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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스님은 증오(證悟)를 부정했던가 ? (4)
김호성 교수의 이른바 ‘돈오의 새로운 해석’에 대하여
글/ 박성배(뉴욕주립대학교 스토니부룩대학 비교학과 종교학 교수)
김교수와 필자의 해오 이해는 상당히 다르다.
김교수는 이 사실을 무시한 채, 그저 필자 가 보조스님의 해오를 지해로 오해하고 있다'고 단정하고 줄기찬 공격을 계속하였다. 어떻게 다른가 검토해보자.
박교수는 1963년에 발표한 논문<悟의 問題>에서 〈節要》의 私曰 於此不生怯弱 的信自心 略借廻光 親嘗法味者 是謂修心人解悟處也. 若無親切返照之功 徒自點頭道 現今了了能知是佛心者"라는 문장을 인용하고서 "그러므로 알았다고 고개만 끄덕인다면 이는 悟가 아니다. 목우자는 이들에 대해서 識悟라는 말을 쓴다'라고 하였는데 이때에도 해오를 누구의 설명 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앎 정도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위의 문장은 佛卽是心을 믿지 못하는 대소승의 방편설 (法相)및 人天敎 등 着相之人의 소견에 대해서 종밀이 비판함에 대하여 오히려 종밀처럼 佛卽是心이라고 깨닫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해오 이후 親切反照之功 즉 漸修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지견박사 화갑기념논문집>>, pp. 467-468).
김교수는 여기에서도 필자가 해오를 누구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더이는 앎 정도의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고 힐난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바로 앞줄에서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인다면 오가 아니다' 라고 말했을 뿐 오를 '고개를 끄터이는 앎' 이라고 말한 적은 없다. 뭔가 의사소통이 잘 안되고 있는 듯하다. 그리 고 또한 김교수는 '해오 이후 접수하라' 는것이 보조 스님의 뜻인 것처럼 결론짓고 있다. 해오이후 점수 해야 한다'는 것은 보조사상의 기본공식이다. 그러나 이 공식을 여기에 마구 적용하면 보조스님의 뜻을 그르치게 된다. 왜 그런가를 한번 밝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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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김교수가 이 문장의 ‘親切反照之功’ 을 그 대로 일반적인 ‘ 悟後의 漸修'로 속단한 데서 비롯한다. 보조스님은 여기에서 친절반조지공이 없는 깨달음은 깨달음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김교수는 보조스님의 뜻과는 반대로 친절반조지공 이전에 이미 해오를 얻어버렸고, 그런 해오를 얻은 다음에 친절반조지공이라는 오후의 점수를 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필자는 친절반조지공을 해오의 조건으로 보는데 반하여 김교수는 이를 해오 이후의 점수로 보고 있다. 괴롭지만 우리는 또 여기에서 보조스님의 글을 먼저 인용하고 분석해보지 않을 수 없다.
私曰 於此 的信自心 略借廻光 親嘗法味者 是謂修心人 解悟處也. 若無親切返照之功 徒自點頭道 現今了了能知 是佛心者
心人语處也若無 親切返照之功 徒自點頭道道 現今了 丁能知是佛心者 甚非得意者也《 보조전서,p.111)
나(목우자)는 말하겠다. 여기서 겁내지 않고 자기의 마음을 똑바로 믿어 잠깐이라도 생각을 돌려 몸소 진리를 맛본다면 이런 경지를 마음닦는 사람의 깨달은 경지라고 한다. 그러나 만약 몸소 반조하는 공을 들이지 않고 한갓 머리를 끄덕이면서 내가 지금 능히 소소영영하게 아는 이 놈이 바로 부처님의 마음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대단히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필자의 의역)
으로 이오
‘대단히 잘못 알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할 수 는 없다. 잘못알고 있다고 꾸중 듣는 이유는 몸소
반조하는 공도 없이 아는 척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親切返照之功을 해오의 조건이라 말했던 것이다. 거듭 독자의 주의를 촉구하는 바이지만 이것은 항상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적어도 본 문장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들이 조심해야 할 것온 親切返照之功이란 말이 어떤 때는 해오 이후의 점수를 가리킬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지금처럼 해오의 조건으로 쓰여질 때도 있어 일정치 않다는 사실이다.
