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 달라붙어라… 조선시대에도 합격 기원하며 엿 선물했대요
합격기원 엿
이제 올해 수능시험일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시험장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입에 무엇인가를 물고 있네! 저게 뭐지?" "엿이야." "엿? 주전부리(★)라면 떡도 있고, 강정도 있는데 왜 하필 엿일까?" "그야, 끈적끈적해서 잘 달라붙는 엿처럼 시험에 붙으라고 먹는 거지." "그래서 시험장 주변에 저렇게 많은 엿장수가 엿을 팔고 있군." "오늘 같은 날이 바로 엿장수들 신바람 나는 날이거든."
조선시대 후기에 과거 시험장에서 벌어진 풍경이에요. 조선시대가 아니라 대학 입시 시험장 풍경이 아니냐고요? 물론 요즘에도 수능 시험처럼 중요한 시험을 치르는 장소에는 엿이 등장해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과거 시험을 치르는 시험장엔 어김없이 엿이 있었답니다. 엿이 긴장을 풀어주고, 소화를 도와주고, 기침과 가래를 멎게 하고, 갈증을 없애주는 효능이 있어서일까요? 아마도 합격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 때문에 시작된 풍속일 거예요.
조선왕조실록은 엿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어요. '지평(★)이한일(李漢一)이 아뢰기를, 이번 과장(科場)은 엄숙하지 못하여 떡·엿·술·담배 따위를 현장에서 터놓고 팔았다'. 즉 이한일이라는 사람이 "장사꾼들이 떡과 엿, 술과 담배를 거리낌 없이 팔아 과거 시험장이 소란스러웠다. 시험장 질서를 단속하는 관리를 벌해야 한다"고 임금께 아뢴 것이에요. 영조 49년인 1773년 4월 9일의 기록이지요.
엿을 만들려면 우선 쌀이나 찹쌀, 조, 수수, 옥수수 등의 곡물로 밥을 지어 엿기름으로 삭혀요. 그다음 겻불(★)로 밥이 물처럼 되도록 끓이고, 그것을 자루에 넣어 짜내요. 그리고 찐득찐득해질 때까지 오래오래 고아 엿을 만들지요. 묽은 엿은 조청, 더 오래 졸여서 굳힌 것은 갱엿, 갱엿이 굳기 전에 여러 차례 늘여 희게 만든 것은 흰엿(백당)이라고 하지요. 조선시대는 물론 고려시대나 그 이전부터 엿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지요. 옛날에는 단맛을 내는 먹을 것이 귀해 명절이나 잔치처럼 즐거운 날에 먹었어요. 먼 길을 떠나는 선비들의 비상식량이나 몸이 허약한 환자를 위한 식품으로 사랑을 받기도 했죠.
조선 후기에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에 엿장수가 나타나 엿을 팔았어요. 조선 후기에 펴낸 것으로 보이는 '한경지략(★)'에는 '엿과 사탕을 파는 가게가 서울 곳곳에 있으며 아이들이 메고 다니면서 팔기도 한다'고 기록돼 있지요. 목판(★)을 메고 다니며 엿을 파는 엿장수의 모습은 김홍도의 풍속화에서 볼 수 있고요. 단원풍속도첩 중에서 '씨름'이라는 그림을 보면, 구경꾼들 속에서 엿판을 든 엿장수를 볼 수 있어요. 상투를 틀지 않고 땋은 것을 미뤄볼 때 아이거나 총각임을 짐작할 수 있지요. 오늘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열리는 날이에요.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들이 모두 별 탈 없이 시험을 잘 치르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