놀이, 쌍줄백이, 절구댕이 벅구, 외돌림 벅구, 길군악 칠채, 외돌림 벅구, 가세벌림, 사통백이, 원 좌우치기, 네줄 좌우치기, 쩍쩍이, 굿거리, 상공운 놀이, 벅구놀이, 무동놀이, 열두발 상모 등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풍물은 여러 사람이 모두 모여서 한바탕 어우러지면서 공동체의 힘을 만들어 내는 모체가 된 것이죠. 거기다가 정월이나 각종 행사 때 비나리를 부르면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축원을 해 주는 것이니 이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선생님에게 소리를 배운 것을 조금이나마 은혜를 갚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메나리 토리로) 상봉일경에 불경만세로구려 만재수야~ 아~헤~에헤라 저거라 에헤~ 사랑하십소사 아~하~ 어험이로다 어허엄이요 나무야~ 시방정토 극락세계 삼십육만 칠십일만 구천구백동명 부모 자비대비 아동 도산 금상에도 여래신대 무령서기 불명 불에 만보살이로구나 여래라~ 아~ 헤~ 에헤라 에헤~ 사랑하십소사 아~ 하~ 어험이 어험이로다 어허엄이요 복만 많고요 명이 짧아도 못사노니 명만 길어도 복이 없으면 못사느니 짜른명 잇어주고 긴명은 서려담아 무쇠 목숨에 돌끈달아 백세 삼대를 누려살 제 명도 주고 복도 주고 인간의 오복 만복을 점지하니 이 일에 만사가 소원만 성취구려
날마다 소리를 하고, 풍장을 치면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한 세상을 살아가겠다고 하는 임웅수씨. 비나리의 사설처럼 온갖 세상 사람들에게 복과 명을 주는 일이 언제까지나 계속되기를 바란다. 글/하주성(민속연구가)
어루 지신이야 성주지신을 돌리보세 / 사바세계 개벽 후에 태고천지 돌아올 때 / 유유피창 하늘천자 자방자시 열려있고 / 천지오행 따지자는 축방축시로 벌어져서 / 태고라 천황씨는 목덕으로 왕을할 때 / 우리 인간 나타날 때 임방임씨로 나타나고 / 우리 중생 집이 없어 방구틈을 집을 삼고 / 나무열매 밥을 삼고 나뭇잎을 옷을 삼아 / 엄동설한 설한풍에 눈비 맞고 살아갈 때 / 신농씨는 나타나서 남산 밑에다 밭을 갈고 / 농사짓는 법을 내어 농사짓게도 힘을 쓰고 / 여화씨는 나타나서 길삼질을 가르쳐서 / 좋은 본목 많이 짜서 옷을 지어 입게 하고 / 수찬씨는 나타나서 불을 빌려 화식할 때 / 삼시세때 밥을 지어 처음으로 먹게 하고 / 헌원씨는 나타나서 억조창생을 구제할 때 / 모진병이 몸에들어 주야육시 앓는 사람 / 대상맥초 풀을 모아 백가지풀을 맛을 보고 / 만병통치 약을 지어 모진 병도 낫게하고 / 성주님은 나타나서 하두낙서를 둘러보고 / 무주공산 터를 닦아 초옥삼칸의 집을 짓고 / 남혼여치 법을 내어 장가들고 시집가서 / 아들낳고 딸을낳아 모진눈비로 아니맞고 / 분벽사창 좋은 방에 아들 딸이 장성하니 / 장하도다 장하도다 성주공덕이 장하도다 / 억조창생 만민들아 성주님을 잘 모시소
천년 성주 만년 성주 수수만대 내려온 성주/ 초가 성주 와가 성주 성주 근본이 어디메뇨 / 경상도 안동땅의 제비중천이 본일런가 / 제비원도 본 아니요 강남원이 본이로세 / 강남에서 날아온 제비 솔씨 한쌍을 물어다가 / 뒷동산 높이 떠서 삼천리 강산에 흩였더니 / 밤이 되면 이슬맞고 낮이 되면 태양을 받아 / 그 솔이 점점 자라나서 타박솔이 되었구나 / 타박솔도 자라나서 황장목이 되었구나 / 황장목이 자라나서 도리기둥 되었구나 / 둥글박자 박대목아 버들유자 유대목아 / 서른 세가지 연장망태 왼어깨 둘러메고 / 뒷동산 치치달라 한등넘고 두등넘어 / 나무한주 잡아보니 동쪽으로 벋은 가지 / 황새득새 똥을싸서 아주야 부정타 못쓰겠다 / 또 한등 넘어서서 나무한주 잡아보니 / 서쪽으로 벋은 가지 까막까치 집을 지어 / 그 나무도 못쓰겠다 삼세등 거듭넘어 / 아름다운 금수강산 강산 근본 들어보소