본 문장에서도 바로 앞줄에 나오는 해오라는 말이 앞서 문장에서도 ‘略借廻光 親嘗法味’라는 말이 ‘親切返照之功’과 똑같이 해오의 조건으로 딱 버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비슷한 문장이 〈節要>의 뒷부분에 가서 또 나온다. 여기에서는 아주 노골적으로 返照의 功이 깨달음의 조건 임을 명백히 선언하 고 있다.
前不云乎 若無親切返照之功 徒者 點頭道 現今能知 是佛心者 甚非得意 豈可認目前鑑覺 為空寂盘知言不辯真妄者 爲悟心之士耶 當知吾所謂悟心之士者 非但言說除疑 直是將空寂靈知之言 有返照之功因返照
功得離念心證者也(p. 159)
前不云乎 若無親切返照之功, 徒自點頭道: “現今能知, 是佛心者”, 甚非得意. 豈可認目前鑑覺, 爲空寂靈知, (言)不辨眞妄者, 爲悟心之士耶 當知吾所謂悟心之士者, 非但言說除疑, 直是將空寂靈知之言, 有返照之功, 因返照功, 得離念心體者也. (보조전서 p. 159)
앞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만약 몸소 돌이 커 비추어보는 공도 없이 (제법 무엇이나 깨달온 듯이) 한갓 스스로 머리만 끄덕이면서 지금 (내 속에서) 모든 것을 능히 아는 이 놈이 바로 부처님의 마음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고. 어리석게도 ‘당장 눈앞에서 보고 느끼는 것'을 그대로 텅 비어 고요하기 짝이 없으면서도 신령스 럽게 모든 것을 다 아는 부처님' 이라 생각하면서 사실은 참과 거짓의 구별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을 내가 어찌 깨달은 사람이라 하겠는가? <다시 말하면 친절반조지공이 없는 사람은 깨달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마땅히 알지니라. 내가 어떤 사람을 가리켜 깨달은 사람이라고 말할 때에는 단순히 언설의 차원에서 의심이 풀린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똑바로 텅 비어 고요하기 짝이 없으면서 신령스럽게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말씀을 인연으
로 반조의 공을 들이고 또한 그 반조의 공으로 말미암아 생각을 여원 마음의 體를 깨달아 얻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필자의 해설적 번역)
여기에서도 필자는 해설적인 번역을 시도하였다.
번역 자체에 목적이 있지 않고 원만한 의사소통이 더 시급했기 때문이다. 보조스님은 여기에서 깨달옴이 언설의 차원이 아니라 親證의 차원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空寂 靈知’같은 선지식의 말씀이 어떻게 초보자들에게 깨달음의 인연으로 작용하는가를 밝히고 있다. 《《보조 어록>》올 읽는 사람은 이 두 가지 를 다 알아듣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보조사상의 본래면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김교수는 점수가 해오의 다음에 하는 일이라는 일반 공식을 여기에 그대로 적용하려 했기 때문에 보조스님의 뜻을 흐리게 해버렸다고 말할 수 있을 줄 안다. 보조스님의 참뜻은 위에서도 분명한 것 처럼 가짜 해오를 적발해 내는 데에 있다.
참다운 보조철학은 국사가 자주 언급하는 廻光反照가 과연 어떤 것인지 그리고 언설의 차원이 아닌 親證의 차원에 서 참과 거짓을 가려낼 줄 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밝혀내는 일에서 부터 착실히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깨달음과 닦음의 문제를 다루는 보조사상은 체험분석적인 사상전개가 불가피하다는 말이다. 여기에 한국 불교의 고민이 있는 것 같다. 체험한 사람은 입을 열기 싫어하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체험에 약하다는 이 평행선올 어떻게 만나게 할 수는 없을까?
