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인베이더2]. 일본에서 동전품귀 현상을 일으켰던 스페이스인베이더, 발매 당시만 해도 모두가 실패할 것이라 예상했다.
‘슈팅게임’은 인간의 사냥본능을 형상화한 게임이다. 총이나 비행기 등으로 화면에 나타나는 적과 장애물을 제거해 가며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슈팅게임의 방식이다. 인류의 시작부터 전해 내려온 ‘수렵’과 ‘사냥’이 슈팅게임의 원류다. 고대와 중세시대 귀족들에게 사냥은 유일한 오락거리였다. 동물을 잡는 사냥이 유원지에서 공기총으로 물건을 쏘아 맞히는 사격게임으로 변했고, 1970년대 이르러 ‘슈팅’이란 전자게임으로 이어졌다.
사냥감을 총으로 명중시킬 때의 짜릿한 쾌감을 슈팅게임을 통해 대리만족 할 수 있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게임 중 하나로 추앙받는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인간의 사냥본능을 정확하게 캐치한 명작게임이다. [스페이스 인베이더] 이후 [갤러그], [제비우스]로 넘어가면서 슈팅의 위대한 계보가 이어진다.
게임판 진주만공습, 불길은 바다 건너 일본에서
[스페이스 인베이더] 화면.
1978년, 한창 전성기를 맞고 있는 미국 게임업계는 바다 건너 일본의 도전을 받는다. 미국에 상륙한 일본게임은 너무나 강력했다. 마치 1941년, 미국을 충격에 빠뜨린 일본의 진주만공습과 같은 것이었다. 일본 게임사 타이토는 우주전쟁을 배경으로 한 완전히 새로운 장르의 게임으로 미국을 초토화 시켰다. 미국 오락실은 일본회사가 만든 이 한편의 게임에 그대로 ‘홀릭’ 상태에 빠졌다.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출연은 일본게임의 출발을 알림과 동시에 게임역사 40동안 이어진 미일 게임전쟁의 서막이었다.
1970년대 세계 게임시장은 아타리가 장악하고 있었다. 1972년 등장한 [퐁]과 그 뒤를 이어 나온 [브레이크아웃(벽돌깨기)]이 연타석 홈런을 치면서 아타리로 상징되는 미국게임은 전 세계를 지배했다. 이어 스티브잡스의 애플 컴퓨터가 나오면서 게임 환경은 날이 갈수록 발전했다. 아타리 게임들은 일본게임시장을 강타했다. 일본은 자국 게임시장을 온전히 미국에게 내줘야 할 신세가 됐다. 그런데 여기서 일본게임의 구세주가 등장한다. 당시 타이토 사의 엔지니어로 일하던 ‘니시카도 토모히로’는 [브레이크아웃]에서 영감을 얻어 우주전쟁을 소재로 한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세상에 내놓는다.
스페이스 인베이더 플레이영상
‘발상의 전환’이 만든 불세출의 슈팅게임
[스페이스인베이더] 캐릭터. [스페이스인베이더]의 외계생물 캐릭터는 디지털 기술을 나타내는 캐릭터 브랜드로도 유명하다
필자는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상의 전환’이라고 여긴다. 게임은 화면 아래에 위치한 비행선이 화면 위의 외계생명체를 쏘아 맞추는 방식이다. 화면 위의 적들은 대열을 짜서 움직이며,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아래로 내려온다. 외계인들이 화면 아래로 완전히 내려오면 게임이 끝난다. 플레이어는 아래로 떨어지는 미사일을 피하면서 외계인들을 모두 쏘아 맞춰야 한다.
지금 보면 슈팅게임의 교과서처럼 보이지만, 당시에는 정말 획기적인 방식이었다. 일단 ‘내’가 아닌 ‘적’이 움직이는 자체가 그 당시 게임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방식이었다. 1970년대 일본을 휩쓴 [브레이크아웃]은 고정되어 있는 상대를 플레이어가 움직여 맞추는 게임이다(하긴 공격대상이 벽돌이니 당연하지 않는가). 남코의 ‘니시카도 토모히로’는 플레이어뿐만 아닌 적들도 상하좌우로 움직이게 하면서 공격의 패턴을 다양화 시켰다. 양방향 공격패턴이 처음 선보이는 순간이다.
시장에서는 이 게임이 실패할 것이라 예상했다. 적이 움직여 플레이어를 공격하는 방식은 난이도가 어렵고 복잡하다고 여겼다. 지금까지 이런 방식의 게임은 없었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타이토는 실패 리스크를 감수하고 게임을 발매했다. 예상대로 시장의 반응은 신통찮았다. 게이머들은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게임방식을 낯설어 했다. 타이토는 그저 그런 ‘실험작’ 하나 만들었다는 셈치고 얼른 다음 작품 개발에 착수 했다. 그런데 3개월이 지나는 시점에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게이머들이 양방향 게임방식의 매력을 알기 시작한 것이다. 탄력 받은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인기는 그야말로 마른 들판에 불길이 번지 듯 전 세계로 확산됐다.