군자절개 푸른청송 그 나무가 왕목이니 / 성주님 봇기둥 분명하니 대목 역시 거동보소 / 갓은 벗어 솔굉이 걸고 옷은 벗어 등짐하고 / 그 나무에 톱을 걸어 밀어라 땡기라 톱질이야 / 나무한주 넘어간다 그 나무가 넘는소리 / 하늘에서 천둥하고 땅이 울려 진동할 때 / 화살같이 곧은 먹줄 굽은 나무 먹줄 놓고 / 옥왕의 옥토끼와 금옥강 금도끼를 / 용왕님전 분부받고 상제전에 빌리다가 / 굽은나무 등을 치고 곧은 나무 배를 다듬어 / 도리상량 보기둥을 공단같이 다듬어서 / 삽십명 역군들이 이 집나무 운송할 때 / 서방남방 다 가려내고 나무운송 야단이다 / 이집에라 대주양반 이 집터를 잡을랴고 / 삼통천문 하달길에 무학도사를 모시다가 / 이상저산 지리밟아 명산대천에 찾아가니 / 청룡황용 흥국이요 우봉산악이 되었으니 / 천지현황 생긴 후에 이 집터가 대명지라
산신령전 기도하고 오토지신을 지만후에 / 초산의 목동들이 용의 머리에 터를 닦아 / 청용황용 뒷주름잡고 남산 봉학이 안을 받아 / 호박주추 유리기둥 산호도리 앞을 엊고 / 초생반달 빌리다가 반달들보 얹어놓고 / 이집에라 대주양반 상량제만 모실라고 / 구룡수라 좋은 물에 삼일정성 기도하니 / 천장지장 장을 보아 만반진수 차려놓고 / 비나이다 비나이다 성주시지준 비나이다 / 부모님전 존체빌고 자공성불 비는 말씀 / 제갈공명 본을 받아 훌륭하게 의시대며 / 하도 용마 높이 타고 한양서울 올라가서 / 유리천상 칠부궁전에 금상님전 용상앞에 / 용연에다 먹을 갈아 산호필반 정을 풀어 / 왕희지의 필법으로 일필휘지 글을 지어 / 일천에다 선장하여 금상님전 올렸드니 / 칠부금상 높이 앉아 천하영웅 얻고 보니 / 황용강 물길이 굽이치고 하도용마 닙굽친다
어루 지신이야 성주지신을 돌리보세 / 사바세계 개벽 후에 태고천지 돌아올 때 / 유유피창 하늘천자 자방자시 열려있고 / 천지오행 따지자는 축방축시로 벌어져서 / 태고라 천황씨는 목덕으로 왕을할 때 / 우리 인간 나타날 때 임방임씨로 나타나고 / 우리 중생 집이 없어 방구틈을 집을 삼고 / 나무열매 밥을 삼고 나뭇잎을 옷을 삼아 / 엄동설한 설한풍에 눈비 맞고 살아갈 때 / 신농씨는 나타나서 남산 밑에다 밭을 갈고 / 농사짓는 법을 내어 농사짓게도 힘을 쓰고 / 여화씨는 나타나서 길삼질을 가르쳐서 / 좋은 본목 많이 짜서 옷을 지어 입게 하고 / 수찬씨는 나타나서 불을 빌려 화식할 때 / 삼시세때 밥을 지어 처음으로 먹게 하고 / 헌원씨는 나타나서 억조창생을 구제할 때 / 모진병이 몸에들어 주야육시 앓는 사람 / 대상맥초 풀을 모아 백가지풀을 맛을 보고 / 만병통치 약을 지어 모진 병도 낫게하고 / 성주님은 나타나서 하두낙서를 둘러보고 / 무주공산 터를 닦아 초옥삼칸의 집을 짓고 / 남혼여치 법을 내어 장가들고 시집가서 / 아들낳고 딸을낳아 모진눈비로 아니맞고 / 분벽사창 좋은 방에 아들 딸이 장성하니 / 장하도다 장하도다 성주공덕이 장하도다 / 억조창생 만민들아 성주님을 잘 모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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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령전 기도하고 오토지신을 지만후에 / 초산의 목동들이 용의 머리에 터를 닦아 / 청용황용 뒷주름잡고 남산 봉학이 안을 받아 / 호박주추 유리기둥 산호도리 앞을 엊고 / 초생반달 빌리다가 반달들보 얹어놓고 / 이집에라 대주양반 상량제만 모실라고 / 구룡수라 좋은 물에 삼일정성 기도하니 / 천장지장 장을 보아 만반진수 차려놓고 / 비나이다 비나이다 성주시지준 비나이다 / 부모님전 존체빌고 자공성불 비는 말씀 / 제갈공명 본을 받아 훌륭하게 의시대며 / 하도 용마 높이 타고 한양서울 올라가서 / 유리천상 칠부궁전에 금상님전 용상앞에 / 용연에다 먹을 갈아 산호필반 정을 풀어 / 왕희지의 필법으로 일필휘지 글을 지어 / 일천에다 선장하여 금상님전 올렸드니 / 칠부금상 높이 앉아 천하영웅 얻고 보니 / 황용강 물길이 굽이치고 하도용마 닙굽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