보조스님이 '아무런 닦음의 공을 들이지 않아도 얻을 수 있다'는 해오의 일반적인 정의에 위협을 주면서까지 반조의 공을 들여야 하고 그런 공으로 말미암아 (因返照功) 생각을 여윈 심체를 얻은 사람이라야 깨달은 사람이 라고 강조할 수 있었다는 것은 보조스님 스스로가 항상 언설의 차원보다는 親證의 차원을 강조하는 선문에 속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보조스님의 《절요>>는 이 문장 바로 다음부터 이제까지의 토론을 끝맺고 새로운 장을 여는 유명한 편다 환을 펼치는 것이다. 《절요》>는 그 다음부터 끝까지 경절문 이야기로 일관하고 있다.
김교수는 이 유명한 '경절문서설'을 가지고 그의 여러 논문에서 성철스님을 비판하고 있다. 김교수 는 그의 논문에서 보조스님의 간화경절문이 근기가 하열한 사람들에게 시설된 것이라는 말을 누누이 강 조하고 나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필자(김교수)의 전게 졸고에서 상세히 해 명했으나-<선문정로>에서도 같은 오해를 하고 있으며, 《절요) 원문의 축약이 보이는 곳이라고 지적했다 -- 중차대한 문제이므 로 여기서 다시 한 번 상술하고자 한다. 《김지견박사화갑기념논 문집〉,p.471
여기서 전게 졸고란 《한국불교학>> 제15집에 실린 김교수의 <돈오점수의 새로운 해석>이라는 논문을 가리킨다. 김교수의 두 논문이 모두 그가 말하는 소위 중차대한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똑같은 인용문을 가지고 똑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결론의 요점은 성철스님도 필자도 모두 보조스님을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오해했다는 것인지 그의 주장부터 한번 들어보자.
우선 필자(김교수)는 《《선문정로》》가 《절요>>를 인용함에 있어서 원문을 충실히 옮기지 않았음을 지적해두고자 한다. 물론 저자의 편의에 따라서 축약해서 옮길 수는 있으나 ..... 그 사실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처럼 중차대한 문제를 다툼에 있어서 자의적인 축약은 내용에 대한 왜곡된 해석을 가져오기 쉬운 법이며 실제로 이 경우, 보조의 의도와는 달리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불교학》) 제15집, p.443).
우리는 여기서 김교수가 지적한 '보조스님의 의도와는 달리 해석되고 있는 부분' 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밝혀내야 한다. 그러므로 지루하지만 우리는 또다시 보조스님의 원문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원문이 무엇인 줄 알아야 이에 대한 두 해석의 차이도 제대로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1) 然 上來所得法門 幷是,固然言生解將人者 翠精法有隨橡不獎二裁人有頓悟漸修兩門
(2) 以二義 知-藏經論之指歸 是自心之性相 以兩門見一切賢聖之軌轍(괘철) 是自行始終 如是揀辨 本未了然令人不迷 遷勸就實 速證菩提
(3) 然 若一向 依言生解 不知轉身之路 雖終日觀察 轉爲知解所縛 未有休歇時
(④)故 更爲令時衲僧門下 離言得人,頓忘知解之者 雖非密師所尚 略引租師善知識 以徑截方便 提接學者 所有言句係於此後 令參禪峻流 知有出身一條活路耳 ((보조전서), P.159)
(1) 그러나 이제까지 열거한 법문들은 모두가 다 <불조의 〉 맡 씀에 의지하여 理解가 생겨 깨달아 들어간 사람들을 위해서 法에는 수연과 不變이라는 두 이치가 있고 사람에는 돈오와 점수라는 두 문이 있다는 것을 자상하게 밝힌 것이었다.
(2) 두 이치로써 일장 경론의 指歸가 바로 자심의 性相임을 알게 하고 두 문으로써 일체 현성의 괘철(軌轍)이 바로 자기 수행의 시종(始終)임을 보게 한 것이니 이와 같이 근본과 지말을 분명하게 간변(揀辨)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미(迷)하지 않게 하고 일시적인 권도를 버리고 여실한 가르침으로 돌아가 속히 보리를 중득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3) 그러나 만약 어떤 사람이 한결같이 말에만 의지하여 이해할 뿐 轉身의 길을 모른다면 비록 종일토록 이치를 관찰한다 할 지라도 더욱더욱 지해에만 속박되어 쉴 때가 없을 것이다.