‘동전이 모자라~’ 일본 화폐당국을 당혹케 하다
[스페이스인베이더] 게임기. 대부분 가게에서 물건을 치우고 스페이스 인베이더 게임기를 들여놓을 정도로 인기였다. <출처: (CC)Billy Hicks at Wikipedia.org>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일본에서만 10만대 이상 판매됐다. [퐁]의 열배 이상이다. 워낙 인기가 높아 일본에선 동전 품귀현상이 생길 정도. 동전들이 게임기에 쌓여서 묵혀 있다보니, 나라 전체에 동전이 부족할 지경까지 빠졌다. 일본 화폐당국은 100엔짜리 동전 주조량을 3배 이상 늘려야 했다. 심지어 동전수거 자동차가 동전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 도로 한복판에서 멈춰버리는 해프닝도 있었다.
수많은 가게에서 야채 판매대를 치우고 게임기를 들여놓았다. 1주일이면 게임기 구입비를 뽑을 정도였으니, 당시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상인들에 있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됐다.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게임센터(오락실) 시대를 연 최초의 게임이다. 이전에 게임기는 주로 술집이나 대학가, 혹은 볼링장, 놀이공원 같은 레저시설에 소규모로 설치되어 있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대박을 치자 ‘인베이더 카페’, ‘인베이더 방’ 등 오늘날의 오락실 같은 게임 전용시설들이 생겨났다. 마치 1997년 출시된 ‘스타크래프트’가 국내 PC방 산업을 키운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게임에 대한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만든 오락실 문화는 미국 학부모들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급기야 정부는 17세 이하의 청소년들의 게임장 출입을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오락실에 가느라 무단결석하는 학생들이 늘어난다는 이유다. 당시 전문가들은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하는 것은 마치 최면상태에 빠진 것과 같다”고 평가할 정도다. 이때부터 게임중독성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일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게임장 출입을 금하는 법안이 법원에 제소됐고, 결국 미 텍사스주 법원으로 부터 게임장의 자유로운 영업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이때부터 시작된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전 세계적으로 30만대 이상 팔리는 대히트를 기록한다.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수많은 게임 크리에이터들의 ‘롤모델’이 되었다.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를 만든 엑스엘게임즈 송재경 대표도 어릴 적 문방구 앞에서 설치된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보고 게임개발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오락실의 전설 갤러그, 위대한 아이디어의 탄생
1980년대 초반은 한마디로 슈팅게임의 시대였다. [스페이스 인베이더]와 비슷한 슈팅게임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단순히 아류작들만 나온 것은 아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계승, 발전시킨 불세출의 게임들이 속속 등장했다. 그 중에 하나가 국내 오락실의 전설로 통하는 [갤러그]다. 1981년, 일본 게임사 남코는 [갤럭시안]이라는 슈팅게임을 개발했다.
[갤럭시안] 갤러그가 나오기 전 잠시 나와 인기를 끌었다
[갤러그] 오락실의 전설로 통하는 갤러그, 30대 유저 중 오락실에서 갤러그 한판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갤럭시안]은 [갤러그] 시리즈의 초기 작품이다. 게임내용은 [스페이스 인베이더]와 비슷하지만, 컬러 게임이라는 점이 달랐다. 또, 적들의 인공지능이 좀더 똑똑해져서 보다 다양한 패턴이 요구됐다. [갤럭시안]은 [스페이스 인베이더]만큼 성공하진 못했지만, 이후 [갤러그]로 이어지는 교두보 역할을 했다. 1982년, [갤럭시안]의 완성판인 [갤러그]가 출시된다.
[갤러그]는 1980년대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국민게임’이었다. 아마 30대 이상의 성인 중 오락실이나 문구점 앞에서 [갤러그] 한판 안 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한국 오락실에선 ‘뿅뿅게임’, ‘곤충사냥’이란 이름으로 출시되기도 했다). [갤러그]는 80년대 국내 대표작가 황지우 시인의 작품에도 등장한다. 그만큼 한국인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게임이기도 하다.
[갤러그 합체] 슈팅게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이디어 중 하나인 합체 시스템. 갤러그의 흥행비결은 합체에서 시작된다.
