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내용은 대전KBS 시사프로 "통"에서 8월 23일 저녁 7시 15분에 방송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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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8.19 KBS 녹화. 경청과 환대의집(대전시교육청 가정형 Wee센터):
성공회 나눔의집 유낙준신부와 김조년교수와의 담화:
가출청소년도 시민이다(김해여고생 살인사건- 15세. 가출팸. 잔혹성, 인성, 체계)
1. 부모님이 오후 5시 퇴근하고 중고생은 오후 3시 반이면 하교하여 귀가한다. 자녀들과 부모들이 집안에서 정원가꾸기도 하고 함께 요리하면서 저녁시간을 보내면서 서로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저녁 8시에 동네 회의참여 혹은 동네 펍에 가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오후 9시 반 경에 귀가한다. 1시간 정도 부부간, 집안간 자녀들간 이야기 나눈다. 이는 영국의 보통 가정의 하루 시간이다.
2. 대전시는 한해 500명의 학교 4개가 사라지는 정도로 학업중단 학생들이 발생한다. 전문계 고등학교는 한해 100명 가까이 학업을 중단한다. 누적수를 한다면 한 해 2000명으로 6년간 보면 12000명인데 복귀한 학생을 빼면 최소한 1만 1천여명이다. 학교를 떠난 후 반수 못 미치는 5000여명의 학생수가 무엇을 하는지 실태조차 파악이 안 되고 있다.
중앙정부의 조사로는 실태가 파악 안되는 수가 17만여명, 파악수가 18만 2천여명이다. 합계 36만 2천여명이다. 파악수는 대안학교, 조기유학, 보호관찰, 질병의 사유로 8만 3천명, 취업 5만 1천명, 검시준비생 3만3천명, 쉼터, 시설에 2만 5천명으로 18만 2천명이다. 2013년 가출신고건수 2만 4753명이다. 초기가출 13.6세이다. 가출 후 성관계가 49.7%이다. 14.9세가 첫 성관계나이다. 그 때 성폭행으로 24.7%가 경험한다.
3. 이에 대하여 대전광역시는 거리의 청소년 내지 가출한 청소년에 대하여 서울시처럼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를 세우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서울시는 학교밖 청소년지원센터로 하여금 가출한 청소년의 대안학교 지원역할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하자센터는 학업중단학생의 진로탐색교육지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들 모두 학교밖 청소년에 대한 지원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대전시는 학교밖 청소년 지원센터도 없고 학업중단학생에 대한 하자센터도 없다. 학교밖 청소년과 학업중단학생에게는 대전시민의 범주에 들어와 있지도 않다. 이들에게는 서울시가 대전시보다 더 행복한 곳이 될 것이다.
대전시에 학교밖 청소년지원센터를 세워 대안교육의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진로탐색작업을 지원하는 하자센터를 학업중단학생에 대한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교육청은 Wee 스쿨을 숲속에 대형 대안학교가 아니라 지역마다 곳곳에 빌라 한동 정도의 크기인 작은학교를 여러 개 세워 그 여러개의 네트워크 학교를 Wee스쿨이라 하여 세우기를 바란다. 이는 학업중단을 에방하는 작업이 된다. 대전시 교육청은 이 작은학교가 최초로 세워졌고 이 작은 학교가 교육부 공립형 대안학교의 모델로 각광을 받고 있는 중이다.
4. 특수한 집단인 군대와 가출팸이라는 곳에서의 잔혹성이 십대와 20대 초반에 나타난 최근의 현상을 직시하자. 이는 청소년이 성인의 잔혹성을 익혀 나타난 것이라 파악된다.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의 압축성장이 획일화 내지 무개성화로 인간인식이 획일화로 가면서 한 인간의 특수성에 대한 몰이해가 잔혹성이 드러났다고 본다. 인간의 영혼은 없는 경제성장의 효율성만 중시여기는 모습이 인간성 없는 인간을 양산해 왔다. 공동체 경험이 전무한 세대를 양산해 냈기에 잘못된 집단체의 삶을 잔혹성으로 채운 것이다. 현재의 청소년의 부모세대들의 인간보다 효율성을 이야기 하면서 인간의 이기심을 최대한 확장해 놓았다. 욕심많은 이기심의 세대인 부모들의 삶을 보면서 배운 것은 비인간성인 것이다. 가족에게는 무한한 돈을 쓰면서 다른 사람인 가족 밖의 사람에게는 인색함을 가진 부모들을 보았다. 그리고 자라서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없이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는 인간이 되었다. 어디에도 어느 시간에도 인간성을 찾기에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5. 우리 청소년에게는 배려를 본 적이 없었다. 폭력적인 아버지의 손을 잡아 본 기억이 없었다. 힘있는 사람으로 인한 피해를 보면 수치감과 자기모멸감을 갖게 되는데 이미 전쟁을 치른 이들 할아버지세대의 한국전쟁과 월남전쟁경험이 준 잔혹성과 아버지 세대들이 지닌 이기심 채우기에 혈안이 된 경험이 현재의 청소년들에게 비인간적이더라도 자기만을 위한 삶을 우선하게 되었다. 자신이 힘이 있다 여기면 교만하거나 거만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부끄러움으로만 산 수치감으로 쌓인 인생을 너무 쉽게 부모님들에게서 볼 수 있다. 자기 수치심은 자기모멸감으로 인식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알고 있는 사람으로부터의 피해를 입은 사람은 스스로의 죄의식과 굴욕감에 시달리게 된다. 죄의식과 굴욕감이 반복되면 금방 깊숙한 상처 변한다. 이는 억압당하는 고통이 된다. 이 고통이 언제 터질지 모르게 되면 심한 억압의 삶이 되기 쉽다. 죄의식은 자신의 자유로 살기 힘들게 한다. 중독에 빠지기 쉬운 삶이 된다. 굴욕감 자체도 과잉된 자기과시나 과도한 자기몰입으로 살게 한다. 아주 사소한 일에서도 과시나 몰입된 자세를 보여 균형적인 삶이 되지 못한다. 언제나 깨지기 쉬운 삶의 모습을 띤다.
수치심, 자기모멸, 죄의식, 굴욕감은 상처가 되어 고통으로 자신 안에 가두게 된다. 그렇게 사는 삶의 특징을 보면
첫째, 자아정체성을 헝클어 놓아 자신을 무너뜨린다.
둘째, 삶의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게 만들어 피해가 상처로 트라우마로 남는다.
셋째, 자신을 뒤흔들고 조각내고 부숴버린다.
넷째, 메마른 황무지로 하염없이 우리를 끌고 가 버린다.
이로 인하여 세대 모두의 마음이 무너진 채로 사는 사회가 된다.
이를 극복하려면
1) 쓰라린 아픔 사람들의 고통에 귀기울여야 하고,
2) 신뢰가 깨진다는 것이 얼마나 인간성을 파괴하는가를 깨달아
신뢰를 하나씩 세워 나아가야 한다.
* 한 사람에 대한 이해를 더 깊게 하기 위하여 매뉴얼을 제작하고 케이스 웤을 하는데 이조차 획일적인 인간상을 전제로 하는듯 하다. 인간은 한 사람 한 사람 고유한 특성을 받아 태어났고 그 천품을 이어가는 삶이 고유하게 존재한다. 이를 전제하는 교육철학이라면 적어도 획일화된 교육이어서는 안된다. 스토리로 이어가는 교육이어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 고유한 이야기로 이어지는 인생이 우리사회의 전제된 인식이라면 우리사회는 인간다운 꽃이 피어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첫댓글 대전교구 주교로 선출되신 유낙준 모세신부님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최근 자료여서 올립니다. 알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