(4) 그러므로 이제 또다시 수행자들 가운데 말을 여의고 바로 깨달아 그 자리에서 지해를 극복할 사람들을 위해서 비록 종밀스님이 숭상한 바는 아니었지만 조사 선지식들이 경절방편으로 학자들을 제접할 때 쓰신 말씀들을 여기에 간략하게 인용하여 이 뒤에 붙이는 것은 참선하는 뛰어난 무리들로 하여금 한 가닥의 出身活路가 있다는 것을 알게끔 하기 위한 것이다. (필자의 의역)
문단의 구별과 번호매김은 김교수의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 이 문장은 보조스님이 그의 <법집별행록절요>에서 이제까지 계속 돈오점수설을 중심으로 이야기해 내려오다가 이제부터 방향을 전환하여 경절문 이야기로 들어가면서 앞뒤를 회통시키기 위해 쓰신 글이다. 문장의 성격상 結上生下적인 역할을 하는 중요한 글이다. 이 문장은 구조적으로 앞 뒤 둘로 나눌 수 있다. 편의상 앞의 것은 結上章이라 명명하고, 뒤의 것은 生下章이라 명명하자. 결상장이나 생화장이나 둘 다 각각 핵심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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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의 그것은 간변사상(揀辨思想)이고 후자의 그것은 전신사상(轉身思想)이라 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간변사상이란
사람들이 어리석었을 때는 일장경론이 가리킨 바와 일체현성 이 걸었던 길이 나 밖에 따로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수연불변과 돈오점수의 가르침을 통해서 이것들이 모두 自心의 性相이요, 自行의 始終임을 알았다. 밖의 것이 안의 것으로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고, 생명없는 것들이 생명있는 것으로 되살아 나왔다고도 말할 수 있다. 바로 앞의 문장에서 보조스님이 보여준 언설의 차원을 극복하고, 親證의 차원으로 넘어가려는 간절함이 여기서 마지막 용트림을 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것을 한마디로 간변사상이라 부르고 싶다. 그 다옴 생하장의 전신사상이란 무엇인가? 전신은 마지막의 출신과 같은 말이다. 그래서 보조스님은轉身之路니 出身活路니 하는 말을 쓰신 것이다. 전후 문맥 으로 보아서 전신의 길온 간화경절문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전신사상은 解碍로 말미암아 탄생한다. 知解所縛이란 말이 바로 해애를 가리키는 말이다. 궁하지 않으면 통하지 않듯이, 해애 없이는 전신이 요청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보조사상에서 지해와 해애를 빼버리면 어떻게 될까? 용을 그려놓고 아직 그 눈동자를 그려넣지 않은 격이 되고 말 것이다. 해애는 간변의 필연적인 산물이다. 따라서 간변은 전신을 요청한다. 이리하여 이 두 말은 돌찌귀처럼 함께 일하는 것이다. 이것이 결상생하적인 경절문서설에 나 타난 보조사상의 구조라고 생각한다.
김교수는 '경절문서설' 올 인용하면서 성철스님이 《선문정로>>에서 ‘以二義'로 시작되는 둘째 문장을 빼버렸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사실을 지적한 것 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대차한 문제가 있다는 말만 자꾸 되풀이할 뿐, 문장구조의 분석과 문맥분석을 통해 왜 이것이 중차대한가를 논증하지 않았다. 이러한 분석의 결핍으로 말미암아 김교수의 결론은 보조스님의 뜻과는 아주 먼 것이 되고 말았다. 김교수의 결론을 직접 들어보자.
오히려 보조는 <선문정로>에서 생략한 둘째 문장에서 돈오점수만 잘 수행하면 여실하게 간변하고 본말을 잘 요해하면 그것으로 성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불교학> 제15집,P.444).
〈<선문정로>>가 생략해버린 둘째 번 문장 속에 과연 김교수의 주장이 들어있는가? 다시 한 번 보조스님의 원문을 들여 다보자.