[갤러그]는 [스페이스 인베이더]과 비슷한 방식이지만, 적들의 공격패턴을 다양화 시켰다. 화면 위의 적들이 조금씩 내려오는 방식이 아니라, 화면 여기저기를 돌며 마치 플레이어를 약 올리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화면 밑으로 사라진 적이 갑자기 등장해 플레이어를 공격하는 패턴은 ‘가미가제 전투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갤러그]에선 더욱 정교한 조작실력이 필요했다. 플레이어는 적의 공격패턴을 미리 파악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갤러그]는 여기에 ‘합체’라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보탰다. 거미처럼 생긴 적이 레이저를 쏘면 플레이어의 비행기는 인질이 되어 화면 위를 끌려 올라간다. 이때 납치된 적을 맞춰 쏘면 인질로 잡힌 비행기가 플레이어의 기체와 합체한다. 기체가 합체하면 두 배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물론 운이 없다면 아군의 기체를 맞히는 불운이 따를 수 있다.
[갤러그]의 재미는 합체 이전과 이후로 나눠진다. 기체가 합체하기 전에는 적의 총탄을 피하기 급급했지만, 일단 합체에 성공하면 그때부터 공격력이 갑절로 올라간다. 합체를 해야만 보너스 스테이지에서 점수를 많이 딸 수 있다. 필자는 [갤러그]의 합체야 말로 게임사에서 가장 위대한 아이디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단순한 시스템이 플레이어의 도전욕구를 끊임없이 자극하면서 [갤러그]는 80년대 오락실의 상징이 됐다.
갤러그 플레이영상
슈팅게임의 완성판 ‘제비우스’
남코는 [갤러그] 이후 [제비우스]를 내놓으면서 슈팅의 역사에 방점을 찍는다. [제비우스]는 [스페이스 인베이더], [갤러그]를 잇는 슈팅게임의 완성판이다. [갤러그]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남코는 더 강력한 슈팅게임을 원했다. 1984년 세상에 나온 [제비우스]는 게임시장에 그야말로 문화적 충격이었다.
이전 슈팅게임과는 달리 배경을 움직여 플레이어가 실제 비행하는 것 같이 느끼게 했다. 2D게임 이지만 3D게임 못지않은 입체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공중에서 적의 비행기를 제압하는 동시에 지상의 적들도 폭탄을 쏘아 파괴해야 한다. 우주를 배경으로 단색으로 표현된 이전 게임과 달리, [제비우스]는 숲, 강, 사막 등 사실 적인 배경으로 눈을 즐겁게 했다. 좌우로만 움직였던 이전 슈팅게임과는 달리 비행기를 상하좌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했다. 또한, 게임 속에 '거리'와 '높이'이 개념이 도입 되면서 더욱 입체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됐다. 그야말로 가장 파격적인 변화인 셈이다. [제비우스]는 슈팅게임의 교과서로 불린다. 요즘 나온 최신 슈팅게임은 그래픽만 발전했을 뿐 알고 보면 [제비우스]의 게임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제비우스]. 슈팅게임의 교과서로 불리는 작품.
[제비우스] 포스터. 여기저기서 ‘스타워즈’의 영향을 받았다
[제비우스]의 성공 이후 [그라디우스], [알타입], [1945 스트라이커], [라이덴] 등이 연이어 성공하면서 슈팅게임의 계보를 이었다. 따지고 보면 요즘 나온 게임들은 대부분 슈팅장르를 개량한 게임들이다. 1990년대 이후부터 슈팅게임을 1인칭 시점으로 바꾼 FPS가 게임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았다. 최근엔 국내 게임사 L&K로직코리아가 [거울전쟁: 신성부활]을 통해 MMORPG와 슈팅의 조합이라는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캐릭터를 만들고 마을을 돌아다닐 때는 일반 MMORPG와 같지만, 전투는 슈팅게임으로 즐기는 방식이다. 이러한 시도 하나하나가 슈팅게임의 역사를 바꾸는 ‘발상의 전환’으로 통한다.
제비우스 플레이영상
세상을 바꾼 ‘창조적 모방’
흔히들 일본회사들을 가리켜 모방의 귀재라고 부른다. 하지만 필자는 단순한 ‘모방’이 아닌 ‘창조적 모방’이라고 바꿔 말하고 싶다.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아타리의 [브레이크 아웃]에서 영감을 얻어 나왔다. 또, [갤러그], [제비우스] 같은 걸출한 명작들은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본 딴 작품들이다. 이들 게임은 단순한 카피로 그치지 않았다. 전작의 좋은 점을 계승하고, 여기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가미해 게임을 더 발전시켰다.
슈팅게임 발전사를 하나하나 짚어보면, 결정적인 지점에는 늘 ‘창조적 모방’이 있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창조적 모방’은 슈팅게임의 역사를 이어온 하나의 큰 맥락이다. ‘모방은 제 2의 창조’란 말은 슈팅게임의 역사에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