以二義 知一切經論之指歸 是自心 之性相 以兩門見一切賢聖之軌轍 是自行之始終
두 이치로써 일장경론이 가리키는 것들이 모두 자기 마음의 성과 상임올 알게 하고 양문으로써 일체 현성들이 걸어갔던 길들이 모두 자기 수행의 출발점과 종착점 임올 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필자가 문제삼고 싶은 것은 보조스님이 이 문장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과 '돈오점수만 잘 수행하면 그것으로 성현이 될 수 있다'는 김교수의 문장이해 사이에 가로놓인 거리이다. 가까운가? 먼가? 김교수의 이해가 보조사상 속에 없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보조스님이 ‘지금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지 않느냐는 말이다. 생략된 둘째번 문장은 필자의 분석에 의하면 揀辨章의 중요한 구절이었다. 간변의 주역은 지해이다. 다시 말하면 이 문장을 보고 바로 견성하여 해오를 성취한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상근기에 속하는 사람들은 돈오돈수해서 일생의 參學事를 頓華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이 문장이 문제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들이 지금 문제삼고 있는 이 문장이 크게는 《절요>라는 책의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적게는 경절문서설 속에서 수행하고 있는 특수한 사명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명이 무엇이나를 밝혀내야 한다. 그것은 지해를 주무기로 수행되고 있는 간변사상아라는 것이다. 김교수는 지해라는 말만 나오면 보조스님의 해오를 오해했다고 야단을 치니 아주 조심스럽다. 이것은 《선문정로》라는 화살에 맞은 상처 때문인 듯하다. 보조사상은 논하면서 지해를 과소 평가한다는 것은 ‘緣木求魚’ 라고 밖엔 볼 수 없다. 거듭 말하지만 둘째 문장은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 는 知解로 읽어야 하고 그래야 보조스님의 본뜻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김교수는 또한 보조스님의 체계에서는 어디까지나 돈오점수가 근본이고 원돈신해문과 간화경절문은 보완적인 성격밖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로 그는 보조스님의 비명에 나오는 글을 내세운다. 그러나 비명(보조스님, P. 420) 올 자세히 뜯어다보면 그 뜻은 김교수의 주장과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곧 알 수 있다.
보조스님온 사람들에게 불교책을 권할 때, 다시 말하면 권인송지( 勸人誦持) 할 때, 금강경을 바탕으로 하고 《
육조단경>>의 정신에 입각하되 이통현의 《신화엄경론>>과 대혜스님의 어록을 항상 새의 두 날개처럼 요긴하게 사용하였다고 말했을 뿐이다. 이 말은 《금강경>과 《육조단경〉》의 정신을 실천해나가는 데 있어서 <華嚴李論>과 〈大慧語錄>이 둘 다 필수적이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 다음에 開門을 말할 때는 三門을 똑같이 말할 뿐 원돈신해문과 경절문이 돈오점수를 보완하는 관계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김교수는 권인송지의 경우와 개문의 경우를 혼동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교수의 이러한 일련의 발언들을 종합해 보면 어떤 일관성이 있는 것 같다. 김교수로 하여금 보조해석을 그렇게 새롭게 (?) 하게 하는 가장 큰 동기는 그가 원래 중에 대해서 부정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증오를 부정하면 연쇄적으로 생기는 현상이 간화경절사상의 평가 절하현상이다. 증오를 전제하지 않으면 경적문은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김교수의 그러한 사상적인 경향을 비난하지는 않는다.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간화선을 비난하는 사람은 한 두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김교수가 과연 보조스님도 그랬었 다고 주장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김교수는 성철스님 의 주장을 부정하려다가 많은 곳에서 보조스님의 주장을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만것 같다.
1990년 10월 14일, 순천 송광사의 보조사상 국제 회의에서 발표한 〈성철스님의 돈오점수설 비판에 대 하여〉라는 논문의 결론 부분에서 필자는 보조스님의 돈오점수설을 ‘頓悟頓修的 漸修說’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그날 논평자로 나온 전치수 교수는 필자의 주장을 "보조스님의 돈오 점수설과 다를 바 없다"고 평하였던가. 그러나 김호성교수는 최근에 발표한 그의 〈돈오돈수적 점수설의 문제점〉이라는 논문에서 필자의 주장을 성철스님의 돈오돈수설을 그대로 수용한 데서 비롯한 것 처럼 평하였다. 하나의 논문을 놓고 두 가지의 상반된 평이 나온 셈이다. 이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보는 관점이 다르면 사물은 달리 보이게 마련이다. 문제는 어떤 관점에서 보아야 보다 타당한가에 있을 것이다.
전교수와 김교수는 각각 어떤 관점에서 필자를 보았을까? 얼핏 보기에 전교수는 성철스님의 돈오돈수설에 입각하여 필자를 본 것 같고, 김교수는 보조스님 의 돈오점수설에 입각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전교수도 김교수도 각각 성철스님과 보조스님의 사상에 충실한 답변을 통해서 분명히 해두었다고 생각한다.주2) 전치수의 평에 대해서는 필자가 ‘미주현대불교 17호 (1991년 9월호)에 ‘전치수 교수에 답함’이라는 글로 답 변하였다. 필자가 돈오돈수적 점수설'을 요즈음의 돈점논쟁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내놓았을 때, 필자에게는 "어느 쪽을 편든다'는 생각도 물론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희롱이었다고 제삼자가 평하는 것을 막을 길은 없지만 필자 자신이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회통을 시도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필자는 김호성교수가 사용하는 의미에서의 희통올 불교의 회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파사현정이라야 희통이요, 헌 것은 죽고 새 것이 태어나야 회통이지, 아무개는 교판론자이고 나는 회퉁론자이고 하는 식의 회통온 회통 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철저한 부정, 철저한 兩否定, 쌍차(雙遮), 전간(全揀), 살인검(殺人劍) 등등.... 전간(全揀)은 불교 철학과 선(禪) 사상에서 쓰이는 개념으로, 일체의 차별적인 현상과 언어, 개념을 모두 부정하고 가려내어(간·揀) 진리를 드러내는 방법을 뜻합니다.--- 편집자 주 .
이런 것 없이 무슨 부활이 있으며, 새 것의 탄생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러므로 진절한 회통에는 반드시 그 전에 또는 동시에 아 니면 그 뒤에 부정의 실천으로서의 교판작업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의
'돈오돈수적 점수설'이라는 말 속에 현실부정적인 요소가 내포되어 있었다는 것을 숨길 필요는 없다.
보조스님의 돈오점수설을 그대로 주장하지 않고 구태여 돈오를 '돈오돈수적이란 말로 바꾼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깨침도 아닌 것을 깨침이라 주장하고 다니는 사람들의 발호를 막아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깨침의 기준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성철스님의 '돈오돈수설'을 그대로 주장하지 않고 점수란 말을 구태여 첨가한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었다. 돈오돈수만을 내세우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변명할 길 없는 ‘亡宗의 의 弊風’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보조스님이 해오사상을 널리 보급하여 신해의 의미를 분명히 하고 또 당시의 불교계를 信의 불교'에서 悟의 불교'로 발전시킨 것은 보조스님의 큰 공헌이었다. 그러나 거기에서 결과적으로 김호성교수의 경우에서도 나타났듯이 修行門中에서 悟가 수행해야 할 날카로운 면이 둔화되고 오히려 오의 격하현상이 생기고 말았다. 그래서 해애 덩어리의 거짓도인이 횡행하고 이러한 자칭 도인들은 해애를 부끄러워 할 줄도 몰랐고 따라서 아무런 괴로움도 없는 듯이 보였다. 화두를 들기는 커녕 경절문 자체를 과소평가하는 풍조가 생겼다. 이것은 분명히 보조스님의 본의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가장 경계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조스님의 참뜻을 살리기 위해서 오의 기준올 해오에서 증오를 높임으로써 오에 대한 오해 또는 禪의 저질화 현상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른 것 이다. 그리고 보조스님의 보현행원 사상을 그가 강조하는 점수의 본질로 부각하여 그의 점수사상을 단순히 깨닫기 위한 점수로 오해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므로 전치수교수가 필자를 돈오점수파로 낙인찍는 것은 적평 이 못 된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필자를 돈오돈수파로 몰아붙인 김호성교수의 평도 필자가 본 논문에서 밝힌 여러 가지 이유로 역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두 평이 모두 일면적인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두 평이 모두 필자가 돈오점수설과 돈오돈수설의 장점에 동의하는 부분만을 지적했을 뿐, 두 학설의 단점에 동의하지 부분을 지적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앞으로의 대화를 위해 제기하고 싶은 것은 필자의 돈오돈수적 점수설이 갖는 兩否定的인 면에 대해서 좀더 깊이 파고들어가고 싶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필자 자신이 돈오돈수적 점수설을 하나의 대안으로 언급했지만 그 언급은 시사하는 정도에 그치고 그 이상은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평자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필자가 항상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여러 스승의 가르침에 힘입어 조금이라도 깨침의 소중함을 알게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항상 깨치지도 못한 사람이 깨쳤다고 주장하는 폐풍에 비교적 민감한 편이었다. 필자는 보조스님도 이 폐풍을 바로잡기 위해서 많은 말씀을 하셨고, 성철스님 또한 이 폐풍 때문에 《선문정로>를 쓰신 것으로 안다. 돈오돈수를 내세우면서 '이제는 더 닦을 필요없다고 공언하는 무리들을 보조스님이 힐책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바로 성철스님의 돈오돈수설 비판으로 직결하는 것은 위험한 속단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불교의 역사상 이제는 더 닦을 필요 없다' 고 발언한 선지식 은 상당히 많았다. 그러나 그렇게 말한 사람들 가운데 실제로 수행을 그만둔 사람은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만일 있었다면 그 선지식은 진정한 선지식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돈오돈수라는 말이 지니는 상징적인 의미를 잡지 못하고 '이제는 더 닦을 필요없다는 말만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 시비를 가리려 하는 것은 분명한 한로축괴(韓盧逐塊)라고 밖엔 말할 수 없다. 한로축괴(韓盧逐塊) 사람이 흙덩이를 던지면, 개는 그 근본 원인(던진 사람)을 보지 못하고 눈앞에 날아가는 흙덩이만 바쁘게 쫓아갑니다. 이는 본질이나 근본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말(언어), 문자, 눈앞의 지엽적인 현상(차별상)에만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합니다. 편집자 주.
돈오돈수 같은 선불교인들이 사용하는 전문용어를 선불교권 밖의 일반적인 경험에다 견강부회한 잘못된 선불교사전을 가지고 공부하는 무리들이 나는 이제 해오를 얻었으니 앞으로 점수만 하면 된다고 말하고 다닌다 하여 그것을 보조스님의 돈오점수설 때문이라고 단정해서도 안될 것이다. 어느 쪽이건 아류는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근원에서 멀어질수록 별별 오해와 왜곡이 불어나기 마련이다. 여기에서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선종에서도 선지식의 파사현정이 등장하는 것이다. 선지식이란 사이비를 고발할 줄 아는 사람이다. 또한 선지식은 사이비의 발호를 막기 위해 앞장 선 사람이다. 〈보조어록>도 <선문정로》도 모두 파사현정의 글들이다. 그리고 이들 모두 공부 않는 사람을 다시 공부하게 만들었다. 돈오점수설 때문에 공부않던 사람이 다시 공부하게 될 수도 있고 돈오돈수설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우리는 이 점올 높이 사야 한다.
요즈음엔 사이비를 가릴 기준도 없어져버린 것 같고 사이비를 적발해내는 선지식도 사라져버린 것 같다. 필자는 평소에 궁극적인 오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가져왔다. 그것을 뭐라고 부르건 이름 같은 것은 상관없다. 구경각이면 어떻고 初見性이면 어떻냐. 증오라도 좋고 해오라도 좋다. 문제는 무엇을 가지고 그렇게 부르느냐에 있다. 증오니 구경각이니 하고 거창한 말을 쓰고 거드름을 피우지만 말하는 사람의 관심사가 밤낮 자기의 이해관계나 인기관리 같은 것에 쏠려 있다면 대단할 것 하나도 없고, 반대로 初發心이니 또는 解碍이 하고 답답한 문제만 들고 나오더라도 그 속에서 가장 궁극적인 것을 드러내고 있다면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이름은 문제가 아니다. 경지가 문제다. 그러므로 옛부터 우리의 선지식들은 궁극적인 오가 아닌 것을 오라 내세우는 *미증위증죄(未證謂證罪)를 부모 죽인 죄보다도 더 엄하게 다루었다. 오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일종의 구제론적인 개념이다. 구제받지 못한 자가 나는 이미 구제받았노라'고 공언하고 다닌다면, 그러고 다니는 한, 그 사람은 구제받을 길이 없는 것이다. 필자가 증오를 철저히 따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호성교수가 해오의 절대성과 완전성을 강조할 때, 그 속에 證悟의 차원을 내포하고서 그렇게 말했다면 필자는 더 이상 아무 말도 안했을 것이다. 김교수가 기독교의 唯名論까지 동원하면서 증오의 경지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이 많아진 것이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말은 분명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필자는 궁극적인 悟를 우리 말로 깨침' 이라 부르 고 아직 거기에 이르지 못한 오는 '깨달음' 이라 부르고 있다. 말의 세계에서는 양자를 구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조스님의 경우는 해오가 깨달음이고 증오는 깨침이다. 증오를 '깨침'이라 부르는 이유는 깨침이 깨짐'에서 나왔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해오를 가리키는 '깨달음'은 깨짐이 없어도 되지만 증오를 가리키는 깨침온 반드시 깨짐을 거쳐야 한다. 깨짐이 없는 깨침은 깨침이 아니다. 깨짐과 깨침은 둘 다 깨다'라는 동사에서 나왔다. 이 말은 '판을 깬다'든가 또는 병을 깬다'는 말처럼 깨짐을 의미하기도 하고 '잠을 깬다 또는 국문을 깬다'는 말처럼 깨침을 의미하기도 한다.
불도를 닦는 경우, 무엇이 깨지는가? 깨지는 것은 다. 잘못된 아가 깨질 때 참다운 아가 잠에서 깨어나듯 깨어난다. 이것을 깨침이라 부른다. 깨지다'와 깨치다'는 원래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 깨짐과 깨침은 동시에 이루어진다. 깨침과 깨달음의 차이를 밝히는 것은 修證을 다루는 불교학의 중요한 사명이다. 만일 이 구별을 엄격히 할 줄 모르면 불교사상이 큰 혼란에 빠지고 만다고 생각한다." 주3)필자는 이 문제를 필자의 Buddhist Faith and Sudden Ealightenment (Albany, New York:SUNY Preas,
1983)에서도 다루었다. 특히 pp. 123~132에 있는 15장의 Kaech im: The experience of Brokennese와 16장의 Revolution of Basis참조.
필자는 또한 평소에 불교인의 삶은, 깨쳤거나 못깨쳤거나, 그런 것엔 관계없이 普賢行을 실천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이러한 인연으로 내 삶의 구호는 보현행자로서 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보현행 깨침을 體로 하는 用과 같은 것이다. 그러
므로 깨침은 보현행의 근본이다. 실로 보현행은 깨침올 원동력으로 처음에 시작될 수 있고, 그 뒤에 계속 될 수 있으며, 또한 마지막에 원만하게 마무리지어질 수 있는 것이다. 주4) 필자가 여기에서 말하는 보현행이란 般若三藏이 번역한 (40권 華嚴經 보현행원품)에 나오는 보현행원사상을 말한다. 필자는 보현보살의 열가지 큰 소원(十大願)을 모두 깨침이라는 체에서 나온 용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여래의 경우에서도 그렇고 초심범부의 경우에서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즐겨 사용한 우리 말 〈보현행원품>은 다음과 같다. 운허스님 역, 《보현행원품) ( 동국역경원, 1966), 光德스님 역, 《지송보살현행원품) (불광출판부, 1991), 법정스님 역, 〈나누는 기쁨 보현행원품>, 불일출판사, 1984)
."필자는 그러한 의미로 ‘돈오돈수적 점수설’이라는 말을 사용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깨침의 가장 철저한 의미를 성철스님의 돈오돈수사상에서 보았고 보현행의 구체적인 전개를 보조스님의 점수사상에서 보았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감히 그러한 새 말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모든 말이 다 그렇듯이 돈오돈수적 점수설의 경우도 새 말을 하나 만들어냄으로써 일이 끝난 것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서 그 말을 키워야 할 것으로 믿는다. (계속)
199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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